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용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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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의 초중반부 주인공이자 조선의 첫 국왕. 배우는 김무생.
역사 속에서 최영이 주도한 제2차 요동 정벌을 위해 위화도에 주군하고 있는 모습으로 첫 등장했고, 이후 우왕의 진군을 재촉하는 어명을 받고도 이를 전달한 내시 부사 김완을 잡아들이고는, 위화도 회군을 진행한다. 결국 최영을 제거한 후 정권을 장악하고 결국엔 정도전 등의 도움으로 조선을 건국하였다. 어느 정도 고뇌하는 모습도 보이지만[1][2] 처음부터 단호하게 새 왕조 창업의 야심을 품은 인물로서 등장하며 권력을 잡고 개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왕을 겁박하는 권신으로서의 모습도 보여준다. 당장 1화의 위화도 회군 신에서 새 왕조의 기회라며 결심을 다잡는 장면이 있고 이후 공양왕을 옹립할 때는 왕이 되기 싫다며 애원하는 공양왕을 직접 찾아가 반쯤 협박해서 왕위에 앉게 하고 정몽주 사후 동맹을 위해 찾아온 공양왕에게 나 없어도 잘하지 않았냐며 비꼰다. 위화도 회군 직후 최영을 체포할 때에는 카리스마와 인간적인 고뇌를 함께 보여주었다. 참모이자 지우인 정도전에게는 자상하고 따뜻한 면을 보여주는 대인배형 정치가이며 심지어 정적이 되어버린 정몽주조차 자신의 위험을 감수한 계략을 써가며 포섭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3] 후처인 신덕 왕후를 매우 총애하다보니 그 소생의 자식들도 매우 총애하지만 본처 신의 왕후 소생의 장성한 아들들에게는 다소 엄하게 대하는 면이 있었는데 이런 태조의 태도로 인해 신의 왕후 자식들에게 반감을 산다. 특히 막내 방석을 세자로 정하니 신의 왕후 소생의 아들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이는 뒷날 1차 왕자의 난의 원인이 된다.
즉위 이후로 옛 고려의 인사들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받아들이려는 포용력을 보인다. 그 때문에 정도전이 두문동의 유자들을 학살한 일을 두고 분노했을 정도. 왕씨 몰살 사건의 경우에는 사실상 용인하는 냉혹한 면도 보인다. 이후 왕건이 나타나 호되게 꾸짖으며 복수하겠다는 꿈을 꾸고 괴로워한다. 한편으로는 정도전에게 곱사춤을 추게 하고[4] 술자리에서 대신들이 죄다 취해서 바닥에 널부러져 자는 가운데 정도전에게 나라를 부탁하는 모습도 보였다.
신덕왕후의 사후 상심이 커 무리하다가 병상에 눕고,[5] 이것이 이방원파와 정도전파의 대결의 신호탄이 되고 만다. 이방원의 반란 당시엔 점차 몸을 회복해가는 단계였으나 자식들과 사위, 그리고 정도전을 잃게 되어 비탄에 잠기게 된다. 결국 절망 끝에 둘째 아들 이방과에게 보위를 물려주게 되고[6] , 그나마 남은 경순 공주마저 속세에 뜻을 잃고 출가하게 되자 더욱 절망하게 된다. 이후 왕자의 난을 주도한 이방원이 찾아오자 맹렬한 분노를 드러낸다. 그렇게 계속 이방원과 갈등을 빚는데 이 때 '''"뚫어진 입이라고 말은 그럴싸하게 하는구나! 이 못된 놈, 금수 같은 놈!!"이라고 고함을 지르며 문안을 온 이방원의 머리에 벼루를 집어던져서 이방원의 정신줄을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어검! 내 어검을 가져 오라!'라며 펄펄 뛴다.'''
참고로 이 장면 이전에 태조는 경순공주의 출가를 직접 참관하고 오는 길이였다. 이 때 경순공주는 아버지인 태조에게 자신의 삭발을 맡겼고(정확히는 긴 머리의 첫단을 자르고 뒤로 물러나지만) 결국 태조가 이 청을 들어주어서 정말 기분이 말로 표현하기 불가능한 상황이였다.[7]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골육 상쟁의 당사자인 이방원이 찾아와서 양위는 안 되니, 아우들을 죽인 것은 모두가 사직과 왕실을 위해서는 피치 못할 일이었다느니 하며 속을 뒤집어 놓으니 그 다음은 안 봐도 비디오.... 하지만 여기서 이방원은 벼루에 정통으로 머리를 맞아[8]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행동에 끝가지 정당성을 호소하며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한다. 두 사람의 불꽃튀는 연기 대결이 일품인 장면. 여기서 이방원의 대사를[9] 통해 작중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전성기의 이성계가 무패의 맹장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참고로 이 장면은 나중에 정도전에서 정몽주를 죽인 이방원에게 이성계가 머리에 물건을 던지는 장면으로 오마주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유동근이 이 장면에서는 맞는 입장이었는데 여기서는 던지는 입장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후 이방원의 아내 민씨가 다과를 만들어오자 발로 걷어 차버리고 다시는 내 앞에 띄지 말라고 일갈한 뒤 가버린다든지[10] 이방원의 명을 받은 이천우가 이성계의 출타를 막자 그 자리에서 뺨을 때리거나,[11]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냐면서 정종에게 이방원을 도모하도록 부추긴다든지 하는 장면들이 있다. 이 때 민씨가 시아버지의 박대를 견디지 못하고 분함에 못 이겨 소리를 지르는 장면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의동생 이지란이 방원에게 협력한 사실을 알고 분노하지만 이지란이 그것이 이성계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란 사실을 알고 자책하다가 이별의 편지를 남기고 떠나가자 더욱 상심하게 된다.
