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반 빅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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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1963년 5월 31일~ (60세)
임기: 1998년 7월 6일~2002년 5월 27일
2010년 5월 29일~
1. 개요
2. 상세
3. 정치경력
4. 두 번째 총리 취임 이후의 행보
5. 독재 행각
6. 유럽 난민 사태에 대한 강경대응
7. 유럽회의주의자
8. 여담


1. 개요


Orbán Viktor Mihály
헝가리의 총리.
민족주의, 보수주의 성향 정당인 청년민주동맹(피데스) 소속이다.

2. 상세


젊은 시절에는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던 민주화 운동가였지만 헝가리 민주화 이후로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하면서 보수주의적인 성향으로 틀어졌다.[1] 그래도 2000년대 중반까지는 자유주의 성향이 있었지만, 2000년대 중후반 들어 그나마 남은 자유주의 성향을 벗어던지고 보수주의로 완전히 전환했다.
이후로는 그나마 남아있는 자유주의 성향은 없어지고 언론과 대결을 보이는 우파 포퓰리스트 정치인으로 분류되었으며 그래서 푸틴과도 가깝게 지낼 정도가 되었다. 실제로 2010년대 정치노선만 본다면 푸틴과 비슷한 점이 많기도 하다.[2] 젊었을 때는 너지 임레의 명예회복을 외쳤지만, 나이들어서는 카다르 야노시에 대한 향수를 이용하면서 집권했다.
2020년에는 완전히 독재자로 타락한 지 오래다. 언론탄압을 일삼는것은 예사이고 코로나19를 핑계로 아돌프 히틀러가 만든 수권법을 그대로 본받아서 의회를 강제로 해산시켜버리고 헝가리 법으로 만들었다가 헝가리 시민들과 야당들이 반발하고 미국과 유럽연합의 경제 제재에 3개월만에 철회하는 등 진짜 독재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헝가리의 인명 표기는 한국과 같이 성이 앞에 오기 때문에 성이 오르반, 이름이 빅토르 (빅토르 미하이)이다. 서양식으로 표기하면 Viktor Mihály Orbán(빅토르 미하이 오르반).
2020년 11월 30일부로 헝가리 최장 임기 지내고 있는 총리이기도 한다.#

3. 정치경력


1963년 5월 31일 세케슈페헤르바르에서 태어났으며, 부다페스트의 외트뵈시 로란드 대학(줄여서 엘테, ELTE)에서 법학을 전공하였다. 청소년기와 청년기때에는 공산당원이었지만 군에서 제대한 이후로 공산체제에 회의감을 느꼈으며 이후로 자유노조 등에 대해 공부했고 1988년 오르반은 공산주의 정권에 반대하는 단체인 청년민주동맹(Fiatal Demokraták Szövetsége, 줄여서 피데스 Fidesz)이 만들어질 때 창립 멤버로 들어갔고, 세기의 종언이라는 잡지도 창간했다. 그 다음해인 1989년 6월 16일 부다페스트에 있는 영웅 광장에서 열린 헝가리 혁명 당시 수상 너지 임레의 국장에서 자유선거와 소련군 철수를 공개적으로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이 연설로 일약 스타가 되었으며 서구권에서도 주목받는 인사가 되었다.# # 이후 피데스가 정당이 되면서 오르반은 피데스 당의 당수가 되었다.
피데스는 1990년 치러진 총선에서 국회의 386석 중 21석을 차지했다. 이 시기까지 오르반 빅토르는 중도성향의 정치인이었지만, 1994년 총선에서 20석에 그치는 부진을 보이자 당의 노선을 중도파 자유주의에서 좀 더 보수주의적인 노선으로 수정했으며 이 때문에 상당수 중도파 당원들이 탈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98년 총선에서는 피데스가 예상을 깨고 돌풍을 일으키며 148석을 차지하면서 원내 제1당이 되는 데 성공했고, 오르반 빅토르는 만 35세의 나이로 총리직에 올랐다. 오르반 정부는 서구화를 추구하면서 경제적으로 성과를 거뒀고 NATOEU 가입 등에서 외교적 성과를 올렸으나, 국영기업의 사기업화 과정에서 부패 사건이 일어나는 등의 문제도 있었다.# 02년 총선에서 피데스는 188석을 차지하며 의석수를 늘리기는 했지만 사회당-자민련 연합에 근소한 차이로 밀렸고, 오르반은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2006년 총선에서도 피데스는 득표율이 약상승하였음에도 사회당에게 패배하였으나, 이후 사회당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며 본격적으로 긴축정책에 들어가면서 증세와 공공요금 인상 등의 정책을 폈고, 덕택에 체제전환 이후로도 얻은게 별로 없다고 느끼는 장노년층을 중심으로 반발여론이 일었고[3] 이 와중에 당시 주르차니 총리가 비공개적인 자리에서 "정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우리는 거짓말만 했다"는 발언을 한 게 유출되면서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4] 그 이후로도 헝가리 정부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강도높은 긴축을 지속했으나 2008년 상반기 피데스가 주도한 국민투표에서 대학의 부분적 유료화와 무상의료서비스의 부분적 유료화 조치를 철폐하는 국민투표에서 패배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그 직후로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IMF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고, 이 무렵 여론조사에서 피데스의 지지율은 60%대를 넘나들게 되었고, 친서방 자유보수주의 성향이었던 오르반 빅토르의 정치성향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을때가 사회당 2기 집권기였을때인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친서방자유주의 노선에서 민족주의 우파성향으로 변모하게 되었고 2009년 연설에서 자유주의든 공산주의든간에 엘리트들의 사상이라고 비난하는 연설을 하면서 정치노선에 커다란 변화가 있음을 입증했다.

