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시마 에이지
1. 개요
일본의 축구선수.
2. 클럽 경력
J리그 오미야 아르디자에 입단했지만 입단 첫해에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3년차에 주전 골키퍼로 도약했지만 2004년에 나고야 그램퍼스로 이적한 후에는 대선배인 '''나라자키 세이고'''에 밀려 리그 컵 전문 골키퍼에 만족해야 했다. 2007년 창단 후 첫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한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했고 [3] 다시 주전을 꿰찼다. 2010년 7월 7일에 벨기에 주필러 리그 리르서 SK[4] 로 이적했다. 리르서 SK 시절에는 2년 연속 팀의 1부 리그 잔류에 기여하였고 2년 연속 팀 MVP에 올랐다."유럽으로 가기 위해 연봉 10분의 1 삭감을 감수했다. 벨기에 리그에 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프랑스어, 영어를 공부한 것이다. 구단은 통역사를 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통역 없이 의사소통하고 싶었다. 가끔 지인들이 왜 이렇게 고생하면서 유럽에서 뛰냐고 물어본다. 일본에선 좋은 대우를 받을수 있다. 하지만 나는 후배 골키퍼들이 유럽에 많이 진출하길 원한다. 내게 돈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로 인해 후배들의 이적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면 그걸로 족하다."
2017년 산케이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2012년 초에는 AC 밀란에서 영입하려 한다는 이적설이 돌기도 했다.[5] 일단 본인과 대리인의 언급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사실이긴 했던 모양. 다만 팀내 입지와 AC 밀란의 기존선수 정리문제 탓인지 결국 성사되지는 않았다. 2012년 7월 17일에 벨기에 주필러 리그의 명문클럽 스탕다르 리에주로 이적했다.
2014/15 시즌 종료 후 스탕다르 리에주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자유 계약 신분으로 풀려났다. 눈에 띄는 기량 하락으로 인해 프랑스 유소년 국가대표 출신의 요안 튀랑-윌리엔[6] 에게 주전 자리를 내준 상태였고,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원했기 때문에 계약을 연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한동안 소속팀 없이 지내면서 국가대표 자리도 후배 골키퍼들에게 내주게 되었고, 결국 2015년 11월 3일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던디 유나이티드 FC와 계약을 맺었다.
던디와의 계약 만료 이후 새 팀을 물색하게 되었는데, 일본 언론과 그리스 언론에서는 그리스 리그 파나티나이코스 FC와 계약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으며 그 외에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클럽인 NEC 네이메헌 이적설이 돌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프랑스 리그 1의 FC 메스와 1년 계약을 체결하였다.[7] # 헌데 2016년 끝물에 J1리그 소속 사간 도스에서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일본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으나, # 무산됐고 2017년에도 여전히 메스에서 뛰게 되었다.
소속팀에서는 차츰 출전시간을 늘려나가 결국 주전 골키퍼가 되었다.[8] 가와시마의 이런 노력이 GK 코치와 감독의 마음을 움직여 출전기회를 부여받았고, 비록 경기결과는 나빴지만 가와시마의 GK로서의 능력은 만족했는지 2번째 키퍼로 지위가 격상되었고, 로리앙 전에서 1:5 대패로 주전 키퍼였던 토마 디디욘이 페이스를 잃고 부진에 빠지면서 1부 잔류에 먹구름이 끼게 되자 가와시마에게 잔류의 분수령이 되는 낭시 전에 GK를 맡겼고 그 경기에서 수준급 키핑 능력을 보여 승리하였으며, 뒤이은 경기인 릴 전에선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리그 1 잔류에 기여했다.
물론 주전 키퍼였던 토마 디디욘은 프랑스 U21 대표팀에도 출전했던 프랑스의 차세대 기대주라 경쟁은 험난하지만 기회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기회가 왔을때 능력을 발휘하여 자리를 쟁취한 부분은 칭찬할 만 하다고 볼 수 있다.
2017-18 시즌에도 FC 메스에서 뛰게 되었고 초반에는 벤치 멤버에 머물렀으나, 이후 29경기에 출장하며 다시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리그 1 26라운드의 베스트 5 슈퍼 세이브 키퍼에도 선정되는 등 수준급 골키퍼로서의 역량을 보여줬다. 그러나 팀은 결국 강등당했다.(...) 그리고 메스가 강등당한 뒤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로 이적하면서 리그앙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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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는 후보 키퍼였지만 팀이 프랑스 컵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유럽에서 우승컵을 들어본 최초의 동양인 골키퍼'''가 되었다.
