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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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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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서 본 모습.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야무나 강 바로 옆에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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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국어
타지마할
영어
Taj Mahal
프랑스어
Le Taj Mahal
국가·위치
인도 아그라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83년
등재기준
(i)[1]
지정번호
252

어느 날 흘러내린 눈물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맑고 투명하게 흐르리라.

그것이 타지마할이라네.

오, 황제여! 그대는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으로

시간에 마술을 걸려 하였다네.

그대는 경이로운 꽃다발을 짜서

우아하지 않은 주검을 죽음을 모르는 우아함으로 덮어버렸다네.

무덤은 자기 속으로 파묻고 뿌리내리어

먼지로부터 일어나 기억의 외투로

죽음을 부드럽게 덮어주려 한다네.

- 타지마할,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

Taj Mahal
1. 개요
2. 위대함의 이유
3. 건설 배경
3.1. 애처가 황제
3.2. 대역사와 몰락
4. 여담
5.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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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재 인도 아그라에 소재한 일종의 대영묘다. 인도의 대표적 랜드마크이며 인도 건축 예술의 위대한 유산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히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건축 책임자는 페르시아 출신의 Ahmad Lahori 로 알려져 있다.

2. 위대함의 이유


물론, 단순히 규모라든가 들이부은 예산 측면에서는 다른 건축물도 대단한 것이 많지만, 이처럼 완벽한 비율과 좌우대칭으로 보여지는 조형미, 주변 경관과의 배치, 빛이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외관과 어우러져 해가 뜨고 짐에 따라 그 자태가 변하는 건축물은 흔치 않다. 무엇보다 오늘날 보기에도 감탄만 나오는 이런 건축물이 17세기 당시 기술로 22년만에 완공되었다는 것은 그저 경이로울 따름. 더군다나 이 모든 것이 단지 한 황제의 순애보적 집념만으로 그 당대에 착공하여 완성까지 봤다는 점에서 비하인드 에피소드 역시 누누이 회자되는 건물이기도 하다.
특히 다른 거대 유적에서 느껴지는 중압감이나 화사함과는 거리가 먼 정갈미가 이 건물이 진정 칭송받는 이유다. 오히려 잡스런 기교보다는 비례를 중시한 담백미 때문에 절대적인 아름다움으로 회자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세속인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텃세 강한 다른 유적지들과 달리, 타지마할은 지금도 전세계에서 방문하는 무수한 방문객들이 발을 들여놓는 열린 공간이기도 하다.
다만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안쪽은 그다지 볼 것이 없다. 특히, 타지마할은 많은 매체를 통해 소개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가봐도 감동보다는 어디서 본 듯한 느낌에 빠질 수 있다. 너무 큰 기대를 하고 가면 오히려 실망할 수도 있으니 심사숙고하는 것이 좋다.

3. 건설 배경



3.1. 애처가 황제


타지마할의 건설을 주도한 샤 자한은 17세기 초 재위한 무굴 제국의 5대 황제로, 당시 제국의 국력은 악바르 대제자한기르의 치세를 거치며 가히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선대들에 비해 샤 자한은 정복보다 예술을 애호하는 문화 군주로서의 측면이 강했고 또한 종교적으로도 대단히 관용적이었다.[2] 그의 치세 중에 제국은 번영과 안정을 누렸고, 반란은 속속 진압되었으며 시민들은 평화를 영위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의 아내가 죽기 전까지는.
무지막지한 애처가이기도 했던 샤 자한은 그가 털끝만큼의 오점도 없다[3]고 형용한 황후 뭄타즈 마할이 일찍 세상을 떠나버리자,[4] 큰 비통에 잠겼다. 그리고 그로 인한 실의를 장엄하기 짝이 없는 묘역을 조성함으로써 해소하고자 했다. 그는 곧장 제국 전역에서 막대한 세금과 인력을 징발해 당시까지 쌓아올려진 인도 건축 예술의 포텐셜을 한데 집중하도록 지시했는데, 이것이 바로 타지마할의 건축 배경이다.

