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수

 


沈璋壽
1951년 6월 25일 ~[1]
1. 개요
2. 일생
2.1. 법조인 시절
2.2. 정치인 시절
3. 선거 이력


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 출신 정치인.
1951년 경상남도 울산군 하상면(현 울산광역시 북구)에서 태어났다. 울산효문초등학교, 울산제일중학교, 부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2. 일생



2.1. 법조인 시절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로 근무하였으며 서울지검, 서울지검 북부지청, 수원지검, 인천지검부천지청에서 부장검사를 역임했고 차장검사로 승진하여 춘천지검 산하 강릉지청장, 원주지청장을 지냈다. 다만 검사장 승진에는 실패하고 200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호평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낸 뒤로 지역 봉사 활동, 무료 변론 및 상담, 지역 현안에 대한 자문 등을 꾸준하게 하며 남양주시 갑 선거구에서[2] 보수세력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였다.

2.2. 정치인 시절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도 남양주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통합민주당 최재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는 보수표 분산이라는 악재도 원인인데,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의 언론 보도에서도 친박연대의 고춧가루 뿌리기로 예측을 뒤집은 사례로서 갑구 상황이 언급되었을 정도였다.
지역과 연관성이 없는 대부분의 후보들은 낙선을 하게 되면 그 지역을 떠나기 마련인데 심장수 변호사는 지역에 정착을 선택하고 이후 지역민들과 어울리며 봉사와 지역 활동으로 이웃으로의 삶을 시작한다. 이후 남양주시 고문변호사가 되었고[3] 봉사활동 등 꾸준히 지역에 자리잡으며 인지도를 높히게 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에서 소위 낙하산 공천을 받은 송영선에 밀려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어지간히 운이 없던 것이 이 시기에는 현직 의원인 최재성에 대한 평이 슬슬 떨어지던 시기였는데 친박계 낙하산이 와서 앉아버리면서 역으로 보수성향 유권자들이 투표를 안 해버리거나, 부동층 유권자 상당수가 최재성측에 몰표를 던져 버리면서 결국 최재성이 3선에 성공한다. 심장수는 한때 컷오프에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가 승복하고서 송영선을 지원했지만, 결국 송영선은 낙선했다.[4]
절치부심하여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기도 남양주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고 중앙당 차원에서 지원유세까지 왔으며 출구조사에서도 이길 것이라는 분석이 많아서 이번에는 이기나 했지만 '''사전투표함이 열리고 여기서 역전'''되면서 또 낙선하고 만다. 박근혜정부의 인기가 상당히 떨어진 상태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운 조응천 후보가 문재인 버프 + 반 박근혜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디버프를 받은 것. 그럼에도 민주당 지지층도 전혀 예상치 못했을 정도로 20대 총선의 가장 큰 이변이다보니 심장수 후보 본인과 지지자들이 상당히 아쉬워했다는 후문.
2017년 12월 홍준표 前 지사의 주도로 실시한 자유한국당 당무감사에서 당협위원장직을 박탈당했고[5] 그렇게 야인이 될 것으로 보였고 시장 출마설, 정계은퇴설이 돌았으나 결국 21대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의 공천을 받아 남양주시 갑 선거구에서 3번째 도전을 하게 되었다.[6] 다만 심장수 개인의 경쟁력이 높은 것과는 다르게 남양주시 갑 선거구가 미래통합당 지지율이 상당히 낮아서(...)[7][8] 어찌 될지는 의문.
심장수 후보 진영에서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선거에 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매번 근소하게 패한데다가 가능성이 보였던 19대 총선에서는 심장수 후보가 공천배제를 당했고 그 사이에 12년이 흘러 심 후보가 70대에 접어들었기 때문.
예상대로, 21대 총선에서 조응천 의원 대비 20%p 가까운 득표율 격차[9] 로 최종 낙선하였다. 코로나19라는 국난극복이라는 메시지와 미래통합당의 막말 논란 등으로 범 중도(보수)층의 이탈과 남양주 甲의 지역개발로 인해 이 지역 유권자비중 중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추세인, 민주당계 정당의 주된 지지층인 3040세대의 대거 몰표까지 겹쳐 수도권이 더민주당에게 전체 121석 중 80% 이상인 100석 전후로 넘어가는 상황에서는 그가 이번 선거에서 극적인 재기를 노리기에 어려웠을 것이다.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남양주 갑)
한나라당
37,756 (44.32%)
낙선 (2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남양주 갑)
새누리당
32,536 (39.77%)
낙선 (2위)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남양주 갑)
미래통합당
39,318 (38.11%)
낙선 (2위)


[1] 한국법조인대관에는 1950년생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오기로 보인다. 대한변호사협회 사이트에는 1951년생으로 나온다.[2] 17대부터 19대까지는 현재 병 선거구에 들어가있는 와부읍, 조안면, 금곡동, 양정동도 갑 선거구의 일원이었다.[3] 공교롭게도 20대 국회에서 오랜만에 당선된, 또한 남양주에서 유일한 보수 국회의원인 주광덕도 남양주시 고문변호사 이력이 있다.[4] 이후 남양주는 지역 개발에 따른 젊은 외부인들의 급격한 유입으로 진보 성향이 더 강한 지역으로 굳어지게 되어 진보색의 후보는 누구든 당선이 되는 지역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5] 그의 뒤를 이은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 후임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심장수 변호사와 경선하여 후보직에서 결국 탈락한 유낙준 前 해병대사령관이다. [6] 경선에서 10% 이상의 승리를 거뒀다.[7] 남양주시 갑구는 평내, 호평, 마석, 월산 같은 택지지구들이 대부분인데 유권자들의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30~50대는 알다시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높다.[8] 또한 송영선 낙하산 공천으로 인해 지역 내에서도 보수정당에 대한 비판이 많으며 탄핵정국 이후로는 남양주시는 완전히 친 민주당 지역구가 되고 말았다. 유능한 시정을 보여준 이석우가 시장직을 조기에 사퇴하고 지원한 예창근(前 남양주 부시장, 前 경기도 부지사)이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낙하산이라는 평을 듣던 조광한에게 털린게 그 예. 왕숙신도시같은 변수가 있다는 세간의 얘기가 있지만 고양시, 하남시와 달리 사업부지보다 더 멀리 있지 않은 다산신도시같은 곳에서 반발이 감지되고 동부권은 조용한 편인데, 그럴만한 원인으로는 남양주에서 지역을 가리지 않고 진보성향이 강한 3040세대 유입이 많긴 하지만 다산이나 별내는 종부세 부과 대상인 아파트가 남양주에서는 많은 편이라 다산/별내가 아닌 나머지 지역의 경우 소위 전세난민들에게 더욱 선호되는 곳인지라, 부동산 분야에서 정부여당에 반발이 덜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남양주에서 정말 부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화도읍에도 제법 전원주택을 지으며 살고 있지만 전체 유권자 비중에서는 얼마 안 된다.[9] 수동면에서만 간신히 이겼을 뿐, 화도읍에서도 40%선을 간신히 넘기는 득표율을 보였고 평내/호평 지역은 말할 필요도 없이 완패하는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