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관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남 양산시 을)'''
제20대
서형수

'''제21대
김두관'''

''현직''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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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수'''
'''임명직'''

'''민선1·2기'''

'''민선3·4기'''
제37대
이영돈

'''제38·39대
김두관'''

제40·41대
하영제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김포시 갑)'''
''선거구 개편''
홍철호[A]

'''제20대
김두관'''

제21대
김주영




'''제34대 경상남도지사'''
<colbgcolor=#004ea2> '''대한민국 제20 · 21대 국회의원
김두관
金斗官 | Kim Doo-kwan
'''
'''출생'''
1959년 4월 10일 (65세)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1]
'''거주지'''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
'''본관'''
경주 김씨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 공동위원장
'''재임기간'''
제5대 행정자치부 장관
2003년 2월 27일 ~ 2003년 9월 18일
제34대 경상남도지사
2010년 7월 1일 ~ 2012년 7월 6일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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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ea2> '''종교'''
불교 (법명: 웅기)
'''학력'''
도마국민학교 (졸업)
남해중학교 (졸업)
남해종합고등학교 (졸업)
경북전문대학교 (행정과 / 전문학사)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 / 학사[46])
'''병역'''
[image]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제37보병사단)
'''가족'''
배우자 채정연, 아들 김도완,
동생 김두수, 김두성, 김영철, 김두철,
누나 김길자
'''신체'''
181cm, A형
'''지역구'''
경남 양산시 을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20, 21
'''소속 정당'''

'''소속 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경력'''
남해농민회 사무국장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 마을 이장
민중의당 남해·하동지구당 위원장
남해신문(주) 대표이사 사장 겸 발행ㆍ편집인
제38~39대 경남 남해군수(민선 1-2기)
자치연대 공동대표
새천년민주당 경상남도지사 후보
새천년민주당 남해ㆍ하동지구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새천년민주당 당개혁특위 위원
제5대 행정자치부 장관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열린우리당 경상남도지사 후보
지방분권연구소 이사장
열린우리당 경남도지부장
노무현 대통령 정무특보
열린우리당 최고위원
(사)민부정책연구원 이사장
민주당 송인배 후보 경남 양산 캠프 공동선대위원장
제34대 경상남도지사(민선 5기, 2010.07.01~2012.07.06)
민주통합당 제18대 대선 경선 후보
새정치민주연합 ·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김포시 지역위원회 위원장
제20대 국회의원(경기 김포시 갑)
제21대 국회의원(경남 양산시 을)

1. 개요
2. 생애
2.1. 남해군수가 되기까지
2.2. 재야 탈출기
2.3. 3수 끝의 경상남도지사 당선
2.4. 무리수였던 대권 도전
2.5. 다시 재야로
2.6. 20대 총선: 두 번째 재기에 성공하다
2.7. 21대 총선: PK에서의 신승
3. 논란
3.1. 동양대 총장 전화 논란
3.2. "이 기회에 평양-서울 연락사무소 2개 만들자" 발언
3.4. 기본자산제 토론회 논란
3.5.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 주장 논란
4. 소속 정당
5. 선거 이력
6. 여담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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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 이장에서 시작해 군수를 거쳐 행정자치부 장관과 경상남도 도지사 그리고 국회의원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로, 노무현 정부 시절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임명돼 친노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며,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 신분으로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해 53.5%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해 '''예전에는''' 민주당의 대선 주자감으로 거론되던 사람이었다.[2]
하지만 2012년 18대 대선 경선에 출마하려고 '''경남지사직을 내던지는 정치적 자살 행위'''를 저지른 데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와 경쟁할 때 보인 그의 행보가 두 사람 간의 아름다운 경쟁을 기대했던 친노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큰 실망을 사면서 정치적 고난기를 겪어야 했다.
그 뒤 지난 2014년 7.30 재보선에서 도전했다가 떨어졌던 곳인 경기도 김포시에서 20대 총선 때 재도전해 당선되면서 가까스로 재기의 기회를 잡았다. 그 덕에 대한민국의 제20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또한, 21대 총선에서 당의 요청으로 양산시 을 선거구에 도전하여 당선되어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2020년 5월 이후, 동향 남해군 출신 윤미향의 의원직 보유를 적극적으로 두둔하고 있다. 기사

2. 생애



2.1. 남해군수가 되기까지


1959년 4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에서 가난한 어부의 5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해외로 돈벌이를 나간 형들[3]을 대신해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는 등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남해종합고등학교(현 남해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국민대학교 어문계열에 합격했으나 등록금 문제 때문에 진학을 포기했고, 이 후 경북전문대학교 행정과를 거쳐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편입해 졸업한다. 대학 시절 동생 김두수[4]와 함께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고향 남해로 낙향해 민중의당 후보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경남 남해군-하동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5%도 채 되지 않는 득표율로 민주정의당 박희태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5]
이 후 고향 이어리의 이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여러가지 활동을 통해 기반을 쌓아나갔고, <남해신문>이라는 지역 신문사를 설립해 운영하며 신망을 쌓았다. 1995년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남해군수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당시 만 36세로 전국 최연소 지방자치단체장이었으며, 지금까지도 선거로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으로는 최연소 기록이 깨지지 않는 중이다.
이후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국민승리21의 지원을 받는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에 성공하여 재선 남해군수를 지냈다.[6]

