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기-우다 안테나
1. 개요
일본의 공학자 야기 히데츠구와 우다 신타로가 만든 안테나. 물건 자체는 매우 뛰어났지만 당시 일본 정부와 군부의 시대착오적인 결정으로 일본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민간으로도 많이 전파가 되어 의외로 장수만세 안테나이다. 당장 위의 사진에서도 야기-우다 안테나가 TV(텔레비전) 수신용으로 사용 되고 있다. 물론 시기가 흘러 기술의 발전의 영향으로 과거보다는 보기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옥외용 안테나로 여전히 보이는 편이다.#
2. 야기 우다 안테나
1926년, 영국에서 유학중이던 야기 히데츠구(八木 秀次)라는 일본의 공학자와 그의 조수 우다 신타로(宇田 新太郎)라는 인물이 야기 우다 안테나(Yagi-Uda Antenna)라는 전파공학계에 있어서 획기적인 물건을 개발하였다.[1] 쉽게 말하자면 현대까지 흔히 사용되는 생선뼈처럼 생긴 TV 수신 안테나가 바로 이 야기 우다 안테나이다. 물론 수신 뿐만 아니라 송신에도 이용 가능하다.
원리는 안테나 소자에 직접 전류를 흘려서 전파를 방사하는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무급전 안테나 원리를 이용해 반파장 다이폴 안테나 전방에 약간 짧은 도선인 도파기를, 후방에 약간 긴 도선인 반사기를 배열하여 단향성의 날카로운 지향성을 갖도록 하는 원리로 당시에는 획기적인 기술로서 당시 전쟁에 있어서도 레이더 기술에 큰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이었다.
3. 일본의 실수
하지만 태평양 전쟁을 준비하던 일본은 이 기술을 무시해버린다. 당시 일본은 돈 들여서 레이더 따위를 개발하는 것보다 훈련을 통해 인간의 시력을 단련시키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사고에 빠져 있었다. 게다가 이후 영국 본토 항공전의 정보를 듣게 되면서 '''"우리도 레이더를 써야 하는거 아냐?"'''라는 의견이 일선 군인들 사이에서 나와 전파탐신기를 도입할지 어떨지를 묻는 간담회가 열리게 되는데... 여기서 일본 육군 상층부가 말하길 '''"군대는 기습이 생명이므로 기습을 우선시해야 하는 장비들이 전파를 내쏘는 것은 자기 위치를 적에게 알리는 꼴이 되므로 전파탐신 같은 건 필요없다."''' 였다. 웃기는 사실은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덴노 헤이카 반자이!!!!"''' 라면서 돌격하는 건 엄연한 모순이란 거다. 스텔스 기술이 육해공 전 분야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21세기라면 전파를 감추는 문제는 진지한 이슈가 될 수 있지만 이 시절에 이런 발상은 너무나 시대에 동떨어진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상대가 레이더를 가지고 있으면 결국에 탐지될 건 다 탐지된다. 특히 총포를 쏘는 순간 총구 화염이나 소리 때문에 위치를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다. 자기들만 허공에 섀도우 복싱질이나 할수 밖에 없다. 레이더의 불필요를 주장하는 논리로선 매우 조잡하다. 그리고 일본 해군에서는 비슷한 논리로 '''우리에게는 훌륭한 견시병들이 있으므로 야간에는 맹인이 되는 귀축영미가 우리를 먼저 보지 못할 것'''이라는 근거도 없는 인종론적 논리로 전파탐신 장비의 연구 개발을 반대한 일도 있다고 한다.
