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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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유래
3. 해설
4. 문자 그대로 실현한 경우
5. 창작물의 사례
6. 기타
7. 관련 문서


1. 개요


'''고사성어'''
''''''
''''''
''''''
''''''
어리석을 우
공평할 공
옮길 이
뫼 산
\''''우공이산''''은 열자 탕문편에서 나오는 고사성어이다. 문자의 뜻은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이며, 속뜻은 '열심히 노력하면 결국은 이룰 수 있다'이다.

2. 유래


북산에 어리석은 노인(우공)이 살고 있었다. 그의 집 앞에는 태항산과 왕옥산이라는 커다란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다른 고장으로 다니기가 무척 불편했다. 우공은 이미 나이 90세에 가까웠지만, 이 두 산을 옮겨서 산을 돌아서 가야 하는 불편을 덜고자 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걱정이 되어 버력(파면서 나온 돌과 흙)을 어디에 버리냐면서 반대했지만, 남편이 고집을 꺾지 않고 자식들까지 찬성하면서 발해란 곳에 버리면 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찬성했다.
며칠 뒤 우공은 자식들과 함께 산의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에 담아 발해의 은토라는 곳으로 날랐다. 마을 과부 경성씨와 그녀의 7살 난 아들 역시 우공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은토는 워낙 거리가 먼 곳이라 흙을 한 번 버리고 오는 데 한 해가 걸리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마을의 지혜로운 노인이자 우공의 절친한 친구인 지수(智叟, 지혜로운 노인)가 걱정이 되어 와서 "우공, 제발 그러지 말게, 자넨 이미 90살이라 너무 늙었네. 산을 허물기도 전에 필시 죽을 것일세."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우공은 껄껄 웃으며 “이보게 지수, 내 걱정은 말게. 나는 늙었지만 나에게는 자식도 있고 손자도 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그 손자가 죽으면 그 자식이 자식을 낳아 자자손손 한없이 대를 잇겠지만 산은 더 불어나는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언젠가는 평평하게 될 날이 오겠지”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지수는 할 말이 없어 물러났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태항산과 왕옥산의 산신령과 발해의 바다신이 이 말을 듣고는 산을 허물고 바다를 메우는 인간의 노력이 끝없이 계속되면 자신들의 살 자리가 없어질까 봐 겁이 나서 옥황상제에게 좋은 방법을 알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옥황상제는 우공의 정성에 감동함과 동시에 이 일을 해결하고자 천계에 가장 힘이 센 거인 신인 과아씨의 두 거인 아들을 시켜 두 산을 들어 옮기게 하여, 하나는 삭동에 두고 하나는 옹남에 두었다고 한다. 이렇게 골치 아픈 두 산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로부터 '우공이산'은 꾸준히 노력하면 산과 바다라도 옮길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3. 해설


쉬지 않고 계속 한 가지 일만 열심히 하면 마침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한 말.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라는 주장도 있지만, 대단한 오해다. 원문에서도 지수가 우공에게 핀잔을 주다가 오히려 역관광을 당하는 내용이 나오고, 帝感基誠이라 하여 옥황상제가[1] 우공의 정성에 감동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이 일화가 우공을 조롱하기 위한 것이라는 소리는 아주 잘못된 주장이다.
결정적으로 조선시대의 문인들의 기록이나 책에서도 우공이산은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의미로 쓰였지, 무식한 이를 조롱하는 걸로는 전혀 쓰이지 않았다.

