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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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미카사노와카미야 토모히토 친왕비 노부코
(三笠若宮寛仁親王妃信子)
결혼 전 이름
아소 노부코(麻生信子)
출생
1955년 4월 9일(69세)
일본국 도쿄도 시부야구
가족관계
남편 토모히토 친왕
장녀 미카사노미야 아키코 여왕
차녀 미카사노미야 요코 여왕
친정
외할아버지 요시다 시게루
첫째 오빠 아소 다로
학력
세이신 여학원 초등과
세이신 여학원 중등과
영국 Roselyn House College
오시루시(お印)[1]
복숭아[2]
1. 개요
2. 친정 집안
3. 결혼과 원만치 못한 가정생활
4. 공무와 황실 생활
5.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와의 갈등
6. 기타


1. 개요


일본 나루히토 덴노의 5촌 당숙인 토모히토 친왕의 아내. 다이쇼 덴노의 4남 내외인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과 유리코 비의 큰며느리이다.

2. 친정 집안


어머니 아소 카즈코(麻生和子)는 요시다 시게루일본 총리의 딸로, 카즈코의 외할아버지는 화족이자 정치인인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顕)이다. 본래 노부아키는 메이지 유신 삼걸이자 근대 최초의 일본 총리인 오쿠보 도시미치의 차남이지만, 마키노 가문에 양자입양되어서 ‘마키노 노부아키’가 되었다. 1936년 2.26 사건 때 노부아키는 외손녀 카즈코와 함께 있다가 습격당해 위험에 처했는데, 카즈코가 적들과 맞서 총격전을 벌여 외할아버지를 구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아버지 아소 다카키치(麻生太賀吉)는 정치인이자 사업가로, 아소시멘트 회장을 지냈다. 아소 집안은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을 착취하여 큰 부를 일구었고, 일본 총리를 지낸 정치인인 오빠 아소 타로도 극우에 망언으로 악명이 높은 인물이다. 타로의 아내 아소 치카코(麻生ちか子)는 스즈키 젠코 前 총리의 딸이다.
노부아키의 손녀인 하야시 사다코(林貞子, 1919-2006)는 교육자이자 유아교육 전문가로, 도쿄도 시부야구에 쇼토(松濤) 유치원(2010년 폐원)을 설립했다. 쇼토유치원은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는 명문 유치원으로 유명했는데, 노부코 비와 그녀의 두 딸 아키코 공주·요코 공주, 시조카 쓰구코 공주·센게 노리코·모리야 아야코도 모두 이 유치원에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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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2월, 첫째(장남) 히로노미야 나루히토 친왕을 낳고 궁내청 병원에서 퇴원하는 미치코 황태자비. 오른쪽의 중년 여성은 당시 동궁(東宮) 여관장(女官長)이었던 마키노 스미코(牧野純子).
사다코의 어머니 마키노 스미코는 화족 나베시마 가문의 딸로, 미치코 상황후의 황태자비 시절에 동궁 여관장을 지냈다. 스미코를 동궁 여관장으로 임명한 것은 나가코 황후였는데, 평민[3] 출신 큰며느리를 몹시 미워한 나가코 황후가 손수 임명한 인물이니 스미코가 어떤 사람이었을지는 뻔한 일이다. 그때가 제법 인상적이었는지, 미치코 상황후의 큰아들 나루히토 덴노조차도 어린 시절에 스미코를 보고 ‘마녀 아줌마’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3. 결혼과 원만치 못한 가정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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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토모히토 친왕과의 결혼사진
쇼토유치원을 졸업하고, 가톨릭 미션스쿨세이신 여학원에서 초등과와 중등과를 졸업한 뒤 영국유학했다. 결혼 전에는 쇼토유치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17살이던 1972년에 토모히토 친왕으로부터 청혼을 받았지만, 그때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8년 후인 1980년에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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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 아키코 공주(오른쪽), 차녀 요코 공주(왼쪽)와 함께.