그 뒤 이방원이 세자로 책봉되자 격하게 반발하고, 즉위할 기미까지 보이자 거부의 뜻을 보이고 무학대사가 있던 절에 머무르다가 끝내 이방원의 즉위 소식을 접하고는 이제까지 뒷전에 물러난 채 고집을 부리던 것과는 다르게 본격적으로 이방원 타도를 실행하고자 금강산을 거쳐 자신의 고향인 동북면으로 이동한다. 도중에 전부터 이방원파 타도를 위해 암약해오며 세력을 키우던 조사의와 만나고, 서로 손을 잡아 그들 세력의 수장으로 군림하게 된다. 그렇게 이방원 타도를 위한 물밑 준비가 갖춰져가는 가운데 태종이 보내는 차사들을 처음에 온 박석명만 살려 보내주고 나머지는 죄다 죽여 버리며 격렬한 거부감을 표시한다.[12] 어미 소와 송아지를 끌고 소장수 행세를 하며 찾아온 박순 만은 오랫동안 자신을 모신 그 조차 방원의 명을 받아 차사로 왔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도 부모 자식의 정을 내세운 그의 설득으로 마음이 살짝 흔들려 그냥 쫓아내 버린다. 그러나 박순은 얼마 못 가 조사의에 의해 살해당한다.[13] 끝내는 조사의와 함께 난을 일으키고, 태종이 친정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발견하는 즉시 참해버리라 명한다.
그러나 관군에게 크게 진 이후 이숙번 등에게 함흥이 장악당한 채 분노를 곱씹다가 무학 대사의 설득으로 개경으로 돌아오게 된다. 미리 준비를 하여 마지막으로 이방원을 활로 쏴 죽이려 하였고 역시 술자리에서 이방원이 자신에게 잔을 올리는 즉시 철퇴로 내리치려 하였으나 모두 하륜의 기지로 실패한다. 하륜이 불상사가 생길 걸 대비해 태조을 맞는 자리에 큰 기둥을 세워놔 태종이 화살을 피해 몸을 숨길 수 있었으며,[14] 술자리에선 태조가 태종에게 "임금이 따라 주는 술 한 잔 받고 싶다"며 소매 속으로 손을 넣는 걸 보고 위험하다 느껴 아들이긴 해도 왕인 태종이 직접 술을 올리는 건 예법이 맞지 않다며 내관을 시켜 술을 올려야 한다고 했다.[15] 이때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수랏상을 철퇴로 내려치고 철퇴를 쥔 채 분노에 몸을 떨다가 "'''천운이로고... 하늘이 시킨 일이로구나. 이제 더는 어찌할 수가 없구나... 과인이 이리 하여도 막지 못하는 것을 어느 누가 막으랴...'''"라며 탄식하는[16] 태조의 모습과 이를 보고 동요하거나 피하시라며 고함을 지르는 신료들에게 "닥쳐라!" 라며 일갈하는 태종의 모습은 참으로 명장면.. 그 전까지의 연이은 설득들로 마음이 흔들린 것도 있어서인지 모든 걸 체념하고 이방원에게 술을 따라 주면서 그를 왕으로 인정한다. "이 술은 아들에게 주는 술이 아니라 이 나라 임금에게 주는 술"이라면서.[17]
이 시점에서 이성계는 단순히 감정싸움이나 정치적 대립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현실과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작중에도 묘사됐지만 이성계는 왕씨 몰살을 저지르면서 대중에게 그리 호의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1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번과 이방석이 살해당했고, 이방간은 괜히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해 귀양갔다. 조사의의 난 시점에서 왕이던 정종 이방과는 이미 자신의 왕위를 이방원에게 내주면서 태종을 대신해 왕이 될 아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과정이야 어쨌든 이방원은 왕의 그릇에 적합한 인물로서 위태롭던 왕권을 굳건히 다졌으니 자신이 계속 이방원과 반목한다면 조선이라는 국가가 급속히 멸망할 수 있었으니까. 이방원 역시 그렇게나 피를 보며 왕위에 오른 이유가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고 안정시키기 위해서였으니 직접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나 조선이라는 국가의 보존이 중요하다는 이해관계가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후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절에서 주로 기거하다가 환궁, 아들과 화해한다. 이것이 용의 눈물에서도 레전드로 손꼽히는 장면 중 하나인 태종 댄스(?)이다. 태종이 곤룡포를 입고 태조 앞에서 눈물 콧물을 쏟으며 '''"아바마마, 소자를 보시옵소서! 소자가 춤을 잘 추옵니다!!!!"'''하며 춤사위를 펼치자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보던 태조도 '''"주사아아아아앙!!! 그만하시구려, 그만!!!"''' 하며 태종을 만류하고 이제 모든 지나간 원망 다 치우고 손자들 재롱이나 보며 살겠노라며 사실상 태종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선언하는데 두 연기 거장의 감정선 폭발이 아주 진국인 장면이다. 춤을 추기 전에 태종은 태조의 앙상해진 다리를 주무르며 "많이 야위셨다"고 하는데, 한때 너무나 강력한 벽으로 존재했던 태조의 힘없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자신이 했던 행위가 얼마나 그를 가슴 아프게 했는지 뉘우치고 사죄의 의미로 국왕의 체면 따위 벗어던지고 어린아이처럼 춤을 춘다. 춤을 마친 태종이 어린아이처럼 태조에게 기어가 안겨 오열하고, 그 태종을 말없이 토닥여주며 역시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눈물 없이 보기 힘든 장면이다.[18]
이후엔 자신과 기질이 비슷한 세자 양녕을 총애하며 손자에게 옛이야기 들려주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양위파동을 일으킨 태종에게 내 벌주를 받으라며 장난섞인 말로 주안상을 대접하기도 했다. 아들 태종과 며느리 원경 왕후, 그리고 민씨 형제들의 갈등을 알게 되고, 이로 인해 시끄러워 질 것이라 태종에게 미리 얘기를 듣지만 딱히 자신이 뭘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라 묵과하고 양녕을 걱정한다.[19] 이즈음에 이르러서는 신덕 왕후, 이지란, 정도전, 무학 대사 등 가까운 사람들이 다 먼저 떠나버려 외로움에 사무친 노년을 보여준다. 때문에 성석린 같은 국초부터 함께한 구신 등이 일이 있어 방문하면 공무 차 온 것임을 알면서도 굉장히 반긴다.
