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1. 개요
네이버의 창립자다. 1967년 6월 22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으며 상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1992년 삼성SDS에 입사하였다가 1999년 네이버를 창업하게 된다. 즉, 삼성맨[7] 출신이다.
2. 경력
3. 여담
3.1. 창업 비하인드 스토리
1986년 명동의 고전음악감상실 '필하모니'에서 집회를 하던 대학연합서클 '샛별고전음악감상회'에 14기회원으로 가입, 다음 해 14기 회장을 역임했다. 그 해 겨울 서클음악회에서 오페리칼 '핸디맨:사랑의 수선공(연출:이우혁(11기, 소설 퇴마록 저자), 박병철(7기, Kist 이론물리학 박사, 번역가))'에서 주인공 핸디맨역을 맡아 열연했다. 졸업 후 서클의 1년 후배인 15기 이승하(당시 예명, 본명은 이영림)씨와 삼성동 공항터미널에서 결혼하여 서클커플이 되었다.
삼성SDS에 입사해 근무하던 중, 1993년 당시 영풍문고에서 근무하던 서클후배인 15기 조계환(고전음악 전문 감상가)씨의 '세상의 모든 단어 검색'서비스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은것으로 추측되는[10] 온라인검색서비스가 SDS 사내벤처프로젝트 공모에 채택되어 5년여의 시행착오끝에 기술적으로 구체화하고 발전시킨 개발에 성공하여 온라인포털검색사이트 네이버를 국내에 선보이게 되었다.
3.2. 동일인(총수) 지정
2017년 08월 14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네이버 관계자와 함께 방문, 김상조 위원장 등을 만나 네이버를 '총수 없는 대기업'으로 지정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결국 2017년 9월 3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네이버 주식회사의 총수로 지정하였다..
4. 기타 여담
- 대부분 오해하기 쉬운 점이 네이버 창업자 라서 주식 지분을 많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IT기업 창업주들이 가진 지분에 비해 상당히 적은 약 4%를 소유하고 있다. 또한 4,594,000주, 약 1.91% 정도의 라인 지분을 가지고 있다. 총 5.91%
- 그냥 은둔형이 아닌 완전히(!!) 은둔형 스타일 기업인이다. 은둔형 기업인으로 유명한 김정주, 이재웅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TV나 매체, 기사에서도 그의 얼굴이나 인터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심지어는 네이버 직원들조차도 한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라고. 이제는 좀 변해서 자주 나온다 디지털 G2시대, 우리의 선택과 미래 경쟁력 출연 영상.
- 이재웅과 꽤나 절친인 관계한 사이였는데 이미 대학시절부터 이웃사촌이었고 네이버가 사업초창기 당시 그저 그런 벤처기업 겸 포털사이트였을때 검색엔진 외주를 맡겨서 네이버를 먹여살리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네이버가 다음을 제치고 독보적인 1위 포털사이트가 되었고 다음은 2위 포털사이트로 전락했으니 호랑이 자식 키운셈이라 할 수 있겠지만. 위의 총수 지정 과정에서도 김상조 공정위원장의 설화(舌禍)가 있었는데, 이재웅은 이해진과 네이버를 옹호하며 김상조를 비판하였고, 김상조는 실수를 사과해야 했다.
- 이해찬 전 총리의 형인 이해진과는 동명이인이다. 공교롭게도 이 이해진도 삼성그룹에 근무했다.
- 2020년 3월 말, 연봉이 공개 되었는데 급여 약 5억 4000만원, 상여금 약 5억 6000만원, 기타 근로소득 약 1억 6000만원을 전부 합해 총 12억 3700만원을 2019년에 받았다. 한성숙 대표이사 사장 하고 비교하면 액수가 적은 편인데, 현재 대표이사가 아닌 것도 있지만 국정감사 당시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불출석 사유서를 인용하자면 대부분 시간을 정자동 본사에 있기 보다 출장을 가는 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