서형수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남 양산시 을)'''
''선거구 분리''
윤영석[1]

'''제20대
서형수'''

제21대
김두관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서형수
徐炯洙 | Seo Hyungsoo
'''
'''본관'''
달성 서씨[2]
<colbgcolor=#004ea2> '''출생'''
1957년 4월 5일 (67세)
경상남도 양산군 웅상면 매곡리
(現 경상남도 양산시 매곡동)
'''학력'''
서울대학교 (법학 / 학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소속 정당'''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20
'''현직'''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장관급)
'''약력'''
한겨레신문 대표이사 사장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장
경남도민일보 대표이사 사장
풀뿌리사회적기업가학교 교장
제20대 국회의원(경남 양산시 을)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외부 링크'''

1. 개요
2. 생애
3. 정치 활동
4. 선거 이력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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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 정치인. 현재 대한민국의 초선 국회의원(제20대 국회)으로서, 지역구는 경상남도 양산시 을이며,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정계 입문 전에는 한겨레신문 사장을 지낸 경력이 있다.

2. 생애


1957년 생으로. 경상남도 양산시 웅상읍[3] 출신이다. 양산개운중학교, 부산광역시 동래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 를 졸업했다.
1983년 롯데백화점에 입사해 기획실에서 일하고 있다가 직장 상사인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 조영호의 권유로 1988년 새신문 창간 운동에 가담하면서 언론계에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5월 한겨레신문이 공식 창간하자, 기획국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언론계에 투신했다. 이 후, 판매국장, 뉴미디어국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겨레신문의 살림과 경영에 깊숙히 관련을 맺었다. 언론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자 출신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기자 일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순수 경영지원 분야에서 일했던 사람이었다.
2003년 한겨레 신문의 자회사인 인터넷한겨레 대표를 역임, 2004년 유기농판매점인 초록마을을 운영하는 한겨레의 자회사 한겨레플러스 대표를 역임했다. 2005년 한겨레신문의 사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후, 한겨레 경영총괄 전무가 되는 것을 끝으로 잠시 신문사를 떠나 고문으로 있었고, 이대로면 한겨레 신문의 경력이 끝나는 것이었는데, 2007년 사장이 되는 계기가 생겼다.
한겨레신문이 금속노조의 의견광고 게재를 거부하는 것으로 촉발된 젊은 기자와 중년 편집국 간의 갈등, 여기에 당사 정태기 사장의 편집국장 해임과 후속 편집국장에 대한 직원의 비토, 이로 인한 정태기 사장의 사퇴로 인해 불거진 한겨레신문의 혼란 속에서 사장 후보에 출마했다가 사장으로 합의추대된 것. 임기는 정태기 사장의 잔여 임기 1년만 재직하는 것으로 취임해서 2007년부터 2008년까지 한겨레신문의 혼란을 수습하는 선에서 사장 직을 마무리했다. 사실 임기 중에 한겨레신문의 사원주주 대표 직선제가 신문사 내부의 파벌을 불러온다고 판단하여 이를 개선하고자 했지만,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으며, 2016년 현재도 사원주주 대표 직선제는 유지되고 있다.
2008년 약속대로 1년만 임기를 채운 후, 한겨레신문사에서 사장 직에서 물러나 상임고문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2009년 경남도민일보의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다시 언론계 일선으로 복귀했다. 일종의 지역독립언론 격인 경남도민일보 사장으로 재직된 것은 당시 경영 문제로 지역 자본의 유입을 두고 갈등이 있었던 경남도민일보에서 중앙일간지로 비슷한 경험을 했던 서형수를 데리고 와서 해결을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0년 2월 신임 편집국장으로 임명한 김주완 기자가 조직원 투표에서 부결되면서, 자신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하고 사임했다. 김주완 기자가 다소 급진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부결된 것도 컸고, 서형수 사장이 외부인으로 경남도민일보에 대한 개혁을 시도했던 것에 대한 반발의 표현이라고 한다. 서형수 사장이 시도했던 개혁은 지역광고의 1%를 광고국장이 가져가는 관행의 타파, 광고영업사원의 인센티브 정리 등 경영의 방만함에 대한 개선이었다고 한다. 막상 사퇴를 선언하자 구성원들이 만류했지만, 결심을 되돌리지 않고 2010년 2월을 끝으로 사임했다.[4]
이후 2011년부터 풀뿌리사회적기업학교 교장을 역임하면서 사회적 기업 운동 쪽에서 활동했다. 그러다가 2016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대표의 권유를 받아 영남지역 인재영입 1호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당시 더민주 측은 "정론직필로 부당한 권력을 감시하는 것은 물론, 서민의 고통을 세상에 알려온 서 전 사장이 정치개혁과 민생복지를 이룰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3. 정치 활동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전략공천 받아 고향 웅상이 포함된 신설선거구 양산을에 출마했고 40.33%의 지지로 당선되었다. 선거 초반 여론조사가 좋지 않았고 상대 후보 지지층이 국민의례 중의 사진을 악의적으로 캡쳐[5]해서 종북몰이를 당하기도 했지만 여당의 표가 분산이 되었고, 반대로 국민의당 후보가 출마를 포기[6]하면서 사실상 야권의 단일 후보가 되었던 점, 동면과 고향인 웅상[7]에서의 열세에도 신도시로만 구성된 양주동에서 그 이상의 몰표가 나와 상쇄되어 간발의 차이로 당선에 성공했다. 더불어민주당의 PK 지역 약진에 한 몫 거들었던 것.[8]
당선 된 다음날 김해시 갑에서 당선된 민홍철, 김해시 을에서 당선된 김경수, 김해시장 재선거 당선자인 허성곤 시장, 김해시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김종근 김해시의원[9]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함께 참배했다.
[image]
2016년 9월 14일 추석 문자에서 양산 갑의 윤영석과 상반된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2018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측근들에게 1차 컷오프를 면제했다는 의혹을 받고있다. 실제로 1차 컷오프를 통과한 4명 중 3명이 서의원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문재인이 양산 자택에서 송인배 소개로 드루킹을 만났다는 가짜 뉴스에서 서형수 의원이 모자이크 된 채 드루킹으로 둔갑되었다#. 참고로, 그 날은 2019년 2월 2일로, 그 날 문재인의 양산 자택으로 찾아간 사람은 송인배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과 서형수 의원이라는 네티즌들의 증언이 올라오면서 확인사살. 결국, 명예훼손으로 해당 게시물은 고발되었다.
2020년 총선에 불출마 한다는 설이 계속 돌고있다. 본인도 딱히 부정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 일단 측근들이 계속 출마를 설득하고 있다는 듯. 만약 진짜로 불출마를 선언한다면 민주당 입장에선 꽤나 골치가 아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9년 9월자 기사에서 사실상 불출마쪽으로 마음을 굳혔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당에서도 설득에 실패했는지 후보군 찾기에 돌입한 상황이다. # 재선 가능성이 꽤 높은 초선의원의 불출마 선언인 만큼 추후 총선 물갈이론에 큰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서형수의 빈 자리는 민선 5기 경상남도지사를 지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내 경선 출마를 이유로 중도사퇴한 김두관이 출마하여 당선됐다.
2020년 1월 13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 위촉되었다. 장관급의 직위이며 여당의 중진의원들이 대부분 자리를 거부하면서 서의원이 자리를 맡았다고 한다. 저출산 고령화가 이제는 한국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가 된만큼 꽤나 중책을 맡은 셈이다.#.
2020년 1월 17일 서형수 의원을 모자이크 처리해서 드루킹으로 둔갑시켜버린 가해자 남성이 잡혔고, 50대 남성은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공연히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적시해 문재인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재판부는 선고 이유를 밝혔다. 심지어 초범도 아니고 동종 범죄로 처벌받은 적이 있는 재범이라고 한다.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양산 을)