2.2. 재야 탈출기


민선 2기 남해군수 임기가 끝나갈 무렵인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경상남도지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노무현을 만난 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새천년민주당 소속이었던 상태에서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났고 결국 17%의 저조한 득표율로 낙선했다. 상대 후보였던 한나라당김혁규넘사벽이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당시 김혁규는 무려 74% 이상의 득표율로 김두관을 개박살냈다.[7]
이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 정권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문재인의 저서인 '문재인의 운명'에 따르면 당시 장관직 수행평가에서 1위를 여러차례 차지할 만큼 장관직 수행을 잘 했다고. 그러나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그의 장관직 수행에 대해 크게 부정적이었으며, 한총련이 미군기지에 침투하여 불법시위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을 제출했고, 결국 해임건의안이 통과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해임건의안을 거부하고 그의 장관직을 지킬 것이라고 했으나, 계속 논란이 되자 그는 스스로 사의를 제출하면서 결국 장관직에서 퇴임하였다. 사실, 그동안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경우는 여야를 불문하고 스스로 사임해야되는 것이 관례다. 승복하지 않으면 역풍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불명예스럽게 퇴임한 셈이 되었으나, 민주당계에서는 그는 한나라당의 딴지로 인해 피해를 본 것이라는 시각이 강해지면서 차츰 민주당계에서는 떠오르는 정치인으로 올라섰고, 열린우리당이 생기자 바로 합류했다. 그리고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받아 남해군-하동군 지역구로 출마하였고, 당시 탄핵 논란으로 열린우리당에 상당히 유리하다는 평이 있어 어느때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선거운동 초반 여론조사에서도 20% 가까운 우위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이 보도된 이후 샤이보수 층이 결집하면서 끝내 한나라당 박희태[8] 후보에게 약 7000표 차이로 석패했다. 2년 뒤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남지사에 다시 도전했으나, 한나라당의 김태호[9] 도지사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며 낙선.[10] 2년 뒤에는 지역주의를 의식했는지 무소속으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같은 지역구로 출마했지만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의 여상규 후보에게 밀리며 40%의 득표율로 낙선하였다.[11]
이로서 2년 주기로 걸친 4번의 선거에서 연속으로 2위로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2.3. 3수 끝의 경상남도지사 당선


그러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로 경상남도지사에 도전했고, 무소속 신분이었던 그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후보와 단일화되어 대통합 야권후보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53% 득표율을 얻으며 당선에 이달곤[12] 후보를 꺾고 성공했다. 본인으로선 도지사 선거만 3번의 도전 끝에 당선되었다. 중앙에서 활동하던 이달곤에 비해 오랫동안 PK에 몸담아온 김두관이었기에 '''지역밀착형''' 후보라는 태그가 승리의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더욱이 2006년을 기점으로 세를 보이기 시작한 PK의 진보층도 큰 활약을 하기도 했다. 또한 당시 인권변호사였던 문재인이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경남 전역을 누비며 김두관이 당선될 수 있도록 총력지원을 해준 것도 당선의 원동력이었다. 이로써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이 되면서 거물급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13]
문재인강기갑 등 여러 야권 명망가들의 격려를 받으며 2010년 7월 1일 경상남도 도지사로 취임한 김두관은 자신과 야권단일후보를 놓고 경쟁했던 민주노동당 소속의 강병기를 정무부지사로 임명하며 협치 행정을 실천하였다. 또한, 2012년에는 허남식 부산시장과 일일 교환근무를 하기도 했다. 이어 4대강 사업을 선명하게 반대하며 이명박 정부와 각을 세웠고, 무상급식을 통과시켰다.

