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
1. 소개
2005년 부터 시작된 일본의 독립 리그. 과거 1947년에 창설된 국민 야구 연맹[1] 이후 58년만에 일본 본토에 창설된 신규 리그로 많은 야구팬들의 관심을 받았던 리그다. 그 외에도 여러 독립 리그가 생겼지만 잘 정착된 리그는 현재까지 이 리그와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뿐이다.
3월 30일에 전기리그를 열고 7월 13일부터 후기리그를 연다. 각기 34, 36경기를 하고 이외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3군과 8경기, 요미우리 자이언츠 3군과 2경기를 교류전으로 치른다.[2]
경기는 9회까지만 하고 연장전이나 재시합은 없으며, 우천 등의 이유로 취소될 경우 예비일에 치르지만 그마저도 안 될 경우 경기를 하지 않고 그 시점의 성적으로 순위를 결정한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3군과의 경기는 예비일도 없기에 취소된다면 0대 0 무승부로 취급한다.
정규리그가 끝나면 전후기 1위팀끼리 5전 3선승제로 우승을 가른다. 1위팀이 같을 경우 승률 2위팀과 붙으며, 1위팀에 어드밴티지로 1승이 주어져 4전을 치르게 된다.
지명타자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2. 역사
리그가 개설된 계기는 리그 확장과 관련되어 논의가 나오던 중 2004년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가 재정난으로 해체하게 되자, 일본야구기구는 일본프로야구 신규 창단 팀보다는 비교적 운영비가 저렴한 독립 리그 창단을 추진했고, 이에 따라서 일본프로야구 연고팀이 없던 시코쿠 일대에 독립야구리그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리그 운영단체인 IBLJ[3] 를 이시게 히로미치[4] 가 창설하고 리그 창단을 공식적으로 추진했다.
2005년 시코쿠 지방의 4개 현에서 각각 1개 구단씩 총 4개구단을 창단해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四国アイランドリーグ)라는 명칭으로 출범, 4월 29일 리그 첫 경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이루어 지고 있다. 2006년 부터는 IBLJ가 100% 출자해 각 구단들이 독립 법인으로 운영되게 되었고 2007년에는 나가사키와 후쿠오카에서 2개구단이 리그에 참가, 시코쿠 규슈 아일랜드 리그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리그 운영에 탄력이 받고난 2008년에는 에히메와 후쿠오카간의 경기에서 10,288명이 입장하며 리그 첫 1만 관중을 기록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후쿠오카가 리그 탈퇴를 선언하며 5개 구단으로 운영되었으며 일본 퓨처스 베이스볼 리그[5] 와의 교류전을 실시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혼슈 본토의 야구팀인 미에스리 애로우가 합류하며 리그 명칭을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로 개칭했다. 그러나 미에스리 애로우가 1년만에 해산하면서 2012년 이후로는 시코쿠 본토 4개팀의 경기와 NPB 팀과의 교류전만을 공식경기로 인정하고 있다.
3. 참가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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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에히메 만다린 파이렛츠
3.2. 카가와 올리브 가이너스
3.3. 고치 파이팅 독스
3.4. 도쿠시마 인디고삭스
4. 기타
- 한국인 선수들도 이곳에서 활약하기도 하는데 김무영도 이곳 출신. 다만 흑역사로 2009년 4월 27일에 한국인 선수가 강간치사 혐의로 구속되면서 다음 날인 4월 28일에 재발 방지 긴급 검토위원회가 설치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 때 해당 선수가 삼성 라이온즈 출신이라고 일본 언론 보도에 나왔는데 삼성 구단은 "우리 팀에 그런 선수 없었는데?" 라고 하자 해당 기사를 쓴 기자가 "그때 그 선수가 파란색 계열의 옷을 입고 있길래 삼성 출신 선수인 줄 알았음. ㅈㅅ"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해명을 했었다.
