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포역
榮山浦驛 / Yeongsanpo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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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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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포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상징하던 역'''이자 전라도의 양대 대표 도시 나주시를 대표하던 역.
호남선 상에 있던 역. 전라남도 나주시 영강동에 있었다.
첫번째 사진은 1960년대 영산포역[2] 의 모습으로 두 번째 역사이다. 1913년 개업 당시에 지은 건물은 1951년 5월 3일 6.25 전쟁 당시 무장공비의 침투로 소실되어 1969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두번째는 1984년에 기존의 역사를 헐고 새로 신축역사를 지었으나, 17년의 영업을 끝마치고 2001년 7월 10일 호남선 복선화로 나주역과 통폐합되면서 역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그 이후로 영산포역사는 흉물스런 모습으로 남아있었다가 2005년부터 철거하고 난 후, 세번째 사진처럼 구 영산포역의 플랫폼을 복원하고 ''''철도공원''''화 시켰다.
2. 역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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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호남선 개통과 함께 신설된 역으로써, 역명의 유래는 역 바로 앞에 존재했던 영산강에 면한 영산포라는 항구에 있다. 영산포는 비록 내륙항이었지만 서해안의 크고 아름다운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하여 목포나 해남 등에서 들어오는 소금배 등이 넘쳐났고, 또한 전라도의 홍어 집결지로 유명하던 곳이었다.[3] 같은 노선상에 있는 논산시 강경읍과 비슷한 성장배경을 지닌 동네. 그렇지만 철도와 도로교통 발달 이후 수운은 급격히 사양화 되었고, 1981년 영산강하굿둑은 수운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실제 영산포항은 이 역에서 영산강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당연히 배는 없지만 영산강 등대, 버스정류장 이름 중에 '선창' 등 과거 항구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철도가 없던 영암, 해남, 강진, 장흥등에서 서울방향으로 가려면 이 지역 사람들이 열차를 타려 집결하는 교통의 요지 역할을 했다. 그래서 한때 나주역에도 정차하지 않는 새마을호도 정차했었고 나주역은 물론 무려 '''송정리역'''보다도 이용객이 많은 역이었다. 나주역이 학생독립운동기념일(구 학생의날)의 기원이 된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발상지이기 때문에 문화재로 선정되어 더 이상의 확장이나 개축이 불가능하였던 관계로 일제 시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결국 대구역의 확장 불가로 동대구역이 대구에서 가장 큰 역이 되었듯이 영산포역이 나주시에서 가장 큰 역이 되었던 것이다.
호남선 복선 전철화 및 직선화 공사로 2001년 7월 10일 구 나주역과 통합하여 중간 지점인 현 위치의 나주역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상기한 영산포역의 위상 덕분에 통합역 이름을 '나영역', '영라역' 등으로 하자는 이야기도 나왔으나[4] , 결국 역명은 지역 대표성을 보유한 나주역이 되었다. 영산포역에 정차했던 마지막 열차는 2001년 7월 10일 새벽 4시 8분 부산발 목포행 제383 무궁화호였다.
폐역된 영산포역 건물은 한동안 남아있었다. 나주시에서는 이를 철도박물관 등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경제성 등의 문제에 부딪쳐 철거하고, '나주철도공원'이라는 이름으로 플랫폼을 설치하고 증기 기관차를 가져다 놨다. 제식번호가 미카 5-31호인 것으로 보아 인천대중예술고등학교에 전시되었던 증기 기관차를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 역에 방문하려면, 160번 중에서 나주역으로 가는 지선이 이 역 앞에도 정차하고, '영산교'를 경유하는 400번대 버스도 이 역앞에 정차하나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160번 본선이나 기타 영산포 방면 나주 버스를 타고 영강삼거리(영산'대'교)방면 정류장에 내려서 5분 정도 걸으면 된다. 이 근처에 금호고속 시외버스도 '영삼거리'라는 이름의 정류장에 정차한다.
역세권은 기대하지 말자. 물론 영산포역이 살아있을 당시엔 '''최고급 특급열차 새마을호 전열차 정차역'''답게 활기에 넘쳤지만 선로가 싹 없어진 지금은 영산포역세권은 전쟁터마냥 을씨년스럽다.
한때 영산포역의 역명코드였던 038은 영산포역의 폐지로 인해 망상역이 가지고 갔다. 영산포역 폐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망상역으로 표를 끊었는데 영산포가 나왔다는(...) 일화도 있다.
3. 기타
전국민을 공분에 빠트렸던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와 매우 가깝다. 영산포역 앞 마을에서 해당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불과 500m 떨어진 영산대교 밑에서 피해자를 발견하였다.
[1] 폐역당시 호남선은 대전역이 기점이었다.[2] 저 시절의 영산포역 일때는 수송객,수하물량에서 나주역보다 월등해서 급행열차, 새마을호 열차가 나주역은 스쳐 지나갔지만 영산포역에서까지 정차를 할 정도로 전남 서남부의 거점 역세권을 자랑 했었다.[3] 내륙에서 웬 홍어냐고 하겠지만 홍어가 잡히는 신안군 흑산도에서는 홍어를 생으로 먹지 굳이 삭혀 먹지 않는다. 하지만 저장방식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이 홍어를 내륙으로 운송하는 동안 상하지 않도록 삭히는 방법을 택했다. 신안에서부터 목포시를 지나 물 때에 맞춰 조금씩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오다 보면 홍어가 적절히 삭아 있어서 영산포는 홍어의 집결지로 유명했고 덕분에 홍어 냄새가 가득했다고 하며 현재도 영산강 건너편에는 유명 홍어식당이 모여 있다.[4] 직선 거리상으로만 보면 구 나주역보다는 영산포역이 조금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