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

 




당시 이형호 군의 사진
1. 개요
2. 사건 발생
3. 사건 경과
4. 공개 수사
5. 경찰의 실책
6. 결말과 의혹
7. 기타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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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1년 1월 29일 당시 국민학교 3학년이었던 이형호 군이 유괴되어 3월 13일 한강 공원 잠실지구 인근 배수로에서 시체로 발견된 영구 미제 사건. 2007년에 개봉된 그놈 목소리가 이 사건을 토대로 제작된 것이다. 이 사건은 개구리 소년 실종·살인 사건,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과 더불어 3대 미제 사건이었는데,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밝혀지면서 개구리 소년 실종·살인 사건과 함께 '''재조명''' 받고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두 차례에 걸쳐 사건을 상세히 다뤘다.

2. 사건 발생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살던 이형호(1981년생, 만 9세, 3학년[1]) 군은 1991년 1월 29일 저녁에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모습이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리고 그날 밤 서울, 경기 말씨를 쓰는 30대 남자의 협박 전화가 걸려왔으며, 이는 44일 동안 60여 차례에 걸쳐 계속되었다.

3. 사건 경과


범인은 마치 각본이 있는 양 철저하게 움직였다. 협박 전화를 처음 걸고 이어서 경찰에 신고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전화를 걸어 ''''서초경찰서 형사입니다. 거기 있는 형사들 좀 바꿔주세요''''라는 말을 했고, 이를 수상히 여긴 강남경찰서 형사의 유도로 이형호의 의붓어머니[2]가 ''''가정집에 무슨 형사가 있나요?''''라고 말해 무사히 넘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범인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경찰에 신고했을 경우를 대비해 치밀하게 행동했다. 이형호의 아버지 이우실의 그랜저 승용차에 설치된 카폰으로 연락하면서 서울 시내 곳곳으로 불러내 몸값을 받아내려 했다. 김포공항 국내선 주차장 2구역에 차를 세운 뒤 차 열쇠를 꽂아놓고 바로 600번 공항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 범인은 정작 나타나지 않은 채 그날 밤 전화를 걸어 ''''뒷좌석에 누가 타고 있었습니다''''라는 변명(?)을 했다.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가 잠복해있었지만 트렁크에 타고 있었지 앞뒤 좌석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범인이 일부러 넘겨 짚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범인은 지하철 3, 4호선 충무로역 공중전화를 이용해 이우실의 카폰에 전화를 또 걸어 이번에는 대한극장 앞으로 불러냈고, 인근 제과점[3] 건너편에 차를 세운 후 제과점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라는 지시를 했다. 하지만 제과점은 문을 닫은 상태였고, 범인은 즉시 연락해 ''''제과점 문이 닫혔습니다. 근처에 치킨 센터는 열려있으니 그쪽으로 가시죠''''라고 말해 지루한 이동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범인은 이형호의 의붓어머니에게 ''''지금 누군가가 주변을 계속 얼쩡거리고 있네요. 경찰에 연락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계속 잡아 떼실 건가요?''''라고 협박했다. 당시 상황 역시 약속 장소 주변에 형사 여럿 잠복한 상태였지만, 모두 일반인이나 상인 등으로 변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역시 범인이 넘겨 짚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형호의 의붓어머니는 집요한 추궁에 삼촌이 같이 나간 것 같다고 말했고, 결국 경찰이 개입했음을 반 시인하고 말았다. 다만 마지막 통화에서 범인이 남긴 말을 보면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았다고 여긴 듯하다.
이에 범인은 직접 돈을 건네받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 은행 계좌를 개설해 돈을 받기로 한다.[4] 범인은 한일은행에 윤정수, 상업은행에 김주선이라는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한 뒤 특정 장소에 계좌번호를 적어둔 메모를 남겨 이우실이 그것을 보고 입금하도록 지시하는 이른바 '''무인 포스트 방식'''을 썼는데, 두 은행에 2천만 원씩 총 4천만 원을 입금하라는 지시를 했고, 이우실은 경찰과 상의하여 한일은행에만 입금을 했다.
그리고 한일은행 전산센터에 형사들을 파견해 인출 여부를 꼼꼼히 살피고 있었는데, 정작 범인은 뜬금없이 2월 13일 저녁 '''"아이에 대한 애착이 없군요. 형호 죽기를 바라죠?"'''라는 협박을 했고 '''"88 도로를 타고 가시다보면 서울교'''[5]'''라고 다리가 있습니다. 거기 밑에 철제 박스가 있고 메모를 돌로 눌러놨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인 줄 알고 잘 진행해주십시오."'''라는 최후 통첩을 했다. 메모의 종착점은 양화대교 인근 철제 박스였고, 이우실은 이곳에 가짜 돈이 든 봉지를 둔 채 떠났다. 주변에는 형사들이 잠복해 있었고, 잘하면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마지막 찬스였지만, 이번에는 무전기로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철제 박스의 위치를 혼동하는 바람에 범인이 돈을 집어갈 동안[6] 형사들은 우왕좌왕했다. 그날 밤 범인은 전화를 걸어 ''''가짜 돈이 잔뜩 섞여 있습니다. 형호를 되찾길 바라지 않는 것으로 알죠. 다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신 점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연락을 끊어 버렸다.
하지만 범인이 은행 계좌에서 돈을 빼갈 것에 대비하여 한일은행에 입금되었던 돈을 상업은행 계좌로 송금했고, '''드디어 2월 19일, 상업은행 상계동지점[7]에 한 남자가 나타나 인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은행원이 단말기에서 사고신고 계좌라는 문구를 보고 당황해하며 남자를 의심을 하자 발각된 것을 알아챘는지 남자는 다급하게 은행원에게 통장을 빨리 달라고 했고, 이후 나온 통장을 낚아채듯이 빼가지고 황급히 달아났으며, 당시 해당 지점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끝내 범인 검거에 실패하고 만다. 통장 개설 신청서와 메모지에는 지문이 전혀 없었고, 범인의 행방은 미궁 속에 빠져버렸다.

