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사키 야스아키
1. 개요
일본프로야구 선수.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의 새로운 스타로 주목받는 마무리 투수이다. 일본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를 둔 혼혈이다.
야마'''자'''키가 아니라 야마'''사'''키가 맞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 등에서는 십중팔구 야마'''자'''키라고 잘못 표기하고 있다. 물론 '''山﨑'''라는 성이 야마자키로 읽히는 경우가 많고 당장 팀 내에도 야마자키 노리하루가 있긴 하지만 엄연히 다르니 주의하자. 또한 성씨에 쓰이는 한자는 널리 쓰이는 崎자가 아니고 이체자인 﨑인데 일본 내에서는 종종 잘 몰라서 혹은 폰트 호환성 문제로 성씨를 山崎라고 잘못 표기하곤 한다. 여담으로 가와사키 무네노리 역시 﨑자를 쓴다.
2. 프로 입단 전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꽤 불우한 삶을 보냈다고 한다. 야구선수의 길을 선택한 것도 프로 입단 계약금으로 일찍 가족을 부양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도쿄의 야구 명문고 테이쿄 고등학교[3] 에 진학해 2009년도 여름 고시엔 대회에서 8강, 2010년 봄 고시엔 대회에서 8강에 진출한 전적이 있다. 이후 프로 드래프트에 지원했으나 지명을 받지 못하여 아지아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리그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했고 졸업 후 2014년 드래프트 회의에 참가했다. 본래 와세다대학의 아리하라 코헤이를 지명했지만 추첨에서 떨어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 한신 타이거스가 1차 지명으로 경합, 추첨 결과 베이스타즈가 교섭권을 따내 동년 11월 7일 계약금 1억 엔, 연봉 1,500만 엔, 등번호 19라는 조건으로 입단했다.
3. 프로 입단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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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15년
개막전 시범경기에서 중간계투 투수로 등판하여 괜찮은 성적을 남겨, 부상당한 작년의 마무리 투수 미카미 토모야를 대신하여 개막전부터 팀의 마무리로 임명되었다. 3월 2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전에서 첫 등판을 했다. 3월 3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이 첫 세이브를 기념하여 첫 수훈 선수 인터뷰 순간을 따온 티셔츠와 타올을 구단에서 판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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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 티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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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 타올
5월 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일본프로야구 신인 자격으로는 신기록 타이인 9시합 연속 세이브를, 5월 27일 오릭스 버팔로즈전에서 신인 최다기록인 월간 10세이브를 기록했다.
5월 22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동점 상황에 등판하여 무실점으로 막은 후, 9회말 팀이 끝내기 승리를 하면서 프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이틀 후 한신전에서는 선두타자 우에모토 히로키의 머리를 맞히며 퇴장, 벤치 클리어링까지 이어졌다.
7월 16일 제1회 프리미어 12 일본대표 1차 후보로 뽑혔다. (신인으로선 유일)
8월 20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전에서는 32번째 세이브를 기록하며 '''신인 최다세이브 기록'''[4] 을 갱신했다.
9월 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1점 앞선 상황에 9회에 등판하여 역전을 허용, 팀은 그대로 패배하면서 프로 첫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58경기 등판 2승 4패 37세이브 7홀드 56 1/1이닝 38피안타 11볼넷 66탈삼진, 평균자책점 1.92. 블론이 좀 있는 걸 빼면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리그 정상급 마무리의 성적을 거두었다.
시즌 도중 신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프리미어 12 대표팀 1차 후보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시즌 후 프리미어 12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차출되었다.
3.2. 2016년
교류전 종료 시점(6월 26일)까지 27경기 26 1/3이닝을 소화해 ERA 2.05, 1승 2패 4홀드 17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여전히 요코하마의 부동의 마무리투수로 활약하고 있었다.
2016 올스타전 팬투표로 센트럴 리그의 마무리 투수로 선정되는 기쁨도 누렸다. 게다가 이번 올스타전 2차전은 홈구장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리기 때문에 두 배의 기쁨이 있을 듯. 9회초 동점상황에 등판하여 너클볼을 선보이기도 하는 등 깔끔한 피칭으로 무실점을 기록했다.