4. 두 번째 총리 취임 이후의 행보


2010년 총선에서 피데스당은 긴축대신 경제성장을 내세우는 공약을 통해서 기존 사회민주당 지지층을 대거 흡수하며 52.7% 득표율로 압승을 거두웠고, 전체 의석 386석의 3분의 2를 넘는 263석을 확보하며 재집권하였다. 총리직 재취임 이후 오르반은 긴축을 요구하는 IMF의 지원을 거부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이후 특별세를 징수하는 등의 정책을 펴 2013년 구제금융 빚을 조기상환했다.# 높은 지지율에 힘입어 오르반은 2012년 헌법을 개정해 기본권을 대폭 축소하고, "국가의 지적, 정신적 통일 수호"에 어긋나는 언론보도나 각종 시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거나, 여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개편한다거나 하는 내용의 신헌법을 통과시켰다.#
이와 동시에 미디어법이나 중앙은행법 등을 개정하면서 기본권을 제약한다는 비판을 받자 EU는 헝가리 정부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도 하는 등# EU와도 충돌을 빚었다. 오르반은 2014년 총선을 앞두고 "다국적 기업과 은행들, EU 관리들이 헝가리를 공격하려 한다", "탐욕한 저들이 이득을 얻지 못하도록 정책을 펴 나갈 것"이라고 EU와 외국 기업들을 비난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2014년 총선에서 피데스당의 득표율은 44.9%로 떨어졌으나 의석에서는 연립여당 KNDP와 합쳐 의회 199석 중 정확히 개헌선에 해당하는 133석을 가져가는 대승을 거두었다.[5]선거 이후에도 오르반 총리는 "헝가리는 서방이 추구하는 가치 대신 러시아중국 같은 국가를 모델로 삼아 나아가야 한다", "헝가리가 서방의 진보 민주주의를 쫓은 결과 국가 자산을 지키지 못하고, 공동체가 무시되고, 빚더미에 앉았다" 등 반서방적 발언을 하기도 했으며#, 사형제를 부활시키려다가 EU의 경고를 받고 중단하기도 하였다.#
헝가리 최초의 독립언론이 재정지원 감소로 폐간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헝가리 공영방송사의 사장이 오르반 빅토르의 의중에 의해서 경질되는 일이 벌어졌기도 했으며, 친정부 언론에게 광고예산을 배정하고 반 오르반 빅토르 성향의 언론사한테는 광고비를 노골적으로 줄이는 행보를 보여서 국경 없는 기자회에서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에서 헝가리의 순위는 2006년에는 10위를 기록했으나 2014년에는 64위까지 떨어졌다.
2012년에 슈피겔 지에 의해 알렉시스 치프라스, 마린 르 펜 등과 함께 유럽의 위험한 포퓰리스트 1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6년에는 정부 비판하는 헝가리 최대 일간지가 돌연 발행 중단되는 등 점점 독재자 같은 기질이 엿보이고 있다. # 다시 유럽연합을 비난하였다. # 2018년에는 보수성향 일간지인 머저르 넴제트(Magyar Nemzet)까지 폐간되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이 신문은 2014년까지만 해도 친 오르반 성향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2015년부터 신문사 소유주였던 시미츠커 러요시가 오르반에게 쓴소리 좀 했다가 아예 관계가 틀어져버렸고, 결국 다른 반정부 성향 언론사들과 똑같은 운명을 맞았다.(#)
하지만 내외부에서 언론장악 및 시민단체 탄압 등의 권위주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음에도 경제를 회복시켰다는 평을 듣고는 있기 때문에 중장년층들의 지지에 힘입어 40-50%대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2018년 총선에서도 여유있게 집권에 성공할것이라는것이 주평이다.
