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니(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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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야니의 이미지. 데뷔 초부터 여지껏 유지해오던 짙은 콧수염과 긴 곱슬머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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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th of Touch 앨범재킷을 장식한 사진. 2000년대 후반 들어 면도를 해서 그런지 이미지가 상당히 달라졌지만, 지금은 다시 수염과 머리를 예전처럼 기르고 있다.[1]
Yanni
본명은 얀니스 흐리소말리스(Γιάννης Χρυσομάλλης/Yiannis Hrysomallis).
그리스 태생의 미국 작곡가·신디사이저 연주자. 평론가들은 주로 뉴에이지 계열의 음악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야니 본인은 특정한 말로 자신의 장르를 규정짓는 것을 꺼려해서, 굳이 분류하려면 '''현대 기악'''(contemporary instrumental music)이라고 불러달라고 하고 있다.[2] 실제 그의 음악은 록 음악 비슷한 비트가 깔려 있기도 하고 관현악에서부터 재즈, 월드뮤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르를 섭렵하고 있다. 각 음악마다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고 있으며 한 음악에 여러 가지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도. 그의 음반 중 Dare to Dream과 In My Time은 그래미상 노미네이션을 받기도 했으며, 국악인 유태평양은 유학 당시 야니의 콘서트 영상에서 각국의 전통 악기들을 모아 다채로운 소리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매료되었다는 소감을 라디오 방송에서 밝히기도 했다.
칼라마타라는 소도시에서 태어났고, 유년기에는 수영 선수로 활약하며 자유형 종목에서 그리스 신기록을 세웠다. 1973년에 미국으로 이주해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직업 상담소에서 일하다가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카멜레온(Chameleon)이라는 밴드에서 키보드 파트를 맡았고, 이 때 만난 드러머 찰리 애덤스와 지금까지도 함께 연주를 하고 있다. 이때의 모습이 구글 이미지나 다큐멘터리 영상에 간혹 나올 때가 있는데 검은 가죽 점퍼 차림으로 로큰롤 기가 가득한 야니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3] 야니가 카멜레온 시절에 다루었던 음악과 가장 비슷한 색채는 역시 시기적으로 가장 가까운 데뷔 음반인 Optimystique에 수록되어 있지만, 이후 Chameleon Days라는 앨범을 통해서도 조금씩 나타난다.
1984년에 첫 솔로 앨범 'Optimystique'를 애틀랜틱에서 발매했고, 2년 뒤에는 프라이빗 뮤직으로 소속사를 옮겨 'Keys to Imagination'[4] 을 발매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거점을 옮긴 지 10여 년 만인 1993년에 고향 그리스로 돌아와서 공연을 했는데, 이 때 아테네의 유적지인 헤로데스 아티쿠스 원형극장[5] 에서 가진 공연을 녹음/녹화한 실황 앨범 Live at the Acropolis[6] 가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1997년에는 소속사를 EMI 산하의 버진 레코드로 옮겼고, 같은 해 인도의 타지마할과 중국의 자금성에서 공연한 실황을 담은 'Tribute'를 내놓아 화제가 되었다. 이 공연은 인도의 독립 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기도 했는데, 이 공연을 위해 인도 현지에서는 타지마할에서의 공연 허가를 놓고 논쟁이 오갔으며 결국 간신히 허가된 이후에는 대규모 공사 끝에 특별 무대까지 설치된다. 자금성에서의 공연은 그 곳에서 최초로 열린 서양인 공연이기도 하다.[7] 2008년에는 프로듀서 릭 웨이크와 공동으로 야니 웨이크라는 독립 레이블을 출범시켰고, 이후 제작되고 있는 모든 앨범들은 여기서 나오고 있다.
1989년부터 1998년까지는 Dynasty로 유명한 여배우 린다 에반스(Linda Evans)와 교제하기도 했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얻은 음악적인 영감, 정신적인 위안, 헌신 등은 자서전에서 부모님에게서 얻은 영향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비중으로 설명된다.
2018년에는 4월부터 8월까지 미국과 캐나다의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는데, Live at the Acropolis 25주년 기념 콘서트 투어다.
