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

 

[image]
이름
임진모(林珍莫)
'''출생'''
1959년 8월 11일[1], 경기도 부천군(현 경기도 부천시)
'''학력'''
여의도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사회학 학사 (78학번)
1. 개요
2. 비판
2.1. 오류 정보 논란
2.2. 중계위원 해설 논란
3. 관련 링크
4. 개인사


1. 개요


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이자 작가, 방송인이다. 더불어 음악평론지 izm의 오너. 1993년부터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고정출연하고 있다. 배철수와 오랜 지인 사이이다. 1984년 경향신문에 기자로 입사하여 당시는 메이저신문사에서 생소한 대중음악 기자로 활동을 했다. 198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팝컬럼니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과거 국내음악, 팝음악 아울러서 식견있는 전문가로 알려졌었지만, izm 창간 이후 비판을 받고 있다.

2. 비판


'''음악계의 황교익'''이라 칭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전문성이 낮아 꽤 많은 비판을 받는다. 물론 활동했던 시대의 한계와 과도한 비평 탓이겠지만, 임진모 본인은 90년대 이후의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철 지난 평론가로 평가받는다. 최근에는 평론 활동을 거의 하지 않지만, 간간이 나오는 이야기들은 어디까지나 90년대 이전 시대의 관점으로 나오니 걸러 들을 것. 자세한 내용은 izm 문서를 참조. 임진모 평론가 개인은 물론 그가 이끄는 'izm 사단'의 의의와 한계 등이 모두 정리되어있다.

2.1. 오류 정보 논란


윤종신좋니에 대한 리뷰에서 임진모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아주 명확히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좋니’에는 윤종신이라는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적 감각'''이 담겨있다. 예전 버스커버스커의 ‘막걸리나’나, '''정준영의 ‘본능적으로’''' 등에서 볼 수 있듯 그의 노래는 언제나 재평가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된 음악이었다. 기본적으로 멜로디에서 강점을 보인다. 지금의 음원차트 환경에서는 아이돌이 아니라면 일단 멜로디가 중요하다. 지금도 차트에 오래 남은 노래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노래 자체에 힘이 있는 곡들이 많다. 결국 ‘좋니’의 역주행은 음악의 유통기한이 말도 안 되게 짧아지는 현시점에서 그 생명력을 늘린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우선 그는 이 곡을 윤종신이라는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적 감각'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좋니 문서에서도 볼 수 있듯, 이 곡은 윤종신은 가사만 썼고 포스티노가 작곡과 편곡을 했다. 검색조차 제대로 해 보지 않고 '윤종신 노래니까 윤종신이 작곡했겠지'라고 퉁쳐버린 티가 난다. 게다가 '본능적으로'를 부른 사람은 정준영이 아니라 강승윤이다.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즉, 잘 모르는데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사람이 한국의 대표적인 음악평론가라는 것이다. 팩트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서, '노래 자체에 힘이 있는 곡'과 같이 모호한 소리만 하는 것.
사실 이는 임진모가 국내 음악을 주로 비평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최초의 대중음악평론가 서병후[2]가 스스로의 직업을 '''" 칼럼니스트"'''라고 정의했듯 임진모가 주로 활동하던 8~90년대에 대중음악은 당연히 해외, 즉 영미권의 음악을 칭하는 말이었다. 음악 좀 들었다 하는 사람들은 다들 외국, 그것도 선진국인 영미권의 음악에 빠삭하고 한국 대중음악은 질낮은 2류 음악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한국 대중음악에 재평가의 바람이 불고 신중현 등의 원로 음악가들이 다시금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들어 임진모의 다음 세대라 볼 수 있는 신현준(대학교수) 등의 음악 평론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본인도 이 재평가의 흐름에 동참하며 한국음악을 소개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임진모는 한국 대중음악평론가라기보다는 팝 칼럼니스트로서 명성을 얻은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간 그의 '주특기'라고 알려져왔던 90년대 이전의 팝 음악을 잘 아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그 시절 음악 많이 들은 아재들보다 그나마 조금 나은 수준이라는 것이 세간의 평. 팝 지식으로만 따지면 많이 아는 편에 속하긴 해도 그 조차도 오류가 군데군데 보일 정도이다. 일례로 EBM을 유로 바디 뮤직(Euro Body Music)의 줄임말이라고 소개하거나 비치 보이즈의 펫 사운즈를 최초의 일렉트로닉 음반이라고 평가하거나[3] 뉴메탈하드코어라고 칭하는 등[4]의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거기에 음악을 듣고 평론하는 안목은 애초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자기 입맛에 맞게 은근히 사실을 왜곡해서 전달하는 것도 문제로, 밥 딜런의 음악에 대해 은근히 수준높은 음악, 고차원적인 음악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려 하는 것이 있다.[5]
자잘한 오류뿐만 아니라 심각한 수준의 엉터리 정보를 퍼뜨리기도 했는데, 프레디 머큐리뿐만 아니라 의 나머지 멤버 3인도 모두 게이라는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본인의 저서에 싣기도 했으며 참고, 미국에서의 공연 횟수가 33회에 달하는 영국 밴드 더 스미스가 미국화에 반대해 미국에서 공연을 한 적이 없다는 터무니 없는 소리를 본인의 리뷰에 싣기도 했다.리뷰 참고 더 스미스가 영국성을 강조하고 미국적인 것에 반발했다는 설명인데, 밴드의 프론트맨인 모리시는 자국인 영국보다 미국 록 음악에 더 큰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미국 록 음악에 호의적이었다. 그러므로 미국에 반감을 가졌다는 설명부터가 엉터리다.
이는 과거 문화 탄압이 심각하던 시절 전문가의 한계이기도 하다. 어지간한 해외 음반은 검열을 먹고 금지곡이 빠진 채 발매되거나 아예 한국에 발매되지도 않아 이른바 "빽판"을 구해야 했던 시절에는 구할 수 있는 정보가 극히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임진모와 같은 팝 칼럼니스트들은 질높은 정보를 독점한 채 전문가로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전문가조차도 사실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질이 그렇게 좋지 않았으며, 정보를 얻는 루트도 미국 음악잡지의 가십성 뉴스나 그 가십을 번역한 일본 잡지 등으로 한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사실 이 전문가들이 말하던 지식들도 사실 완전히 틀렸거나 부정확한 것이 적지 않았다. 당장 한국 프로그레시브 록, 아트 록 전문 DJ이자 시완레코드의 설립자인 성시완은 이탈리아 프록 밴드 프레미아타 포르네리아 마르코니(Premiata Forneria Marconi, P.F.M)의 이름의 유래가 뭔지 몰라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무선전신의 선구자 굴리엘모 마르코니를 기린 이름을 지닌 이탈리아 그룹”이라고 엉터리로 해석해 소개한 적이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6] 나름 한국 아트 록 음악의 전문가이며 그 지식 수준이 임진모보다 훨씬 더 전문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성시완도 이러한 기본적인 정보를 몰라서 쩔쩔매던 시절이었다. 임진모가 퍼트린 정보 중 엉터리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도 이러한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다. 이러한 구세대 평론가들은 이후 문화 검열이 해제되고 인터넷이 등장하자 서서히 하나둘씩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문제는 임진모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진모는 꾸준히 이어진 각종 방송 출연, 라디오 DJ, 신문 기고 등으로 이미 잊혀지기에는 너무 유명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김구라 등의 연예인들이 음악평론가의 대명사로 그를 언급하며 한국 음악평론가로서 임진모의 커리어를 계속해서 연장시켰다. 이로 인해 '음악평론 하면 임진모'하는 공식이 생겨버렸고 나아가 이 임진모의 인맥으로 구성된 izm 사단이 등장하며 한국 음악평론계에 이른바 '임진모 카르텔'이 형성되게 되었다.