- 2006년 고치 파이팅 독스에서 뛰었던 카쿠나카 카츠야는 2012년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타격왕(.312)에 올랐는데, 일본의 독립리그 출신 선수로는 최초의 타이틀 홀더가 되었다. 동시에 독립리그 출신으로는 최초로 규정타석을 돌파한 선수가 되었다.
- 다른 리그에서 전성기를 보낸 뒤 이 리그를 찾은 유명 선수들로는 후지카와 큐지(2015, 고치), 장타이산(2017, 도쿠시마), 매니 라미레즈(2017, 고치) 등이 있다. 후지카와는 부상으로 시카고 컵스에서 방출된 뒤 한신 타이거즈로 리턴하기 전 1년동안 고향인 고치 팀에서 뛰었다.
- 2016년에는 야구선수들의 모노마네를 전문으로 하는 게닌 스기우라 소스케[6] (杉浦双亮)가 40세의 나이로 트라이아웃에 합격해 한 해동안 에히메 만다린 파이레츠에서 투수로 뛰었던 적이 있다. 9경기 13.2이닝동안 1.98의 방어율을 기록했는데, 삼진을 1개 잡는 동안 볼넷을 14개 내주었다.
- 스폰서는 기본적으로 시코쿠내의 기업들, 법인들이 맡고 있다. JR 시코쿠, 시코쿠 코카콜라 보틀링이 현재 메인 스폰서로 참여중이다. 여담으로 2008년 소프트뱅크가 리그 스폰서를 맡게 되자 NTT 도코모 시코쿠가 탈퇴하기도.
- 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리그 출신인 하재훈이 2016년 도쿠시마 인디고 삭스에서 뛰었다가 5월말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하였으나 시즌 종료 후 퇴단한 뒤 2017년 2월 다시 입단했다. 뒤이어 역시 마이너리그 출신인 이학주가 3월에 합류했다. 그러나 이학주는 후반기 리그 개막 직전인 2017년 7월 25일 퇴단했다.
- 2016년 고치 파이팅 독스가 일본 독립야구단 최초로 한국에서 트라이아웃을 진행했다. 日 독립야구단 고치 파이팅독스, 한국 트라이아웃 실시 총 75명의 지원자가 몰렸다고 하는데, 이지모, 한성구 등 프로 출신 선수들도 다수 참여했다.
- 대만 선수들도 갈 곳 없으면 여기를 찾는 듯. 2015년 전반기에 린저슈엔과 장즈셴이 드래프트를 기다리면서 고치 파이팅 독스에서 뛰었다. 장즈셴은 이 시즌 타율 .347로 전반기 1위.
- 2018년 2월 3일과 4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한국 선수들을 대상으로 트라이아웃을 실시했다.공지 참가자 중 7명이 조건부 합격 통지를 받았지만 도쿠시마의 선택을 받은 배지환은 입단을 포기하고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계약했고 가가와 에히메의 선택을 동시에 받은 김창혁도 한화 이글스로 발길을 돌렸다. 고치에 지명된 안규영, 정형식, 이상학, 김웅, 최민섭도 정식 엔트리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나 이상학은 4월 4일에 등록되었다.
- 2018년 3월 23일 우동균이 가가와에 입단해 3월 29일 발표한 등록 선수에 포함되었으나 부진한 성적을 보인 끝에 4월 28일 출전 엔트리에서 제외된데 이어 5월 1일 퇴단했다.
- 2019년도 신인 2차 지명에서 하재훈이 SK의 지명을 받으며 KBO리그로 갔고 한성구와 이상학이 계약 만료로 퇴단하면서 2019년에는 고치에 새로 입단한 송상민 1명 만이 한국인 선수로 남아 있었으나 2020년 1월 30일 퇴단했다. 2020년 1월 실시한 드래프트에 경동고-제주국제대 출신 포수 주혜성이 카가와에 지명되었고 3월에 부산고-파주 챌린저스 출신 투수 이창호가 카가와에 입단했다. 그러나 이창호는 2020년 6월 18일 임의탈퇴 형식으로 퇴단했고 파주 챌린저스에 복귀했다.