같은 음악이라도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감상이나 해석을 즐기는 쪽을 선호했기 때문에, 당초에는 음악에 가사나 보컬을 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심경에 변화가 생겼는지 보컬이 들어간 신곡도 많이 발표되고 기존에 발표되었던 Almost a Whisper 등의 곡에 가사를 붙여 새로 발표하는 경우도 생겼다. Yanni Voices와 Inspirato가 대표적.
좌우로 키보드 여러 대를 세팅해 놓고 양손으로 동시에 연주하는 뉴트럴 포즈(...)가 트레이드 마크이지만, 2017년에는 색다른 시도로서 그랜드 피아노 한 대만으로 기존의 곡들을 심플하게 연주하는 Pure Yanni 투어도 진행했다. 그리고 1997년의 Tribute 투어 이후로는 한동안 휴식기를 가지다가 2000년 If I Could Tell You와 Ethnicity 앨범으로 복귀하면서부터는 그때그때 악단을 초청하지 않고 개인이 직접 다양한 악기과 국적으로 구성된 연주자들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꾸리고 있다. 사실 야니가 Acropolis 공연이나 Tribute 투어가 하도 유명하다 보니 풀 오케스트라를 대동한 이미지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더 오래 전인 1990년대 초반까지 투어 때에는 소수 멤버들 위주로 밴드를 운영했으니 결국에는 축소라기보다는 원점으로 회귀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특정 멤버들은 잘 바뀌지 않고 공연 때마다 빼놓지 않고 출연하기 때문에[8] 친숙한 그들의 면면을 확인하는 것 역시 공연 감상의 포인트. 2016년 가을에는 아예 팬서비스 개념으로 유튜브 전용 계정에 Master Class라는 이름으로 현 시점의 밴드 멤버 한 사람씩을 소개하는 코너를 연재(?)했다. 댓글창에는 계약 기간이 끝난 관계로 밴드를 떠난 추억의 옛 크루들을 보고 싶다는 성원이 쏟아지는 중.
현 멤버들 중 최고참 중의 왕고참(...) 찰리와 함께 한 Master Class.
한국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TV와 라디오를 아우르며 광고라든지 캐릭터 주제곡, BGM, 지상파의 시그널 음악 등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Santorini와 Reflections of Passion[9] , Once Upon a time(현대 엑센트 광고, KBS 2FM 《음악앨범》 오프닝), 그리고 운지천 광고에 쓰인 Standing in Motion이 유명하다.[10] Someday역시 캠페인 등에 수 없이 등장하는 곡이다. MBC 뉴스데스크/시보에도 North Shore of Matsushima, After the Sunrise, Santorini 등의 웅장한 곡들이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또 야니 본인이 스포츠 선수로서의 이력이 있는 만큼 수 많은 곡들이 올림픽 개회식 선수단 입장 시 BGM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러 음반 중에서도 Live at the Acropolis에 나온 관현악 버전의 음악과 그것의 원곡에 해당하는 이전 앨범의 곡들이 많이 활용되는 편.
히트곡 중에 4/4박자에서 벗어난 혼합박자가 유독 많은 편이다. 특히 7/8박자는 데뷔 초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사용하고 있으며(Santorini, Keys to Imagination, Marching Season, Within Attraction, Walts in 7/8, A Walk in the Rain), 5/8박자(Nostalgia), 심지어 3/2/2/2 양식의 9/8박자(A Love for Life)까지. 데뷔 앨범 Optimystique에서는 아예 한 곡 안에서 수시로 박자를 현란하게 바꾸는 실험적인 만행(...)을 보이기도 했다.
Yanni in Words 제1장에 따르면 데뷔 직후에는 Yianni라는 철자로 활동했었으나 i를 빼어도 어차피 발음이 똑같고 철자가 간략해져 보기에도 낫지 않느냐는 제안에 따라 현재의 Yanni가 되었다. 또한 Yianni는 영어로 치면 John에 해당하는 이름이며 그의 조부 역시 같은 이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흐리소말리스(그리스어로 '금발(golden hair)')라는 성처럼 조부는 금발벽안이었다고. 참고로 어머니의 이름이자 그의 곡 이름이기도 한 '펠리짜'(Felitsa) 는 Τριάντα φελίτσια(트리안다 펠리찌아)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뜻은 30개의 데이지꽃(daisy).