3.2. 대역사와 몰락


제국의 수도 아그라에 타지마할이 축조된 22년 동안, 페르시아, 이탈리아, 프랑스등에서 기술자와 장인들을 초빙했고, 이웃한 미얀마는 물론이고 멀리 중국오스만 제국, 이집트에서까지 온갖 건축자재가 수송되었다.[5] 제국의 재정 상태가 휘청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이 건물은 실용성은 전혀 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예술 건축물이었다. 오늘날이야 관광객이 몰려들어 수입을 내고 있을 뿐, 당시로서는 생산성이 전혀 없는 건물을 위해 제국의 국력이 소진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백성들은 이거 짓고 유지비 댄다고 죽어났다. 신하들도 보다못해 반대했지만 샤 자한은 그런 신하들을 힘으로 억눌러버리고 강행했다.
만약 그가 완공을 보지 못하고 일찍 사망했다면 중도에 폐건물 꼴로 남아버렸을 가능성도 높지만, 다행이랄지 어떨지 그는 22년의 준공기간 내내 재위했음은 물론이고 완공된 1648년에서 10년이나 더 오래 재위한 장수 군주였다. 아마 폐위되지 않았으면 더더욱 오래 재위했겠지만, 끝내 후레자식인 아들 아우랑제브[6]가 그를 왕좌에서 끌어내려 아그라 요새 탑에 가두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타지마할의 무리한 축조 탓에 세금을 각출당한 시민의 불만도 굉장했던 터이니 자업자득적 측면도 없지는 않았다. 특히 샤 자한은 정사에도 무관심한 암군이 되었던 터라 폐위당했을때 무굴 제국에서는 폐위에 불만을 품은 반란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아우랑제브 뿐만 아니라 다른 자식들도 암군이 된 아버지에게 진절머리가 난 터라 굳이 아우랑제브가 아니더라도 다른 자식들에게 폐위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탑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자신의 위대한 건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1666년 겨울까지 갇혀있다 죽었다.
아우랑제브는 죽은 아버지의 장례조차 제대로 치뤄주지 않은[7] 후레자식[8]이었지만, 샤 자한의 유해는 뭄타즈 마할과 마찬가지로 타지마할에 공동 안장하였다. 이후 아그라 요새 지하에서 타지마할과 연결되는 통로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최소한의 배려였다는 설이 있다.
사실 샤 자한은 자신의 묘역으로 기존 타지마할과 대조되는 색채의 검은 타지마할을 따로 축조할 계획도 있었으며 심지어 이게 실각당한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검은 타지마할을 계획했다는 것은 야사에 불과하다. 히스토리 채널에서도 타지마할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제법 진지하게 다루기도 했는데, 결과는 검은 타지마할보다는 거대 연못 쪽에 더 무게를 두었다. 이 검은 타지마할 설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그냥 전설로 치부한다. 1665년에 장 바티스트 타베르니에르(Jean Baptiste Tavernier)라는 유럽 여행가가 아그라를 방문하고서 자신의 소설에 검은 타지마할이라는 것을 꾸며넣은 것이 전설의 시초가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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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샤 자한이 여기 합장될 계획이 아니었기 때문에 타지마할에서 유일하게 좌우대칭이 아닌 곳이 석관이 안치된 곳이라고 한다. 위 사진의 가운데에 있는 것이 뭄타즈 마할의 석관이고, 그 왼쪽에 있는 것은 샤 자한의 석관이다. 둘의 유해는 저 석관 속이 아니라 관대 아래층 지하에 묻혔다.