3. 국가대표 경력
약 10년간 일본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해온 '''가와구치 요시카쓰'''[9] 의 뒤를 잇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골키퍼.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주전으로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시킨 활약으로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당초 선배인 나라자키가 주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10] ,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자 카메룬전에서 선발 출장, 선방을 보이며 1-0 승리에 기여하고 조별예선에서 단 두 골만 실점하면서 대부분의 축구 팬들과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팀을 2승 1패로 16강에 올리는데 공헌했다.
하지만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는 팀이 1무 2패라는 끔찍한 모습으로 광탈하는 처참한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고, 악몽같았던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이후인 2014년 가을, 하비에르 아기레 신임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에서 이고르 아킨페프가 빙의되어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상황을 맞이했다. 우루과이 전에서 실점했을 때는 수비수들을 마구 다그치더니 자신이 실수한 것에 대해서는 적당히 쑥쓰러워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경쟁자인 우라와 레즈의 니시카와 슈사쿠 골키퍼 대신에 2경기 연속 출전하여 과거 전성기 때의 신들린 선방을 여러차례 선보였으며, 전매특허인 PK도 막아내어 2경기 연속 무실점 방어를 보여줬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일본 대표팀에 선발됐고, 주전으로 활약하며 일본 대표팀이 8년만에 16강에 진출하는데에 기여했다. 다만, 2010 남아공 월드컵 때와 달리 실수가 많았는데, 특히 조별리그 두번째 경기 세네갈전에서 펀칭 실수로 사디오 마네에게 허용한 선제골과 16강 벨기에전에서 2대0으로 리드하던 중 얀 베르통언에게 먹힌 추격골은 황당할 정도로 어이없는 실수였다.[11] 특히 16강전에서는 추격골 이후 2골을 더 허용하며 결국 2-3으로 패배했다. 16강전에서 가와시마는 벨기에의 장신 선수들과의 볼 경합에서 우위를 전혀 차지하지 못했다. 첫 실점도 공중볼을 안전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됐다. 공중볼 경합에서 굉장한 우위를 보였던 티보 쿠르투아와는 상당히 비교된 부분. 다만 가와시마가 일부의 비난처럼 마냥 실수만 연발했던 것은 아니다. 폴란드전과 16강전에서 여러 차례 슈퍼세이브를 보여주기도 했고 4경기 동안 총 14개의 세이브를 기록하며 주전 골키퍼로써 어느정도 활약을 하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회에서 가와시마 에이지의 퍼포먼스는 매우 아쉽다는 평이 대다수이다. 골키퍼는 작은 실수라도 곧 그것이 골로 직결되기 때문에 경기 내내 완벽해야 하는 포지션이다. 실수 하나하나가 팬들의 머릿 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선수 본인에 대한 평가에 악영향을 끼치고 골 하나하나가 매우 소중한 축구 특성상 팀의 승패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특히 월드컵같은 단기전에서는 실수 하나가 대회 전체를 망칠 수 있다. 하지만 원래 이렇게 실수가 많은 골키퍼가 아니었고 나이가 30대 중반에 접어들며 폼이 들쭉날쭉 해진게 원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유난히 베테랑 멤버들을 신뢰한 니시노 아키라 감독 덕분에 주전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12] 골키퍼는 수명이 길어서 괜찮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선수 수명이 긴거지 신체적 전성기까지 긴게 아니다. 골키퍼도 사람인 이상 30대 넘어서 신체능력이 저하되는건 마찬가지다. 30대 중반에 발롱도르 받고 41세까지 뛴 레프 야신이나 40 다되어서 FIFAPro World XI 들어간 잔루이지 부폰 같은 골키퍼는 굉장히 드물다. 이운재조차 33세 시즌인 2006년에 급격한 슬럼프를 겪었고 36세 시즌인 2009년부턴 신체능력 저하를 더이상 감당할 수 없게되어 남아공 월드컵 때부터는 정성룡에게 주전 자리를 내줘야 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과 팬들이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일본은 예선 탈락할 거라고 예상했었던 것을 감안하면 가와시마가 골문을 지킨 일본 대표팀의 이번 월드컵 성적은 기대 이상이긴 했다.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이후로는 대표팀 세대교체#s-1를 위해 뽑히지 않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냉철한 판단력과 순발력을 겸비하여 매우 많은 선방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굉장히 파이팅이 좋은 선수. J리그 시절에는 선수협회 부회장을 담당하기도 했고, 벨기에의 리에르세 SK로 이적한 뒤에는 외국인 선수임에도 팀의 주장을 맡는 등 리더십도 뛰어나다.
페널티킥 선방도 잘 하는 편이다.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준결승전 승부차기에서는 상대팀 한국 측 키커의 킥을 2개나 막아내며 결승 진출을 이끌었고 2016년 영국 방송 Sky Sports가 제작한 유럽 5대 리그 골키퍼를 대상으로 한 PK 저지율 순위에서 34위에 랭크된 적도 있다. 참고로 일본의 축구 전문 매체 'football-zone'의 보도에 의하면 2016년 6월~2017년 11월까지의 PK 저지율이 무려 83.3%였다고 한다.