국외 공연을 할 때마다 그 나라 말을 [11] 몇 마디씩 익혀서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2003년 Yanni in Words라는 자서전을 냈으며(국내 미발간), 1995년 3월 세종문화회관 콘서트에 이어 2011년 10월 14일 올림픽공원에서 내한 공연을 가졌다. 2018년 10월 17일에는 아크로폴리스 라이브 25주년 기념 투어의 일환으로 올림픽공원에서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공연 준비 중 부상을 당해 공연이 잠정 연기되었다.
콘서트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드러머 찰리 애덤스는 2010년도 무렵부터 팬 서비스 차원에서 콘서트가 열리는 국가나 지역에 맞춘 축구 유니폼을 입고 오는데, 야니가 한번은 '만일 찰리 네가 티셔츠를 실수로 잘못 입고 오는 날엔 우린 전부 죽은 목숨이야(We're dead)'라고 면박을 줬다고(...)[12]
절대음감의 소유자. 1995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을 때, 본인이 직접 밝혔다. 정규로 음악교육을 받지는 않았기 때문에 악보를 볼 줄 모른다고 하며, 이 때문에 악상이 떠올랐을 때 기록할 만한 자기만의 표기법을 만들었다. 그리스 문자 등을 기초로 만들었다고 하며 자서전에 그렇게 기록한 악보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공식 유튜브 계정에서 미공개 실황 영상을 From the Vault라는 시리즈로 올리고 있는데, 그 중 Never Too Late라는 곡의 에스닉한 남성 보컬의 정체가 사실 야니였다는 것이 드러나자마자 댓글창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무리 오디션을 거쳐도 적합한 보컬이 안 나와서 결국에는 시간도 없고 본인이 하게 됐다고 하는데, 야니의 콘서트 현장 멘트에 따르면 그가 막 마이크를 전달받았을 때 앞자리 관객의 벙찐 표정이 '''"이 사람, 설마 지금 노래하려는 거야?"''' 하는 것 같았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야니의 이미지. 데뷔 초부터 여지껏 유지해오던 짙은 콧수염과 긴 곱슬머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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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th of Touch 앨범재킷을 장식한 사진. 2000년대 후반 들어 면도를 해서 그런지 이미지가 상당히 달라졌지만, 지금은 다시 수염과 머리를 예전처럼 기르고 있다.[1]
1. 개요
Yanni
본명은 얀니스 흐리소말리스(Γιάννης Χρυσομάλλης/Yiannis Hrysomallis).
그리스 태생의 미국 작곡가·신디사이저 연주자. 평론가들은 주로 뉴에이지 계열의 음악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야니 본인은 특정한 말로 자신의 장르를 규정짓는 것을 꺼려해서, 굳이 분류하려면 '''현대 기악'''(contemporary instrumental music)이라고 불러달라고 하고 있다.[2] 실제 그의 음악은 록 음악 비슷한 비트가 깔려 있기도 하고 관현악에서부터 재즈, 월드뮤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르를 섭렵하고 있다. 각 음악마다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고 있으며 한 음악에 여러 가지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도. 그의 음반 중 Dare to Dream과 In My Time은 그래미상 노미네이션을 받기도 했으며, 국악인 유태평양은 유학 당시 야니의 콘서트 영상에서 각국의 전통 악기들을 모아 다채로운 소리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매료되었다는 소감을 라디오 방송에서 밝히기도 했다.
2. 생애
칼라마타라는 소도시에서 태어났고, 유년기에는 수영 선수로 활약하며 자유형 종목에서 그리스 신기록을 세웠다. 1973년에 미국으로 이주해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직업 상담소에서 일하다가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카멜레온(Chameleon)이라는 밴드에서 키보드 파트를 맡았고, 이 때 만난 드러머 찰리 애덤스와 지금까지도 함께 연주를 하고 있다. 이때의 모습이 구글 이미지나 다큐멘터리 영상에 간혹 나올 때가 있는데 검은 가죽 점퍼 차림으로 로큰롤 기가 가득한 야니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3] 야니가 카멜레온 시절에 다루었던 음악과 가장 비슷한 색채는 역시 시기적으로 가장 가까운 데뷔 음반인 Optimystique에 수록되어 있지만, 이후 Chameleon Days라는 앨범을 통해서도 조금씩 나타난다.