토모히토 친왕과 결혼하여 1981년 큰딸 아키코 공주, 1983년 작은딸 요코 공주를 낳았다. 토모히토 친왕에게는 남동생이 2명 있는데, 바로 아래 남동생인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은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죽었고, 막내 남동생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은 세 딸 쓰구코 공주·노리코 공주·아야코 공주만을 남기고 죽었다.
토모히토 친왕과 노부코 비의 부부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성격 차이 때문이라고도 하고, 토모히토 친왕의 폭력이 원인이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황족 체면에 이혼은 할 수 없어서인지 별거했다. 서류상 이혼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이혼에 가까운, 즉 졸혼이었던 것.
노부코 비는 몸이 아팠을 때도 남편과 딸들이 함께 사는 본인의 집에서 쉬지 않았고, 친정 형제들의 별장에 신세를 졌다. 2004년 일과성 뇌허혈증을 앓았을 때는 큰언니 소마 유키코(相馬雪子)의 별장과 오빠들의 별장에서 요양했다. 어느 정도 회복되자 2006년 도쿄의 집으로 돌아갔지만, 2008년 기관지 천식이 발병하자 다시 별장을 전전했다. 몸을 다시 회복한 후로는 궁내청장 관저에서 지냈다. (이 무렵에는 남편 토모히토 친왕도 건강이 좋지 않았고, 큰딸 아키코 공주영국 옥스포드 대학교 대학원유학 중이었기에, 작은딸 요코 공주가 가족들을 대신하여 공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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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토모히토 친왕의 장례식에서, 큰딸 아키코 공주(좌)와 작은딸 요코 공주(우).
2012년 토모히토 친왕이 병으로 사망했을 때도 상주는 장녀 아키코 공주가 맡았고, 아내인 노부코 비는 장례식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2016년에는 시아버지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이 노환으로 앓다가 사망했는데, 이때도 맏며느리인 노부코 비는 문병하지도 않았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또한 노부코 비는 딸들과도 사이가 나빠서, 아키코 공주는 한 주간지와의 독점 인터뷰에서 “어머니와 거의 교류가 없다.”고 대놓고 발언했을 정도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본에서 신빙성 높게 보고 있는 사유는 다음과 같다. 과거 노부코 비는 어린 두 딸에게 시부모 다카히토 친왕·유리코 비 내외에 대한 험담을 했는데, 두 딸이 자라서 보니 어머니가 할아버지·할머니에 대해서 한 말은 사실이 아니었기에, 어머니와 거리를 두게 되었고 모녀들 간의 사이가 나빠졌다는 것.
다카히토 친왕이 죽은 후로 미카사노미야 가문에는 남자가 없기에 그의 아내 유리코 비가 당주(當主) 자리를 이어받았고, 그 다음으로는 노부코 비가 시어머니 유리코 비로부터 당주 자리를 이어받게 된다. 아키코 공주요코 공주는 어머니에게 당주 자리가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미카사노미야 가문을 자신들이 이어나가기로 결정하였고, 특히 아키코 공주는 “시집가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황실에 남아서 미카사노미야 가문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토모히토 친왕이 생전에 살던 저택에는 두 딸만 살고 있고, 노부코 비는 딸들과는 따로 살고 있다. 2016년에는 딸들이 공무 때문에 집을 비운 사이에 자신의 짐을 챙기러 집에 왔다가, 문이 잠겨 있자 딸들이나 궁내청 직원에게 연락하는 대신에 열쇠수리공을 불러서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다. 2019년 9월에는 집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게이오기주쿠대학병원에서 치료[4]를 받았는데, 이 사실이 발표되는 과정에서 노부코 비는 토모히토 친왕 저택이 아닌 궁내청 분청사[5]에서 별도로 살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4. 공무와 황실 생활