4. 공개 수사


범인의 마지막 통화로부터 1달이 지난 1991년 3월 13일 한강공원 잠실지구 인근 터널(일명 토끼굴) 옆 배수로에서 어린 아이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확인 결과 유괴된 이형호였고, 부검 결과 위에 남아있는 음식물이 실종 당일 친구네 집에서 먹은 음식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망 시점은 유괴된 직후로 추정되었다. '''이런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형호 군은 유괴 당일에 사망하였다.''' 범인은 44일 동안 형호 군이 죽은 줄도 모르는 형호 군의 가족들을 가지고 놀았다. '''다시 말해 애초부터 이형호를 살려서 돌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돈만 먹튀할 생각이었다.''' 유괴 당일에 살해해서 이미 아이가 죽은 상태에서도 뻔뻔스럽게 계속 금품 요구 및 협박 전화를 했다는 점에서 국민들로 하여금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범인에 대해서는 한국상업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며 다소 길게 대화를 나눈 은행원의 기억을 토대로 몽타주가 작성되었고, 그동안 이형호의 안전을 위해 비공개로 진행되던 수사는 유괴 사건이 살인 사건으로 바뀜에 따라 공개 수사로 전환되었다. 전국에 몽타주를 지명 수배한 뒤 여러 신고가 접수되었는데, "(시체가 발견된 곳 바로 옆에 있는) 잠실주공1단지에서 이형호와 20대 남자를 봤다"는 제보와 "한강공원에서 이형호와 20대 남자를 봤다"는 매점 상인들의 제보가 들어오면서 한때 수사에 활기를 띠기도 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 잠실주공1단지에 나타난 어린이와 청년은 이번 사건과 관련 없는 일반 주민으로 확인되면서, 수사는 서서히 미궁으로 빠지는 듯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반전이 일어났는데, 범인의 목소리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 성문 분석을 한 결과 이형호의 친인척 중에서 1명과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 그는 이형호의 생모 쪽 사촌동생인 이상재'''(가명)'''이며[8] 당시 만 29세였다.[9] 그는 이우실이 이혼할 당시 사촌 누나를 적극적으로 돕는 등, 이우실과는 사이가 굉장히 나빴던 데다 당시 무직 상태로 여기저기에 돈을 빌리고 다닐 정도로 자금 사정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범행 동기도 충분했다.
실제로 범인은 이형호의 친형[10]까지 들먹이면서 협박해왔고, 그 외에도 이형호의 조부가 자산가이므로 돈을 충분히 줄 수 있지 않냐는 등의 온갖 집안 사정을 먼저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90년대까지만 해도 어린이 유괴 사건이 기승을 부렸기에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낯선 사람을 함부로 따라가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하던 시기였다. 이는 사리분별이 어느 정도 가능한 9살의 이형호를 쉽게 데려갔으면서 집안 사정을 잘 아는 인물이 이상재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것.
유괴된 당일의 행적도 이러한 의심을 키웠는데, 방과 후 놀다가 시간이 흘러 저녁 무렵이 되자 다른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지만 이형호만이 유독 놀이터에 남아있었다. 이형호의 생전 모습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친구의 증언으로는, 이형호에게 왜 집에 안 가냐고 물으니 '엄마한테 혼난다'는 답을 했다고. 즉 이형호가 생모 쪽 친척인 이상재를 만나는 것에 대해 아버지와 계모의 눈치를 보아서 한 대답일 가능성이 높았고, 당시 한 청년이 놀이터에서 뒷모습만 보인채 계속 앉아있었다는 증언까지 나오면서 그가 곧 이형호의 행방을 캐내기 위한 감시자였을 가능성도 컸다.
여기에 더해, 범인이 개설한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계좌의 예금주 이름 역시 이상재의 주변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경찰은 이상재를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이상재는 서울의 공중 전화를 통해 협박 전화가 걸려온 날에 경주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당시 사용한 고속도로 통행 영수증을 증거물로 제시하였으며, 추가로 경주에서 묵었다는 여관 주인에게 이상재의 사진을 보여준 결과 당일 숙박했던 것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오직 한 가지만 나온다는''' 성문이 일치했던 분석 결과를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던 경찰은 보강 수사에 들어갔다. 우선 이상재가 경주에 있었던 건 맞지만, 그곳에서 서울의 공범한테 전화를 걸고 이걸 다시 이형호의 집에 연결하는 등의 방식으로 얼마든지 알리바이를 조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상재가 대학에서 전기 통신을 전공하였다는 점에서 그러한 기술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으며, 다른 날에 대해서는 기억을 잘 못하는 반면 유독 사건 발생 당시 협박 전화가 처음 걸려왔을 시점에 대해서만 뚜렷이 기억하고 여러 물증까지 확보하고 있어 알리바이를 조작했다는 심증이 짙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끝내 뚜렷한 증거가 확인되지 않아 이상재에 대해 무혐의가 확정되었고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5. 경찰의 실책