1984년에 첫 솔로 앨범 'Optimystique'를 애틀랜틱에서 발매했고, 2년 뒤에는 프라이빗 뮤직으로 소속사를 옮겨 'Keys to Imagination'[4] 을 발매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거점을 옮긴 지 10여 년 만인 1993년에 고향 그리스로 돌아와서 공연을 했는데, 이 때 아테네의 유적지인 헤로데스 아티쿠스 원형극장[5] 에서 가진 공연을 녹음/녹화한 실황 앨범 Live at the Acropolis[6] 가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1997년에는 소속사를 EMI 산하의 버진 레코드로 옮겼고, 같은 해 인도의 타지마할과 중국의 자금성에서 공연한 실황을 담은 'Tribute'를 내놓아 화제가 되었다. 이 공연은 인도의 독립 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기도 했는데, 이 공연을 위해 인도 현지에서는 타지마할에서의 공연 허가를 놓고 논쟁이 오갔으며 결국 간신히 허가된 이후에는 대규모 공사 끝에 특별 무대까지 설치된다. 자금성에서의 공연은 그 곳에서 최초로 열린 서양인 공연이기도 하다.[7] 2008년에는 프로듀서 릭 웨이크와 공동으로 야니 웨이크라는 독립 레이블을 출범시켰고, 이후 제작되고 있는 모든 앨범들은 여기서 나오고 있다.
1989년부터 1998년까지는 Dynasty로 유명한 여배우 린다 에반스(Linda Evans)와 교제하기도 했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얻은 음악적인 영감, 정신적인 위안, 헌신 등은 자서전에서 부모님에게서 얻은 영향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비중으로 설명된다.
2018년에는 4월부터 8월까지 미국과 캐나다의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는데, Live at the Acropolis 25주년 기념 콘서트 투어다.
3. 음악적 성향
같은 음악이라도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감상이나 해석을 즐기는 쪽을 선호했기 때문에, 당초에는 음악에 가사나 보컬을 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심경에 변화가 생겼는지 보컬이 들어간 신곡도 많이 발표되고 기존에 발표되었던 Almost a Whisper 등의 곡에 가사를 붙여 새로 발표하는 경우도 생겼다. Yanni Voices와 Inspirato가 대표적.
좌우로 키보드 여러 대를 세팅해 놓고 양손으로 동시에 연주하는 뉴트럴 포즈(...)가 트레이드 마크이지만, 2017년에는 색다른 시도로서 그랜드 피아노 한 대만으로 기존의 곡들을 심플하게 연주하는 Pure Yanni 투어도 진행했다. 그리고 1997년의 Tribute 투어 이후로는 한동안 휴식기를 가지다가 2000년 If I Could Tell You와 Ethnicity 앨범으로 복귀하면서부터는 그때그때 악단을 초청하지 않고 개인이 직접 다양한 악기과 국적으로 구성된 연주자들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꾸리고 있다. 사실 야니가 Acropolis 공연이나 Tribute 투어가 하도 유명하다 보니 풀 오케스트라를 대동한 이미지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더 오래 전인 1990년대 초반까지 투어 때에는 소수 멤버들 위주로 밴드를 운영했으니 결국에는 축소라기보다는 원점으로 회귀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특정 멤버들은 잘 바뀌지 않고 공연 때마다 빼놓지 않고 출연하기 때문에[8] 친숙한 그들의 면면을 확인하는 것 역시 공연 감상의 포인트. 2016년 가을에는 아예 팬서비스 개념으로 유튜브 전용 계정에 Master Class라는 이름으로 현 시점의 밴드 멤버 한 사람씩을 소개하는 코너를 연재(?)했다. 댓글창에는 계약 기간이 끝난 관계로 밴드를 떠난 추억의 옛 크루들을 보고 싶다는 성원이 쏟아지는 중.
현 멤버들 중 최고참 중의 왕고참(...) 찰리와 함께 한 Master Class.
한국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TV와 라디오를 아우르며 광고라든지 캐릭터 주제곡, BGM, 지상파의 시그널 음악 등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Santorini와 Reflections of Passion[9] , Once Upon a time(현대 엑센트 광고, KBS 2FM 《음악앨범》 오프닝), 그리고 운지천 광고에 쓰인 Standing in Motion이 유명하다.[10] Someday역시 캠페인 등에 수 없이 등장하는 곡이다. MBC 뉴스데스크/시보에도 North Shore of Matsushima, After the Sunrise, Santorini 등의 웅장한 곡들이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또 야니 본인이 스포츠 선수로서의 이력이 있는 만큼 수 많은 곡들이 올림픽 개회식 선수단 입장 시 BGM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러 음반 중에서도 Live at the Acropolis에 나온 관현악 버전의 음악과 그것의 원곡에 해당하는 이전 앨범의 곡들이 많이 활용되는 편.
