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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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으로, 현 K3리그 참가팀 천안시 축구단의 전력강화실장.
2. 선수 경력
임완섭은 청소년 시절 17세와 19세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경력이 있었지만 평범한 선수였다고 한다. 미드필드와 사이드백이 주 포지션이었다고 한다.
1992년 국민은행에 입단해 이적 없이 1999년까지 소속된 뒤 은퇴했다.
은퇴 후 잠시 은행원으로서 넥타이 매고 은행으로 출근하는 생활을 2년 동안이나 했다고 한다.
3. 지도자 경력
3.1.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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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자신의 모교인 한양공업고등학교의 코치로 부임하였으며, 이후 한양중 코치와 K리그 남양주 시민축구단의 감독을 거쳐 2011년 대전 시티즌의 코치로 부임하며 유상철 감독을 보좌하였으며, 김인완 감독 부임 이후에도 팀에 잔류해 김인완 감독을 보좌하였다.
하지만 조진호 감독 대행이 새로 부임하면서 2013시즌을 끝으로 대전을 떠나 안산 무궁화의 유소년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며, 2015년 수석 코치로 보직을 변경, 2016시즌 팀의 K리그2 우승을 이끌었다.
2017시즌을 앞두고 안산 무궁화의 감독인 이흥실이 안산 그리너스 FC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고 아산시로 연고이전을 함에 따라 아산 무궁화의 사령탑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송선호 감독이 선임되면서 최종적으로 무산되었다.
대신 이영익 수석 코치의 대전 시티즌 감독 부임으로 빈자리가 된 경남 FC의 수석 코치로 부임해 김종부 감독을 보좌하였으며, 팀의 2017시즌 K리그2 우승을 이끌며 수석 코치로 2년 연속 K리그2 우승을 경험하였다.
2017시즌을 끝으로 경남 FC 수석 코치직에서 물러났다.[4]
3.2. 안산 그리너스 FC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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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시즌 후반기에 안산 그리너스 FC의 2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프로팀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으며, FC 안양과의 리그 31라운드를 통해 감독 데뷔전을 치렀으나 2:0으로 패배했다.
10월 21일 부천 FC전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감독 데뷔승을 거두었으나 이날 승리가 시즌 마지막 승리가 되었고, 2018시즌동안 총 1승 2무 3패를 기록하며 9위로 2018시즌을 마감하였다.
2018년에는 늦게 부임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전술을 펼치지 못했기에 2019년에는 짜임새 있고, 공격적인 경기력을 구상하고 있으며, 2018년 못했던 부분을 더 발전 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2019년 리그 개막전에서는 과거 코치로 소속되어 있었던 대전 시티즌과 맞붙었으며, 이날 경기에서 VAR로 두 골이나 취소되고 빈치씽코가 퇴장당하는 악재가 겹치면서 2:1로 패하며 불안한 시작을 알렸으며, 이후 3월 16일 수원 FC전까지 세경기 연속 VAR로 골이 취소되는 불운을 겪었으며, 3월 27일 하부리그인 화성 FC와의 FA컵 경기에서는 3:2로 패배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4월 6일 아산 무궁화전에서 빈치씽코의 골을 앞세워 1:0 승리하며 시즌 첫 승을 거두었으며, 연이은 부천 FC전에서는 빈치씽코가 퇴장당하는 악조건 속에 2:1 역전승을 거두면서 2연승을 거두었다.전남을 상대로 빈치씽코가 멀티골을 넣는 대횔약으로 5위로 순위가 상승했다.
이후 특유의 견고한 백3를 토대로 수비에 상대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이면서 리그 최소 실점 2위를 기록했으며, 추가적으로 공격에도 적극적안 모습을 보이며 10경기에서 15골을 성공시켜 승점을 쌓는데 한몫했고, 7승 3패로 10경기 연속 ‘無 무승부’를 기록하며 이기든 지든 확실한 결과를 만들어내 경기장을 찾는 팬들에게 긴장감을 안겨주며 경기에 재미를 한층 더했다.
9월 1일 1위 광주를 상대로 2-1로 승리하며, 창단 이래 처음으로 3위에 올라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청신호를 밝혔다.#
하지만 연이은 리그 35라운드와 36라운드에서 패하고, 부천이 5연승을 달리면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결국 부천에게 4위 자리를 내주며 아쉽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12월 23일 부로 안산 그리너스와의 계약을 상호 합의하에 해지하였다.
사유는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 많이 지쳤다는 것이지만 경남 FC의 감독으로 부임할 것으로 전망됐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경남 FC에는 설기현 감독이 부임하면서 없는 일이 되었고, 2020년 2월 4일, 유상철 감독의 후임으로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단독 기사가 나왔다.
3.3.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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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6일, 인천 유나이티드 구단은 임완섭 감독을 영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안산 시절 최소의 예산으로 플레이오프 경쟁까지 갔던 만큼 성적을 내기 위해선 실점을 줄여야 하고 득점력 역시 키워야 하는 인천 입장에서는 임완섭 감독이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한다.
