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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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장의 사진은 실제로 1930년 월드컵 당시 찍힌 사진이다.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 위치한 축구장. 여기서 결승전을 포함한 초대 월드컵의 대부분의 경기가 열렸기 때문에 이곳은 축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일종의 성지 같은 곳이다. 1983년 7월 18일, FIFA에서 세계 곳곳의 유서 깊은 경기장을 선택했는데 당연히 그 중 하나로 뽑혔다.[3]
센테나리오가 구장의 이름이 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이 경기장이 지어진 주목적은 초대 월드컵이었지만 우루과이의 독립과 헌법 제정 100주년을 기념하는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100주년이라는 뜻의 센테나리오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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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의 상징인 이 탑 역시 정확히 100m의 높이로 건설되었다. 동쪽 스탠드에 건설된 이 탑은 우루과이의 독립과 헌법 제정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하나의 상징물이다.
사실 원래는 1930년 월드컵의 모든 경기가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9개월의 공사 기간 도중 몬테비데오에 큰 폭우가 쏟아졌다. 이로 인해 공사가 중단, 연기되었고 월드컵 개막일인 7월 13일까지 공사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결국 이 경기장 외에 에스타디오 포시토스와 에스타디오 파르케 센트랄, 2개의 경기장을 추가로 사용하기로 결정했고 센테나리오 경기장이 실제로 완공된 7월 18일까지 5일 동안은 포시토스와 파르케 센트랄에서 나누어 경기를 치렀다. 그래서 월드컵 개막전이었던 프랑스와 멕시코의 경기는 이곳이 아니라 포시토스 경기장에서 열린 것이다. 센테나리오 경기장에서 치러진 첫 경기는 우루과이와 페루의 경기로 우루과이의 월드컵 데뷔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는 엑토르 카스트로의 골에 힘입어 호스트 우루과이가 1대0으로 승리했다. 이후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 경기장으로 쓰인데다가 우루과이의 월드컵 첫 우승 등 세계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워낙 역사적 가치가 큰 곳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쭉 이곳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은 우루과이에서 아직까지 다시 열리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에도 4번의 코파 아메리카(1942, 1956, 1967, 1995)와 최초의 인터컨티넨탈컵도 개최했다. 1960년. 유로피언 컵을 우승한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우승한 우루과이의 CA 페냐롤이 겨룬 이 시합에서는 레알 마드리드가 1승 1무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 외에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 각종 국제 유소년 대회 결승전 등 수많은 결승전을 개최하였다.
원래는 오랫동안 우루과이의 명문 클럽인 CA 페냐롤과 나시오날의 홈 경기장으로 쓰였다. 하지만 CA 나시오날은 2005년에 에스타디오 파르케 센트랄로 떠났고, 페냐롤은 2014년에 에스타디오 캄페온 델 시글로를 새로 지어 이사하였다. 현재는 우루과이 대표팀의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우루과이 축구 협회에 요청하면 우루과이 내의 어느 축구 클럽이든 이 경기장을 임시로 빌려 쓸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경기장을 빌리는 클럽에서는 페냐롤과 나시오날 양측 구단에 모두 임대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웬만한 축구 경기장들이 다 그렇지만 여기도 콘서트용으로 자주 개조된다. 에릭 클랩튼, 건즈 앤 로지스, 폴 매카트니, 스팅,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리키 마틴, 롤링 스톤즈 등이 여기에서 콘서트를 개최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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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장의 사진은 실제로 1930년 월드컵 당시 찍힌 사진이다.
1. 개요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 위치한 축구장. 여기서 결승전을 포함한 초대 월드컵의 대부분의 경기가 열렸기 때문에 이곳은 축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일종의 성지 같은 곳이다. 1983년 7월 18일, FIFA에서 세계 곳곳의 유서 깊은 경기장을 선택했는데 당연히 그 중 하나로 뽑혔다.[3]
2. 역사
센테나리오가 구장의 이름이 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이 경기장이 지어진 주목적은 초대 월드컵이었지만 우루과이의 독립과 헌법 제정 100주년을 기념하는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100주년이라는 뜻의 센테나리오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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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의 상징인 이 탑 역시 정확히 100m의 높이로 건설되었다. 동쪽 스탠드에 건설된 이 탑은 우루과이의 독립과 헌법 제정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하나의 상징물이다.