2.4. 무리수였던 대권 도전


이후 다시 민주당에 입당하여 무난히 도정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재임 2년차인 2012년 경남지사직을 뜬금없이 돌연 사퇴하고 제18대 대통령 선거 경선에 출마하였다. 이로 인해 경상남도 진보층 사이에서는 배신감이 쌓이게 되었다.
경선 결과, 손학규에게도 밀리며 14%의 득표율로 3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받아야 했다. 자세한 경선 과정은 이곳을 참조. 같은 PK를 기반으로 하는 문재인 후보가 월등히 지지율이 높은 상태라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애초에 높지 않았는데, 도지사직을 뛰쳐나와 무리하게 경선에 참여하여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꼴이 되어버렸다는 비난을 받았고,[14] 결국 대선과 병행하여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홍준표가 당선되면서 어렵게 얻은 경남지사 자리를 다시 새누리당 쪽에 헌납한 꼴이 되어버려, 야권 지지자들에서까지 '''평생까임권'''을 얻게 되었다. 그의 이름을 거꾸로 나열한 ''''관두김'''', 사퇴하고 도망쳤다고 ''''런두관''''[15]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까지 생긴 것은 덤이다.
경선에 참여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고 '''왜 경남지사직을 사퇴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16] 사실 안철수의 국회의원 사퇴도 그렇고 대선후보 또는 경선후보 역할과 국회의원, 도지사직을 동시에 수행하면 한쪽에 소홀하게 된다는 나름의 명분이 있기는 하다. 실제로 안희정, 남경필 등이 대권도전으로 인한 도정소홀 문제로 약간 논란이 있기도 했다.[17] 문제는 그러한 명분보다 도지사를 다시 뽑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 그리고 자신을 뽑아준 도민들에 대한 신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두관 이후로는 경선출마를 이유로 시/도지사, 넓게는 기초단체장직이나 지방의회 의원직을 사퇴하는 사례가 없었는데, 2020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서 정의당 소속 구의원이던 임한솔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구의원직을 사퇴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키워준 정의당마저 탈당해 버렸다. 물론 임한솔의 경우는 경선출마가 아닌 국회의원 선거 출마가 목적이었지만, 정작 자신이 새롭게 둥지를 튼 민생당에서조차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받지 못해 임한솔의 무리수는 대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홍준표, 안희정, 이재명 등이 다 경선단계에서 단체장직을 유지했다.
이런 무리수를 뒀던 이유에 대해 당시 여러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중 하나는 당시 정치환경적인 문제. 경남의 각종 단체들의 심각한 알력과 도의회, 공무원등의 비협조적 태도, 당시 중앙정부의 지나친 견제등 여러이유로 인해 그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도정을 수행할 여건이 아니었다. 즉 이래저래 끌려다녀 성과 안나올게 뻔한 도지사직을 계속 하는건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것이란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때마침 후보경선이 있었고 대통령 후보경선을 명분삼아 도지사직을 사퇴함으로써 추후를 도모하고자 했다는것
또 다른 설로는 프레임에 말려 들었다는것. 2010년도 이후부터 일부 매체들을 통해 특정 정치평론가, 혹은 여권의 유력한 관계자라는 불분명한 출처를 통해 김두관이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일 지도 모른다)라는 말이 계속해서 흘러 나왔었는데, 이를 근거로 그의 뜬금없는 대권 도전 선언이 여권 혹은 그 쪽과 가까운 정치평론가들의 지속적인 프레임 설계였으며 여기에 제대로 낚인 것이다는 추측이다.
물론 이제는 거의 10년이 다되어가는 일이기도 하고 PK에서 화려하게 복귀한 마당에 굳이 도지사직 사퇴의 진짜이유가 밝혀질 가능성은 높지않다.

2.5. 다시 재야로


졸지에 다시 재야가 되어버린 그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초청으로 독일에서 1년 간 연수를 받은 뒤, 2014년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하지만, 지역구는 당초 활동했던 PK가 아닌 경기도 김포시로 정해졌다.[18]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나서자 낙하산이나 뜨내기라는 비판이 생겨났지만, 본인으로선 대권 도전을 위해서는 수도권에 힘을 뻗어야 한다는 정치적 계산이 들어간 수였다.
거주지도 김포로 완전히 옮기고 본인은 분투를 했지만, 지역 토박이들은[19] PK 그 자체라 볼 수 있는 그를 좋게 볼 리가 없었고 그나마 지역 정체성이 덜한 신도시 지역에 승부수를 둬야 했는데, 그것마저도 승리여부에 의문을 둬야 했다. 결국 경쟁상대인 새누리당홍철호[20] 후보에게 밀리며 4년만에 낙선의 쓴맛을 맛봐야 했다. 예상대로 농촌지역에선 홍철호에게 몰표가 쏟아졌고, 신도시에서도 패배하여[21] 40% 득표율로 선거를 마감했다. 경남지사 당선 배경에는 PK 지역밀착형 후보였던 점이 상당히 먹혔던 것에 비해 이번 선거에서는 오히려 그 점이 낙선의 큰 요인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2.6. 20대 총선: 두 번째 재기에 성공하다


이후로도 경남으로 주소를 옮기지 않고 계속 김포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점점 김포사람으로 되어가는 중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포에서 출마하기 위해 준비해오고 있는 듯했다. 마침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포시 선거구가 갑/을로 분리되면서 자리가 하나 더 늘었고, 김포시 갑 선거구 공천을 받아 출마하게 되었다.[22] 새누리당측의 상대는 김동식 전 김포시장. 더불어민주당에서는 PK 출마를 기대했지만, 본인은 대권도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김두관 본인 말로는 경남지사 자리에서 중도 하차해 다시 보수정당의 홍준표에게 헌납한 그 원죄 때문에 못 내려가고 있다고 [23]
현재까지 나온 관련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새누리당의 김동식 후보보다 5~10% 안팎의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포시(갑)이 도시 인구가 많아 야권세가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듯. 결과를 두고볼 일이지만, 일단 2014년 재보궐 선거때보다는 해볼만한 승부로 여겨진다. 김동식 후보는 김두관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지는데다[24] 김포시장 시절 권력형 비리(!)로 처벌받은 전과가 있다.
여담으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도 지역 출마자 중 91년 이후 역대 공직선거 출마횟수가 8회로 가장 많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포함하면 9회이며,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마치면 10회가 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선거운동기간에 경남에 내려가서 똑같은 내용으로 고해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충의 내용은 '죄송하다 내 잘못이다'로 시작해서 '중도사퇴는 잘못됐다' → '내가 관둬서 홍이 됐다' → '나는 준비가 미흡했다' 라는 순서로 갔다. 그 다음 문재인 후보를 지지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마무리. 여기에 홍준표를 벌해달라는 말은 덤. 전형적인 사과문의 한 사례이다.