이후 노환으로 인해 아들 태종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20] 악화일로로 치달아 죽음을 앞두게 된다.
임종 직전 꿈에서 무학 대사와 정도전, 이지란, 신덕 왕후와 그녀의 두 아들과 딸, 사위가 그를 맞이하자 놀라면서 반가워하지만(정작 신의 왕후라던가 진안 대군 이방우는 안 나왔다)[21] 최영, 우왕, 창왕, 공양왕 등 생전 이성계에 의해 원통하게 죽은 이들도 나타나자 소스라치게 놀란다[22] . 꿈에서 깨어난 후 자신이 걸어온 길이 한때 미워하던 태종과 똑같다는걸 느꼈는지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담담히 알리며 아들 태종과 원경 왕후 내외에게 더 이상 피를 보지 말라고, 그 업이 다 돌아오게 되는 것이며 자신처럼 피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는 말을 끝으로 눈을 감는다.
그가 눈을 감자 태종이 그의 시신을 안고 울부짖으며 이성계의 길고 길었던 삶은 126회에서 막을 내린다.
용의 눈물의 완성도와 더불어 김무생의 연기력에 힘입어 유동근의 이성계가 나타날 때까지 근 20년간 이성계하면 김무생이 떠오르게 하는 코드로 자리 잡게 된다. 물론 지금까지도 김무생의 이성계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고. 사실 김무생은 1983년에도 조선왕조 오백년에서 이성계 역을 맡아왔기 때문에 유동근이 이성계 역을 맡기까지 30년 넘게 김무생의 이미지가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었던 것. [23] 특히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금도 생생한 것이 김무생의 그 굵고도 카랑카랑한 발성으로, 감정에 따라 때때로 터져나오는 쇳소리는 그야말로 피터지는 분노가 무엇인지를 그대로 소리로 옮겨놓은 수준이며, 반대로 차분한 톤으로 말할때 역시 선굵은 발성으로 백전노장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최고권력자의 연륜을 가감없이 만끽할 수 있었다. 김무생 이성계의 후계자로 공인받아가는 유동근 이성계 역시 유동근의 강렬한 발성이 한 몫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만큼 이성계라는 캐릭터는 완벽히 표현하기 위해 소화해야 하는 감정연기의 폭이 매우 넓다는 점을 알 수 있다.[24]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 이방원에 대해 고집불통인 모습을 보인다는 시청자들도 있다. 사실 방원이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저지른 일들을 보면 정상적인 반응이긴 한데, 막상 방원이 이성계 앞에선 상당히 저자세로 공손하게 나오고 그에게 인정받는 것을 결코 서두르려 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이쪽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는 절대 안 돼!!"'''로 정리되는 반응 일변도이기 때문에 이방원에게 감정이입하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답답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 그러나 중장년층 세대는 오히려 이성계에게 감정이입을 했으며 젊은 시청자들 중에서도 아들과 사위를 잃고 통곡하는 이빨 빠진 호랑이 같았던 모습에 동감하는 비율이 상당했다. 아무리 잘못했다고, 죄를 달게 받을 것이라고 용서를 구하지만 귀여워하던 막내 아들들을 죽이고 딸을 청상과부로 만들고, 딸은 아예 비구니가 되어 남은 평생을 보냈다. 그래서 이방원에 대해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냐면서 이러한 이성계의 노여움이 당연한 것이라고 하는 편. 124화에서 양녕이 사신단을 이끌고 명으로 떠나기전 이성계를 찾아가 문안을 여쭈는데 궐밖에 나가 술마셨다 혼난 이야기를 하다 똑같이 궐밖 나다니며 말썽을 피우던 방석과 방번을 떠올렸으나 양녕 앞이라 말을 삼키는데, 나이들어 너무나 쇠약해진 모습과 맞물려 정말 슬퍼 보인다.
이런 모습 덕분에 용의 눈물의 종방 이후 방영된 연예 대상 프로그램에선 고집이 센 아이는 엉덩이가 예쁘다는 속설을 근거로 엉덩이가 예쁠 것 같은 캐릭터 1위로 등극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그러나 임종 직전의 꿈에 나타난 원혼들의 모습은 아들 이방원으로 인한 숱한 마음의 상처 속에서 말년을 보낸 이성계 또한 그렇게 원망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통렬한 각인이라 볼 수 있다. 마지막에 태종 이방원에게 남긴 유언을 보면 마지막 순간 스스로도 그 사실을 깨닫게 된 듯. 자신처럼 피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는 그의 유언은 자신 이상으로 피비린내 나는 길을 걷고 있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안타까움이 담긴 마지막 연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용의 눈물이 조사의의 난을 끝으로 막을 내릴 예정이었기에 본래 이방원과 함께 2대 주인공으로 자리 잡고 있었으나 용의 눈물이 인기에 힘입어 조선 태종의 치세와 죽음까지 방영이 연장되자 조사의의 죽음 이후로는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 이로 인해 용의 눈물 후반부 진 주인공은 이방원이 된다. 다만 이성계가 일방적인 페이크 주인공이 아니라 삼국지 연의의 유비와 제갈량처럼 유비가 이야기 전반부의 주인공이고, 그의 사후 제갈량이 후반부 주인공이 된 개념과 닮은 부분이 존재.