4. 여담


위키백과에 따르면 당시 3200만 루피가 건축비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2015년 시세로 환산해보면 8억 2700만 달러 (우리돈으로 약 9400억) 라고 한다. 참고로 전시대 오스만 제국 출신의 이슬람 건축사의 거장인 미마르 시난의 제자들인 메흐메트 이사 에펜디와 메흐메트 이스마일 에펜디가 설계와 건축에 상당한 관여를 했다.
성 바실리 성당과 비슷하게 이 위대한 건축물을 설계한 설계자들도 눈을 뽑혔다는 둥, 인부들의 손목을 잘라버렸다는 둥의 이야기가 돌아다니지만 확실한 이야기가 아닌 ~카더라 이야기이며 황제를 폐위시킨 것에 대한 정당성으로 조작한 기록일 가능성도 있다. 아들인 아우랑제브의 반란을 정당하게 만들고자 성군이 폭군이 되어가서 어쩔 수 없었다던가. 사실 위에 나왔다시피 타지마할 짓느라 제국이 휘청할 정도로 무리했던 걸 생각하면 백성들 입장에서는 이 건축물을 악평해도 할 말이 없다.
세계사의 무굴 제국 파트에서는 다른 건 몰라도 세포이 항쟁과 더불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물론, 사진을 통한 출제 빈도도 매우 높은 편이다. 주로 힌두교 전통 양식+이슬람 건축 양식의 절묘한 조화로 소개된다. 현지를 가보면 사람들이 타지마할을 한 손으로 집어 들어올리는 자세로 사진을 찍는 걸 많이 볼 수 있다.
이게 너무나 위대하고 유명하다보니 암리차르 황금사원, 마하발리푸람과 같은 인도의 다른 유구한 문화유산들이 죄다 묻혀버려서 타지마할 하나만 각인되는 부작용도 낳고 말았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의 불가사의군에도 인도 것은 타지마할 하나만 딸랑 나올 정도다.[9] 이로 인해 타지마할은 인도 전통 건축물 하면 떠오르는 스테레오타입이 되기도 했다. 무굴 제국을 포함한 인도의 이슬람 정복 왕조들을 흑역사로 여기는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에게는 뼈아픈 일. 2007년 확정된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에도 이견 없이 안착하였다. 게다가 보존 상태가 나머지 불가사의 중에서 가장 양호한, 거의 원형에 가까운 상태인 점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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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 까 마끄바라라고 하는 아우랑제브의 첫째 황후 무덤이다. 타지마할의 보급형 버전이다.
참고로 인도에서 가장 입장료가 비싼 곳이기도 하다. 자국인은 천원도 안하는 반면, 외국 관광객은 30배가 넘는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다. 인도 정부에선 타지마할이 있는 곳의 라자[10]에게도 따로 돈을 줘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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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이렇게 되었다. 적 폭격기에게 공격 받지 않으려고 대나무 더미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위장 시켜 놓은 것이다. 이 사진은 아직 위장 과정이 끝나기 전에 찍은 사진으로, 실제로는 타지마할 전체를 위장 시켰다고 한다. 출처
2015년 타지마할 주변의 환경 파괴 등으로 인해 타지마할의 목재 토대가 썩어가고 있어서 길어도 5년 안에 무너질 위험에 처해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타지마할의 내부는 갖은 진귀한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나 모조리 약탈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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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야니가 인도 독립 50주년을 기념해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라이브 콘서트를 열어 흥행에 성공했다. 당시의 실황을 담은 음반은 'Tribute'로, 타지마할 공연 이외에도 자금성 공연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이때 얻은 수익은 타지마할 보존을 위해 기부하기로 했다.
여담으로 인도에도 타지마할이라는 로컬 맥주가 있다. 이름도 타지마할이고 라벨 표지에도 타지마할의 사진이 들어가 있을 정도다.
보이저 호에 실린 골든 레코드에 첨부된 116장의 사진 중 인류의 랜드마크로 만리장성과 함께 수록되었다. 평범한 마을이나 도시의 건물, 풍경도 수록되었지만,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한 건축물 가운데서 골든 레코드에 수록된 것은 만리장성과 타지마할의 사진뿐이다. 타지마할이 선정된 이유는 세계적으로 아름답기로 유명한 건물인 데다가, 신에게 바쳐진 건물이 아니라 사랑에 바쳐진 건물이라 종교적인 논란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라조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노라조는 4집 환골탈태의 수록곡 카레(노래)를 음악방송에서 공연할 때 영상을 다리 밑에서 찍었는데, 타지마할의 기둥과 가장 비슷하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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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도 존재한다. 부품수가 5923개[11]로, 무려 전 레고 4위다.[12]