2.7. 21대 총선: PK에서의 신승


머니투데이 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도부에서 PK 지지율이 안 좋아지니까 21대 총선에서 다시 PK로 차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양산 갑/을 중에 차출될 구상이었는데, 김두관 본인은 김포시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고사했다. # 하지만 계속된 당 지도부 및 친문 그룹의 설득과 권유로 양산 갑/을 중 하나로 다시 PK로 돌아가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동아일보 기사)[25]
2020년 1월 23일, 양산시 을 출마를 결심하였다. # 현역 서형수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한 곳이다.
2월 17일, 양산시 을 전략공천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 이후 20일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부산·울산·경남 지역 선거를 지휘할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21일에는 양산시 을 선거구에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했던 임재춘, 박대조 예비후보가 김두관 지지를 선언했다.
한편,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PK 수비대장을 자처하며 양산 을에 출마하겠다고 나서면서 전직 경남도지사 간의 빅매치가 성사될 것으로 보였으나, 홍준표가 미래통합당 공천에서 컷오프당한 후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그 홍준표 대신 김두관의 선거 상대로 나온 적수는 나동연 前 양산시장이었다.[26]
한마디로 체급이 센 홍준표가 아닌 나동연이 나온 덕분에 선거가 조금 수월해졌다. 실제로도 나동연은 웅상지역에서 민심이반을 당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는 과정이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웅상지역에서 반쯤이기고 양주동에서 적은 표차로 이기면서 겨우 당선되었다. 만약 홍준표와 맞붙었더라면 낙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홍준표 예비후보가 과거 경남도지사시절의 마이웨이 행보로 인해 지역에서 안티가 꽤나 많았다는점을 감안해보면 완전히 불리한 싸움은 아니었다. 홍준표 후보가 고향출마가 아닌 대구 출마를 선택한 이유도 경남에서는 썩 유리하다고는 볼 수 없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27]
결국 치열한 접전끝에 경남 양산시 을에서 미래통합당 나동연 전 시장을 꺾고 당선되며 8년 만에 돌아온 격전지 경상남도에서 재선 국회의원이 되는 데 성공했다.# 본인이 민주당 선거를 지휘했던 PK 지역에서 민주당 의석이 10석에서 7석으로 줄었지만, 2019년을 기점으로 민주당에 싸늘해졌던 지역 민심을 생각하면 낙동강 벨트를 접전 끝에 수성하면서 선방했다는 평가.# 아울러 그의 정치 커리어 최초로 '''민주당 당적을 갖고''' 경남에서 당선되는 기쁨을 누렸다.
총선 직후 오거돈 부산시장이 성추문으로 사퇴하는 일이 벌어지자, 민주당 내에서 내년 있을 보궐 선거에서 후보를 낼 것이냐, 내지 않을 것이냐를 가지고 격론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심판을 받더라도 잘못했으면 잘못한 대로, 잘했으면 잘한 대로, 선거로 심판받는 것이 민주주의라면서 후보를 공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재선 성공 이후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에 의해 촉발된 윤미향 당선인 및 정의연에 대한 의혹공세,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논란, 부산시장 재보궐선거 무공천 여부, 북한에 대한 전단살포, 윤석열 검찰총장의 거취와 관련해 강경한 입장을 내고 있다. 특히 윤미향 당선인 및 정의연 관련 의혹 제기에 대해 "친일, 반인권, 반평화 세력이 최후의 공세를 하고 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시민단체가 나서서 고발하고, 검찰이 수사하고, 언론은 검찰의 입을 빌려 밝혀지지 않은 의혹을 단독이라 연일 보도할 것이다.", "윤미향 향한 비판은 보수 망나니의 칼춤이다."와 같은 반응을 내놓으며 윤 당선인을 강력히 옹호하고 친일-반일 프레임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이러한 논란 전체를 '윤 당선자 길들이기'로 정의하기도 했다. 윤미향과 김두관은 같은 남해군 출신 동향인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2021년부터 청와대 낙점설이 돌고 있다.# 경남 지역 의원들의 의견은 그냥 가담항설. 쉽게 말해, 그냥 썰이 아니냐는 추측 또는 경우의 수를 넓혀보자는 의미라고 하는 듯.