2018년 들면서 자신의 사위가 부정한 과정을 거쳐 사업권을 대거 따낸 것이 들통나면서 호드메죄바샤르헤이 시장선거에서 패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하지만 선거 패배 이후로도 야당인 사회당과 요빅의 지지율이 지지부진하고 피데스의 지지율이 50%를 넘나드는지라 이미 집권연장은 여전히 확실시 된다는 말이 나온다. 그나마 피데스가 난민 이슈를 너무 우려먹은데다가 사회당을 비롯한 야당 23개가 야권단일화를 하고있기 때문에 이슈가 되고있어서 개헌선 확보에는 실패할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당초 투표율 상승으로 야권의 선전이 예상된 것과는 달리[6] 여당이 3연속 개헌선 이상의 의석을 확보했다. 선거일 당시 피데스가 지방투표에서 동원을 해댔다는 RTL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3연속으로 개헌선 의석을 확보한 셈이다. 그 만큼 콘크리트 층이 탄탄하다는 얘기다. 또한 공정한 선거가 보장되는 민주국가들 중 정부진영이 이렇게 깔끔하게 총선거시 과반 이상의 개헌선을 확보하는 경우는 전세계에서도 싱가포르,일본이나 일부 일당우위국가들을 제외하면 흔치 않은 일이며(특히 유럽은 더더욱), 빅토르 오르반의 천재적 정치적 수완이 이번에도 입증된 셈이다.
2018년 12월 28일, 부다페스트 광장에서 너지 임레의 동상을 철거하도록 했다. 29년전 자신이 민주화의 상징으로 추모했던 인물을 이제는 쓸모없다며 도로 고인드립 친 것이다.(#)
동성애에 관한 것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어 대학 내 젠더 학문에 대한 연구를 금지하여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터지기도 했다. #
북마케도니아에서 니콜라 그루에브스키 마케도니아 전 총리의 부패혐의로 영장을 발부한 상태였는데, 헝가리로 도망쳤다는 것이 밝혀져 오르반 총리가 이를 비호해 주고 있다는 설이 나오고 있었다. # 결국 헝가리가 망명을 받아들여 마케도니아와 갈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
출산율에 대해서 이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헝가리 내에서 아이 넷 이상을 둔 어머니의 소득세를 전액 면제하고, 신혼부부에게 지원되던 최대 1000만 헝가리포린트(약 4000만원) 무이자 대출금을 셋째 자녀 출산 시 탕감해주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와 회담 가지려고 할 때, 미국 내에서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2019년 10월 지방선거에서 부다페스트 시장 선거에서 패배했는데, 2010년 재집권 이후 여권의 첫 패배 이라는 점이다.#
2020년에 코로나19 사태를 이용해서 총리에게 초법적인 권력을 부여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법안은 '''무기한'''으로 총리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하며 이에 따라 오르반은 '''초법적인 통치 권한'''을 손에 넣었고 헝가리의 의회는 기능을 정지했다. 물론 선거도 정지되었으며 가짜뉴스 유포와 거주지 이탈에 대해 징역형까지 선고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 헝가리판 수권법이나 다름없는 악명 높은 법이며 이것으로 헝가리의 민주주의에 종언을 고했다. 당연하게도 헝가리 내에서 시민들과 야당들이 반발했고 미국과 유럽 연합에서는 강한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시민들의 반발과 미국, 유럽연합의 강한 압박에 몇개월만에 사실상 폐지하기로 했다.#
5월 8일 페이스북에 헝가리의 과거영토(대헝가리) 지도를 올려 주변국들의 반발을 샀다.#
9월에 대학 이사회 이사들을 오르반 빅토르 총리 측근으로 교체하자 대학 학문의 자유 위협 논란이 있자 시위가 나왔다.#