이 사건을 담당한 강남 경찰서는 범인을 검거할 결정적인 기회를 여러 차례 날렸다. 바로 위에서 말한 양화대교 철제 박스건 외에도 범인이 교보빌딩 앞으로 이우실을 불러냈을 때 인근 지하도를 나온 점퍼 차림의 20대 남자가 차를 유심히 살펴보자 이우실이 형사들에게 추적을 요구했는데, 경찰임이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머뭇거리다가 범인을 놓치는 결정적 실책을 범했다.
뿐만 아니라 은행 계좌로 돈을 입금했을 때도 범죄에 이용된 것임을 밝히는 문구만 넣었을 뿐, 은행 직원이 주도면밀하게 대처할 만한 문구를 넣지 않는 바람에 범인이 그대로 달아나버리기도 했다. 더구나 이 실책을 은행 직원에게 떠넘겼다고 한다. 또 시체 발견 직후 부검 결과 위에 남아있던 음식물이 잡곡과 나물이라는 것에 착안, 송파 및 강남 지역 보리밥 식당을 돌며 수사를 했는데, '''문제는 이형호가 실종 당일 친구 집에서 먹었던 게 바로 잡곡밥과 나물이었다는 것'''이다. 행적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괜히 헛다리만 짚은 셈이다.
더 놀라운 것은 저러한 상황을 상부에 아예 보고조차 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망신살을 샀다는 것.