또한 이천수 실장은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올 시즌 조금 더 해줘야 하는 선수가 케힌데다. 그런 면에서 작년 안산에서 뛰던 빈치씽코가 참고가 됐다”며 “우리가 지난 시즌 안산과 연습경기를 했는데 그때 빈치씽코가 뛰었다. 움직임이나 파워풀한 측면에서 케힌데와 빈치씽코가 비슷한 면이 많다고 봤다. 또 빈치씽코를 잘 활용해서 안산이 마지막에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렇듯 임완섭 감독님이 선수를 지도하는 부분도 고려를 했다”고 전했다.
또한 과거 대전시티즌 시절 코치와 감독으로 호흡을 맞춘 적 있는 유상철 명예 감독이 임완섭을 추천했다고도 한다.
이후 인터뷰를 통해 유상철 감독이 건강하게 돌아오면 언제든 자리를 내어줄 마음이 돼 있다고 말했다.
대구와의 리그 개막전을 통해 K리그1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날 겅기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임완섭은 포백을 주로 사용해온 인천에 자신 특유의 스리백을 팀에 이식한 덕분에 시즌 초반 무실점 행진을 달리기도 했지만 4라운드 포항전에서는 수비 조직이 무너지면서 한꺼번에 4실점을 하기도 했다. 강원과의 5라운드에서도 초반이는 강원의 화려한 공격을 잘 막아냈지만 순간적으로 수비 집중력이 무너지면서 중거리 골과 페널티킥 결승골을 내주면서 좀처럼 시즌 첫 승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데, 특히 주축 선수들이 대거 부상을 당해버리면서 전술 선택지가 부족해졌는데 이에 주 전술로 내세우고 있는 스리백을 포백과도 함께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좀처럼 리그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부진하며 리그 최하위로 떨어졌고, 11위 서울전에서마저 0:1로 패하며 7연패, 9경기 연속 무승의 늪에 빠지면서 창단 최다 연패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결국 서울전 종료 후 사의를 표명했으며, 다음 날인 6월 28일에 공식적으로 인천과 결별했다.#
3.4. 천안시 축구단 전력강화실장
이후 2021년부터 K3리그 천안시 축구단의 전력강화실장으로 부임하여 김태영 감독을 돕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4. 지도 스타일
전형적인 ‘수비형 감독’이다.
그는 백3 전술을 토대로, 측면보다 중앙에 더 많은 선수들을 배치시켜 상대의 공격을 막는다. 때로는 윙백까지도 좁게 위치시키며 상대의 공격루트를 차단하기도 한다. 이러한 임완섭 감독의 수비축구 덕에 2019시즌 동안 안산이 세운 ‘버스’는 뚫기가 굉장히 힘들었으며, 또한 안산은 임완섭 감독의 지휘 아래 2019시즌동안 단 42실점만을 허용하며 K리그2 최소실점 2위 기록을 세웠다.
사실 임완섭의 백3는 별 게 없다. 세 명이 호흡을 맞추면서 상대의 공격을 적재적소에 끊는 게 임 감독의 백3 전술이다. 다만, 임완섭이 염두한 공격, 수비의 비율에 따라 윙백들의 움직임은 유동적이다.[5]
그렇다고 임완섭 감독이 매 경기마다 ‘안티 풋볼’ 수준의 축구를 하는 건 또 아니다. 2019 K리그2에서 중앙 지역을 가장 잘 활용한 감독 중 하나가 바로 임완섭 감독이다. 그는 공격 시에 구심점이 되는 공격형 미드필더 한 명을 필두로 짧고도 빠른 축구를 구사한다.
5. 여담
- 대부분의 감독들은 경기 중 정장 혹은 팀의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경기를 치르곤 하지만 임완섭 감독은 경기 때마다 캐주얼 정장을 즐겨 입는데, 큰딸이 코디를 해준 옷들을 입는 것이라고 한다.#
- 실제 생일은 1969년 7월이지만 당시 청소년 국가대표팀 출전에 1970년 8월 이후 출생자라는 제한이 붙어있던지라 "국가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남원에 호적을 두며 나이를 2살 줄인 1971년 8월 15일로 고쳤다고 한다. 8월 15일도 높으신 분이 '그냥 광복절이라 좋다'며 때려맞춘 날짜라고 한다. #
-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허리 디스크로 한 1년을 고생했다고 하는데, 그 질병으로 군대까지 면제받을 정도였으니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 김학범과 더불어 대표적인 은행원 출신 감독이기도 한데, 안산시 선부동 지점에서 일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은행에서 돈만 셌다. 할 줄 아는 게 전혀 없으니 지점에서도 일을 주지 않았고, 돈 한 뭉치를 준 다음 “저쪽 구석에 가서 돈 세는 연습만 하라”고 했으며, 그렇게 일주일 동안 구석에서 돈 세는 연습만 했다고 한다. 지점에서는 그냥 나와도 그만 안 나와도 그만인 직원이었던 셈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버티고 객장에 나가서 인사만 했다. 손님이 오면 “어서오세요”라고 크게 인사하는 게 임완섭의 일이었다고 한다. 인사를 열심히 해서 그런지 지점에서 임완섭을 좋게 봐주셨다. 창구에서 출납 업무도 할 수 있었고 ATM에 돈이 떨어지면 돈 집어넣는 일도 했으며, 그러다가 한 6개월 정도 지나고 나서는 지점장님이 임완섭을 좋게 보셔서 2층에서 아파트 담보대출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 과거 국민은행에서 일했던 탓에 다른 은행 계좌는 따로 없고, 지금까지 오로지 KB국민은행만 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