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영

 



'''정대영의 직책 및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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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d295c>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No.13'''
'''정대영 (鄭大永 / Jung Dae-Young)'''
'''출생'''
1981년 8월 12일 (42세)
[image] 충청북도 [image] 청주시
'''국적'''
[image] 대한민국
'''학력'''
서원초 - 충북여중 - 양백여상[1] - 명지전문대[2]
'''종교'''
개신교
'''가족 관계'''
딸 김보민
'''포지션'''
센터
'''신체'''
185cm[3] / 72kg
'''혈액형'''
A형
'''배구 입문'''
중학교 1학년
'''프로 입단'''
1999년 현대건설 여자배구단
'''소속 구단'''
현대건설 - 수원 현대건설 그린폭스 (1999~2007)
인천 GS칼텍스 - GS칼텍스 서울 KIXX (2007~2014)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2014~)
'''응원가'''
GS 시절 : 쥬얼리 - Superstar
도공시절 : 오빠차 (~2016)
소찬휘 - Tears (2017~2020)
TWICE - Cheer Up (2020~)
1. 소개
2. 선수 경력
2.1. 현대건설 시절
2.2. GS칼텍스 시절
2.3. 도로공사 시절
3. 플레이 스타일
4. 여담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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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의 센터 플레이어이다.

2. 선수 경력



2.1. 현대건설 시절


[image]
[4]
1999년 세계청소년배구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3위에 오르는 주역으로 활약하여 즉시 전력감으로 손꼽혔다. 정대영뿐만 아니라 당시 청소년대표팀에서 주축이었던 선수들 중 다수가 2014년 현재도 현역일 정도로 '81년생 황금세대'로 손꼽혔을 정도였다. 고등학교 졸업시즌인 1999년 12월에 현대건설에 입단했다. 당시 여자실업배구는 IMF의 여파로 반토막이 난 상태였고 슈퍼리그에 참가한 팀 중 가장 여유가 있었던 현대건설이 정대영을 비롯 한유미와 박선미를 영입하는 배포를 보이며 이후 2000년대 초반 슈퍼리그를 씹어먹는 초석을 마련했다.
현대건설 입단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 장소연과 이명희라는 대선배와 함께 뛰며 기량이 일취월장을 했고 2002년 슈퍼리그 당시 블로킹, 서브 1위를 차지했다. 국가대표팀에도 2002년 FIVB 세계선수권대회부터 차출되어 6강의 영광을 선배들과 함께하기도 했고, 정대영 본인도 어린 나이에 주전으로 올라선 2004 아테네 올림픽 때 장소연과 함께 센터 라인을 받쳐주며 8강에 오르는데 큰 역할을 했다.
프로화 이후 구민정, 강혜미, 장소연, 이명희 등 기존 베테랑들이 대거 은퇴하면서 이숙자, 한유미와 함께 현대건설의 주축이 되어 팀을 이끌기 시작했다. 특히 2005년 원년 시즌에 정규리그 MVP[5]에 득점, 블로킹, 심지어 수비상(!)[6]까지 쓸어담았다.
2005-06 시즌에는 후위공격상[7]을 수상했다. 2006-07 시즌에는 여전히 안습한 현대건설 리시브 라인 문제 때문에 박선미와 고생고생하며 리시브를 받았고, 공격 쪽에서도 5개 구단 외국인선수 중에 존재감이 없던 산야 토마세비치의 안습한 공격력을 대신하며 경기당 21.46점(515점/24경기)과 44.96%의 리시브성공률을 기록하면서 센터인데도 날개공격수 못지않은 스탯을 찍으며 현대건설을 정규시즌 3위,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으로 이끈다.