8월 들어서 제대로 부진의 늪에 빠졌다. 8월 2일 한신전에서 9회 동점 상황에 올라왔으나 폭풍 4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3일에는 세이브를 추가했으나, 피홈런을 허용하며 진땀 세이브를 올렸다. 4일에도 세이브 요건이 되어 야마사키를 올렸으나 또 2실점으로 털리며 연장으로 돌입했고 결국 이는 팀의 연장전 패배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다음날인 8월 5일 주니치전에서 1점차 리드 상황에서 올라왔으나 히라타 료스케에게 역전 싹쓸이 3타점 적시타를 맞으며 블론과 패전을 적립했고 결국 6일과 7일은 임시로 미카미 토모야가 마무리를 맡았다. (4연투로 인한 휴식이 필요하기도 했다.)
8월 11일 교진전에 복귀하여 1이닝 무실점의 세이브를 챙겼다! 그러나 다음 날 12일 히로시마 전에서 9회 동점상황에서 등판해서 마루 요시히로에게 홈런을 허용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8월 현재까지 5경기 등판해서 제대로 던졌다 싶은 경기가 고작 한 경기(...) 게다가 8월 28일 교진전에도 4점차에 등판해서 대타 도노우에에게 3점 홈런을 허용하며 1점차로 어렵게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결국 이로 인해 자책점은 4점대로 치솟았다. 입단 이래 가장 최악의 한 달이 되었을 듯
결국 9월 초반은 미카미와 자리를 바꾸어 셋업맨으로서 시작하게 되었다. 얼마 뒤 다시 마무리 자리로 돌아와 신인으로서 시작해서 2년 연속으로 30세이브 이상을 올린 최초의 마무리 투수가 되었다. 또한 DeNA의 사상 첫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확정 짓는 아웃카운트를 올렸다.
커리어 첫 출전한 센트럴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모두 팀의 승리를 지키는 세이브를 올렸다. 그러나 첫 경기는 피홈런을 기록했고, 두 번째 세이브도 주자를 1, 2루까지 보내는 불안한 피칭을 하며 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 흠이다.
3.3. 2017년
지난 시즌 8월부터 지속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실점이 계속되자 결국 중간계투인 팻튼과 자리를 바꿔 셋업맨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팻튼 역시 마무리 전업 이후 블론이 계속되고 야마사키가 안정된 모습으로 몇주 후 다시 마무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마무리 복귀 후 첫 세이브를 올린 뒤에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미니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털어 놓았다.
그 이후는 완전히 기대치에 걸맞는 모습으로 돌아와 17시즌 세리그 최다 타이인 68경기에 등판해 1.64, 4승 2패 15홀드 26세이브의 기록을 올렸다. 릴리프 전환으로 인해 올리지 못했던 세이브 수를 제외하고는 3년차 현재까지 커리어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게다가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팀이 승리한 6경기에 모두 등판해 6이닝 1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이라는 특급 마무리의 위용을 과시하며 팀의 19년만의 일본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일본시리즈에서는 3차전까지 팀이 3연패를 당하면서 등판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4차전 8회말까지 팀이 6대0으로 앞서면서 세이브 상황은 아니었지만 일본시리즈 첫 등판을 이뤄냈고, 5차전에서는 8회 1점차 2사 1, 2루 상황에서 등판해서 급한 불을 껐다. 그대로 9회초에도 등판해서 3안타를 허용하면서 2사 만루의 위기에 몰렸으나 마지막 타자 아카시를 1루 땅볼로 잡고 시즌 중 한번도 없었던 4아웃 세이브를 거두면서 본인 첫 일본시리즈 세이브를 올렸다. 그러나 6차전 3대2로 앞선 상황에서 9회말에 등판. 첫 타자인 알프레도 데스파이네는 잘 잡았으나 다음타자 우치카와 세이이치에게 동점 홈런을 허용하면서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후속 타자들을 막으면서 10회말까지 2이닝을 던졌으나 결국 팀은 연장 11회 끝내기 패배로 일본시리즈 우승까지는 이루지 못했다. 본인의 블론세이브가 팀의 패배로 연결됐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아쉬운 시즌 마지막 등판이 됐다.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쉽의 일본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해 2경기 등판 (모두 한국전) 2이닝 퍼펙트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나이는 초과지만 입단 3년차였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와일드카드가 아닌 범위에서 출전할 수 있었다.