왠지 모르게 태종을 '''방원이'''라고 부른다. 1차 왕자의 난 후 태종이 주도했다는 사실을 듣고 '''아니 방원이가!!!'''라며 멘붕하는데, 사실 이때는 태종이 왕위에 한참 오르기 전이니 이름 석자로 대놓고 부르는 게 당연하다. 거기다가 이성계는 이방원의 아버지가 아닌가? 다만, 그 방원이가 왕이 된 후에는, 함흥차사를 재현한 에피소드에선 차사로 온 지신사 박석명에게 '''하, 방원이 놈이 보내서 왔느냐?'''라고 묻기도 한다. 차사는 '''방원이라면... 성상의 존함을 마구 부르시니 신하된 자로서 감당키 어렵사옵니다...'''라며 멘붕한다.(...) 왕조 시대에는 임금의 이름만큼 귀한 게 없어서 아예 한자를 봉인할 정도였으니 차사가 멘붕하는 것도 당연한 듯. 결국 이방원의 왕위를 인정한 후에야 비로소 주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다만, 태종실록을 보면 태종이 즉위한 뒤에 태상왕 태조가 태종을 '주상'이라고도 부르지만, 사가에 있을 때처럼 그냥 ''''너(汝)''''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이 쪽이 맞는 묘사일지도 모른다.[25] 그리고 작중 이방원은 왕실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이성계와 첨예한 갈등을 자주 빚어왔으니 이성계가 딱히 좋게 칭호를 해 줄 이유도 없다.
마지막으로 태종 이방원을 죽이기 위해 활과 철퇴를 준비하다가 철퇴를 한 번 허공에 휘두르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NG가 나서 철퇴 사슬이 끊어져 사슬만 달랑 남게 되었다.(...) 김무생 표 이성계의 몇 안 되는 개그적인 모습.
극중에서는 임종을 맞을 때 이방원을 비롯한 왕족들이 곁을 지켰지만, 실록에서는 태종 이방원이 옆을 지켜주다가 담이 심해진 이성계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이방원이 직접 청심원을 올렸으나 기력이 다 해 삼키지 못하며 세상을 떠났다고 나온다.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의 초중반부 주인공이자 조선의 첫 국왕. 배우는 김무생.
2. 작중 행적
역사 속에서 최영이 주도한 제2차 요동 정벌을 위해 위화도에 주군하고 있는 모습으로 첫 등장했고, 이후 우왕의 진군을 재촉하는 어명을 받고도 이를 전달한 내시 부사 김완을 잡아들이고는, 위화도 회군을 진행한다. 결국 최영을 제거한 후 정권을 장악하고 결국엔 정도전 등의 도움으로 조선을 건국하였다. 어느 정도 고뇌하는 모습도 보이지만[1][2] 처음부터 단호하게 새 왕조 창업의 야심을 품은 인물로서 등장하며 권력을 잡고 개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왕을 겁박하는 권신으로서의 모습도 보여준다. 당장 1화의 위화도 회군 신에서 새 왕조의 기회라며 결심을 다잡는 장면이 있고 이후 공양왕을 옹립할 때는 왕이 되기 싫다며 애원하는 공양왕을 직접 찾아가 반쯤 협박해서 왕위에 앉게 하고 정몽주 사후 동맹을 위해 찾아온 공양왕에게 나 없어도 잘하지 않았냐며 비꼰다. 위화도 회군 직후 최영을 체포할 때에는 카리스마와 인간적인 고뇌를 함께 보여주었다. 참모이자 지우인 정도전에게는 자상하고 따뜻한 면을 보여주는 대인배형 정치가이며 심지어 정적이 되어버린 정몽주조차 자신의 위험을 감수한 계략을 써가며 포섭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3] 후처인 신덕 왕후를 매우 총애하다보니 그 소생의 자식들도 매우 총애하지만 본처 신의 왕후 소생의 장성한 아들들에게는 다소 엄하게 대하는 면이 있었는데 이런 태조의 태도로 인해 신의 왕후 자식들에게 반감을 산다. 특히 막내 방석을 세자로 정하니 신의 왕후 소생의 아들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이는 뒷날 1차 왕자의 난의 원인이 된다.
즉위 이후로 옛 고려의 인사들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받아들이려는 포용력을 보인다. 그 때문에 정도전이 두문동의 유자들을 학살한 일을 두고 분노했을 정도. 왕씨 몰살 사건의 경우에는 사실상 용인하는 냉혹한 면도 보인다. 이후 왕건이 나타나 호되게 꾸짖으며 복수하겠다는 꿈을 꾸고 괴로워한다. 한편으로는 정도전에게 곱사춤을 추게 하고[4] 술자리에서 대신들이 죄다 취해서 바닥에 널부러져 자는 가운데 정도전에게 나라를 부탁하는 모습도 보였다.
신덕왕후의 사후 상심이 커 무리하다가 병상에 눕고,[5] 이것이 이방원파와 정도전파의 대결의 신호탄이 되고 만다. 이방원의 반란 당시엔 점차 몸을 회복해가는 단계였으나 자식들과 사위, 그리고 정도전을 잃게 되어 비탄에 잠기게 된다. 결국 절망 끝에 둘째 아들 이방과에게 보위를 물려주게 되고[6] , 그나마 남은 경순 공주마저 속세에 뜻을 잃고 출가하게 되자 더욱 절망하게 된다. 이후 왕자의 난을 주도한 이방원이 찾아오자 맹렬한 분노를 드러낸다. 그렇게 계속 이방원과 갈등을 빚는데 이 때 '''"뚫어진 입이라고 말은 그럴싸하게 하는구나! 이 못된 놈, 금수 같은 놈!!"이라고 고함을 지르며 문안을 온 이방원의 머리에 벼루를 집어던져서 이방원의 정신줄을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어검! 내 어검을 가져 오라!'라며 펄펄 뛴다.'''