히트곡 중에 4/4박자에서 벗어난 혼합박자가 유독 많은 편이다. 특히 7/8박자는 데뷔 초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사용하고 있으며(Santorini, Keys to Imagination, Marching Season, Within Attraction, Walts in 7/8, A Walk in the Rain), 5/8박자(Nostalgia), 심지어 3/2/2/2 양식의 9/8박자(A Love for Life)까지. 데뷔 앨범 Optimystique에서는 아예 한 곡 안에서 수시로 박자를 현란하게 바꾸는 실험적인 만행(...)을 보이기도 했다.
4. 기타 사항
Yanni in Words 제1장에 따르면 데뷔 직후에는 Yianni라는 철자로 활동했었으나 i를 빼어도 어차피 발음이 똑같고 철자가 간략해져 보기에도 낫지 않느냐는 제안에 따라 현재의 Yanni가 되었다. 또한 Yianni는 영어로 치면 John에 해당하는 이름이며 그의 조부 역시 같은 이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흐리소말리스(그리스어로 '금발(golden hair)')라는 성처럼 조부는 금발벽안이었다고. 참고로 어머니의 이름이자 그의 곡 이름이기도 한 '펠리짜'(Felitsa) 는 Τριάντα φελίτσια(트리안다 펠리찌아)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뜻은 30개의 데이지꽃(daisy).
국외 공연을 할 때마다 그 나라 말을 [11] 몇 마디씩 익혀서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2003년 Yanni in Words라는 자서전을 냈으며(국내 미발간), 1995년 3월 세종문화회관 콘서트에 이어 2011년 10월 14일 올림픽공원에서 내한 공연을 가졌다. 2018년 10월 17일에는 아크로폴리스 라이브 25주년 기념 투어의 일환으로 올림픽공원에서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공연 준비 중 부상을 당해 공연이 잠정 연기되었다.
콘서트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드러머 찰리 애덤스는 2010년도 무렵부터 팬 서비스 차원에서 콘서트가 열리는 국가나 지역에 맞춘 축구 유니폼을 입고 오는데, 야니가 한번은 '만일 찰리 네가 티셔츠를 실수로 잘못 입고 오는 날엔 우린 전부 죽은 목숨이야(We're dead)'라고 면박을 줬다고(...)[12]
절대음감의 소유자. 1995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을 때, 본인이 직접 밝혔다. 정규로 음악교육을 받지는 않았기 때문에 악보를 볼 줄 모른다고 하며, 이 때문에 악상이 떠올랐을 때 기록할 만한 자기만의 표기법을 만들었다. 그리스 문자 등을 기초로 만들었다고 하며 자서전에 그렇게 기록한 악보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공식 유튜브 계정에서 미공개 실황 영상을 From the Vault라는 시리즈로 올리고 있는데, 그 중 Never Too Late라는 곡의 에스닉한 남성 보컬의 정체가 사실 야니였다는 것이 드러나자마자 댓글창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무리 오디션을 거쳐도 적합한 보컬이 안 나와서 결국에는 시간도 없고 본인이 하게 됐다고 하는데, 야니의 콘서트 현장 멘트에 따르면 그가 막 마이크를 전달받았을 때 앞자리 관객의 벙찐 표정이 '''"이 사람, 설마 지금 노래하려는 거야?"''' 하는 것 같았다고(....).
5. 어록
"Everything great that has ever happened to humanity since the beginning, has begun as a single thought in someone's mind.
And if anyone of us is capable of such a great thought, then all of us have the same capacity, capability.
Because we are all the same."