3.4. 2018년
ERA 2.67, 2승 4패 3홀드 37세이브를 기록했다. 전체적으로 지난 해에 비하면 소폭 하락한 성적이지만 고정 마무리로 1시즌을 소화하면서 개인 첫 센트럴 리그 세이브 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다만 올해도 8월 징크스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3.5. 2019년
5년 연속으로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센트럴 리그 마무리 투수 부문 1위를 차지하고 5년 연속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7월 17일에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 전에 등판해 삼자 범퇴로 경기를 끝내며 통산 150세이브를 달성했다. 26세 9개월의 기록은 마하라 다카히로와 나가카와 카츠히로가 기록한 28세 7개월을 넘는 NPB 역대 최연소 기록이라고 한다. 7월에는 12경기 1승 7세이브 2홀드 ERA 0.75를 기록하며 커리어 처음으로 센트럴 리그 투수 부문 월간 MVP를 수상했다. 결국 2년 연속으로 센트럴 리그 구원왕 타이틀을 따냈다.[5]
2019년 최종 성적은 ERA 1.95, 3승 2패 4홀드 30세이브이다.
시즌 종료 후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승선하여 팀의 마무리역할을 맡아 우승하는 데 공헌했다. 특히 마지막 결승때까지 안타와 볼넷 한개도 허용하지 않는 엄청난 피칭을 보여줬다.[6]
3.6. 2020년
등판할때마다 불안한 피칭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다른 세리그 팀들의 마무리들도 다같이 털려나가고 있는 실정이라[7] 부진이 그렇게 부각되진 않고 있는 중.
라미레스 감독은 상태에 이상이 없다고는 말하지만 이전보다 제구력이 많이 흔들리는 등 투구 밸런스가 예전만큼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거듭된 등판에서 실점을 허용하며 불안감을 노출했고 급기야는 요미우리전에서 블론세이브를 한 뒤 강판을 당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며 최악의 시즌 출발을 보이는 중. 6세이브를 기록중이긴 하나 평균자책점이 6.48로 좋지 못하다. 길어지는 부진때문에 라미레스 감독은 마무리 교체를 생각했지만 결국 야마사키로 밀고 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부진의 원인에는 체중관리 실패 등 여러 이유가 나오지만 가장 큰 원인은 주무기인 투심의 위력이 떨어졌다는 것. 사실 지난시즌부터 전조증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야마사키의 투심은 데뷔년도인 2015년부터 2018년까지 20%를 상회하는 헛스윙률을 보였으나 2019년부턴 15%로 뚝 떨어졌다. 이렇다보니 탈삼진율도 자연히 떨어졌는데 거의 매년 10을 넘는 9이닝당 탈삼진율을 자랑했던 야마사키였으나 2019시즌엔 8.10으로 데뷔이래 가장 좋지 못했다.[8]
떨어진 탈삼진율은 결국 FIP에도 영향이 미쳤는데 야마사키는 지난해 1.95의 ERA를 기록했으나 FIP은 3.35로 1.4 정도의 차이를 보였다. 떨어진 탈삼진율의 영향으로 인플레이 타구가 자주 발생하면서 FIP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어쨌든 투심의 위력이 떨어지다보니 이전처럼 타자들의 배트를 쉽게 끌어내기가 어려워지고 자연히 등판때마다 볼 갯수는 늘어나 매 타자마다 어려운 승부를 하고있다. 투심을 참아내기 시작한 타자들이 볼넷을 골라나가면 어떻게든 아웃을 잡기위해 스트라이크를 우겨넣게 되고 그 과정에서 실투가 나와 실점을 하는, 이런 패턴으로 실점하는 경우가 2020시즌 야마사키의 등판 레퍼토리이다.