참고로 이 장면 이전에 태조는 경순공주의 출가를 직접 참관하고 오는 길이였다. 이 때 경순공주는 아버지인 태조에게 자신의 삭발을 맡겼고(정확히는 긴 머리의 첫단을 자르고 뒤로 물러나지만) 결국 태조가 이 청을 들어주어서 정말 기분이 말로 표현하기 불가능한 상황이였다.[7]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골육 상쟁의 당사자인 이방원이 찾아와서 양위는 안 되니, 아우들을 죽인 것은 모두가 사직과 왕실을 위해서는 피치 못할 일이었다느니 하며 속을 뒤집어 놓으니 그 다음은 안 봐도 비디오.... 하지만 여기서 이방원은 벼루에 정통으로 머리를 맞아[8]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행동에 끝가지 정당성을 호소하며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한다. 두 사람의 불꽃튀는 연기 대결이 일품인 장면. 여기서 이방원의 대사를[9] 통해 작중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전성기의 이성계가 무패의 맹장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참고로 이 장면은 나중에 정도전에서 정몽주를 죽인 이방원에게 이성계가 머리에 물건을 던지는 장면으로 오마주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유동근이 이 장면에서는 맞는 입장이었는데 여기서는 던지는 입장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후 이방원의 아내 민씨가 다과를 만들어오자 발로 걷어 차버리고 다시는 내 앞에 띄지 말라고 일갈한 뒤 가버린다든지[10] 이방원의 명을 받은 이천우가 이성계의 출타를 막자 그 자리에서 뺨을 때리거나,[11]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냐면서 정종에게 이방원을 도모하도록 부추긴다든지 하는 장면들이 있다. 이 때 민씨가 시아버지의 박대를 견디지 못하고 분함에 못 이겨 소리를 지르는 장면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의동생 이지란이 방원에게 협력한 사실을 알고 분노하지만 이지란이 그것이 이성계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란 사실을 알고 자책하다가 이별의 편지를 남기고 떠나가자 더욱 상심하게 된다.
그 뒤 이방원이 세자로 책봉되자 격하게 반발하고, 즉위할 기미까지 보이자 거부의 뜻을 보이고 무학대사가 있던 절에 머무르다가 끝내 이방원의 즉위 소식을 접하고는 이제까지 뒷전에 물러난 채 고집을 부리던 것과는 다르게 본격적으로 이방원 타도를 실행하고자 금강산을 거쳐 자신의 고향인 동북면으로 이동한다. 도중에 전부터 이방원파 타도를 위해 암약해오며 세력을 키우던 조사의와 만나고, 서로 손을 잡아 그들 세력의 수장으로 군림하게 된다. 그렇게 이방원 타도를 위한 물밑 준비가 갖춰져가는 가운데 태종이 보내는 차사들을 처음에 온 박석명만 살려 보내주고 나머지는 죄다 죽여 버리며 격렬한 거부감을 표시한다.[12] 어미 소와 송아지를 끌고 소장수 행세를 하며 찾아온 박순 만은 오랫동안 자신을 모신 그 조차 방원의 명을 받아 차사로 왔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도 부모 자식의 정을 내세운 그의 설득으로 마음이 살짝 흔들려 그냥 쫓아내 버린다. 그러나 박순은 얼마 못 가 조사의에 의해 살해당한다.[13] 끝내는 조사의와 함께 난을 일으키고, 태종이 친정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발견하는 즉시 참해버리라 명한다.
그러나 관군에게 크게 진 이후 이숙번 등에게 함흥이 장악당한 채 분노를 곱씹다가 무학 대사의 설득으로 개경으로 돌아오게 된다. 미리 준비를 하여 마지막으로 이방원을 활로 쏴 죽이려 하였고 역시 술자리에서 이방원이 자신에게 잔을 올리는 즉시 철퇴로 내리치려 하였으나 모두 하륜의 기지로 실패한다. 하륜이 불상사가 생길 걸 대비해 태조을 맞는 자리에 큰 기둥을 세워놔 태종이 화살을 피해 몸을 숨길 수 있었으며,[14] 술자리에선 태조가 태종에게 "임금이 따라 주는 술 한 잔 받고 싶다"며 소매 속으로 손을 넣는 걸 보고 위험하다 느껴 아들이긴 해도 왕인 태종이 직접 술을 올리는 건 예법이 맞지 않다며 내관을 시켜 술을 올려야 한다고 했다.[15] 이때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수랏상을 철퇴로 내려치고 철퇴를 쥔 채 분노에 몸을 떨다가 "'''천운이로고... 하늘이 시킨 일이로구나. 이제 더는 어찌할 수가 없구나... 과인이 이리 하여도 막지 못하는 것을 어느 누가 막으랴...'''"라며 탄식하는[16] 태조의 모습과 이를 보고 동요하거나 피하시라며 고함을 지르는 신료들에게 "닥쳐라!" 라며 일갈하는 태종의 모습은 참으로 명장면.. 그 전까지의 연이은 설득들로 마음이 흔들린 것도 있어서인지 모든 걸 체념하고 이방원에게 술을 따라 주면서 그를 왕으로 인정한다. "이 술은 아들에게 주는 술이 아니라 이 나라 임금에게 주는 술"이라면서.[17]
이 시점에서 이성계는 단순히 감정싸움이나 정치적 대립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현실과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작중에도 묘사됐지만 이성계는 왕씨 몰살을 저지르면서 대중에게 그리 호의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1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번과 이방석이 살해당했고, 이방간은 괜히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해 귀양갔다. 조사의의 난 시점에서 왕이던 정종 이방과는 이미 자신의 왕위를 이방원에게 내주면서 태종을 대신해 왕이 될 아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과정이야 어쨌든 이방원은 왕의 그릇에 적합한 인물로서 위태롭던 왕권을 굳건히 다졌으니 자신이 계속 이방원과 반목한다면 조선이라는 국가가 급속히 멸망할 수 있었으니까. 이방원 역시 그렇게나 피를 보며 왕위에 오른 이유가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고 안정시키기 위해서였으니 직접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나 조선이라는 국가의 보존이 중요하다는 이해관계가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후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절에서 주로 기거하다가 환궁, 아들과 화해한다. 이것이 용의 눈물에서도 레전드로 손꼽히는 장면 중 하나인 태종 댄스(?)이다. 태종이 곤룡포를 입고 태조 앞에서 눈물 콧물을 쏟으며 '''"아바마마, 소자를 보시옵소서! 소자가 춤을 잘 추옵니다!!!!"'''하며 춤사위를 펼치자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보던 태조도 '''"주사아아아아앙!!! 그만하시구려, 그만!!!"''' 하며 태종을 만류하고 이제 모든 지나간 원망 다 치우고 손자들 재롱이나 보며 살겠노라며 사실상 태종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선언하는데 두 연기 거장의 감정선 폭발이 아주 진국인 장면이다. 춤을 추기 전에 태종은 태조의 앙상해진 다리를 주무르며 "많이 야위셨다"고 하는데, 한때 너무나 강력한 벽으로 존재했던 태조의 힘없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자신이 했던 행위가 얼마나 그를 가슴 아프게 했는지 뉘우치고 사죄의 의미로 국왕의 체면 따위 벗어던지고 어린아이처럼 춤을 춘다. 춤을 마친 태종이 어린아이처럼 태조에게 기어가 안겨 오열하고, 그 태종을 말없이 토닥여주며 역시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눈물 없이 보기 힘든 장면이다.[18]
이후엔 자신과 기질이 비슷한 세자 양녕을 총애하며 손자에게 옛이야기 들려주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양위파동을 일으킨 태종에게 내 벌주를 받으라며 장난섞인 말로 주안상을 대접하기도 했다. 아들 태종과 며느리 원경 왕후, 그리고 민씨 형제들의 갈등을 알게 되고, 이로 인해 시끄러워 질 것이라 태종에게 미리 얘기를 듣지만 딱히 자신이 뭘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라 묵과하고 양녕을 걱정한다.[19] 이즈음에 이르러서는 신덕 왕후, 이지란, 정도전, 무학 대사 등 가까운 사람들이 다 먼저 떠나버려 외로움에 사무친 노년을 보여준다. 때문에 성석린 같은 국초부터 함께한 구신 등이 일이 있어 방문하면 공무 차 온 것임을 알면서도 굉장히 반긴다.