3. 논란



3.1. 동양대 총장 전화 논란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 조민이 동양대 총장 표창장을 총장의 승인을 받은 적 없이 상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동양대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압박했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다만 전화를 걸어 압박을 했다는 총장의 주장과 달리 김두관 의원은 단순히 청와대 분위기가 안 좋다는 걸 전달했을 뿐이라며 회유나 압박은 없었다고 한다.[28] #
이에 자유한국당유시민 이사장과 김두관 의원을 직권남용 및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
2020년 3월 30일 최성해 전 총장은 정경심 교수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유시민과 김두관이 자신에게 전화해 "표창장을 정경심 교수에게 위임한 것으로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

3.2. "이 기회에 평양-서울 연락사무소 2개 만들자" 발언


2020년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상황인데도 페이스북에 "전화위복"이라며 "이 기회에 개성에 공동연락사무소 1개를 둘 것이 아니라, 평양과 서울에 남북의 대사관 역할을 할 연락사무소 2개를 두는 협상을 시작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발언하여 논란이다.#, #

3.3. 인천공항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 논란 관련 발언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 절차 논란과 관련해 구의역 김군 사태를 언급하며 '''"조금 더 배우고 필기시험 합격해서 정규직 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 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하다"'''라는 발언을 했다. # 그러면서 "조중동류의 가짜 뉴스 때문"이라며 "차별로 고통받는 비정규직의 현실을 외면하고 '을과 을의 전쟁'을 부추겨 자신들의 뒷배를 봐주는 '갑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왜곡보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이에 대해 여러 언론과 네티즌 등으로부터 '결과적 평등만 강조하며 청년들의 아픔을 외면한다',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거냐' 등로 비판을 받았으며, 가짜뉴스라는 말을 물타기용으로 쓴다는 비판도 받았다. # ## # #
문재인 정부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역임했던 출신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도 "사회주의 체제로 가자는 것인가. 임금을 정부가 책정하겠다는 것인가. 그 임금은 누가 부담하는가"라며 "김 의원 월급이 왜 경남도의원보다 많아야 하는지, 생산직 노동자에겐 주지 않는 차량비와 비서진들을 왜 김 의원에겐 제공하는지까지 포함해서 김 의원이 받는 대접은 공정한가"라고 지적했다. # # 이 때문인지 6월 30일 김두관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연봉을 국회 보좌관 수준으로 낮춰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
미래통합당 하태경 의원은 20·30세대가 겪는 취업난을 언급하며, 청년들을 모독한 발언이라 하였다. # 해당 발언이 담긴 김두관 의원의 블로그 역시 댓글 1000개 이상이 달리기까지 하였다.
거기에다 지난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당시에 김두관의 아들이 쓴 글에 의하면, 김두관은 자신의 아들에게는 정작 노력에 대해 보상을 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말바꾸기 논란까지 제기되었다.#
논란이 지속되자 김두관은 자신의 발언에 대한 야권의 공격을 '생트집'으로 규정하면서 하태경에 대해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의 바람이 연봉 3천500만원 주는 보안검색이냐"며 "자기가 갈 자리도 아니면서 험한 일 하던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반박했다. # 이는 꿈의 직업 중 하나로 꼽히는 7급 공무원조차도 초봉이 3500이 안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발언으로 보인다. #
"서울 명문대 출신은 5~10년 동안 생계 걱정 없이 취업만 준비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명문대생이라도 과외와 알바를 뛰며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본인 자식을 생계 걱정 없이 대학 보내고 하다 보니 현실을 알리가 있느냐는 비판마저 나오는 중. #
이렇게 명문대 출신을 비판한 김두관 의원이지만, 본인 아들은 수년 간 영국 유학을 다녀왔고 딸은 중국에 유학을 갔다고 한다. # # 심지어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3년이나 시간을 들인 이후에야 영국에 가고, 영국에서는 무려 5년이나 지내면서[29] 좌석값만 최소 10만원이 넘는 챔피언스리그 경기까지 관람하고 다니고 돌아와서 1년만에 취직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아들같은 줄 아는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자녀 논란까지 나왔지만 김두관은 조선일보가 또 가족 신상 털기로 세상을 바꾸려는 정치인들을 흠집내고 있다며 자신의 가족을 먹잇거리로 내주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 이전에는 뜬금없이 일본의 사례를 끌고와 미래통합당에 재차 반박하는 주장을 펼쳤는데 일각에서는 반일감정을 자극하여 물타기하려는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김두관은 현재 비판에 "내 아들 유학이 무슨 관계냐" 라며 잘못이 없다는 생각인 상태로 보인다. #

3.4. 기본자산제 토론회 논란


김두관 의원실 주최로 기본자산제에 대힌 토론회 중 신생아들에게 2000만원 가량의 돈을 제공하고 상속 가능액을 4억으로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하자는 의견이 거론되었다. # 예를 들어 100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불과 4억만을 상속할 수 있고 무려 96억을 국가에 헌납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자산소득을 형성하는 과정에서도 적지않은 세금을 내게 되어 있고 추가로 그 자산을 물려받음에 있어 이미 상속 및 증여세도 있기 때문에, 이런 발상 자체가 자본주의 논리에 맞지 않는 턱없이 무리한 이중과세라고 비판받고 있다. 이에 수반하는 대규모 조세제도와 국가 회계 시스템의 대규모 개편까지 필요한 사항임에도 이런 사항에 대해서는 토론회 중 언급되지 않은 것 역시 문제.#