결국 거듭된 부진 끝에 마무리 자리를 미시마 카즈키에게 넘겨주고 중간계투로 강등당했다. 중간계투 전향 이후에는 그럭저럭 폼이 올라오는듯 보였지만 잘 던진다 싶으면 실점을 해 버리면서 여전히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라미레스 감독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라면서 야마사키를 끝까지 신뢰하고는 있으나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팬들 사이에서도 그냥 2군으로 내려서 재조정하는게 낫지 않느냐는 의견이 빗발치는 중.
결국 10월 8일자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시즌도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니 이대로 시즌을 마감할것으로 보여지는 듯 했으나 시즌 막바지에 1군에 재등록. 시즌 최종전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시즌 최종 성적은 40경기 38이닝 3패 6세이브 ERA 5.68로 커리어 로우를 갱신했다. 연봉도 20% 삭감된 2억 8000만엔이 되며 씁쓸한 1년을 보내게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오버핸드 스로 폼으로 던지는 최고구속 152km/h의 포심 패스트볼과, 투심 패스트볼이 주무기이며 커브볼도 구사하고, 가끔이지만 너클볼도 던진다. 패스트볼 구속이 마무리투수 치고 빠른 편은 아니지만 공끝이 좋은 일본투수들 사이에서도 정상급의 묵직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결정구인 140km 초중반대의 투심은 포크볼과 같은 낙차를 보이기 때문에 땅볼보다는 타자들의 헛스윙을 이끌어낸다. 패스트볼 평균구속이 마무리 투수치고 빠르지는 않지만 통산 K/9이 10개에 육박하는 것도 이러한 투심의 활용 덕분.[9] 아세아 대학 선배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히가시하마 나오에게 투심을 전수 받았는데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쿠리 아렌이나 야부타 카즈키, 롯데의 나카무라 토시야 같은 다른 아세아대 출신 투수들도 비슷한 공을 구사한다. #[10] 흥미로운 점은 비슷한 그립과 움직임을 가진 이 공을 많은 관계자들이 다르게 부른다는 것(히가시하마 : 싱커, 야마사키/쿠리/야부타 등 : 투심, 아세아대 감독 : 특수구 등). 그래서 위 기사를 포함해 몇몇 팬들 사이에서는 '아세아 볼'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데 스플리터 계열로 분류하는 이들이 많다.
5. '야스아키 점프'
점프의 시작은 0:35부터. 이 때 신인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으며, 원조 대마신 사사키 가즈히로가 해설자로서 그를 지켜보는 모습도 보인다.
등장 음악으로 독일 테크노 그룹 Zombie Nation의 Kernkraft 400이라는 곡을 사용하는데, 경기를 마무리지으러 야마사키가 등판하면 요코하마 팬들이 단체로 이 노래를 떼창하면서 '''"야!스!아!키!"''' 콜을 외치며 점프하는 모습이 응원문화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올스타나 국제경기에서 DeNA 팬이 아닌 야구팬들도 즐기고 싶어하는 일본야구 유명 응원문화가 되었다.
팀의 암흑기에 등장한 라이징 스타 야마사키의 위상을 잘 보여줌과 동시에, DeNA 인수 이후 보다 관객들에게 흥미를 끌고 있는 베이스타즈의 모습을 대표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아직 야스아키 점프가 탄생하지 않던 초창기 시절의 영상. 응원가는 아니고 등장곡인 만큼 초기에는 그냥 남들처럼 노래만 흘러나올 뿐이였지만, SHOWROOM, 니코동 등에 제공되던 베이스타즈 자체 중계의 캐스터가 곡에 맞춰 뜬금없이 오오오오~를 부르더니 시청자 여러분도 다같이 하자며 재미를 유발하던 것이 인기를 끌어 응원단이 이를 활용하여 오오오오~ 와 더불어 중간에 야스아키!를 외치는 부분까지 넣게 된 것이다.
6. 이야깃거리
- 원래 일본프로야구 선수들은 팬서비스가 좋기로 유명하지만 그 중에서도 매우 팬서비스가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팬서비스 뿐만 아니라 원래 사교성이 좋은 듯 다른 팀 선수들하고의 친목질도 상당한 수준. 올스타전이나 국가대표 소집이 되면 어김없이 타팀 선수들과 라커룸에서 찍은 사진이 본인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다. 하지만 부진에 빠진 2020년에는 트위터 활동이 매우 뜸해졌다.
