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동
1. 개요
서울특별시 광진구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법정동.
북쪽에는 아차산을 경계로 구리시 아천동, 동쪽과 남쪽에는 한강을 경계로 강동구 암사동, 천호동, 송파구 풍납동, 서쪽으로는 구의동과 접하고 있다.
자양동, 구의동과 더불어 광진구에서 한강과 직접 접하는 지역 중 하나로 5호선 및 천호대교와 광진교를 통해 강동구, 천호대교와 올림픽대교를 통해 송파구와 접한다. 서울특별시의 대표적인 부촌이자 고급 주거지역으로, 한강변에 힐스테이트, 워커힐아파트, 자이, 현대아파트 등 중대형 아파트 단지들이 많이 있다. 학교로는 양진초, 양진중[2] , 광남초, 광남중, 광남고, 광장초, 광장중, 장로회신학대학교[3] 가 있다. 광진교 근처에는 예스24 라이브홀이 있다. 그랜드 워커힐 호텔, 비스타 워커힐 호텔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 워커힐호텔을 지나자마자 바로 구리시에 해당한다. 서울 버스 광진01이 활약하는 동네이기도 하다. 그 버스의 종점에 광진정보도서관이 있다.
2. 동명 유래 및 역사
삼국시대에는 한강 유역을 두고 삼국이 다투는 바람에 현재의 광장동 지역은 자주 전쟁터가 되었고, 또 그만큼 자주 소속국가가 바뀌었다. 참고로 현 서울특별시 전역이 백제, 고구려, 신라에 모두 번갈아 편입되었던 바 있는데, 당시에는 서울 지역을 장악하려면 광장동 장악이 필수적이었다.
광장동 북쪽 아차산 중턱에 아차산성이 있었는데, 백제가 하남위례성에 있을 때 수도 북쪽 방비를 맡는 중요한 성이었다. 그 후 고구려가 남진 정책을 취할 때, 아차산성을 먼저 점령하여 위례성을 압박했고, 개로왕이 아차산성 전투에 나섰다가 패배하여 죽은 바 있다. 결국 백제는 수도 바로 앞까지 경계가 밀린 상황에서 웅진으로 피란천도를 하게 되었다.
신라 진흥왕 대에는 신라의 지역이 되었고, 고구려 영양왕 대에는 온달이 고토수복을 위해 아차산성 전투에 나섰다가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이런 이유로 광진구의 마스코트는 평강공주와 온달이 된 것이다. 개로왕과 온달 같은 거물들이 죽은 곳이 똑같이 광장동이니 삼국시대에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는지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양주군 읍치(관아 소재지)가 광장동에 있었다. 이때는 광나루도 양주의 나루라고 하여 양나루, 한자로 양진(楊津)이라 하였다. 현재도 양진초등학교와 양진중학교 같은 교명으로 남아있다.
남경이 설치되기 전까지는 광장동이 서울 북부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에 수도가 한양으로 정해지면서 현 종로구가 도심이 되기 전까지는 광장동이 종로구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이후 한양군이 수도가 되며 한성부가 되었고, 양주군 읍치는 현 양주시 고읍동 일대로 옮겨갔다. 광장동은 하루아침에 촌구석으로 전락...
조선시대에는 광주(廣州)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나루, 혹은 강폭이 넓은 나루라고 하여 이 곳의 나루터 이름은 광(廣)나루, 한자로 광진(廣津)이라고 불렸다. 광진 바로 앞에 있는 마을은 광진리로 불려왔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의리(壯儀里)와 통합되어 광장리가 되었다.
원래 경기도 양주군 고양주면[4] 광진리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의리와 통합되어 광장리가 되어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에 속하였다. 1949년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성동구 광장동이 되었다.
6.25 전쟁 때에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현재 아차산성 발굴지에서 한국전쟁 당시 사용했던 참호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1995년 광진구가 분리될 때 광장동의 옛 지명인 광진이 구명으로 채택되었고, 광장동은 이에 속했다. 광진이 지명으로 채택 안 됐으면 오히려 광진구가 성동구청 소재지라는 이유로 성동구로 남고 지금의 성동구가 다른 이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3. 환경
북쪽 아차산과 남쪽 한강공원으로 인해 다른 동네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워커힐로는 봄철 벚꽃으로 유명하다.
천호대로를 기준으로 주민센터가 있는 북쪽 지역은 광장초, 광장중을 중심으로 빌라들이 모여있다. 장로회신학대학교가 위치해 있고 아차산으로 올라가는 입구라 등산객들이 많이 찾아 유동인구가 많으며 이를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해 있다. 서울버스 광진01이 활약하는 광진정보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유흥업소들이 많다.
성동광진교육청 관할지역에서는 가장 학군이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몇몇 학생들은 강동구에서도 올 정도이다. 특히 광남고등학교가 인근 지역 학생들이 많이 선호하는 학교인데, 특이하게 광남고는 사립이 아닌 공립인데도 인기가 많다는 것이다.