사실 원래는 1930년 월드컵의 모든 경기가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9개월의 공사 기간 도중 몬테비데오에 큰 폭우가 쏟아졌다. 이로 인해 공사가 중단, 연기되었고 월드컵 개막일인 7월 13일까지 공사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결국 이 경기장 외에 에스타디오 포시토스와 에스타디오 파르케 센트랄, 2개의 경기장을 추가로 사용하기로 결정했고 센테나리오 경기장이 실제로 완공된 7월 18일까지 5일 동안은 포시토스와 파르케 센트랄에서 나누어 경기를 치렀다. 그래서 월드컵 개막전이었던 프랑스와 멕시코의 경기는 이곳이 아니라 포시토스 경기장에서 열린 것이다. 센테나리오 경기장에서 치러진 첫 경기는 우루과이와 페루의 경기로 우루과이의 월드컵 데뷔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는 엑토르 카스트로의 골에 힘입어 호스트 우루과이가 1대0으로 승리했다. 이후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 경기장으로 쓰인데다가 우루과이의 월드컵 첫 우승 등 세계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워낙 역사적 가치가 큰 곳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쭉 이곳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은 우루과이에서 아직까지 다시 열리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에도 4번의 코파 아메리카(1942, 1956, 1967, 1995)와 최초의 인터컨티넨탈컵도 개최했다. 1960년. 유로피언 컵을 우승한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우승한 우루과이의 CA 페냐롤이 겨룬 이 시합에서는 레알 마드리드가 1승 1무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 외에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 각종 국제 유소년 대회 결승전 등 수많은 결승전을 개최하였다.
3. 현재
원래는 오랫동안 우루과이의 명문 클럽인 CA 페냐롤과 나시오날의 홈 경기장으로 쓰였다. 하지만 CA 나시오날은 2005년에 에스타디오 파르케 센트랄로 떠났고, 페냐롤은 2014년에 에스타디오 캄페온 델 시글로를 새로 지어 이사하였다. 현재는 우루과이 대표팀의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우루과이 축구 협회에 요청하면 우루과이 내의 어느 축구 클럽이든 이 경기장을 임시로 빌려 쓸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경기장을 빌리는 클럽에서는 페냐롤과 나시오날 양측 구단에 모두 임대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4. 국가대표 경기
4.1. FIFA 월드컵
4.1.1.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4.2.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4.2.1. 1942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우루과이
4.2.2. 1956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우루과이
4.2.3. 1967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우루과이
4.3. 코파 아메리카
4.3.1. 1995 코파 아메리카 우루과이
5. 콘서트
웬만한 축구 경기장들이 다 그렇지만 여기도 콘서트용으로 자주 개조된다. 에릭 클랩튼, 건즈 앤 로지스, 폴 매카트니, 스팅,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리키 마틴, 롤링 스톤즈 등이 여기에서 콘서트를 개최한 적이 있다.
6. 여담
- 상술했듯 초대 월드컵 당시 한 구장에서 모든 경기를 다 치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래서 예선전 때에는 경기가 끝난 지 30분 또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다음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곳에서 홈 팀 우루과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은 아직 네 번에 불과하다. 1932년에 첫 승을 거둔 이래로 1976년에 한 번, 2017년과 2020년에 한 번으로 2017년까지는 대략 40년에 한 번씩 이겼는데(...) 그것도 앞의 두 번 승리는 친선경기였다. 2017년에야 월드컵 예선에서 파울리뉴의 해트 트릭으로 4대1 승리를 거둔 것이 센테나리오에서의 공식전 첫 승리였다. 그렇다고 브라질이 우루과이에게 대놓고 호구잡힌 팀도 아니라서 다른 나라 구장이나 브라질 홈, 심지어 센테나리오를 제외한 우루과이 내 다른 구장에서 우루과이와 상대하면 나쁘지 않은 전적을 보인다. 브라질과 우루과이의 통산 전적은 2020년까지 78전 중 브라질이 40승, 우루과이가 21승을 챙겼다. 그리고 국제 대회로 인해 센테나리오에서 다른 팀들과 중립 경기를 해도 다른 팀들은 잘만 때려잡는다. 유독 우루과이와 센테나리오에서 상대를 하면 상성이 나쁜 것. 센테나리오에서 브라질과 우루과이의 통산 전적은 브라질 기준으로 22전 4승 10무 8패이다. 물론 1970~2000년대의 우루과이는 최악의 침체기였고 그 기간동안 대부분 브라질이 우루과이 상대로 선전한 것이다. 2010년을 기점으로 우루과이가 옛날의 실력을 점점 되찾아가면서 이제는 브라질과의 상대전적을 비슷하게 맞춰가고 있다. 우루과이는 마라카낭의 기적이라는 기분 좋은 기억이 있지만 브라질은 그렇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브라질이 40년마다 승리를 거두던 구장에서 3년 만의 리매치를 연승으로 따내며 이 징크스도 조금씩 극복되어 가고 있다.
- 한국 대표팀도 이 곳에서 시합을 치른 적이 있다. 히딩크호가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이 곳에서 우루과이와 친선 경기를 치렀었는데 이 경기에서 2대1로 패배하였다. 당시 우루과이는 지역예선에서도 떨어졌다가 2002년에 겨우 본선에 오른 약체였다.
[1] 1930년 월드컵이 개막한 날짜는 7월 13일이었다. 자세한 사항은 후술.[2] 초대 월드컵 유고슬라비아와의 4강전에서 기록되었다.[3] 다른 구장들로는 영국의 옛 웸블리 스타디움, 브라질의 이스타지우 두 마라카낭, 이탈리아의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 스페인의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멕시코의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