물론 전파도 탐지가 되므로 적 세력 직전에서 전파를 쏴대는 짓을 하면 역탐지의 우려나 적어도 적함이 왔다고 광고하는 상황이 생겨 문제가 생기긴 한다. 전자전이 발전한 현대에는 이 문제 때문에 레이더의 전파를 역추적해서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거나, 아예 레이더 자체를 추적, 공격하는 전술 및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수뢰전대 따위로 야간 뇌격전이나 야간 근접전을 노리던 일본군 해군에는 확실히 우려할만한 상황이었던 셈. 하지만 적어도 무조건 위치가 파악된다고 봐야 하는 육상기지나 상대적으로 원거리 포격력과 높은 피탐지율을 가지는 전함 같은 대형함선에는 역탐지 가능성을 감수해서라도 충분히 달 가치가, 아니 무조건 달아야 했다. 전함이란 핵탄두와 탄도 미사일이 개발되기 전까지 각국이 보유한 가장 강한 원거리 타격병기이자 전략 무기였다. 그런만큼 전선에 모습이 드러나면 적국의 최중요 타겟으로 지정되는 함선이다. 그리고 전파 역탐지 문제가 가시화될 정도의 거리라면 그냥 레이더를 잠시 안 쓰면 된다는 아주 편리한 해결책이 있었다. 게다가 중요한 모순점이 또 하나 있다. 일본군은 전파 역탐지가 우려 된다면서, 정작 야간전에서 탐조등으로 대놓고 함대 위치를 노출시키며 닥돌하던 놈들이다. 실제로 과달카날에서 야간전 당시 이랬다가 전함 한 척 그냥 말아먹었다. 상황에 따라서 이런 가시광선을 통한 노출은 전파 역탐지보다 더욱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데 정작 이 부분은 고려하지 않았다. 야기 박사와 우다 박사가 일본 대신 연합군에 전파 기술을 바쳤던 이유도 당시 일본군의 이렇게 이상한 논리 때문이다.
반면 연합국은 이 기술의 진가를 일찍이 알아보았다. 이 기술을 통해 고성능 레이더를 만들 수 있었고 결국 일본에 궤멸을 가져오게 된다. 만약 기술유출이라도 막았다면 할 수도 있는데 애초 처음 서술했듯이 영국 유학 중에 만든 것이다. 게다가 특허출원까지 했는데 뭔 수로 공개를 막을 수 있을까. 이것에 관해서 1942년,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점령한 후 영국군의 레이더 관련 서류를 입수하는데, 일본군 조사관이 당시 레이더 조작병이었던 레먼 부사관에게 이 노트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묻자 레먼 하사관은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가? 야기가 이 안테나를 발명한 일본인이라는데 당신 나라 사람이지 않은가?'''하는 말을 하고 이 말을 듣고서야 자신들을 고민에 빠트린 적의 기술이 사실은 자국민의 손에 개발되었다는 것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2]
3.1. 뒤늦게 만든 레이더
어찌됐든 자신들의 실수를 뒤늦게 알아차린 일본은 야기 우다 안테나를 응용한 레이더 개발을 착수했으나 이미 전세는 기울어 있었다. 한마디로 뒷북인 셈이다.
그리고 만들어낸 레이더마저도 연합군 입장에서 볼 때 장난감이 따로 없을 정도로 기술이 엉망이었고 레이더가 돌아가면서 적이 어느 위치에 있는 지 보여주는 PPI 스코프 같은 장비는 끝까지 개발하지 못했고, 기껏해야 어느 각도에 뭐가 있다 정도만 알 수 있는 정도만 발휘했다. 제품 개발이란게 하루아침에 뚝딱하고 되는 것이 아니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게다가 야기-우다 안테나는 성능이 매우 우수한 대신 특정 방향에서 수신률이 강력한 지향성 안테나인 관계로 레이더에 응용하려면 추가 보완장치의 기술개발이 필요했다. 애당초 민간용으로 개발된 기술이었고. 결론은 일본군의 응용능력 부족.
3.2. 야기에게 뒤늦게 훈장을 내렸지만
야기와 우다는 일본을 위해 기술을 개발했지만 일본은 이것을 무시하였고 정작 연합국 측에서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결과적으로 일본 패망의 원인이 돼 버렸다는 것이 알려져서 전후에도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야기가 전쟁 전에 계속해서 군부에 야기 우다 안테나의 보급과 레이더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던 것을 생각하면 전파기술 유출로 인한 일본군의 패망은 오히려 이들이 만든 기술을 내친 일본군이 자초한 결과라 봐야 한다. 때문에 야기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서야 일본정부가 문화 훈장을 수여했을 때 기뻐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뭐병 식으로 투덜대기만 했다고 전해진다.#
4. 결론
전문기술의 위험성과 필요성을 무시한 결과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일본이 기술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전파기술에 관해서 무식했을 뿐이다. 충분히 그 기술이 나왔으면 활용할 방안이 있었음에도 그걸 무시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일본군/무기체계''' 항목에서 좀더 자세한 내막을 볼 수가 있는데 완전 막장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