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 공주
[image]
일본의 황족. 나루히토 덴노의 당숙인 토모히토 친왕의 2녀 중 차녀이다.
할아버지는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 증조할아버지는 다이쇼 덴노이다. 1947년 개정된 황실전범에 따르면, 천황의 손주까지는 친왕/내친왕, 증손부터는 왕/여왕이라 한다.[2] 따라서 다이쇼 덴노의 증손녀인 요코 공주는 여왕 지위를 받았고, 요코 공주의 언니 아키코 공주, 사촌 여동생들인 쓰구코 공주, 노리코 공주, 아야코 공주도 여왕 지위를 받았다.[3]
어머니 노부코 비는 그 유명한(…) 아소 다로의 여동생이다. 아소 다로는 일본 총리를 지낸 정치인이고, 그의 아내 아소 치카코(麻生ちか子) 또한 스즈키 젠코 前 총리의 딸이다. 아소 가문은 규슈에서 탄광사업을 했는데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하여 큰돈을 벌었고, 아소 다로 또한 극우 인물로 한국에 대한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외할머니 아소 카즈코(麻生和子)는 요시다 시게루 前 총리의 딸이며, 화족 정치인인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顕)의 외손녀이다. 노부아키는 2.26 사건 때 카즈코와 함께 있다가 습격당해 위험에 처했는데, 카즈코가 적들과 맞서 총격전을 벌여 외할아버지를 구했다. 한편 노부아키는 본래 오쿠보 도시미치의 차남인데, 마키노 가문에 양자로 입양되어서 ‘마키노 노부아키’가 된 것이다.
노부아키의 며느리 마키노 스미코(牧野純子)는 화족 나베시마 가문의 딸로, 미치코 상황후의 황태자비 시절에 동궁(東宮) 시녀장(侍女長)을 지냈다. 오랜 관례를 깨고 평민[4] 출신인 쇼다 미치코가 황태자비가 되자, 시어머니 나가코 황후를 위시한 황족·화족들은 미치코 황태자비를 몹시 미워하여 호된 시집살이를 시켰는데, 스미코는 바로 그 나가코 황후에 의해 동궁 시녀장으로 임명된 인물이었다. 따라서 스미코 또한 나가코 황후 일파와 함께 미치코 황태자비를 괴롭혔다.
스미코의 딸 하야시 사다코(林貞子, 1919-2006)는 교육자로, 가쿠슈인 대학과 도카이(東海) 대학의 명예교수였으며 유아교육 전문가였다. 사다코가 도쿄도 시부야구에 설립한 쇼토(松濤) 유치원은 일본에서 원비가 제일 비싼 유치원으로 손꼽혔고, 상류층·부유층·연예인의 자제들이 많이 다니며[5] , 원생들을 명문 사립초등학교로 많이 진학시키기로 유명했다. 아키코 공주의 어머니 노부코 비도 쇼토유치원을 졸업했고, 결혼 전에는 쇼토유치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쇼토유치원은 2008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고, 2010년에 최종 폐원되었다.
아키코 공주와 요코 공주는 쇼토유치원[6] 에 다니다가 가쿠슈인 유치원으로 옮겼다. 일본 황족들이 다니는 학교는 가쿠슈인이라는 게 암묵의 룰[7] 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요코 공주는 가쿠슈인 유치원, 가쿠슈인 초등과, 가쿠슈인 여자 중등과,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를 거쳐, 2002년 4월 가쿠슈인 여자대학 국제문화교류학부 일본문화학과에 진학했다.
2003년 10월 25일에 성년(만 20세)이 되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황족으로서의 공무 및 황실 행사와 제사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2006년 가쿠슈인 여대를 졸업한 후로는 일본 적십자사에서 2012년까지 근무했다. 또한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 토모히토 친왕과 어머니 노부코 비, 영국 유학 중이던 언니 아키코 공주의 몫까지 공무도 수행했다.
[image]
2012년에는 아버지 토모히토 친왕이, 2016년에는 할아버지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이 사망했다. 황실 가족들과 사이가 나쁜 노부코 비는, 남편과 시아버지의 장례 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13년 8월에는 재단법인 국제유니버설디자인협의회의 총재로 취임했고, 2014년 1월에는 사회복지법인인 유아이주지카이(우애십자회)의 총재로 취임했다.
언니 아키코 공주와 함께 공무를 하지만, 궁내청과 언론에서는 그에 대해 별로 보도하지 않는다. 때문에 매년 열리는 신년참하 외에는 언론에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2019년에는 아키히토 덴노가 생전퇴위식과 나루히토 황태자의 즉위식이 있었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언론에 많이 노출되었다.