5. 독재 행각


오르반 총리는 재집권하자마자 사법부와 검찰에 족쇄를 씌워놨다. 먼저 오르반의 최측근을 사법부와 검찰의 정점에 앉혀 장기간 주무르고 있다. 오르반은 2010년 검찰총장 임기를 6년에서 9년으로 바꿨다. 당시 오르반의 측근인 피터 폴츠가 검찰총장에 올라 지금까지 검찰을 지휘하고 있다. 사법 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청장도 오르반과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낸 툰데 한도라는 여성이 맡아 2011년부터 현재까지 장기 재임 중이다.
오르반과 여당 피데스는 2011년 사법 권력 장악을 위한 개헌안을 통과시켜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정부가 해임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또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11명에서 15명으로 증원하고, 늘어난 4명을 여당 단독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헌법재판소의 권한은 행정부에 대해 거의 간섭하지 못하도록 대폭 축소되었다. 새 헌법은 예산과 관련된 법률에 대한 헌재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켰다. 공공부채가 GDP의 50%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한 헌재는 예산·조세·의료보험비·관세 등과 관련된 법안은 심사할 수 없게 되었다. 헌재는 기본권과 시민권에 관련된 사안만 심사할 수 있게 되었다.
2012년에는 사법부와 검찰을 친여(親與) 성향으로 물갈이하기 위해 갑자기 판사와 검사 정년을 70세에서 62세로 바꿨다. 274명에 달하는 판·검사가 하루아침에 강제 은퇴를 당했고, 이들의 빈자리는 오르반 지지 성향의 젊은 법조인들로 채워졌다. 또한 법원의 운영을 책임지며, 고위직 판사 임명권, 동의 없이 판사를 일시 전보할 수 있는 권한, 그리고 사건을 다른 법원으로 이관시키는 권한 등을 지닌 법원행정처장을 의회가 임명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의회는 제대로 뽑힌다고 해도 문제가 될텐데, 오르반 총리는 헝가리의 국회의원수를 386석에서 199석으로 절반을 한꺼번에 줄였다. 문제는 이렇게 의석 수를 줄이는 과정에서 진보적인 성향을 띄는 지역구를 보수적인 농촌과 함께 묶어서 선거구를 조정하는 게리맨더링을 무더기로 강행했다. 때문에 2014년 헝가리 총선에선 여당 피데스의 득표율이 대폭 감소하고 반대급부로 야당의 득표율은 급증했음에도 의석 비율은 별 차이가 없는 심각한 민의 왜곡 사태가 일어났고, 이는 2018년 총선에서도 변함 없었다.
언론도 오르반의 서슬 푸른 칼날을 피해갈 수 없었다. 오르반 정부는 언론을 통제해 비판적 기능을 제거하는 한편, 사실상 정부의 홍보기관으로 만들었다.
2010년 7월 미디어·텔레콤청과 미디어위원회를 설립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미디어위원회의 권한은 방송만이 아니라 종이 매체와 인터넷 미디어까지 미쳤다. 이런 감독기관은 '''임명권이 의회와 대통령에게 있으므로''' 친여 인사로 채워졌다. 같은 사람이 장(長)을 맡은 두 기관은 헝가리 내 모든 미디어로부터 아무 때나 모든 정보를 요구할 수 있다. 영업 비밀이나 기타 보호된 정보에 대해서도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다. 요구에 불응하면 막대한 벌금이 부과되고 등록 취소도 가능하다.
미디어법은 ‘균형 잡히지 않고 혐오스러운’ 보도를 하는 방송·신문·온라인 미디어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진실성·객관성·균형성·혐오성의 판단은 감독기관 몫이기에 이 두 법은 사실상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공영 미디어는 더욱 심하게 정권에 복속되었다. 2010년 법에 의거 TV·라디오·통신사 등 모든 공영 미디어는 언론위원장이 관리하는 미디어서비스지원신탁기금(MTVA)에 속하게 되었다. MTVA의 대규모 숙청으로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은 퇴출되었다.
정부는 민영 미디어도 공익광고와 미디어발전지원금의 배분 등 여러 방법으로 길들였다. 비판적인 미디어는 경영난에 빠뜨려 퇴출시키든지 아니면 다른 소유자에게 넘어가게 했다. 외국인 소유의 미디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대형 미디어의 경우, 일정 규모 이상의 광고 수입에 대해 2014년 도입된 대규모 세금으로, 경영 실적을 악화시켜 매각을 유도한 후 오르반과 친분 관계가 있는 기업들로 하여금 매입하게 했다.
요약하자면, '''헌법재판소는 정부에 대한 어떠한 심판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사법부는 의회에게 모든 인사권을 빼앗겼는데 의회는 대통령의 자의적 게리멘더링에 의해 여당이 무조건 개헌선을 넘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이며 모든 기사는 정부의 사후심의를 받는다.'''