5. 매체에서의 등장


  •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주인공 자말은 어렸던 유아기에 이곳에서 관광 가이드인 척 행세를 하면서 관광객들의 돈을 뜯었다. 그런데 자신도 아는 것이 없으니까 마구 말을 지어내는데 예를 들어 "교통사고로 죽은 왕비를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게 다 진짜인 줄 알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미국인 관광객들이 개그다. 그 중 어설프게 나마 알고 있던 관광객 하나가 "전 왕비가 아이를 낳다가 죽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라고 의문을 제기하자 자말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그렇습니다.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지요."라고 대답한다.
  • 팡(게임)의 16~18 스테이지의 배경이 타지마할이다.
  • 팀 버튼의 영화 화성침공에서는 화성인들이 타지마할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타지마할을 박살 내는 순간 찰칵! 이다.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물론 자한기르 때부터 틀어지기 시작한 시크교와의 관계는 그가 즉위하고 나서도 개선되지 않았다. 그의 명령으로 지도자가 처형당한 뒤, 시크교도들은 군대를 양성해 저항하기 시작했다.[3] 반란 진압을 위해 샤 자한이 출전하자 따라가 내조하였으며 한번은 전황이 위험해지자 피신시키려는 것을 거부하고 남았을 정도니 이런 소리 들을 만 하다. 사실, 이렇게 원거리를 이동하면서 출산했던 것도 일찍 죽은 요인 중 하나였으리라…[4] 직접적인 요인은 산후조리를 잘못한 것이나 근본적으로는 아이를 너무 많이 낳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덕분에 결혼해서 죽기 전까지 임신하고 애 낳느라 침대에서 벗어날 날이 없었다.[5] 자재를 수송하는 데에만 코끼리가 천여마리 넘게 동원되었다. 코끼리 한 마리가 먹는 양을 생각해보자…[6] 참고로 그는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셋째 아들이었다.[7] 아예 안 치른 것은 아니고 샤 자한이 죽고 나서 큰누나 자하나라 공주가 국장을 성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아우랑제브가 거부하며 간소하게 치루도록 했다.[8] 당시 샤 자한이 아우랑제브에게 보낸 편지가 현재도 남아있다. 편지 내용은 음식은 짜고 물도 부족하고 춥고 옷도 없다고 하소연한 것으로, 이걸 봐도 아버지를 엄청 박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나마 큰딸 자하나라 베굼 사히브 공주가 아버지 곁에서 돌봐줘야 겨우 생활할 수 있었다.[9] 1편부터 5편까지 쭈욱 개근했으며, 2013년 7월에 발매된 문명 5의 확장팩 멋진 신세계에서는 랄 킬라(붉은 요새)가 추가되어 인도 불가사의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2016년 10월에 발매된 문명 6에서는 오히려 마하보디 사원이 먼저 등장, 이후 2018년 2월 발매된 첫 번째 확장팩 흥망성쇠에서야 타지마할이 추가되었다.[10] 힌두어로 영주를 뜻한다. 과거 여러 작은 국가들의 왕손들에게 영주권을 주는 조건으로 인도에서 독립운동을 벌이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문화재나 유물에 대한 관광 수익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도 극과 극이라서 어느 영주는 그야말로 엄청난 부자인 반면, 말이 영주이지 큼직한 성에서 영주가 직접 서빙을 하고(종업원 고용할 여력이 없어서!) 관리하는 이도 있다.자세한 건 카스트 참고.[11] 사진에 있는 2008년에 발매된 초기 버전(10189)은 5922개. 2017년 재발매판(10256)에서 브릭 리무버 1개를 포함해 5923개가 되었다.[12] 1위는 레고 콜로세움(10276번, 9036개), 2위는 밀레니엄 팔콘(75192번, 7541개), 3위는 호그와트 성(71043번, 602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