오만의 알리 알 합시(위건 애슬레틱)와 호주의 마크 슈워처(첼시 FC)에 비해서는 다소 클래스가 떨어지지만, 현역 아시아권 골키퍼로는 독보적인 위치로 평가받았었다. 2011년 AFC 아시안컵 당시의 그는 일본의 이케르 카시야스, 일본의 케일러 나바스라고 해도 될 정도의 사기적인 골키퍼였고 185cm로 골키퍼 치고 불리한 단신임을 감안하고도 어마어마한 실력과 파이팅을 보여줬고 이정도 열정과 실력이였다면 만약 신장이 190정도 되거나 넘었으면 마크 슈워처는 물론 알리 알 합시를 넘어서 충분히 유럽에서 더 성공했을 가능성이 매우 컸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잔실수가 상당히 많이 늘어나고, 기량이 점차 줄었다. 재미있게도 일본 축구 팬들이 가와시마에게 가지는 불만사항은 한국 축구 팬들이 정성룡에게 가지는 불만과 대부분 일치한다. '서있기만 한다', '몸을 날리지 않는다', '별 의미없이 넘어진다', '공을 펀칭만 하고 잡지는 못한다' 등등(...). 심지어 벨기에와의 평가전에선 공을 걷어내겠다고 무리하게 뛰쳐나와서 실점한 적이 있어 그 일로도 비난을 듣는다. 이운재와 김병지를 봐왔던 한국 축구 팬들이 정성룡에게 불만을 가지는 것처럼 일본 축구 팬들에게도 선배인 가와구치 요시카쓰와 나라자키 세이고와 비교되는 가와시마의 불안정한 모습과 실수가 불만일 수 밖에 없을 듯.[13]
커리어만 보면 아시아 최고 키퍼같지만,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룬 이운재나 외국에서도 인정받는 김병지에 비하면 딱히 주목받지 못했다.[14] 심지어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조현우에게 완전히 가려졌다[15] 그리고 오만의 골기퍼 알리 알 합시에게도 밀린다.
5. 기타
- 예전부터 착실하게 유럽 클럽으로의 이적을 준비해온 선수인지라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다. 물론 원어민처럼 완벽한 건 아니지만 선수간의 의사소통이나 언론과의 인터뷰 등에는 문제가 없는 수준. 실제로 기자회견장에서 제각각 다른 언어로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통역 없이 답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덕분에 일본에서 어학교재의 광고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또한 일본 성인대표팀 내에서도 감독이었던 할릴호지치는 프랑스어를, 골키퍼 코치는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데[16] 가와시마는 두 언어 모두를 할 수 있어, 보다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17]
- 왠지 게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선수다.[18] 남아공 월드컵 당시 남아공의 게이들 사이에서 뽑힌 축구선수 TOP 10에 든 적도 있고, 영어권 게이 사이트에서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참고로 본인은 2014년 9월 10일 자신의 공식 블로그를 통해서 결혼했음을 밝혔다. 이후 부인과 자녀가 언론에 공개되었다. 참고로 부인은 콜롬비아/일본 혼혈 여성으로 이국적인 외모의 미모를 가진 미인이다.
-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 관련 개드립의 희생양이 되는 불운을 겪었다. 2011년 8월 20일 리에쥬SK 과 제르미날 베이르쇼트 팀의 경기 중에 베이쇼르팀 응원단이 '가와시마, 후쿠시마'를 외치며 조롱하는 사건이 있어 제르미날 베이르쇼 측에서 사과했었고, 2012년 10월 12일 프랑스와 일본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이후 프랑스2 TV에서 사회가가 농담이랍시고 '일본팀 골키퍼 가와시마 선수가 후쿠시마의 영향을 받아 뛰어난 것 같다'며 가와시마의 팔을 4개로 만든 합성 사진도 방송하는 사건을 저질러 프랑스 내에서도 욕을 먹었고, 일본 정부의 정식 항의에 프랑스 정부가 공식 사과까지 하는 사건이 있었다. 양심이 있다면 이런 개드립은 악행이다. 재미있는 건 2ch의 몇몇 챤넬러들이 이 네타를 줏어서 가와시마 디스 및 장난으로 사용했다는 것(...).
- 가와사키 프론탈레 시절에는 홈경기 때마다 자비를 들여 고아나 병에 걸린 어린이들을 초대해 축구 관람을 시켜주기도 했다. 이 관중석은 가와시마 시트라고 불렸다고 한다.