4. 문자 그대로 실현한 경우


현대에는 건설기계(포크레인덤프트럭)와 폭약 성능이 엄청 발달해서 '''돈만 충분하면''' 얼마든지 산을 평지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놀라운 경우들이 분명 있다.
산에서 일을 하던 그에게 식사를 가져다 주러 왔던 아내가 미끄러진 탓에 크게 다쳤다. 그는 아내를 들쳐업고 55km나 되는 산 둘레를 돌아 병원에 갔지만 너무 늦어 아내는 죽고 뱃속의 아이만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아내의 장례를 치른 뒤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다른 누군가는 자신 같은 아픔을 겪지 않으면 좋겠다고 여긴 그는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새벽에는 산에 올라 망치질을 했다.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는 돈도 돈이거니와 지형상 쓰기 힘들어 못 썼다고 한다.(!) 그의 일가친척들과 어머니를 잃은 그의 자식은 그를 걱정하였고 마을 사람들은 울분에 미쳤다며 손가락질 할 때도 있었지만 종종 먹을 것을 가져다 주고 연장을 교체할 돈을 기부해주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22년간 쉬지않고 돌산을 깎아내렸으며 마침내 55km를 돌아가야 하던 길 대신 15km의 넓은 길을 뚫었고, 청년들과 어린 아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고 교육의 기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주정부는 그에게 포상을 하려 했으나 그는 오히려 자신에게 포상할 돈으로 길을 포장해 달라고 했고 주정부에선 표창을 하면서 당사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해당 길을 말끔하게 포장했다. 덕분에 지금은 이 길에 자동차도 다니고 있다. 2007년에 세상을 떠났을 때 비하르 주정부에서 사회장을 주관했다. 이 일은 인도에서 만지히: 더 마운틴 맨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되었고, 2015년 10월 18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다. 구글 맵의 해당 길
  • 현대 중국에서도 각각 17년(1995~2012), 6년(2001~2007)년간 사비를 들여 터널을 뚫은 개인들이 있다. #1 #2
  • 신원미상의 밀수범 - 2017년 5월 23일, 항문에 금괴를 삽입해 탐지를 피하는 방식으로 총 2,345kg의 금괴를 밀반입한 밀수범이 관세청에게 적발되었다. 해당 금괴의 무게는 개당 23kg였고 총 115개였다. 2,345kg의 금은 작은 금광의 매장량과 비슷하기에 현대판 ~우공이산의 사례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물론 우공이산 이전에 범죄고 걸리면 세금폭탄을 맞으니 절대 따라하지 말자.
  • 사디만 - 인도네시아에서 산불로 황폐화 된 산에 묵묵히 20년간 홀로 반얀나무 씨앗을 심어 숲을 일궈낸 농부 Sadiman의 사례가 있다.
인니판 "나무를 심는 사람" 사디만 할아버지
쓸데없는 짓 한다고 욕만 먹던 농부. 20년 뒤, 마을을 뒤집어놓다
인도네시아 dali에 사는 농부 할아버지 사디만은 마을이 유달리 가뭄과 홍수가 잦아 인명피해가 심각하단 걸 걱정하여 산불로 황폐화한 산으로 가서 반얀나무의 씨를 심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가치가 없는 상품을 심는다고 욕설과 비웃음을 담아 조롱했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반얀나무의 씨를 심었고 20년 뒤 반얀나무들이 자라 숲이 되어 dali 마을은 오랫동안 시달린 가뭄과 홍수에 완전히 벗어났으며 사람들은 그렇게 사디만 할아버지의 뜻을 깨달았다.
  • 이제팡 부부- 아래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처럼 홀로 나무를 심은 사람들. 이 두 사람은 더더욱 근성인 것이 풀 한 포기 안 나는, 그리고 황사 발원지로 악명높은 고비 사막에 숲을 만들었다. 과거 하나뿐인 외아들 양루이저를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은 뒤 아들이 생전에 '사막에 나무를 심고 싶다'고 한 소원을 이루고자 자신이 죽는 날까지 고비사막에 나무를 심겠다고 하여 녹색생명이란 단체를 만들어 지금도 나무를 심고 있다.
  • 메흐메트 2세오스만 제국군(1453년) -당시 할리치(Haliç =금각만, Golden Horn)[2]에 쳐둔 동로마 제국쇠사슬[3]에 의해 오스만 해군이 방해를 받고 있었으나, 메흐메트 2세는 아예 갤리선을 육지로 끌어와서 을 넘어 테오도시우스 성벽콘스탄티노플 시내에 포격하였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콘스탄티노플 정ㅋ벅ㅋ. 동로마 제국은 이로써 멸망했다. 참고로 이들이 배를 끌어올리는 방법은 당시 제노바 자치령이었던 갈라타(지금의 베이오울루 구)과 교섭해 그 지역에서의 군사활동을 묵인하기로 약속을 받아내고 자아노스 파샤(Zağanos Paşa)의 지휘로 오늘날의 베식타쉬(Beşiktaş)에서부터 당시의 갈라타 성곽을 돌아서 할리치까지 나무를 베어 길을 놓고 그 위를 올리브유를 잔뜩 뿌려 매끄럽게 만들어 놓은 다음 무식하게 밧줄로 배를 끌어 놓는 방법이었다. 직접 돌아보면 알겠지만 베식타쉬에서 탁심광장을 돌아 오늘날의 아타튀르크 다리 일대로 가는 길로 거의 2-4km에 달하는 거리에 가장 높은 언덕 높이가 해발 150m 이다. 이 길을 이틀 동안 병사들이 밧줄로 배를 끌어 총 72척을 옮겼다고 한다.(...)
  • 페르디낭 슈발 - 19세기 프랑스에 살았던 평범한 우체부로 건축에 대한 교육을 따로 받지 않았던 아마추어였지만 몇 십 년 동안 혼자의 힘으로 초현실적인 거대한 건축물 팔레 이데알을 만들었다.