-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와 E클래스 카브리올레의 오너이다
- 마츠다 줌줌 스타디움에서는 극강의 모습을 보였다. 데뷔 이래 마츠다 스타디움에서는 단 1점도 허용하지 않으며 강세를 보였으나 최악의 부진에 빠진 2020시즌에 처음으로 실점을 허용했다.
- 데뷔시즌과 비교해보면 살이 많이 쪘다는걸 대번에 알 수 있을만큼 살집이 붙어버렸다. 뭐 너무 마른 것도 투수에게 그리 좋은 게 아니긴 하지만, 2020년 시즌 초반 계속해서 불안한 피칭이 이어지자 몸 관리에 실패한거 아니냐는 의혹이 넷상에서 종종 언급되는 중. 본인도 이걸 자각했는지 시즌이 끝나고 단식체험에 참가하는 등 체중 감량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중이다.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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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 원정경기에서도 팬들이 알아서 부르므로 응원가 지위도 유효하다.[2] 북미에서는 보스턴 브루인스의 골 음악이나 다저 스타디움 등 일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구장에서 홈런이 나오면 트는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3] 23구 지역이 주축이 되는 동도쿄 지구에서 여름 고시엔 우승 경력이 있는 '''유일한''' 학교이다.(참고로 시지역이 주축이 되는 서도쿄 지역에는 여름 고시엔 우승 학교가 몇군데 있다.) 유명한 선배로 코미디언 이시바시 다카아키(할리우드 영화 메이저리그 2에서 일본인 외야수 다나카 이스로 역으로 출연한 그분으로 실제 데이쿄 고교 재학시절 야구부에서 선수로 뛴 경험자이다), 재일교포 외야수 모리모토 히초리, 등이 있다. 2015년 히초리의 은퇴 발표 때 트위터에 자신이 야구를 시작한 계기도, 테이쿄에 진학했던 이유도 히초리의 영향이었다고 밝혔고, 프로에서 가장 대전하고 싶었다며 어린 시절 히초리와 함께 찍은 사진을 같이 올리기도 했다. 실제로 이 둘은 나이는 많이 차이나지만 같은 도쿄 아라카와구에서 태어나 부모끼리도 돈독한 사이여서 초중고 모두 같은 학교, 같은 리틀리그팀 출신에 비록 시기는 다르지만 둘 다 DeNA에서 플레이했다. 심지어 둘 모두 일본 사회 내에서 인종적 소수자라는 배경마저 갖고 있으니... 여러모로 매우 가까운 사이. [4] 종전 기록은 1990년 주니치 드래곤즈의 요다 츠요시가 기록한 31세이브. 이쪽은 퍼리그의 노모 히데오와 함께 세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5] 퍼시픽 리그 구원왕은 38세이브를 기록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마쓰이 유키.[6] 필승조의 야마모토 요시노부나 카이노 히로시는 실점을 허용하거나, 볼넷을 내준 바 있다.[7] 야쿠르트도 마무리인 이시야마 다이치의 부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주니치는 지난시즌 후반기부터 마무리를 맡아온 오카다 토시야가 계속해서 털리자 몇 경기 만에 마무리를 갈아엎었다. 한신도 후지카와 큐지의 거듭된 방화에 마무리를 수아레스로 교체했으며 요미우리는 루비 데 라로사가 부상으로 엔트리 말소가 된 상황. 히로시마는 마무리라고 데려온 스콧이 ERA 20점대에 0세이브(...)[8] 올해를 제외하고 가장 부진했던 2016년에도 9이닝당 탈삼진율이 9.52였다. 그리고 16년은 8월에만 집중적으로 털린거라...[9] 2019시즌까지 통산 K/9이 9.97개이고 커리어하이는 2017시즌 11.5개[10] 사진에 나오는 야부타의 그립은 확실히 전통적인 패스트볼 그립보다는 스플리터에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