3.5.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 주장 논란


2020년 12월 25일 기자회견실에서 '''대통령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탄핵해야한다고 발언해서 큰 논란이 일어났다. 법원이 대통령의 재가도 받은 결정을 뒤집어서 사법 쿠데타가 일어나거라면 모두 책임을 지다고 하여 반드시 입법부에서 탄핵해야 대통령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무리한 주장을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받고 있다.# 정작 대통령은 같은날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어 죄송하다고 정식으로 사과했으며 탄핵안 발의가 자칫 대통령의 인사권에 반하는 조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안 보이는 모양이다.[30][31]
이에 대해 민주당을 탈당했던 금태섭 전 의원은 "이제 와서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소위 강성지지자들로부터 점수를 좀 따보겠다는 얄팍한 술책이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총장 임명 당시 극구 반대했던 사람조차도 탄핵까지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연일 윤석열 탄핵에 자신이 앞장서겠다는 등 탄핵에 벼르는 주장을 하면서 최근에는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며 주장[32]하고 있다. 대통령의 사과가 강경파들에게 자중하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 가운데 지도부와 강경파 사이 내부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추측이 나올 만도 하다.[33]
28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윤석열 탄핵에 힘을 모아달라라는 서한을 보냈다. 그런데 서한에 윤석열이 반여친야 수사[34]를 하는 이유가 국민의힘과 보수언론 때문이라며 야당을 비난을 시작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을 운운하며 사법부의 결정을 불가역의 최종결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며 입법부가 이제 행정부를 통제하고 사법부를 견제해야 민주주의의 기본인 삼권분립이 지켜진다는 논리로 보인다. 더불어 대통령은 인사권자로서 국민앞에 고개를 숙이셨는데 정작 당사자인 윤총장은 국민 앞에 사과 한마디 없다.며 비난했는데 사실상 억지다. 애당초 삼권분립은 권력기관 간의 무간섭이 아닌 견제를 전제로 하는 개념인데, 법무부의 폭주로 행하여진 위법한 징계에 대한 사법부의 견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우기는 시점에서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것은 오히려 김두관 의원 쪽이다.
한편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스스로 윤석열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감싸주는 발언을 했다.

4.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88
정계 입문

1988 - 2002
정당 해산

2002 - 2003
입당

2003
탈당[35]

2003 - 2007
입당

2007 - 2008
합당[36]

2008
합당[37]

2008 - 2011
탈당

2011
창당

2011 - 2013
합당[38]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39]

2015 -
당명 변경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남해·하동

9,783 (3.22%)
낙선 (3위)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남 남해군수

'''21,605 (55.61%)'''
'''당선 (1위)'''
'''초선'''[40]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8,612 (53.73%)'''
'''재선'''[41]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315,008 (16.88%)
낙선 (2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남해·하동

26,747 (41.96%)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343,137 (25.41%)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남해·하동

24,966 (40.61%)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807,698 (53.54%)'''
'''당선 (1위)'''
'''초선'''[42]
2014
상반기 재보궐선거
경기 김포

38,858 (43.10%)
낙선 (2위)
[43]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김포 갑

'''49,758 (59.30%)'''
'''당선 (1위)'''
'''초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양산 을
'''44,218 (48.94%)'''
'''재선'''
경남에서 당선될 때는 무조건 무소속이'''었'''다. 경남, 그것도 무려 서부 경남에서 민주당계 정당 하기 참 힘들다는 반증인데 사실 고향인 남해군에서는 군수 시절 주민들과의 소통이 잘되었던 덕분에 지지세가 상당했다. 실제로 2002년 지방선거 이후에도 낙선한 선거에서 전부 선거비용 보전선인 15%를 훌쩍 넘겼을 정도. 특히 남해 지역 한정으로 2006년과 2010년 지방선거 때는 무려 각각 '''58.9% / 66.2%''', 2008년 총선에서는 '''67.7%'''를 얻었다!
그러다가 경남을 탈출하고 나서야 비로소 2016년 총선에서 당적을 가지고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21대 총선에 경남으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민주당 당적으로 출마해 양산시 을 지역구에서 승리,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44] 이 과정에서 엄청난 행운이 따랐는데 미래통합당에서는 과거 양산시장이었으나 양산시장 치세기간동안 구 웅상읍 지역의 주민들에게 영 좋지 않은 대우를 받아온 나동연을 넣은 덕분에 이 정도로[45] 더불어민주당의 험지에서 당선되었다. 양산 을 유권자들이 김두관이 좋아서가 아니라 나동연이 미워서 김두관을 찍었고 그 결과는 김두관의 당선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듯 홍준표의 해당 지역구 출마 선언을 통합당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김두관으로서는 천운이었다.

6. 여담


  • 영화 이장과 군수의 두 인물이 그의 행적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 1999년 MBC의 성공시대에도 출연했는데 재연 부분을 연기한 배우가 다름 아닌 배도환. 실제 나이는 김두관 본인이 5살이나 더 많지만 외모가 가히 도플갱어 직전 수준으로 나왔다.