6. 결말과 의혹


몇 차례 굵직한 제보가 접수되면서 사건이 해결될 듯 말 듯 했지만, 끝내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채 이 사건은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그러나 몇 가지 주목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방영된 내용이다.
1992년 3월 31일 첫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 첫 제1회 방송에서는 성분 분석 결과 범인이 1명으로 추정되었지만, 양화대교 철제 박스에서의 상황을 보면 석연치 않다는 점이 언급되었다. 철제 박스 위의 돈을 가져갈 때 범인이 1명이라면 스스로 운전을 하다가 차를 세우고 가져갈 수밖에 없는데, 사건 당시에는 정차한 차량이 한 대도 없었던 상황에서 돈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특히 올림픽대로갓길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갑자기 차량을 정차시킬 경우 교통사고 위험이 높다는 점에서 더욱더 범인이 1명이라는 데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때문에 당시 방송분에서는 범인이 2명일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즉 범인 2명 중 1명은 운전을 하고 나머지 1명이 조수석에 앉아있다가 팔을 길게 뻗어 돈을 낚아채갔다는 추측이다.
이것은 수사 과정에서도 인지된 부분이었으나, 성문 분석 결과와 일치하지가 않아 수사 혼선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4월 21일 다시 이 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성문을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미세하게 다른 점이 있음을 밝혀냈고, 결국 이 사건의 범인이 2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2011년 5월 21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800회를 맞이하며 당시의 사건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범인이 최소 3명 이상으로 전화를 걸어온 범인 외에 공범이 있고 이 사건을 주도한 장본인이 따로 있다는 것.'''
우선 이번에도 성문 분석을 여러 전문가에게 의뢰했는데, '''전화 통화 목소리는 모두 1명의 동일한 목소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일부 다르게 들리는 목소리가 있긴 했으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두꺼운 마스크를 쓰는 등의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졌다.[11]
주범이 직접 전화를 걸지 않고 타인을 시켜 협박 전화를 건 사실로 미루어볼 때 주범은 이형호와 면식이 있는 사이이며, 형호의 집안에 대해 정확한 지식은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은행원의 증언에 따라 만들어진 몽타주 속 인물과 실제 협박 전화를 건 인물은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목소리를 통해 범인의 하관을 분석한 결과 전화를 건 범인은 입에서 턱까지의 길이가 짧고 좌우로 잘 발달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 몽타주 속 인물은 입에서 턱까지의 길이가 길고 계란형 얼굴이었다. 음성 분석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전화를 건 협박범은 아나운서 같이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데, 몽타주 속 인물의 하관 구조로는 그렇게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범인이 '저희' 혹은 '우리' 등의 단어를 자주 사용한 점, 또한 앞서 말한 무인 포스트 방식에서 타인에게 메모지를 들키지 않고 오로지 이우실만이 메모지를 발견하게 하려면 때 맞춰 메모지를 배치하는 역할의 인물이 따로 있어야 앞뒤가 맞는다는 점, 이우실의 동선을 파악하는 감시 역할의 인물도 따로 있어야 범인과의 접선 과정이 제대로 진행된다는 점, 그 외 목소리 분석을 통한 심리 추정[12] 등이 근거로 제기되었다. 종합해보자면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결론만 내지 않았을 뿐이지, 최소한 이상재가 연루되었음을 은연 중에 암시한 듯.[13]
사건의 규모나 내용 면에서 다르긴 하나, 사건의 수법으로만 놓고 본다면 물 건너 일본을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인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에서 범인들이 쓴 수법이 이 사건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전화로 지시를 내렸다는 점, 무인 포스트 방식을 사용했다는 점이 유사한데, 범인이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에서 힌트를 얻은 건지는 알 수 없다.