- 2020년 기준 카가와에 송호균이라는 한국 선수가 있다. 메토쿠고교-니혼대학이라는 이력을 가진 선수로[7] 출신지는 카가와현으로 나와 있다. 2020년 10월 30일 퇴단했다.
- 이 리그에서 2017년까지 49명이 NPB에 입단했는데, 이 중 33명이 방출되었다(...)
- 월급은 BC 리그와 똑같이 최소 10만엔, 최대 40만엔으로 3월부터 10월까지 7개월을 지급한다.[8] 그러나 말이 최대 40만엔이지 실제로는 평균 15만엔 정도 받는다고 한다. 독립 리그에서 실제 뛴 사람 말에 의하면 40만원을 꽉 채워 받는 사람은 거의 안 보인다고. 리그 첫 해에는 2월부터 11월까지 10개월 월급 지급에 숙소 무료제공이었으나 1년만에 바뀌었다(...) 다만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쪽이 그나마 조금 더 돈을 많이 받기 좋다는 듯. 선술한 여름의 1개월 휴식 때문에 그런 듯.
- 시코쿠 내에서의 원정경기는 거리가 어떻게 되든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3연전이 잡힌다고 해도 무조건 당일치기로 간다고 한다. 시코쿠 내라서 가까워 보일수도 있겠는데, 각 팀간의 홈구장 간 거리는 자동차 편도로 2시간 안팎이다. 즉 원정 3연전이 잡히면 3일 연속으로 왕복 4시간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 또한 시코쿠 밖으로 원정을 갈 때는[9] 후쿠오카를 예로 잡을 때 시코쿠 내에서 항구까지 버스를 타고, 항구에서 배를 탄 후 오이타에 내려서 오이타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가는 강행군을 한다고 한다. 미국 마이너리그 AAA보다 처우가 안 좋고, 거의 AA 이하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10]
5. 팀별 리그 우승횟수
[1] 일명 내셔널리그.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미국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과 마찬가지로 양대리그 체제가 가야된다는 목소리가 야구계에서 나왔지만 기존 프로야구팀을 가지고 있던 8구단들의 반대로 창설된 리그. 그러나 일본야구기구와의 갈등으로 제대로된 홈구장을 가지지 못했고 이 때문에 고정적인 팬층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리그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창설 이듬해인 1948년에 리그를 해체하기에 이른다.[2] 이 교류전도 성적으로 포함한다. 다만 3군팀들의 팀, 개인성적은 포함하지 않는다.[3] Independent Baseball League of JAPAN의 약자.[4] 1980년대 ~ 90년대 초 세이부 라이온즈 전성기에 팀 리더로 활약한 호타준족의 타자였다. 2002 ~ 2003년에는 오릭스 블루웨이브 감독을 맡기도 했다.[5] 2010년에 창설된 대회로 창단 첫해만에 사라졌다.[6] 오오타 프로덕션 소속으로 '360º 몽키즈'라는 콤비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모리모토 히초리, 야마사키 야스아키 등 다수 프로야구 선수들을 배출한 도쿄의 강호 데이쿄 고교 출신이다.[7] 고등학교 시절 야마오카 타이스케를 상대로 코시엔에서 홈런을 치는 등 나름 재능을 보였으나 대학에서는 대타 요원으로 뛰는 바람에 2017년 드래프트에 신청하고도 지명받지 못했다.[8] 전기 리그와 후기 리그 사이의 1달 브레이크가 있는데 이때는 월급을 안 준다. 그래서 1년에 돈이 안 나오는 시기가 여름과 겨울 2번이나 있다.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는 3~10월까지는 쭉 돈을 받을 수 있으니 그나마 나은 편.[9] 이 리그는 전부 팀이 시코쿠에 있으니 교류전이다.[10] 트리플 A 최저연봉이 그래도 1만 달러가 넘는데 일본 독립리그 최저연봉을 달러로 환산하면 7천 달러 남짓하다. 참고로 더블 A가 2020년 기준 최저연봉이 8천달러인데 2021년부터는 그마저도 인상되는 걸 감안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