6. 유럽 난민 사태에 대한 강경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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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에 오더라도 헝가리인의 일자리는 가져갈 수 없다!"(Ha Magyarországra jössz, nem veheted el a magyarok munkáját!) 2015년 헝가리 여당에서 설치한 광고판.
외국인 정책에 있어서 매우 배타적이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2015년 1월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가 일어난 이후 오르반 총리는 "이민정책은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문화적 특징을 가진 많은 소수민족들이 우리에게 섞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등의 외국인 반대 발언을 했다.# 특히 유럽 난민 사태 당시 오르반 총리는 강경한 태도로 주목을 받았다. 오르반 총리는 2015년 9월 독일 등이 시리아 등지에서 오는 난민을 수용하겠다고 하자 "무슬림 난민이 몰려오면 유럽의 번영과 정체성, 기독교적 가치가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하며 반대했다.#
오르반은 EU의 난민할당제에 가장 강경하게 반대하는 입장 중 하나인데 헝가리는 일찌감치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난민 입국을 막았으며, 동시에 난민이 들어오는 남쪽 국경 전체에 장벽을 쌓아서 국경을 차단했다. 동시에 자국에 이미 들어온 난민들은 열차에 태워서 난민을 받겠다고 한 서유럽 국가들로 대거 보내 버리기도 했다. 또한 국경에서 8km 떨어진 곳에서까지 경찰이 난민을 체포해 세르비아로 돌려보낼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켜서 헝가리를 거쳐가려는 난민들은 세르비아에서 발이 묶인 상태. 이 때문에 난민들의 항의 시위가 일어나고 있으며 세르비아, 오스트리아와 충돌이 많기도 하다.
한편 2016년 7월 IS가 자행한 2016년 프랑스 성당 테러가 일어나고 나서는 "단 한명의 난민조차도 안보와 공공 치안에 위험요소이며 2+2가 4인것과 마찬가지로 난민과 테러리즘 사이에 명백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헝가리에는 단 한명의 난민도 필요없고 헝가리에게 난민 할당제를 강제하지마라, 받을 나라는 받고 난민을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난민들은 약이 아니라 독이며 우리는 독을 삼키지 않을 것" 발언으로 인권단체에게 비난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테러 사태로 반난민 정서가 고조되다 보니 헝가리 국내외 여론과 인터넷에서는 오히려 지지가 나온다.
독일 주도로 추진된 EU의 난민 할당제에 대해서 10월 국민투표를 통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자국은 경제적으로 수용 여유가 없고 난민 사태에 역사적 책임도 없다는 오르반의 주장은 동유럽 국가들에서도 동조를 얻고 있으며, 싫다는 나라까지 강제로 난민을 떠맡기면 오히려 해당 국가로 이주한 난민들이 더 피해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어 헝가리는 EU의 벌금을 물면서 할당제를 거부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정작 실시한 난민할당제 찬반 투표는 투표율 50%를 다 채우지 못하는 바람에 무효화되어 버렸다. 그러나 오르반 측은 이 결과에 만족했다고 하는데, 투표한 유권자들의 표를 보면 난민할당제 반대에 표를 던진 사람이 98%를 넘어간다. 거의 만장일치 수준. 설사 투표에 참여안한 나머지 유권자들을 전부다 찬성표로 놓고 본다고 해도 오차 범위를 감안한다면 '현재 헝가리 국민들은 난민을 거부하는 사람이 다수다'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헝가리 정부 당국 입장에서는 나름의 명분이 생긴 셈이 되었다. 하지만 이 투표 자체가 위헌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헝가리 기본법 (헌법) 제8조 3-d항을 보면[7] 국민투표에 부칠 수 없는 사안 가운데 "국제적 협정에서 나오는 의무"가 들어 있다.
그리고 난민들의 대규모 정착을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심지어 난민을 도와준 사람을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법안까지 통과되었다.#