7. 기타


  • 녹취분석연구소-탐사보도 세븐'이형호군 범인 30년 후 목소리 재현 가능성'인터뷰 https://cafe.naver.com/2ms/1303
  • 이형호의 아버지 이우실은 2011년 그것이 알고 싶다와의 인터뷰에서 "범인을 만나면 처벌보다도 왜 아들을 죽였는지를 물어보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사건 발생 이후 한동안 술에 의지하며 살고, 사업 실패를 겪는 등의 안타까운 삶을 겪었지만, 다행히 건설 관련 사업을 현재도 하면서 비교적 건강하게 사는 듯. 바로 같은 해에 비슷한 사건을 겪었던 부모 중 한 명인 김철규가 술에 의지하며 살다 간암으로 2001년에 사망한 것을 생각하면, 이우실의 근황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기사에 따르면 형호의 형과 이우실의 우를 따 형우개발이라는 건설회사를 차렸다고 한다. #
>형호를 유괴하고 살해한 범인, 지금 이 방송을 보고 있습니까? 지금 이 방송을 보고 있다면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형호를 살해하고 나서 꿈에 형호가 나오지 않던가요? 뭐라고 하던가요? 지금 이 방송을 보고 있다면 꼭 당신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들과 딸을 보호하기 위해 당신을 꼭 찾아내야 하고 꼭 찾아 낼 것입니다.
  • 은행에 돈을 찾으러 왔던 범인의 몽타주[14] 협박 전화를 걸었던 목소리다. 1991년 당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으니 현재는 50대 후반이다.
  • 같은 3대 미제 사건인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해결되면서, 그 여세를 몰아 이 사건도 재수사 중이라고 한다. 다만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비교하면 재수사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결국은 중요한 물증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범인의 유전자 정보가 있었기에, 30여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해결할 수 있었다.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은 범인의 목소리 이외에는 범인이 남긴 유전자 정보 등이 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 2019년 10월 6일자 그것이 알고싶다에선 마지막에 범인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이형호 유괴 사건에 대한 정보를 다시 구하고 있다. 그알 1회 때 다루었던 사건인 이형호 유괴 사건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다룰 의향이 있는 듯 하다.
  • 2019년 10월 16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이 사건의 유일한 증거인 범인의 음성을 디지털화 해서 AI가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 영화 그놈 목소리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형호군의 실제 아버지는 아나운서가 아니다.

8. 둘러보기



[1] 신학기 시작 이전이라 3학년이었다.[2] 당시 이형호의 아버지 이우실은 재혼한 상태로 이형호의 친어머니는 따로 있었다.[3] 현재도 운영하고 있는 빵집 태극당이다.[4] 1991년 당시는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기 전이라 신분증 없이도 자유롭게, 심지어 아무 이름으로도 계좌 개설이 가능했다.[5] 경인로여의대로를 잇는 다리다.[6] 대략 저녁 8시경이었다.[7] 현재 우리은행 상계동지점. 동일로 1373번.[8] 온라인에서 거의 실명처럼 거론되고 있지만, 당시 언론에서는 이모씨라고만 나왔지 실명이 알려진 바 전혀 없다. 즉 '''이상재'''라는 이름은 이 사건을 다룬 언론 쪽에서 임의로 붙인 듯.[9] 1961~1962년생. 일부 언론에서는 만 28세로 보도되었던 걸 보면 한창 떠들썩하던 1991년 3월 당시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은 1962년생일 가능성이 높다.[10] 당시 초등학교 6학년으로, 헤어진 생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11] 이게 가장 설득력 있는 게, 앞서 언급했다시피 협박 전화 속 성문과 일치한 것으로 확인된 이형호의 생모 측 사촌동생 이상재는 이우실의 이혼과 관련해서 수 차례 충돌했을 정도로 사이가 매우 나빴다. 당연히 이상재의 목소리를 이우실이 나중에라도 떠올릴 위험이 있으니, 통화할 때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변조시켰을 가능성이 높은 것.[12]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이우실에게 이리저리 지시를 내리다가 이우실의 답변을 듣고 간혹 머뭇거리는가 하면, 이형호의 의붓 어머니와 통화할 때는 '''"어머니 차 있다던데요?"'''라면서 직접 나오라고 요구하려다가 '''"제 차는 없는데요?"'''라는 답변을 듣자 '''"아휴..."'''라는 한숨을 내쉬며 당황해하기도 했다. 특히 이 부분으로 인해 범인이 여러 명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혼선이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며, 심지어는 자의가 아니라 누군가가 시켜서 따르는 걸 은연 중에 암시하는가 하면, 후반으로 갈수록 피곤한 음색이 나오는 등 전화 속의 범인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13]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나온 내용을 종합해 보면 굉장히 가능성이 높다. 일단 범인은 상술한 대로 혼자가 아님을 은연 중에 드러냈으며, 이상재의 알리바이도 이 사건에 여러 명이 가담한다면 충분히 조작이 가능했기 때문. 특히 유괴 및 몸값 요구 등의 실제 행동은 다른 사람이 하고 이상재는 경주에서 통화만 했다고 가정해 보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독 이상재가 다른 날의 기억은 흐릿하면서 사건 당일 기억만 또렷한 것도, 개인적으로 처한 상황도 역시 심증을 굳히게 한다. 다만 정황 증거는 있어도 가장 중요한 물증이 없다.[14]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적어도 호감상은 아니고 사진도 약간 화질이 안 좋으니 ''보는 사람에 따라 몽타주가 섬뜩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