- 일본 국내에서는 자기관리가 충실한 선수로 불리는거 같다. 오죽하면 가와시마에게서 배우는 자기관리 관련 서적이 나올 정도. 거기서도 가와시마 본인이 '40세까지 좋은 활약을 펼치고 싶다.'라고 언급했다.
6. 같이 보기
[1] 現 사이타마시 주오구[2] 일본 축구 협회 공식 프로필[3] 당시 가와사키 프론탈레 클럽 사상 최고액인 1억 5천만엔의 이적료에 이적했다.[4] 당시 리르서 SK는 09-10 시즌에 벨기에 2부리그에서 우승하며 1부에 승격한 팀이었다.[5] 다만 주전이나 세컨드가 아니라 서드 골키퍼로 영입하려 했던 것 같다.[6] 릴리앙 튀랑의 사촌동생이다.[7] 가와시마 에이지 자신의 블로그에는 2년 계약이라고 언급하였지만 일단 구단 공식 발표는 1년 계약이라고 명시되어 있다.[8] FC메스의 3번째 골키퍼 시절, 출전 가능성이 전혀 없음에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9] 다만,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나라자키 세이고에게 밀렸다. 가와구치가 116경기로 A매치 출장 수가 더 많긴 하지만 나라자키 세이고도 77경기로 꽤 많이 뛴 편. 당연히 한국에서 이운재와 김병지 라이벌 구도가 있었던 것처럼 가와구치와 나라자키의 라이벌 구도도 있었다. 두 선수의 팬들은 자기가 응원하지 않는 골키퍼가 선발출장한 일본 대표팀이 실점하거나 지거나 하면 자기가 응원하는 골키퍼가 나왔으면 골 안먹었을텐데 이겼을텐데 이런 식으로 얘기하기도 했다.[10] 가와구치는 부상 후유증이 있어 선발로 나오기 힘든 상태였지만, 오카다 다케시 감독은 그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기기 위해 엔트리에 포함시켰다.[11] 다만 전 일본 대표팀 골키퍼 가와구치 요시카쓰는 얀 베르통언의 추격골에 대해서 불운한 실점이 아니라 베르통언이 처음부터 헤딩슛을 노렸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언급하였다. 가와구치의 러시아 월드컵 16강 일본vs벨기에전 평가[12] 일본 현지에서는 만약 감독이 니시노 아키라가 아니었다면 가와시마가 처음부터 주전 장갑을 끼지 못했거나 3차전부터는 교체됐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그도 그럴게 이번 러시아 월드컵 일본 대표 후보 골키퍼 중에는 2017년 J리그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부문에 선정된 현 J리그 최고 골키퍼이자 리우 올림픽에서도 조별리그 2,3차전에 출전해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었던 신예 나카무라 고스케가 있었기 때문. 다만 니시노가 베테랑 위주로 팀을 운영한 건 어느정도 감안을 해줘야 하는데 니시노는 월드컵 2달 앞두고 급히 선임된 감독이다. 자기 팀 만들기는 고사하고 팀내 장악력 확보하기도 어려운 빠듯한 시간이다. 2016년부터 현장을 떠나 있었고 축구계에서 위상이 아주 높지도 않은 니시노가 이 짧은 시간에 팀을 추스리기 위해선 자기보다 팀내 영향력이 더 큰 베테랑들을 대접해줘서 소위 '동행'하는 것 말곤 딱히 수가 없었다.[13] 다만 가와시마의 경우 일부 극성 안티가 있는 정도지 대다수의 한국 축구 팬들에게 심한 조롱을 당하고 있는 정성룡 수준은 아니다. 그리고 가와시마가 리그 1에서도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는 현재는 가와구치나 나라자키보다 가와시마를 더 높이 평가하는 일본 축구 팬들이 부쩍 많아졌다. 물론 남아공 월드컵 때부터 그렇게 평가하는 팬들도 있긴 했다.[14] 심지어 EPL에서 여러팀한테 오퍼까지 왔다.[15] 그렇다고 딱히 가와시마가 못 했다고는 할 수 없다.[16] 참고로 할릴호지치 감독처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출신이다.[17] 일본 대표팀 내에서 하세베 마코토, 혼다 케이스케와 더불어 정신적 지주이자 존경받는 선배로 대우받고 있으며, 이 때문에 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는 대표팀에 부르지 않겠다는 할릴호지치 감독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꾸준히 대표팀에 소집되고 있다. 또한 감독과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되는 장점 때문에 팀 내 감독과 선수간 의사소통의 가교 역할도 한다고 한다.[18] 심지어 가와시마 본인 역시 게이 의혹(일본의 캐쥬얼 호모 붐 덕분에 생겨난 반농담성 게이 의혹이긴 했지만)을 받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