2.2. GS칼텍스 시절


[image]
'''07-08 V-리그 챔피언결정전 MVP'''
'''No. 13 정대영'''
이렇게 못내 아쉬운 준우승을 한 현대건설과 정대영, 이숙자, 한유미, 박선미의 운명이 갈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최초의 FA 제도 도입이었던 것. 현대건설은 IMF와 현대그룹왕자의 난을 지나 배구단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산업은행 하의 워크아웃 상태였고, IMF 직후 때의 큰손이었던 위엄이 떨어졌다. 게다가 프로화 이후 나름 공정해진 드래프트 제도[8]로 말미암아 예전처럼 자유계약에 의한 신인선수 보강도 불가능했다.
결국 FA를 앞두고 현대건설 프론트는 이 넷 중 일부를 선택해야 했는데, 현대건설은 한유미에게 당시 여자부 최고 연봉인 1억2000만원에 잔류하는데 성공했지만, 현대건설의 답이 없던 리시브 라인을 굳건하게 지켜온 박선미는 돌연 은퇴를 선언하며 준수한 윙리시버를 잃었다. 한편, 한유미만큼의 가치가 있는 정대영과 이숙자를 같이 잔류시키기에는 페이롤 문제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차마 같이 잔류시킬 수가 없었다. 원소속팀인 현대건설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며 2차 계약기간으로 넘어갔고, 결국 이숙자와 같이 처음 도입한 FA제도에 수혜를 입으며 연봉 1억1000만원을 받고 인천 GS칼텍스로 이적하게 된다. # 결혼 및 이적 기사 정대영-이숙자의 FA 이적에 따른 보상선수는 강민정과 한수지. ##[9]
GS칼텍스는 1999년 장윤희, 정선혜, 홍지연 등이 마지막으로 우승을 일궈냈던 시절 이후 우승이 워낙에 고팠지만 늘 DTD를 시전하고 있었다. 정대영과 이숙자의 영입 당시 GS칼텍스는 세터 정지윤과 센터 손현이 개인적인 이유와 부상 등으로 은퇴를 했고, 김민지, 나혜원이라는 기대받는 공격수는 있었지만 이들을 멘토링해 줄 선수는 없었다. 그만큼 GS칼텍스는 팀이 말이 아니었던 상태. 그래서 정대영과 이숙자는 자신들의 가치를 곧바로 증명하기 시작했고, 결국 2007-08 시즌 리그 3위를 기록한데 이어 챔피언결정전에서 3연패를 노리던 흥국생명을 시리즈 전적 3승1패로 물리치고 V-리그 출범 이후 첫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치열했던 챔피언결정전 3차전 4세트에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2점 백어택은 분위기를 완전히 GS칼텍스 쪽으로 넘어오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챔피언결정전에서 경기당 평균득점 18.5점으로 센터 공격수로서는 굉장한 파괴력을 자랑. 당연히 챔피언결정전 MVP는 그의 것이었다.
그런데 2007-08 시즌을 준비하기 전 맹장 수술로 시즌 초반 고생한 모습이 역력했고, 결국 시즌 끝나고 체력회복 차원에서 2008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에 불참할 것을 밝혔으나 이를 괘씸죄로 여긴 대한배구협회에서 배협 주관 국내외 대회의 선수자격 1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10]
그렇게 혼란했던 오프시즌을 보냈지만 2008-09 시즌에 경기당 14.52점(392점/27경기)을 올리며 지난 시즌 맹장수술 여파를 떨쳐내는데 성공했고, 이후 여자 배구선수 최초로 출산휴가를 받고 2009-10 시즌을 거른다.
출산 후 다시 팀에 복귀하여 몸조리 차원에서 블로킹을 잡는 플레이 스타일로 바꿨다. 그러나 GS칼텍스는 2007-08 시즌 우승과 2009-10 시즌 데스티니 후커의 환상에서 벗어나 하위권으로 처지게 됐고 정대영도 2010-11 시즌~2011-12 시즌 꼴찌라는 부진을 막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간 활약에 보답하는 차원으로 2010-11 시즌 종료 후 FA 재계약을 했다. 그리고 2011-12 시즌부터는 이숙자에게 주장직을 물려받으며 팀을 이끌었고, 통산 블로킹 400개를 달성한다.
그렇게 시즌을 마치고 오프시즌에 열린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36년 만에 4강으로 진출시키는데 최고참으로서 어린 선수들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비록 국가대표팀에서는 예전에 비해 공격을 맡을 기회는 줄어들기는 했지만 노련한 풋워크로 상대 블로커들을 따돌리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4년 전 징계당했던 억울함을 한번에 풀 수 있었다.
올림픽에 다녀온 후 맞은 2012-13 시즌에 공격보다는 센터 블록을 전담하면서 2011-12 시즌 이적해온 한송이와 신인 이소영이 날개공격에 집중하도록 하며 리그 2위-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이끌었다. 정대영 개인으로는 3000득점 달성이라는 의미 있는 시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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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칼텍스 시절 - 2013-14 시즌 우승, 딸 보민 양과 함께
2013-14 시즌에도 주장직을 맡으며 팀의 정규리그 2위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일궈냈다. 한송이와 신인 이소영의 날개공격뿐만 아니라 자신을 롤모델로 삼은 배유나의 센터블록 또한 빛을 보며 기업은행과의 명승부를 이끌어냈다.
2000년대를 빛낸 레전드답게 2013-14 시즌 V-리그 10주년 올스타 센터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2015년에 3500득점, 2017년에 통산 4000득점을 넘어섰다.