노부코 비는 미카사노미야 일가 및 황실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지만, 황실에서는 그녀에게도 공무를 할당하고 있다. 2018년 가을 다카마도노미야 아야코 공주가 평민 모리야 케이(守谷慧)와 결혼하여 황적을 이탈하면서 황족이 또 1명 줄어들었고, 2019년에는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 내외가 생전퇴위했으며, 노부코 비의 시어머니 유리코 비는 연로하여[6] 공무를 수행하기 어렵다. 때문에 황실에서는 가족들과 사이가 나쁜 노부코 비까지도 공무에 동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7]
그래서 이후로 노부코 비도 황실의 공식석상에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는데, 2019년 5월 22일 일본 적십자사 대회에서 참석한 그녀의 표정을 보고 “싫은데 억지로 (공무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것은 아키시노노미야 키코 비에 대한 반감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2019년 6월 6일 남편 토모히토 친왕의 사망 7주기 추모식, 이틀 후인 6월 8일 시동생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의 사망 5주년 추모식에도 유일하게 불참했다. 여전히 황실과 사이가 좋지 않은 듯하다.
또한 노부코 비는 궁내청 및 황실과도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듯하다. 2020년 1월 말의 와카[8] 행사에서 노부코 비는 마사코 황후의 옆자리[9]에 배치되었는데, 유독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온 것이다. 일본 황실의 행사에서는 황후가 먼저 무슨 의상을 입을지 결정하고, 궁내청에서는 황후의 의상을 다른 여성 황족들에게 알려주어 ‘알아서’ 적절하게[10], 황후보다 한결 수수하게 입고 오도록 조치해놓기 때문이다. 노부코 비가 황실 생활을 몇 년을 했는데 이런 관습을 모를 리가 없고, 2019년의 적십자 행사에서도 마사코 황후에게 우호적으로 대했던 것을 보면 고의적으로 황후보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왔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소통 문제가 아니겠느냐는 말.

5.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와의 갈등


아랫동서 다카마도노미야 히사코 비와 마찬가지로, 나루히토 덴노의 남동생인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 일가와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은 듯하다. 2019년 마사코 황후가 단독 공무로 참가했던 적십자 행사에서, 노부코 비는 마사코 황후에게 웃는 얼굴로 대했지만 아키시노노미야 키코 비에게는 무표정을 넘어서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만 대했다.[11] 이에 대해서 “역시 대재벌 아소 가문의 막내딸답게 감정을 감추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을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성격 또한 그 오빠(아소 다로)에 그 여동생이다”라며 화제가 되었다.
2020년 1월 무렵의 미야케 회의에서는, 동서 히사코 비와 함께 아키시노노미야 부부의 면전에서 “큰딸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2020년 7월에도 노부코 비는 히사코 비와 함께 다시금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에 한소리를 했다. 얼마 후에 노부코 비의 장녀 아키코 공주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가 나왔는데, 이에 대해 일본에서는 오히려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수작’으로 보고 아키시노노미야 일가를 비판했고, 노부코 비도 문제의 보도를 보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우익들도 아키코 공주의 편을 들었고[12], 아키코 공주의 외삼촌 아소 다로일본 자민당의 유력한 정치인으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런 노부코 비와 척을 지게 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로서는 몹시 부담스럽게 되었다.

6. 기타


특기는 요리이며, 1992년과 2013년에는 요리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2번째 책에서는 후쿠시마현의 요리에 대해 다루었다.

[1] 일본 황실에서 황족에게 주어지는 개인 표식, 휘장, 마크.[2] 을 보기 위해 관상용으로 개량된 복숭아나무이다.[3] 말이 평민이지, 미치코 상황후의 친가인 쇼다(正田) 가문은 대기업을 운영하는 재벌이며, 외가인 소에지마(副島) 가문은 옛 화족(백작)이다.[4] 전치 3개월 진단을 받아 1~2개월 입원했고, 이 때문에 9월의 공무 일정들은 모두 취소했다.[5]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궁내청 소유의 건물.[6] 1923년생. 일본 황실의 최고령자.[7] 노부코 비는 남편 토모히토 친왕이 죽고 1년이 지난 2013년부터 공무를 재개했으나 그리 많은 일을 하지는 않았고, 그마저도 언론에 보도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8] 일본의 전통 시(詩)[9] 원래대로라면 유리코 비가 있어야 할 자리였으나, 고령의 유리코 비가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하면서 맏며느리인 노부코 비가 대신했다.[10]드레스 코드 때문에 미치코 상황후마사코 황후는 황태자비 시절 수차례 골탕(시집살이)을 먹었다.[11] 행사가 끝나고 귀가할 때의 영상을 보면, 노부코 비는 마사코 황후에게 밝게 웃어주고 연신 손을 흔들며 계속 바라보았지만, 키코 비에게는 완전히 굳은 표정으로 고개만 숙였고 인사 후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또한 다른 황족들도 마사코 황후와 키코 비를 대하는 모습이 크게 다르다. ‘장녀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에 대한 불만이, 황족들 사이에서도 팽배해 있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다.[12] 아키코 공주요코 공주는 아버지 토모히토 친왕이 생전에 하던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자위대 행사 참석을 꾸준히 해오고 있어서, 오래 전부터 극우들에게는 칭송의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