2.2. 중계위원 해설 논란


2010년대 후반에 들면서 그래미, AMA 시상식 중계위원의 역할을 맡았을 때 상당한 비판을 많이 받았다. 같이 나온 배철수와의 합이 안 맞고 기싸움 하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고 뜬금없는 아재개그로 흐름을 해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래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임진모가 출연하는 "스쿨 오브 록" 코너에서도 배철수와 임진모의 진행이 그런 식이기는 하지만, 시상식 무대 중계에서 라디오 프로그램과 같은 식으로 진행을 하는 것은 호불호가 갈릴 만 했다.
가수를 소개할 때도 기성가수들, 자신의 시대에 활동했던 유명 팝 가수의 소개는 길게 하지만 활동기간이 기간이 길지 않은 2010년대의 가수들의 경우 비교적 짧고 알려진 내용만을 말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방탄소년단EXO를 혼동하는 기초적인 자료 조사 미숙은 물론이고, 레이디 가가를 가리켜 "공연녀"라고 부르는 등 경솔한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2011년 그래미에서는 The Suburbs로 올해의 앨범상을 탄 아케이드 파이어에 대해 '잘 모르고 별 관심도 없다'라는 식의 태도를 보여 음악 리스너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임진모의 평론가로서의 경력이 실질적으로 90년대를 끝으로 멈춰 버렸다는 걸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3. 관련 링크


<지식인의 서재> 음악평론가 임진모의 서재. 임진모의 서재는 무시무시한 곳이다.링크

4. 개인사


  • 키는 160cm 초반대로 단신이다.
  • TMO로 군 복무를 하였다.
  • 버킷 리스트 1번이 빈대떡 가게를 내는 것이라고 한다.[7]
  • 음악 평론가가 되지 못했다면 야구 해설가가 되려고 했다.[8]
  • 개그맨 박세민과 중학교 동창이다.[9]

[1] 음력 생일. tbs 교통방송 2018년 9월 20일 임진모의 마이웨이[2] 1942~2014. 타이거 JK의 아버지이다.[3] 펫 사운즈의 정교한 작곡과 음향기술을 극찬하기 위한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테레민외에는 전자악기가 사용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어쿠스틱 악기 위주로 녹음되었으니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더군다나 원시적인 형태의 일렉트로닉 음악은 그 전에도 존재했다.[4] 하드코어 펑크는 못해도 70년대 말에서 80년대부터 존재해왔다.[5] 임진모는 당대 비틀즈, 롤링 스톤즈 등에 비해 차트 성적이 낮은 것을 근거로 밥 딜런은 대중성에 타협하지 않는 고고한 음악, 일반 리스너들이 듣기에는 어려운, 그래서 (본인을 포함한)수준높은 리스너들이 즐겨 찾는 음악이라는 것을 여러 리뷰에 걸쳐 은연중에 강조한 바 있다. 밥 딜런이 상업적으로도 빌보드 핫 100 2위까지 올라보고 앨범을 냈다 하면 빌보드 200를 접수하는 대중성 높은 아티스트라는 것을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 [6] 실제 밴드 이름의 유래는 밴드의 고향 밀라노 근교에 있던 빵집에서 따온 이름이며, 이는 밴드 멤버들이 데뷔 당시부터 꾸준히 설명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정보마저도 전해지지 못할 정도로 당시 한국 음악 평론가들의 정보력이 열악했다는 것.[7] tbs 교통방송 2018년 8월 30일 임진모의 마이웨이[8] tbs 교통방송 2018년 9월 4일 임진모의 마이웨이[9] tbs 교통방송 2018년 9월 20일 임진모의 마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