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산군
雲山郡 / Unsan County
1. 개요
운산군(雲山郡)은 평안북도 동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향산군과 구장군, 남쪽으로 태천군, 서쪽으로 동창군과 영변군, 북쪽으로 자강도 송원군과 접해있는 군이다.
2. 역사
고구려 시대에는 운양군(雲陽郡)이라 하였으며, 용호리에 있는 용호동무덤이 당시의 지역 발전을 말해준다. 고려 시대에는 운중군(雲中郡), 운주(雲州)가 되었으며 조선 태종 때 운산군(雲山郡)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산세가 매우 험준하고 빼곡히 밀림이 우거져있는 모습이 구름과 같다고 하여 그러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래 전부터 금 산지로 알려질 정도로 세계적인 규모의 운산 금광이 존재하는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무려 동양 최대 금광이었다 흠좀무...전세계 2위.1896년 미국인 모스가 운영하는 뉴욕 소재의 동양광업개발주식회사가 금광 채굴권을 따낸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대규모 채굴 이 이어졌다. 운산금광 채굴권을 넘겨준 사람은 명성황후가 아니라 고종이다. 조선왕조실록과 호러스 뉴턴 알렌의 기록에 보면 운산금광 채굴권은 명성황후가 살해당하기 3달 전인 1895년 7월 15일에 허가를 했다가 바로 취소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명성황후는 운산금광 채굴권을 허락한 후 바로 취소하고 일본인들에 의해 살해 당했으므로, 명성황후는 결국 금광 채굴권을 넘겨 주진 않았다. 명성황후 사후 운산금광 채굴권은 조선이 가지고 있다가 명성황후 사후 다음해인 1896년 4월 17일에 미국인 모스에게 채굴권을 허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운산금광 채굴권을 넘겨준 사람은 명성황후가 아니라 고종인 것이다.
한국사를 공부하다 보면 나오는데 비슷한 이름의 평안남도 은산군과 헷갈리지 말자. 재미있는 게, 은산에도 금광이 있는데 조선 말기 은산의 금광 채굴권은 영국인이 가져갔다.
평안북도 운산군 주위는 세계에서 손끕히는 금광지대로 운산금광뿐 아니라 평안북도 창성군에는 운산금광 못지 않을 정도로 대규모인 대유동금광, 그리고 이 두 월드클래스 금광보다는 작지만 큰 규모의 여러 금광들이 존재한다. 대유동 금광의 채굴권 역시 조선 말기 프랑스에 넘어갔다가 일제강점기에 다시 일본이 회수해서 개발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조선일보 창업주 방응모 역시 평안북도 삭주군에 위치한 교동금광을 개발해 조선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어 조선일보를 인수하면서 일제강점기 권력의 중심부로 진출했다.
북한의 금광들은 오랫동안 많이 캐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금맥이 살아있는 상태로 보수적으로 잡은 조사에서도 북한은 세계 6위에서 10위 규모로 금 매장량이 아직도 풍부하다. 일제강점기의 낮은 기술 수준으로 매장량을 파악하고 캐다 중단된 상태로 현재 기술로 다시 조사하면 매장량이 더 늘어날 확률이 높다. 다만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 금 채굴 특성상, 평양 시내마저도 전력 사정이 좋지 못한 북한에서 채굴 작업 자체가 오랫동안 중단된 상태다.
8.15 광복 이후 38선이 그어지면서 북한의 영역이 되었다. 1952년에 북한이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운산군의 북동쪽 지역을 북진군으로 분리하여 신설하였으나 1954년에 도로 합쳤다. 현재의 운산읍은 옛 북진군 지역이며, 옛 운산읍은 현재의 구읍리 지역이다.
3. 지리
구룡강이 > 자 모양으로 흘러간다. 대략적으로 구룡강 상류 수계는 옛 북진군 지역, 조양강·룡흥강 수계는 옛 운산군 지역에 해당한다. 철도는 운산선이 있으며 옛 북진군 지역에만 지나간다.
연 평균 강수량 1,400mm로, 북부 지방에서는 손꼽힐 만큼 강수량이 많다. 이름값답게 구름이 많은 듯 하다.
아울러 구한말에 설치된 운산수력발전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력발전소이기도 한데, 500kW급으로 당시에는 세계적으로도 최첨단 대용량 발전소였는데 역시 오로지 운산 금광 채굴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구글 맵스에서는 운산으로 치면 안나오고 북진로동자구라고 쳐야지 나온다.
기후는 한반도 북부에 위치한 곳답게 겨울이 매우 추우며, 비공식적으로 1916년 12월 26일 관측된 '''-37.6 °C'''의 기록이 남아있다.
4.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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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산면(雲山面)
- 관할 동 : 읍내(邑內), 계림(桂林), 송현(松峴), 용연(龍淵), 용포(龍浦), 용흥(龍興), 입석상(立石上), 입석하(立石下), 제인상(諸仁上), 제인하(諸仁下), 조양(朝陽), 화옹(化翁)
- 군청 및 면소재지는 읍내동이다. 운산군의 읍면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북한에서 구읍리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 북진읍(北鎭邑)
- 동신면(東新面)
- 관할 동 : 이(利), 가(加), 마장(馬場), 성지(聖旨), 용호(龍湖), 이답(泥踏), 좌(佐)
- 용호동에 고구려고분이 있다.
- 성면(城面)
- 관할 동 : 초하(草下), 고성상(古城上), 고성하(古城下), 남산상(南山上), 남산하(南山下), 연봉상(延峰上), 연봉하(延峰下), 응봉(鷹峰), 초상(草上)
- 위연면(委延面)
- 관할 동 : 답하(畓下), 답상(畓上) 상원(上院), 엄상(嚴上), 엄하(嚴下), 용두(龍頭), 우간(牛間), 우상(牛上), 우중(牛中), 우하(牛下), 풍상(豊上), 풍중(豊中), 풍하(豊下)
- 온천이 있으며, 북한 행정구역상 운산군 소재지.
5. 출신 인물
6. 기타
한국전쟁 초기 북진과정에서 중공군과 미군이 최초로 접전하여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곳 중 하나이다. 여기서 미군 제1기병사단 제8기병연대가 중공군과 격렬하게 싸웠고 패퇴한 전장으로, 연대의 사상자가 절반 이상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미군 유해가 대략 1천 495구 쯤 있다고 추정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