7. 유럽회의주의자


EU내부에 속하면서도 유럽회의주의(반EU)의 기수 역할을 자임중이고 2018년 부터 유럽의회 내부에서 '''유로스켑티컬 파티''', 즉 EU회의주의 분파의 나팔수로 맹활약하고 있다. EU 수호 및 강화기치를 표방하는 마크롱과도 자신이 싸우겠다고 유럽의회에서 연설하며 은근슬쩍 프랑스와 헝가리를 비슷한 체급으로 등치시키는 묘한 짓도 벌인다.
헝가리 여당 '피데스'는 유럽의회에서 EPP에 소속되어 있는데 이런 연이은 EU내 반EU행보를 이어가는 오르반의 정치전술을 같은 시기의 이탈리아 연정집권당 오성운동 및 동맹의 반프랑스 외교전술, 극우국가주의, 민족주의 및 포퓰리즘 정책행보와 일치시키는 분석도 있다. 2019년 2분기, 5월 말로 예정된 유럽의회 총선에서의 입지강화를 목적한 선명성 우선의 극단주의 선거전략이란 해석이다.
허나 문제는 이탈리아 오성운동 당수 디마이오 및 동맹소속 내무장관 마테오 살비니로 대표되는 반체제(반EU, 반기존체제) 국가주의 포퓰리스트와 오르반의 차별성이 다름아닌 외교와 국방에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EU내 포퓰리즘의 총본산격이나 안보 및 대러시아 외교는 EU차원과 일치하고 집권여당이 EU내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된 형편이라 정치적 동조자가 동유럽 회원국과 헝가리 여당의 관계와 달리 부족해서 문제가 안되었으나 '''오르반은 친러시아, 반서방 행보를 노골적으로 가속하며 단순한 EU기득권세력이 아닌 EU와 NATO 자체의 정체성에 공격을 가하고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반미라고 보기엔 애매하다. 본래는 반미에 가까웠는데 비슷하게 고립주의적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지금은 미국 정부에 어느 정도 호의적이다.[8]
유로존 부채규모 2위(1위 그리스), 경제규모 3위 이탈리아의 돌출행동+고립은 의회 및 집행위의 우려를 사 왔으나 반대로 헝가리의 반서방, 반 EU 친러행보는 집행위측으로부터 왜 저걸 아직까지 방치하냐는 상반된 자세를 끌어냈으며 이런 행보가 가속화되자 장 클로드 융커와 소로스를 엮어서 안티유럽 프로파간다를 2019년 3월 벌인 걸 계기로 EPP에선 헝가리 여당의 제명절차에 착수하여 오르반이 결정 직전 자신의 일탈행동에 공식사과하기도 하였으나 총선 한달 전인 4월, 헝가리 여당은 EU의회에서 교섭능력을 상실했다.
새로운 유럽의회 그룹을 만들어야한다는 발언을 하였다.#