이후 노환으로 인해 아들 태종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20] 악화일로로 치달아 죽음을 앞두게 된다.
임종 직전 꿈에서 무학 대사와 정도전, 이지란, 신덕 왕후와 그녀의 두 아들과 딸, 사위가 그를 맞이하자 놀라면서 반가워하지만(정작 신의 왕후라던가 진안 대군 이방우는 안 나왔다)[21] 최영, 우왕, 창왕, 공양왕 등 생전 이성계에 의해 원통하게 죽은 이들도 나타나자 소스라치게 놀란다[22] . 꿈에서 깨어난 후 자신이 걸어온 길이 한때 미워하던 태종과 똑같다는걸 느꼈는지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담담히 알리며 아들 태종과 원경 왕후 내외에게 더 이상 피를 보지 말라고, 그 업이 다 돌아오게 되는 것이며 자신처럼 피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는 말을 끝으로 눈을 감는다.
그가 눈을 감자 태종이 그의 시신을 안고 울부짖으며 이성계의 길고 길었던 삶은 126회에서 막을 내린다.
3. 캐릭터 평가
용의 눈물의 완성도와 더불어 김무생의 연기력에 힘입어 유동근의 이성계가 나타날 때까지 근 20년간 이성계하면 김무생이 떠오르게 하는 코드로 자리 잡게 된다. 물론 지금까지도 김무생의 이성계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고. 사실 김무생은 1983년에도 조선왕조 오백년에서 이성계 역을 맡아왔기 때문에 유동근이 이성계 역을 맡기까지 30년 넘게 김무생의 이미지가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었던 것. [23] 특히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금도 생생한 것이 김무생의 그 굵고도 카랑카랑한 발성으로, 감정에 따라 때때로 터져나오는 쇳소리는 그야말로 피터지는 분노가 무엇인지를 그대로 소리로 옮겨놓은 수준이며, 반대로 차분한 톤으로 말할때 역시 선굵은 발성으로 백전노장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최고권력자의 연륜을 가감없이 만끽할 수 있었다. 김무생 이성계의 후계자로 공인받아가는 유동근 이성계 역시 유동근의 강렬한 발성이 한 몫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만큼 이성계라는 캐릭터는 완벽히 표현하기 위해 소화해야 하는 감정연기의 폭이 매우 넓다는 점을 알 수 있다.[24]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 이방원에 대해 고집불통인 모습을 보인다는 시청자들도 있다. 사실 방원이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저지른 일들을 보면 정상적인 반응이긴 한데, 막상 방원이 이성계 앞에선 상당히 저자세로 공손하게 나오고 그에게 인정받는 것을 결코 서두르려 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이쪽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는 절대 안 돼!!"'''로 정리되는 반응 일변도이기 때문에 이방원에게 감정이입하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답답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 그러나 중장년층 세대는 오히려 이성계에게 감정이입을 했으며 젊은 시청자들 중에서도 아들과 사위를 잃고 통곡하는 이빨 빠진 호랑이 같았던 모습에 동감하는 비율이 상당했다. 아무리 잘못했다고, 죄를 달게 받을 것이라고 용서를 구하지만 귀여워하던 막내 아들들을 죽이고 딸을 청상과부로 만들고, 딸은 아예 비구니가 되어 남은 평생을 보냈다. 그래서 이방원에 대해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냐면서 이러한 이성계의 노여움이 당연한 것이라고 하는 편. 124화에서 양녕이 사신단을 이끌고 명으로 떠나기전 이성계를 찾아가 문안을 여쭈는데 궐밖에 나가 술마셨다 혼난 이야기를 하다 똑같이 궐밖 나다니며 말썽을 피우던 방석과 방번을 떠올렸으나 양녕 앞이라 말을 삼키는데, 나이들어 너무나 쇠약해진 모습과 맞물려 정말 슬퍼 보인다.