2.3. 도로공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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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4 시즌이 끝나면서 정대영은 7년 전에 있었던 일과 똑같은 일을 겪에 된다. 우승 후 한송이나현정과 함께 FA로 풀린 것. GS칼텍스 역시 셋 다 잡을 여력은 없었고 그렇게 고민하다 결국 FA 2차 계약기간이었던 2014년 5월 20일에 성남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제니스에 연봉 1억8000천만원을 받고 전격 이적하게 된다. 그동안 FA계약은 집안 단속에만 신경쓰던 도로공사가 내린 깜짝놀랄 결단이었다. 같은 날 기업은행에서 FA로 나온 이효희도 같은 날에 도로공사로 이적하게 된 깜놀한 상황이 벌어졌다.
2014 안산 우리카드배 KOVO컵에서는 김해란이효희가 국가대표 차출로, 지난 시즌 주장이었던 최윤옥의 FA 미계약으로 빈 주장직을 맡으며 팀을 이끌었다.
허나 2014-15 시즌 2라운드 때 입은 종아리 부상의 여파 때문인지 플레잉코치 장소연보다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먹튀가 돼가는 것 아니냐는 팬들의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런 기우는 잠시였을 뿐, 부상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장소연과 함께 니콜 포셋에 집중된 상대편 블로커 라인을 농락하는 움직임을 보여주며 도로공사의 상승세에 보이지 않는 큰 보탬을 주고 있다.

2016-17 시즌에서는 이효희, 배유나와 함께 용병 브라이언을 왕따시킨 인물로 도마에 올랐다. 그리고 해명 기자회견에서 '''"딸에게 창피할 짓 하지 않았다"'''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도로공사에선 적극 해명 중이지만 여론은 이미 싸늘하다.
17-18 시즌 들어서는 확실히 세월을 거스르지 못한 듯, 노쇠화가 뚜렷한 상황. 또한 예전의 수비 뛰어난 미들블로커라는 수식어에 걸맞지 않게 수비 능력까지 상당히 크게 저하된 모습에다가 공격 범위도 거의 중앙 개인시간차, 또는 오른쪽 오픈 이외에는 전무한 상황.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정선아의 투입 비율이 커지면 올 시즌 끝나고 은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훼이크고, 1라운드가 끝나기 전에 다시 작년의 폼으로 돌아와서 활약하는 중. 정규시즌 내내 큰 기복 없이 끝까지 배유나와 함께 주전 센터 자리를 지켰고, 간간히 터지는 블로킹은 결정적인 상황일 때가 많았다. 특히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의 활약은 팀을 통합우승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

Q. 도로공사에는 베테랑 선수들이 많지요.

A. 네, (이)효희가 저와 6살, (정)대영이가 7살 차이입니다. 어려움은 딱히 없었어요. 선수와 감독 사인데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죠. 몇몇 팬들이 선수들에 ‘이제 그만두라’라고 말하는데 전 그렇게 생각 안합니다. 오히려 더 오래 해서 선수들에게 귀감이 됐으면 해요. 나이가 있음에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그만큼 실력이 있고 자기관리가 철저하다는 뜻입니다. 여긴 프로입니다. 이 팀에서 필요로 하면 남아 있는 거죠. 어린 선수들이 보고 배워야 해요.