8. 여담


  • 가톨릭 신자가 다수인 헝가리의 총리인데 개신교(개혁교회) 신자이다. 부인은 가톨릭 신자이다. 아들도 아버지와 같은 개신교 신자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헝가리는 주류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어도 21세기 들어 종교 없는 사람이 늘기 전까지는 헝가리 인구의 약 30%가 개신교 신자였고 개신교는 여전히 가톨릭에 이은 헝가리 제2의 종교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 스포츠에 관심이 많으며 한때 FC Felcsút에서 축구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래서 풋볼 매니저 2006에도 등장한다고 한다.
  • 민족주의적 행보로 인해 헝가리 내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이미지가 나쁘다. 헝가리 영화감독인 벨라 타르는 대놓고 "헝가리 최악의 총리, 도널드 트럼프와 다를 바 없다"고 했을 정도.
  • 조지 소로스와는 은사관계로, 소르스 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으며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한 이력이 있었고 이후로도 조지 소로스와 친분관계를 유지하며 경제정책을 펼때마다 조언을 듣곤 했지만 오르반 빅토르가 2000년대 후반에 정치노선을 바꾸고 재집권한 이후로는 사이가 틀어지면서 험악한 관계가 되었다. 조지 소로스가 설립한 중앙유럽대학을 겨낭한 법안에 사인을 하고, 외국 NGO의 지원을 받는 시민단체의 돈줄을 움켜쥐려고 하는 행보를 보이며 더더욱 안드로메다로 날라가게 되었고, 결국 중앙유럽대학을 오스트리아로 옮기게 되었다. 나중에 EU 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 조지 소로스와 결별한 이후로는 스티브 배넌과 매우 돈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같은 민족주의 계열 정당인 폴란드 법과 정의당(현 집권여당), 체코의 밀로시 제만과도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2012년에는 헝가리에서 아르메니아군 육군 중위 구르겐 마르가랸을 토막살해한 아제르바이잔 육군 장교인 라밀 사파로프를 석방시켜 세계적인 비난을 받았다.[9] 그러나 잠깐 비난을 받고 잊혀졌다. 야당의 주장에 따르면 나중에 아제르바이잔 석유를 싼 값에 받고자 아제르바이잔 측 석방 요구를 들어줬다고 하며 여당과 오르반은 부정하고 있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때는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면서 독재자 트리오(일함 알리예프-에르도안과 같이)끼리 어울린다는 비아냥을 받았다.
  • 2019년 5월 26일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고 발생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다만 이때 손녀와 함께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린 게 논란이 되었다.
[1] 이로 인해 초창기 피데스에 참여했던 자유주의나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당원들이 대거 탈당했다.[2] 푸틴도 옐친의 후계자인 인물인데다가 시장주의를 추종하는 우파적인 성향의 정치인이지만 국민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서 서방에 맞서는 노선을 채택했다.[3] 카다르 야노시에 대한 평가가 급속도로 올라간것도 이때였다.[4] T-34 문서에서 볼 수 있는 이 유명한 짤방(...)이 이 당시의 사진이다.[5] 다음 해인 2015년에 보궐선거로 2석을 상실하여 단독 개헌은 불가능해졌다.[6] 참고로 선거 당일 전화 여론조사에서 피데스가 100석대에서 110석대로 감소될것으로 에측되었다. 하지만 실제 개표에서는 야당이 떡실신...[7] 위에 있는 Article H나 Article VIII와는 다른 Article 8이다.[8] 그래서 그런지 2020년 선거에서 조 바이든이 트럼프를 제치고 당선되자 별로 안 좋아하는 뉘앙스를 보였다. 이는 EU국가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것.[9] 사파로프 대위는 아제르바이잔으로 송환된 이후 처벌이 아니라 진급을 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