7. 둘러보기








[1] 경주 김씨 집성촌이다. #[2] 김두관이 당선된 시절 경상남도는 한나라당계의 텃밭이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민주당계에 매우 가까운 인물로서 당선된 건 당시 기준으로는 이변이었다.[3] 큰 형은 서독 광부였고, 셋째 형은 사우디 건설 노동자였다고 한다.[4]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했으며, 제 16대 총선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제 17대 총선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고양시 일산서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기도 했다[5] 그래도 꼴찌는 아니었다. 당시 꼴찌는 신민주공화당의 한춘기 후보.[6] 참고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8/06/05/1998060570436.html[7] 그런데 한나라당 소속의 김혁규는 그 다음해에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도지사를 사퇴하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8] 2014년 핫이슈가 된 그 인물 맞다. 현재까지 남해군에서 배출된 정치인 중 김두관과 함께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검사 출신의 의원으로 남해-하동 지역구를 김두관이 처음 출마한 13대부터 20년간이나 꿰차고 있던 인물이었다. 당은 다르지만 같은 고향 출신이라 그런지 김두관과도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다고 하며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 때는 한나라당 소속으로는 드물게 반대를 하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박희태 참조.[9] 김두관이 최연소 민선 자치단체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이분은 최연소 민선 광역 자치단체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10] 당시는 지역주의뿐만 아니라 열린우리당의 인기가 현저히 낮아서 압도적으로 패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더불어 압도적인 학살로 회자되던 선거가 바로 이 선거. 수확이 있었다면 자신이 군수를 지낸 남해군에서는 58.9%를 득표해 당선자인 김태호를 더블스코어 차이로 눌렀다는 것 정도가 위안.[11] 참고로 남해-하동군은 보수텃밭이다. 하지만, 이분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유력인사인 여상규 후보와 겨뤄서 40%를 얻었다. 즉, 김두관은 말 그래도 유력인사였던 것이다.[12] 창원 출신의 이름있는 행정학자며 이명박 정부한나라당 18대 총선 비례대표 국회의원행정안전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로써 이 선거는 전직 행정안전부 장관(김두관 시절에는 행정자치부) 끼리의 대결이 되는 셈이기도 했다. 하지만, 출마할 당시 중앙에서 내려온 낙하산 후보라는 비판을 들었고 나름대로 상당히 분투했으나, 낙선. 통합창원시 아이디어를 낸것도 이분이었다. 2012년에는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발탁되어 근무했다.[13] 실제로 김두관은 밀양,창녕,합천,거창,산청,통영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리했다.[14] 이때 차라리 도지사직을 유지하고 같은 PK출신인 문재인을 지지하면서 PK의 진보층을 결집시켰더라면 문재인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란 분석도 있었다. 다만, 도지사직을 유지했을 경우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은 곤란하기 때문에 이대로 했더라도 그가 진보층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었고, 그런 이유로 정치활동에 제한이 많은 도지사직을 내놓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15] 참고로 관두김, 런두관 둘 다 이 문단으로 리다이렉트된다.[16]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경선출마는 지사직을 유지한 상태에서도 가능하다. 다음 대선에서 김두관의 후임 도지사인 홍준표는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되고 지사직 사퇴 시한 직전까지도 지사직을 유지했으며 민주당의 안희정, 이재명, 최성 등 지자체장들도 현직을 유지하고 경선출마 하였다. 문재인의 경우도 본선에 진출하고 대선에서 낙선하고도 의원직은 유지했다.(다만, 국회의원은 그 직을 유지하고도 대선에 출마할 수 있으므로 경우가 다르기는 하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유를 추정해보자면 박근혜가 대선 출마때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승부수를 던진 것처럼 그저 일종의 승부수가 아니었나 추측할 뿐이지만 박근혜는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된 후 의원직을 사퇴했고, 당시에는 비례대표였기 때문에 의석은 같은 당에 확실하게 승계되어 의원직으로 당에 피해가 가는 것도 없어서 경우가 역시 다르다. [17] 같은 지자체장 출신 경선 후보였던 이재명, 최성의 경우 시정 논란은 적었다. 최성의 경우 후반에 나오기도 했고 이재명의 경우 경선과 시정을 동시에 챙겨가며 되려 지지도를 쌓았기 때문이다.[18] 경남에는 자리가 없긴 했지만,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울산광역시 남구에서는 재보선을 치르는 지역구가 있었다. 이 중 부산의 경우는 아무 연고도 없는 김포와 달리 출신 대학과 민주화 운동, 막노동을 했던 연고가 있고, 게다가 지역주의 타파, 결자해지의 의미도 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부산에 출마했다면 근소한 차로 이겼을지 모를 일이고, 졌더라도 도지사 사퇴라는 병크를 만회하고도 남았을 텐데, 아무리 국회의원이 좋아도 그렇지, 당선이 되어야 본전일 김포 출마를 왜 선택했는지 참으로 의아해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원래 이수봉이 출마를 준비했던 자리를 뺏어버렸다. #[19] 김포는 한강신도시가 개발된 지금도 다른 지역에 비해 타 지역과의 왕래가 적고 북한과 가까워서 서울에 붙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토박이 비율이 매우 높은 지역이다. 