2019년 12월 11일~17일에는 미얀마를 방문했는데, 이는 나루히토 덴노의 즉위식에 참석하러 방일했던 아웅산 수지 여사가 직접 요청한 것이라고 한다. 다만 궁내청의 발표에 의하면, 요코 공주의 미얀마 방문은 '사적 여행'으로 처리될 것이라고 한다.
한편 몸이 좋지 않은지 자주 공무에 불참하는 편이라, 일각에서는 요코 공주의 건강에 대해서 걱정의 소리도 최근 들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명예총재로 있는 모터쇼 연맹의 행사에는 매년 참석한다. 관계자의 발언에 의하면, 전대 연맹 회장이었던 아버지 토모히토 친왕의 유머러스한 태도를 많이 닮았다고 한다.
일본 우익사관 채널과 블로그에서는 언니 아키코 공주와 함께 인기가 높다. 아버지 토모히토 친왕과 외삼촌 아소 다로가 극우이며, 무엇보다도 토모히토 친왕 사후인 2013년부터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있기 때문이다.[8] 현재 일본 황실에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황족은 아키코 공주와 요코 공주뿐이기 때문에, 모든 황족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극우들로서는 두 공주를 우호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1. 개요
일본의 황족. 나루히토 덴노의 당숙인 토모히토 친왕의 2녀 중 차녀이다.
할아버지는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 증조할아버지는 다이쇼 덴노이다. 1947년 개정된 황실전범에 따르면, 천황의 손주까지는 친왕/내친왕, 증손부터는 왕/여왕이라 한다.[2] 따라서 다이쇼 덴노의 증손녀인 요코 공주는 여왕 지위를 받았고, 요코 공주의 언니 아키코 공주, 사촌 여동생들인 쓰구코 공주, 노리코 공주, 아야코 공주도 여왕 지위를 받았다.[3]
2. 외가
어머니 노부코 비는 그 유명한(…) 아소 다로의 여동생이다. 아소 다로는 일본 총리를 지낸 정치인이고, 그의 아내 아소 치카코(麻生ちか子) 또한 스즈키 젠코 前 총리의 딸이다. 아소 가문은 규슈에서 탄광사업을 했는데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하여 큰돈을 벌었고, 아소 다로 또한 극우 인물로 한국에 대한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외할머니 아소 카즈코(麻生和子)는 요시다 시게루 前 총리의 딸이며, 화족 정치인인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顕)의 외손녀이다. 노부아키는 2.26 사건 때 카즈코와 함께 있다가 습격당해 위험에 처했는데, 카즈코가 적들과 맞서 총격전을 벌여 외할아버지를 구했다. 한편 노부아키는 본래 오쿠보 도시미치의 차남인데, 마키노 가문에 양자로 입양되어서 ‘마키노 노부아키’가 된 것이다.
노부아키의 며느리 마키노 스미코(牧野純子)는 화족 나베시마 가문의 딸로, 미치코 상황후의 황태자비 시절에 동궁(東宮) 시녀장(侍女長)을 지냈다. 오랜 관례를 깨고 평민[4] 출신인 쇼다 미치코가 황태자비가 되자, 시어머니 나가코 황후를 위시한 황족·화족들은 미치코 황태자비를 몹시 미워하여 호된 시집살이를 시켰는데, 스미코는 바로 그 나가코 황후에 의해 동궁 시녀장으로 임명된 인물이었다. 따라서 스미코 또한 나가코 황후 일파와 함께 미치코 황태자비를 괴롭혔다.
스미코의 딸 하야시 사다코(林貞子, 1919-2006)는 교육자로, 가쿠슈인 대학과 도카이(東海) 대학의 명예교수였으며 유아교육 전문가였다. 사다코가 도쿄도 시부야구에 설립한 쇼토(松濤) 유치원은 일본에서 원비가 제일 비싼 유치원으로 손꼽혔고, 상류층·부유층·연예인의 자제들이 많이 다니며[5] , 원생들을 명문 사립초등학교로 많이 진학시키기로 유명했다. 아키코 공주의 어머니 노부코 비도 쇼토유치원을 졸업했고, 결혼 전에는 쇼토유치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쇼토유치원은 2008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고, 2010년에 최종 폐원되었다.
3. 학업
아키코 공주와 요코 공주는 쇼토유치원[6] 에 다니다가 가쿠슈인 유치원으로 옮겼다. 일본 황족들이 다니는 학교는 가쿠슈인이라는 게 암묵의 룰[7] 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요코 공주는 가쿠슈인 유치원, 가쿠슈인 초등과, 가쿠슈인 여자 중등과,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를 거쳐, 2002년 4월 가쿠슈인 여자대학 국제문화교류학부 일본문화학과에 진학했다.