이런 모습 덕분에 용의 눈물의 종방 이후 방영된 연예 대상 프로그램에선 고집이 센 아이는 엉덩이가 예쁘다는 속설을 근거로 엉덩이가 예쁠 것 같은 캐릭터 1위로 등극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그러나 임종 직전의 꿈에 나타난 원혼들의 모습은 아들 이방원으로 인한 숱한 마음의 상처 속에서 말년을 보낸 이성계 또한 그렇게 원망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통렬한 각인이라 볼 수 있다. 마지막에 태종 이방원에게 남긴 유언을 보면 마지막 순간 스스로도 그 사실을 깨닫게 된 듯. 자신처럼 피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는 그의 유언은 자신 이상으로 피비린내 나는 길을 걷고 있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안타까움이 담긴 마지막 연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용의 눈물이 조사의의 난을 끝으로 막을 내릴 예정이었기에 본래 이방원과 함께 2대 주인공으로 자리 잡고 있었으나 용의 눈물이 인기에 힘입어 조선 태종의 치세와 죽음까지 방영이 연장되자 조사의의 죽음 이후로는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 이로 인해 용의 눈물 후반부 진 주인공은 이방원이 된다. 다만 이성계가 일방적인 페이크 주인공이 아니라 삼국지 연의의 유비와 제갈량처럼 유비가 이야기 전반부의 주인공이고, 그의 사후 제갈량이 후반부 주인공이 된 개념과 닮은 부분이 존재.
4. 기타
왠지 모르게 태종을 '''방원이'''라고 부른다. 1차 왕자의 난 후 태종이 주도했다는 사실을 듣고 '''아니 방원이가!!!'''라며 멘붕하는데, 사실 이때는 태종이 왕위에 한참 오르기 전이니 이름 석자로 대놓고 부르는 게 당연하다. 거기다가 이성계는 이방원의 아버지가 아닌가? 다만, 그 방원이가 왕이 된 후에는, 함흥차사를 재현한 에피소드에선 차사로 온 지신사 박석명에게 '''하, 방원이 놈이 보내서 왔느냐?'''라고 묻기도 한다. 차사는 '''방원이라면... 성상의 존함을 마구 부르시니 신하된 자로서 감당키 어렵사옵니다...'''라며 멘붕한다.(...) 왕조 시대에는 임금의 이름만큼 귀한 게 없어서 아예 한자를 봉인할 정도였으니 차사가 멘붕하는 것도 당연한 듯. 결국 이방원의 왕위를 인정한 후에야 비로소 주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다만, 태종실록을 보면 태종이 즉위한 뒤에 태상왕 태조가 태종을 '주상'이라고도 부르지만, 사가에 있을 때처럼 그냥 ''''너(汝)''''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이 쪽이 맞는 묘사일지도 모른다.[25] 그리고 작중 이방원은 왕실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이성계와 첨예한 갈등을 자주 빚어왔으니 이성계가 딱히 좋게 칭호를 해 줄 이유도 없다.
마지막으로 태종 이방원을 죽이기 위해 활과 철퇴를 준비하다가 철퇴를 한 번 허공에 휘두르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NG가 나서 철퇴 사슬이 끊어져 사슬만 달랑 남게 되었다.(...) 김무생 표 이성계의 몇 안 되는 개그적인 모습.
극중에서는 임종을 맞을 때 이방원을 비롯한 왕족들이 곁을 지켰지만, 실록에서는 태종 이방원이 옆을 지켜주다가 담이 심해진 이성계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이방원이 직접 청심원을 올렸으나 기력이 다 해 삼키지 못하며 세상을 떠났다고 나온다.
[1] 사료에도 나와있지만 회상으로 북벌을 고집하는 최영에게 간곡히 사불가론을 내세우며 반대했던 이야기들이 짧게 나온다.[2] 여기서도 최영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로서 사불가론을 회상하던 도중 마지막 부분에 단순한 회상이었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정말로 큰 소리로 '''대감!'''하고 외치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이윽고 뭔가 더 울분에 찬듯한 목소리로 말을 독려하며 달려나가는데 위화도 회군 당시의 이성계의 절박함과 최영에 대한 믿음과 안타까움을 보여줬던 장면.[3] 역사적 사실인 낙마 사건을 이성계가 정몽주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부러 꾸민 일로 각색하였다. 역사적 사실의 훌륭한 재해석의 사례 중 하나라 할 만하다. 또 후대의 작품인 정도전만큼은 아니어도 이 작품에서도 정몽주를 절실하게 원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이방원이 멋대로 정몽주를 처단하자 노발대발하며 칼을 빼드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4] 실록에는 옷을 벗겨서 춤을 추게 했다는데 방송 심의 때문인지 드라마에서는 등에 바가지를 넣고 꼽추를 흉내내는 정도로 순화되었다. 대신 나레이션으로 실록에는 이러이러하다고 되어있다고 보충설명을 한다. 어차피 명색이 유자들이니 정말 홀딱벗겼다는 수준은 아니고 그냥 속옷만 입고 춤추는 정도였을 것이다.[5] 실록에 기록된 무인정사 당시 태조의 건강이 나빴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대해 태종 세력에서 조작했다는 주장과 태조의 나이를 생각하면 진짜 건강이 나빴을거라는 주장이 대립.[6] 이때 눈물을 한 줄기 흘리면서 '''저 놈들 마음대로 세자 자리도 이 옥좌도 다 가져가라 하라...''' 라며 한탄섞인 말을 내뱉는다.[7] 이 장면 촬영 장소는 실제 사찰인 순천 선암사에서 진행했으며, 선암사 스님들이 엑스트라로 나왔다. 경순공주를 연기한 김나우는 실제로 불교신자였고, 삭발도 진짜로 했다.(김나우의 부모님까지 촬영을 참관하였다.)[8] 벼루 문서에도 나왔지만 문방구에서 파는 플라스틱 벼루가 아닌 진짜 벼루는 제대로 던지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흉기가 된다.''' 소현세자가 인조가 던진 벼루에 맞아서 죽었다는 야사도 있을 정도.[9] "소자가 저지른 죄는 천추에 씻을 길이 없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아버님, 양위만큼은 하지 마시옵소서. 아버님을 하늘로 알고 있는 자식이옵니다. 아버님이 누구시옵니까? '''이 나라를 창업하시고 대 요동정벌을 호령하셨으며 수많은 외적을 물리치신 분이시옵니다. 