생전 김포에 발조차 들이지 않은 사람이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들어갔던 것에다가 상대인 홍철호 후보는 김포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토박이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유정복 인천시장의 측근이라서 애초에 김두관이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했다.[20] 굽네치킨 창업주라고 알려졌지만, 정확히는 계육 가공 중소기업인 (주)크레치코 창업주라고 한다. 기업뿐만 아니라 김포 지방의 자잘한 단체 활동을 하기도 했다. 당선된 후에는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로 활동하다가 바른정당으로 옮겼으나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21] 전부 패배한건 아니고 김포2동, 구래동에선 400~500표 정도 앞섰다. 하지만 해당 지역들은 아파트 밀집 지역에 비해선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고, 나머지 신도시 지역에선 많게는 2000표 이상 뒤지는 등 참패했다.[22] 2014년 재보선에서 대결했던 새누리당의 홍철호는 김포시(을)에 공천받았다.[23]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이 PK출마를 원하는 이유가 바로 지역주의 타파이다. 왜냐하면 경남 창원, 양산, 김해같이 동부경남인 경우는 어느정도 해소가 되었지만, 김두관의 연고지이기도 한 서부경남은 아직도 해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좀 묘한 부분이, 동부경남은 YS의 통일민주당이 강세를 보였던 곳이라 야권 입장에서는 '빼앗긴 곳' 정도의 위치라면, 서부경남은 80년대에도 TK와 별다르지 않은 민주정의당 우세지역이었다. 단, 진주,통영,고성인 경우는 통일민주당의 우세지역이였다.[24] 그럼 홍철호는 뭐냐고 할 사람이 있겠지만, 홍철호는 김포 토박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유정복의 정치적 후계자였다.[25] 물론 양산을이 김포갑보다 험지고 갈 명분이야 충분하지만, 본인이 김포시에 당선되면 뼈를 묻겠다고 선언했다 변경한건, 당요청보다는 본인의 정치적인 입지를 높일려고 하는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26] 참고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당이 다쓰러져가는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선거에 나와서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인 안철수를 깨버리고 2위를 찍어서 당을 회생시킨 게 홍준표였다. 문재인은 너무 엄청난 강적이라 그렇다 쳐도 안철수를 이긴 건 대단한 선방인 것이다. 그걸 해낸 홍준표인 만큼 적어도 경상도에서만큼은 엄청난 강적이다. 물론 대선때는 지지세가 결집한다는건 감안해야한다. 게다가 경남 서부, 내륙지역은 원래 보수세가 상당하다. 무엇보다 당시 안철수 후보는 여러 구설에 많이 오르내리면서 지지세를 스스로 갉아먹었던 측면도 있었다.[27] 도지사 시절엔 정말 심심하면 의회와 교육감과 반목했다. 심지어는 자당 소속의 도의원들하고도 싸웠다. 특히 무상급식과 관련된 갈등이 상당했다. 당연히 주민들은 "대선에 나간다는 사람이 애들 밥가지고 싸우냐."는 식의 의견이 많았다.[28] 권력단체인 청와대에서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말을 전하는 것 자체가 최성해 총장에게는 압박으로 작용 할 수 있다.[29] 영국은 체류비가 1년당 억 소리가 나오게 비싼 국가이다.[30] 어차피 말만 이렇게 하고 현실적으로 움직일 의원들은 많지 않을 것이며 실제로 탄액소추안을 발의한다 하더라도 반대표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설사 삼권분립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을 탄핵소추에 성공했다고 해도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받아들일 확률은 낮다. 애시 당초 민주당에서 처음 내놓았던 징계안도 정직 2개월에 불과했고, 그것도 법원이 받아들여주지 않았는데, 헌법재판소에서 그보다 더 강한 탄핵을 받아들일리 만무하다. 만약 그러면 민주당의 행동은 몸집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깡패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윤석열 총장의 탄핵을 주장하면서 발언자는 당내에서 절대적인 친문 세력의 눈도장은 찍을 수 있다.[31] 170석 이상을 확보한 거대 여당인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검찰의 힘을 크게 축소하는 데에는 동의하더라도 탄핵은 역풍이 불 것을 우려해 반대 의견이 친문 의원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32] 아이러니하게도 해당 주장은 사실상 민주주의의 탈을 쓴 궤변이다. 대통령은 엄연히 선거를 통해 임명된 임기제 국가지도자이자 국민의 대표인이지 한 나라의 왕이 아니다. 최순실 게이트 당시만 봐도 민주주의에 거스른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로처럼 법앞에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민주주의이지 대통령을 지켜야하는 것이 민주주의 수호라고 하는 것은 왕정시대에서나 볼 법한 발언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처벌한 사법부도 민주주의를 파괴한 세력이 된다.[33] 여러 파벌이 뒤섞여 있는데 그 중 친문 그것도 강성 친문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 만큼 김두관은 그들의 지지를 원할 것 이다. 앞날이 옛날 야당처럼 되더라도 지금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복잡한 공약을 제시하기보다는 말 한마디로 당 내 주류인 강성 친문을 공략하는 것으 유리하기는 하다.[34] 보수성향 네티즌들은 이게 핵심일 것이라며 내로남불적인 태도에 비판하고 있다.[35] 당내 노선 갈등[36]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37] 민주당과 신설 합당[38] 민주당과 신설 합당[39]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40] 민선 최연소 자치단체장[41] 2002년 4월 13일 사퇴, 경남지사 선거 출마[42] 2012년 7월 6일 사퇴,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 경선 출마[43] 전임자 유정복 인천시장 선거 출마로 사퇴[44] 상술했다시피 국회의원 첫 당선 지역은 김포 갑이다.[45] 이런 이유로 떨어진 인물이 호남에는 이강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