4. 황족으로서의 활동
2003년 10월 25일에 성년(만 20세)이 되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황족으로서의 공무 및 황실 행사와 제사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2006년 가쿠슈인 여대를 졸업한 후로는 일본 적십자사에서 2012년까지 근무했다. 또한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 토모히토 친왕과 어머니 노부코 비, 영국 유학 중이던 언니 아키코 공주의 몫까지 공무도 수행했다.
[image]
2012년에는 아버지 토모히토 친왕이, 2016년에는 할아버지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이 사망했다. 황실 가족들과 사이가 나쁜 노부코 비는, 남편과 시아버지의 장례 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13년 8월에는 재단법인 국제유니버설디자인협의회의 총재로 취임했고, 2014년 1월에는 사회복지법인인 유아이주지카이(우애십자회)의 총재로 취임했다.
언니 아키코 공주와 함께 공무를 하지만, 궁내청과 언론에서는 그에 대해 별로 보도하지 않는다. 때문에 매년 열리는 신년참하 외에는 언론에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2019년에는 아키히토 덴노가 생전퇴위식과 나루히토 황태자의 즉위식이 있었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언론에 많이 노출되었다.
2019년 12월 11일~17일에는 미얀마를 방문했는데, 이는 나루히토 덴노의 즉위식에 참석하러 방일했던 아웅산 수지 여사가 직접 요청한 것이라고 한다. 다만 궁내청의 발표에 의하면, 요코 공주의 미얀마 방문은 '사적 여행'으로 처리될 것이라고 한다.
한편 몸이 좋지 않은지 자주 공무에 불참하는 편이라, 일각에서는 요코 공주의 건강에 대해서 걱정의 소리도 최근 들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명예총재로 있는 모터쇼 연맹의 행사에는 매년 참석한다. 관계자의 발언에 의하면, 전대 연맹 회장이었던 아버지 토모히토 친왕의 유머러스한 태도를 많이 닮았다고 한다.
5. 극우
일본 우익사관 채널과 블로그에서는 언니 아키코 공주와 함께 인기가 높다. 아버지 토모히토 친왕과 외삼촌 아소 다로가 극우이며, 무엇보다도 토모히토 친왕 사후인 2013년부터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있기 때문이다.[8] 현재 일본 황실에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황족은 아키코 공주와 요코 공주뿐이기 때문에, 모든 황족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극우들로서는 두 공주를 우호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6. 기타
- 특기는 검도이다. 가쿠슈인 초등과 5학년 때부터 검도를 시작했고, 가쿠슈인 여대 시절에는 검도부 부주장도 지냈다. 2017년 현재 단위는 5단이다. 검도 관련 공무에도 많이 참석했고, 가쿠슈인 여대를 졸업한 후로는 자원봉사로 가쿠슈인 초등과 검도부를 지도하고 있다.
- 어릴 때는 '못생긴 공주'로 불렸다. (실제로 '요코 공주'로 검색하면 'ブス(못난이)'라는 자동검색어가 뜬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다이어트, 교정, 화장으로 많이 예뻐졌다는 평을 듣는다.
[1] 일본 황실의 황족들에게 주어지는 개인 표식. 사용하는 물건 등에 붙는다. 주로 식물 등이 많지만, 요코 공주나 그녀의 언니 아키코 공주처럼 예외도 있다. 아키코 공주의 오시루시는 눈(雪).[2] 1947년 이전에는 4대손까지를 친왕/내친왕, 5대손부터를 왕/여왕이라 했다.[3] 반면 아키히토 덴노의 손녀로 태어난 마코 공주, 카코 공주, 아이코 공주는 내친왕 지위를 받았다.[4] 말이 평민이지, 미치코 상황후의 친가인 쇼다(正田) 가문은 재벌이고 외가인 소에지마(副島) 가문은 옛 화족(백작)이다.[5] 롯데그룹 신동주, 신동빈 형제도 쇼토유치원에 다녔다.[6] 아키코 공주와 요코 공주의 사촌 여동생들인 쓰구코 공주, 센게 노리코, 모리야 아야코는 가쿠슈인 유치원을 다니지 않고, 쇼토 유치원을 졸업한 후 가쿠슈인 초등과에 입학했다.[7] 패전 이전에는 "황족이 다니는 학교는 가쿠슈인"이라고 아예 법으로 제정되어 있었다. 패전 이후 이 법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황족들은 모두 가쿠슈인을 다녔다. 이 암묵의 룰이 깨진 것은, 2008년 9월 쓰구코 공주가 와세다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8] 2019년 4월에도 아키코 공주와 함께 봄 대제를 지내고 있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가을 대제 참석 여부는 미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