"인류에게 일어난 모든 위대한 일은 한 사람의 작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우리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똑같으니까요." - 1993년 아크로폴리스 콘서트에서[13]
6. 음반
6.1. 스튜디오 음반
6.2. 라이브 앨범
6.3. 사운드 트랙
6.4. 컴필레이션
[1] 유튜브 등지에서는 그의 최근 음악이 마음에 안 들 때면 '콧수염을 돌려줘'(...) 하는 반응을 보인다. 콧수염과 함께 창의적인 사운드가 날아가 버렸다는 풍자.[2] 이루마나 반젤리스, 조지 윈스턴 같은 유명 뉴에이지 음악가들도 마찬가지. 뉴에이지라는 용어가 종교적으로 민감한 용어라서... 잘 모르고 뉴에이지라고 말하면 당사자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윈스턴은 내한공연을 여러 차례 가졌는데, 한 번은 인터뷰 하러 와서는 뉴에이지가 뭐 이렇고 저렇고 꼬치꼬치 토를 달던 조선일보 기자에게 굉장히 짜증을 내면서 '한 번만 더 뉴에이지 뭐라고 운운하면 인터뷰 안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데꿀멍시킨 적도 있다.[3] 자서전에 따르면 젊었을 땐 자기가 생각해도 좀 와일드한 면모가 강했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부드러운 면이 더 강해졌다고. 한편 이때 그의 단짝 찰리 애덤스는 앉은 자리가 통째로 상하좌우 어지럽게 회전하는 와중에 맹렬하게 드럼을 연주하는 revolving drums로 알려져 있었다. Marching Season에서의 그 스태미나는 괜히 나온 것이 아닌 모양(...).[4] 자서전 Yanni in Words에 따르면 마침 메인곡의 제목도 Keys to Imagination이었고,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이 키보드(keyboard) 중심으로 연주되었기 때문에 중의적인 의미로서 딱 좋다고 생각했다고.[5] 파르테논 신전 인근에 위치. 20세기에 들어와 객석이 복원되어 공연이 가능하게 되었다.[6] 참고로 이 앨범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뮤직비디오다. 첫 번째는 모두가 짐작하는 이것.[7] Tribute DVD 특전 'No Borders, No Boundaries' 참조.[8] 특히 카멜레온 밴드 시절부터 함께 해온 드러머 찰리 애덤스는 말할 것도 없고, 베네수엘라 출신의 플루티스트 페드로 에우스타체(Pedro Eustache), 첼리스트 세라 오브라이언(Sarah O'Brien) 등은 거의 레귤러 멤버 급이다.[9] 1990년대부터 한국에서도 종종 방송 브금으로 쓰여왔고 2015년부터는 국가직 공무원 시험장(5급행정 공채 포함) 안내방송 브금으로도 쓰이고 있다.[10] 사실 이 곡은 인트로만 긴장감 넘칠 뿐 메인 멜로디는 그야말로 희망차고 아름다운 곡이다. 인트로 때문에 많이 묻히는 곡(...)[11] 2011년 내한공연 때는 '''"감사합니다"''', '''"한국에 와서 행복합니다"'''라는 말을 외우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고 한다(...)[12] 2011년 내한공연 당시 멘트. 확실히 만약에 내한공연 때 일본 유니폼을 입고 왔더라면(...)[13] El Morro 라이브 등 이후 공연에서도 가끔 클로징 멘트로 활용되며, 2011년 내한공연에서도 이 말을 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14] 첫 앨범은 워너 뮤직 계열의 Atlantic에서 출시, 이후 1989년에 BMG에서 재출시된다.[15] 이 앨범부터 아크로폴리스 라이브 앨범까지는 현재 소니 뮤직에 흡수된 BMG에서 출시한다.[16] 2018년에 25주년 기념으로 보너스 트랙과 공연실황 DVD와 BD가 포함된 앨범이 출시되었다.[17] Tribute에서 Ethnicity 까지는 EMI 계열 음반사에서 출시했다.[18] 스페인어판으로 Yanni Voces가 있다.[19] 인도 타지마할과 중국 자금성에서의 라이브 공연을 담았으며, 국내에 수입된 DVD는 무려 한국어 자막까지 지원한다. 다음 앨범인 If i could tell you 프리뷰, 야니와의 인터뷰, 라이브 공연 중 야니의 발언에 대한 한국어 자막을 지원한다.[20] 공연 중에 국제우주정거장의 우주인 스콧 켈리(Scott Kelly)로부터 축하메시지를 받는 트랙이 실려있으며 공연 실황 중에도 영상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