5. 창작물의 사례


  •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 - 엄밀히 말하자면 산을 옮긴 게 아니라 황무지에 혼자 힘으로 1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서 비옥한 땅으로 바꾼 일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아는 사람이 많은데, 엄연히 창작물인 소설의 이야기다.
다만, 세상은 넒고 기이한 일은 많아서, 이 양반처럼 혼자서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 가끔 나오곤 한다. 당장 위에도 예시가 하나 있다.

6. 기타


  • 성서에서도 비슷한 비유의 일화가 등장한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 공동번역성서 마태오의 복음서 17장 20절.

제자들이 예수가 한 아이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어 간질병을 고치는 모습을 보고 "왜 우리는 마귀를 쫓지 못했습니까?"라 묻자, 예수는 제자들의 믿음이 부족하여 구마가 실패했음을 지적하였다. 여기에서 예수는 "겨자씨 한 톨 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산에게 명령하여 산도 옮길 수 있다"는 비유를 들었다.
  • 웹툰작가 곽백수는 자신의 웹툰 트라우마에서 이 고사의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비꼬아서 당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데 썼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노공이산’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4] # 이 외에도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는 고사성어로 ‘우공이산’을 즐겨 사용했다. 몇 가지 사례로 2003년 6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거창한 구호보다 우공이산의 심정으로 국정운영에 임하겠다"고 발언했으며, 2004년 1월 청와대 워크숍에서 "우공이산의 신념과 용기를 갖고 추진하면 세상은 바뀌게 돼 있다"고 자신의 정치철학을 '우공이산'에 빗대 표현했다.#

7. 관련 문서



[1] 원문을 쓴 열자가 가공의 인물이다, 아니다라는 주장이 상충되지만 어쨌든 열자 탕문편은 도가사상을 담고 있다. 도가에서 帝는 최고존엄을 뜻하는 것이므로 이 帝가 칭찬했다는 것이 조롱이란 소리는 기본지식이 하나도 없다는 소리다.[2] 보스포루스 해협, 이스탄불을 흐르는 만[3] 여담으로, 4차 십자군에게 공격받을 때를 비롯. 몇번 써먹은 적이 있었던 방법이다.[4] 원래는 ‘우공이산’ 그대로를 필명으로 쓰고 싶었으나,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미 그 필명을 선점한 사람이 있어서 ‘노공이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