광장동은 서울특별시의 대표적인 부촌이다. 그 시초는 그랜드 워커힐 호텔 바로 옆의 워커힐아파트로, 이 아파트는 한때 강북 지역에서 가장 비쌌던 아파트이다. 또한 한강을 끼고 아파트 단지가 대규모로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5] 이런 이유로 중산층들과 상류층들이 모여 살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강남 지역 못지 않게 사교육 수요가 많고, 구의동에서 광장동까지 학원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학군이 좋아진 것이다. 광남유치원부터 초중고까지 근처에 있고 유해환경이 없다시피한 점도 큰 매력 요인이다.
4. 교통
수도권 전철 5호선 광나루역이 있다.
강변북로, 천호대로가 있고, 천호대교를 통해 천호동과 이어진다. 아차산로를 통해 동서울터미널, 구리시와 이어진다.
강동구, 송파구나 하남시, 성남시 등으로 가는 버스들은 특이하게 올림픽대교는 잘 안 가고 천호대교를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광장동으로 많은 버스들이 모여든다.
아차산로를 통해 구리시, 남양주시로 가는 버스도 많이 모여든다.
마을버스로 서울 버스 광진01이 광진정보도서관과 워커힐아파트 사이를 운행한다. 구의역과 강변역으로 갈 수 있다.
5. 아파트
- 서울아파트
- 청구건설 광장청구 - 1996년 7월 입주 654세대
- 금호산업 광장금호베스트빌 - 2001년 6월 입주 242세대
- 극동건설 광장극동1차[6] - 1985년 9월 입주 448세대
- 극동건설 광장극동2차 - 1989년 3월 입주 896세대
- 삼성물산 광장삼성1차 - 1987년 12월 입주 165세대
- 삼성물산 광장삼성2차 - 1989년 2월 입주 195세대
- 신동아건설 광장신동아파밀리에 - 2007년 10월 입주 302세대
- 연세건설 연세리버빌6차 - 1997년 8월 입주 19세대
- 연세건설 워커힐리버빌 - 1997년 11월 입주 18세대
- 유진기업 유진스웰 - 2011년 2월 입주 52세대
- 현대산업개발 광나루현대 - 1996년 4월 입주 380세대
- 현대산업개발 현대리버빌 - 1997년 4월 입주 38세대
- 흥화건설 흥화빌라트 - 1998년 5월 입주 19세대
- 대우건설 워커힐푸르지오 - 2013년 8월 입주 200세대
- 신성건설 워커힐팰리스[7] - 2005년 9월 입주 48세대
- SK건설 워커힐아파트 - 1978년 11월 입주 576세대
- 현대건설 광장현대3단지 - 1990년 10월 입주 1,056세대
- 현대건설 광장현대5단지 - 1989년 4월 입주 581세대
- 현대건설 광장현대8단지 - 1995년 3월 입주 537세대
- 현대건설 광장현대9단지 - 1999년 4월 입주 437세대
- 현대건설 광장현대파크빌10차[8] - 2000년 9월 입주 1,170세대
- 현대건설 광장현대홈타운11차 - 2003년 11월 입주 159세대
- 현대건설 광장현대홈타운12차[9] - 2004년 10월 입주 119세대
- 현대건설 광장힐스테이트[10][11] - 2012년 3월 입주 453세대
- GS건설 광장자이 - 2008년 12월 입주 122세대
- 포스코건설 상록타워 - 1997년 1월 입주 200세대
6. 방송
-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26회(2019.05.25) - 아차산생태공원과 아차산, 떡케이크 집, 산나물 맛집[12] , 광진교가 나왔다.
- 한끼줍쇼 145회(2019.10.02) - 워커힐호텔과 워커힐아파트가 나왔다.
- 창모의 광장동에서 노래에서도 이 동네가 언급된다.
ㄴ광장동에서 앨범 커버에서 행정 코드가 나온다.
[1] 2021년 1월 주민등록인구[2] 양진초와 양진중은 방산업체였던 대동화학 공장이 있던 자리이다. 대동화학의 경영난으로 거평그룹으로 인수되었다가 초등학교 부지로 바뀌면서 2005년 개교했다.[3] 근처에 아차산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4] 양주의 옛 읍치가 있던 곳이라는 뜻[5] 광남고 근처 '현대'가 붙은 아파트가 즐비한 곳은 원래 밭과 쓰레기 매립지였고 모토로라,대동화학, 한국화이자, 대한제지,국제약품 등의 공장지대였다. 현대건설이 1980년대 중반부터 10개의 아파트 단지를 잇따라 건설했다. 극동, 삼성, 청구, 강변우성 등 현대아파트 주변의 4개 단지 2712가구를 포함하면 이 일대 아파트는 자그마치 1만 가구가 넘는다. 그중 현대아파트의 시세가 가장 높다. 현대건설이 이곳을 압구정 현대아파트 대단지의 명성을 이어갈 곳으로 보고 설계와 시공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다. #. [6] 극동아파트 자리는 과거 대한제지 공장부지였다. 그 흔적으로 아차산로 건너편 대한제지 본사가 있다.[7] 구 신성미소지움[8] 구 모토로라 공장[9] 구 국제약품[10] 구 한국화이자 공장[11] 광장동 현대14차[12] 지금은 사장님이 방송 출연 후 얼마 뒤 보은군으로 떠나서 없고 중국집이 들어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