'''26,829 (40.33%)'''
'''당선 (1위)'''
'''초선'''

5. 둘러보기





[1] 양산시 선거구의 제19대 국회의원이다.[2] 감찰공파.#[3] 정확히 말하자면 양산시 매곡동이다. 문재인의 집이 매곡동에 있어서 유세지원할 때 서로 언급했다.[4] 다만 후임 사장인 구주모씨가 김주완기자를 다시 편집국장을 지명하고, 이번에도 부결되면 나도 떠나겠다고 선언하며 결국 김주완 기자는 편집국장에 임명되었다.[5] 국민의례를 하기 위해 오른손을 가슴에 얹는 과정에서 오른손이 덜 올라온 상태의 사진을 '악수를 하는 손'이라며 국민의례도 거부하는 종북 세력이라며 악의적으로 선동하는 짤이 퍼졌다. 애초에 국민의례에서 악수하는 손을 하는게 말도 안되지만.[6] 허용복 후보였다. 이 때문에 국민의당에서 징계를 할 예정이었는데 그냥 묻힌 듯. 한때 바른미래당의 후보로 열심히 선거를 뛰기도 했다.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바뀌면서 21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다.[7] 열세라고는 했지만 웅상4개동 각각에서 3~4백표, 웅상 전체 1400여표 차이로 패배했다. 웅상지역이 전통적으로 양산신도시 쪽에 비해서 보수세가 강하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상당히 선전한 셈이다. 동면 지역의 경우 양산신도시가 일부 걸쳐있긴한데 선거 당시에는 큰 영향력이 없었다.[8] 반면에, 갑 구에 출마한 송인배는 과거 양산시 단일선거구 시절부터 계속된 5번째 도전에서도 지고 말았다. 그리고 징역형이 확정되면서 피선거권이 박탈되 사실상 정치를 할수 없게 되었다.[9]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