산천초목도 아버님의 위명 앞에는 고개를 숙이거늘''' 감히 정도전 따위가 왕권을 희롱하는 모습을 소자는 묵과할 수 없었사옵니다." 중간에 문맥이나 문법이 다소 맞지 않는 단어나 문장이 있는 것도 이방원 자신이 아버지가 던진 벼루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 정신이 거의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정말 의식을 부여잡고 쥐어짜내서 말하는 상황임을 감안하고 보면 더욱 리얼하게 와닿는다.[10] 사족이지만 과거 유투브에서 이 장면 올린 사람이 붙인 제목이 '''동양무술의 정수를 보이는 이성계'''였다. 민씨가 배꼽 정도 높이로 손에 든 약식 찬합을 그자리에서 높이차기로 걷어차버리는데 하늘 높이 붕 뜬 찬합이 나뒹굴지도 않고 그대로 바닥에 착지한다(...)[11] 이천우는 이성계의 형인 이원계의 아들이므로 이성계에게는 조카가 된다. 하지만 실록에서는 이성계의 출타를 막기는커녕 오만곳을 제맘대로 쏘다녔다.[12] 정확히 말하면 박순 다음, 마지막으로 차사로 갔던 성석린도 살았다. 다만 성석린이 갔을 때는 조사의 세력이 막 거병하기 직전으로 함흥 본궁에 반란군이 득실거리던 시점이라 겁에 질린 성석린은 스스로 차사임을 부정한 채, 제대로 말도 못 꺼내고 돌아와야 했다.[13] 이상의 함흥차사 관련 내용들은 모두 야사의 이야기들이다. 성석린은 함주에 간 적이 없고 박순은 함주에 가서 반란군 장수들을 설득하다가 조사의에게 죽었다.[14] 하륜이 반드시 아름드리 나무로만 골라 기둥을 만들라 하자 아버지를 성대하게 맞이하고 싶던 태종도 그건 좀 과하지 않나 하며 갸웃거렸는데 하륜은 이왕 태상왕께서 돌아오시는 자리인데 화끈하게 지르라며 부추긴다.[15] 종묘에서 열성조에게 임금이 제사를 드릴 때도 술을 따라 올리는 것은 집사가 맡아서 거행하고 임금은 그냥 절만 올릴 뿐이므로 태상왕이라 해도 임금이 직접 술을 올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였다.[16] 연려실기술 태조조 고사본말에 실린 야사를 각색한 것이다.[17] 원작인 세종대왕에서는 태종의 캐릭터가 그냥 야망 is 이방원, 이방원 is 야망이라 할만한 수준이라 아버지에 대한 효심은 거의 묘사되지 않고 대립각을 묘사하는 데 집중되어 있으며 훗날 여러가지 비위맞추기도 그냥 환심사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나온다. 이 장면도 모든 최후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이성계가 옛다 이게 네가 원하는거 아니냐 하며 옥새를 내던지자 태종이 그토록 갖고 싶었던 것인데 뭔가 얼떨떨한 나머지 덜덜 떨며 주울 뿐이며 화해의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18] 태조 역을 맡았던 김무생은 용의 눈물 종방연을 기념한 특집방송에서, 태조가 자신의 앞에서 춤을 추다 감정이 복받쳐 오열하며 안기는 태종의 등을 쓸어주는 그 장면에 대해 자신에게 울며 사죄하는 자식을 부모로써 어떻게 받아줄 것인가를 연출이나 작가도 제시해 주지 않았고 해당 장면에서 별다른 대사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엎드려 우는 태종의 등을 쓸어주는 것도 그 순간에 이렇게 해야겠다가 아니라 '''그냥 저절로 손이 나가서''' 그렇게 했다고, "역시 사상이고 이런 걸 다 떠나서 '피'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아울러 김무생은 태조 이성계가 보기에 태종 이방원은 태조 자신의 '''장점 뿐 아니라 단점까지 그대로 빼닮은 아들'''이었고 아들의 행동에서 숨기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을 눈 앞에서 보는 것 같아서 필요 이상으로 멀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고 감상을 밝힌 바 있다.[19] 이복 동생이 민무구,민무질의 탄핵을 주도했다.[20] 정종과 태종이 함께 아버지의 쾌유를 빌며 수계식을 하는데 보통 절에서 재가신도들에게 하는 것처럼 불 붙은 향으로 지지거나 승려들이 하는 것처럼 뜸 같은걸로 지지는 게 아니라 아예 팔에 굵직한 심지를 놓고 태우는 수준이다.[21] 작중 사망장면이 안 나온 무학대사는 1402년, 경순공주는 1407년으로 태조 이성계가 사망하는 직전해에 사망했다. 의형제인 이지란은 은둔한 암자에서 좌선한 상태로 합장을 한 모습으로 사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역사에서 기록된 사망년도는 1405년으로 이성계가 죽기 3년 전이다.[22] 마지막에 나온 정몽주는 이성계를 반기지도 원망하지도 않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있었다. 생전 둘의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고, 이성계는 그를 흠모했지만 정몽주로서는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킨 고려의 원수였다는 점을 표현한 걸로 보인다.[23] 사실 용의 눈물에 나오던 이때 당시 김무생의 실제 나이는 54살이었다.[24] 그 주변의 신료들은 설령 정도전(드라마)에서처럼 주인공급이라 해도 주로 정치적 선택과 대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가정사의 비중은 낮지만(정도전의 정도전도 가정사는 고작 정진의 출사 정도에 그쳤다.), 태조는 왕이다. 그의 정치행보에서 가정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며 그 가정사도 처절한 비극으로 흘러가니 당연히 감정연기의 요구레벨이 동시기 다른 인물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을수밖에 없다.[25] 아무리 왕실이라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고 아버지와 아들인데 칼같이 주상이라고만 하면 너무 삭막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애초에 이성계와 이방원은 왕족으로 태어난 사람들도 아니고, 특히 이성계는 일생의 절반이 넘는 세월을 무인으로 보낸 인물에 조선을 건국했을 때 이미 환갑이 다 된 장년이었고, 이방원이 청년이 되어서야 왕실이 되었는데, 왕실이랍시고 아들 이름도 안 부르는 게 더 어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