김종민 감독이 17-18 시즌 챔결을 앞두고 인터뷰에서

18-19시즌에도 나이가 무색한 활약을 보이며, 배유나와 함께 센터진을 지키며 2년 연속 봄배구를 이끌었다.
19-20 시즌에는 배유나가 부상으로 일찌감치 이탈했기 때문에 붙박이로 센터 자리를 지켰다. 김종민이 봄배구 탈락 후에도 노장들만 쓴다고 비판이 많았는데, 정선아와 최민지가 여전히 정대영보다 한참 모자라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배유나가 잠깐 복귀했음에도 전 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시즌 후 FA가 되었는데, 전 시즌 연봉을 1억 이하로 맞췄는지 B등급으로 공시되었다. 그리고 도로공사와 재계약에 성공하며 현역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여전히 기량이 죽지 않았고 정선아가 기대 이하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냅다 정대영을 은퇴시켜 버리면 김종민의 재계약은 물 건너갈 공산이 커서 붙잡은 듯.
2021-22시즌에도 선수생활을 이어간다면 한국 프로배구 역사상 가장 많은 시즌(22시즌)[11]을 거쳐간 선수가 된다.

3. 플레이 스타일


기본기가 매우 충실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졌다. 센터의 덕목인 상대 센터 라인을 묶는 수비 움직임이 탁월하고, 블로킹도 국내 최고의 센터답게 높이가 높고 상대 공격수의 공격흐름을 읽어내는 능력 역시 뛰어나다. 전성기였던 2000년대 중후반 때는 A·B속공과 이동공격, 중앙오픈 공격으로도 경기당 20득점을 거뜬히 찍을 수 있는 공격력도 갖췄다. 그리고 더욱더 사기적인 것은 그런 센터 플레이에 추가적으로 백어택이 가능했다는 점. 애초에 성인배구 커리어 시작도 라이트-센터에서 시작하다 센터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운동능력 또한 동 신장대의 센터 플레이어에 비해 월등히 좋다. 일본 여자배구 국가대표팀과 경기를 벌일 때 일본측 중계진에서 "대한민국은 190cm의 김세영/양효진이 있지만, 비록 키가 작더라도 정대영은 190cm 대 신장의 센터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또한 세터로서 정대영에게 가장 많이 공을 전해주던 이숙자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어린 선수들 못지않은 운동능력과 스태미나를 들어 정대영이 앞으로도 몇 년은 롱런이 가능하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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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언니 믿지?!"
그런데 정대영하면 역시 센터로서 날개공격수보다도 뛰어난 리시브 능력을 빼놓을 수가 없다. 노장들이 대거 은퇴하고 리베로, 수비형 레프트 육성에 어려움을 겪는 현대건설의 한줄기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2007-08 시즌을 마지막으로 리시브에 가담하는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리시브 기회가 된다면 40~50%의 성공률을 기록할 정도로 잘 받아내고 있다.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은 GS칼텍스 시절 후배 배유나에게 영향을 줬을 정도.[12] 정대영이 세운 센터 포지션 선수으로서 유일무이한 2005 원년시즌 리시브 1위는 앞으로도 센터 포지션 선수들이 달성할 수 없는 불가능한 기록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어쩌면 2013-14 시즌 양효진의 공격성공률 1위보다도 달성하기 거의 불가능한 불멸의 기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이름을 가진 야구선수 마냥 부산 출신 사기캐를 상대로 초강세를 보여 그 선수와 소속 구단 팬들이 치를 떨게 하는 선수.

4. 여담


  • 2003 월드그랑프리에서 한국의 스타플레이어로 소개되었다. #
  • 딸 김보민 양도 배구선수로 활동한다고 한다. 정대영 본인은 딸에게 세터를 시키고 싶다고.
  • 이효희가 은퇴하면서 최후의 논드래프트 선수가 되었다

5. 관련 문서




[1] 대농그룹에서 설립한 청주에 있었던 산업체 부설 학교로, 2006년 폐교되었다.[2] KOVO에는 남서울대학교로 나와 있다.[3] 오랫동안 183cm의 키로 공식 프로필에 나왔으나 이 키는 데뷔 때의 프로필과 동일하며, 실제 키는 여러 사진 등을 종합한 결과 186~7cm로 추정. 그래서 선수 소개에도 185cm로 많이 표기.[4] 2002년 당시 현대건설 배구단이 배두나 주연의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영화에 출연했다. 단, 해당 사진은 유니폼으로 보아 2003년~2004년 즈음으로 추정.[5] 이 MVP 수상이 14-15 시즌 현재까지 남녀부를 통틀어 한 번 밖에 없는 '''정규리그 1위 팀 선수의 수상 사례(당시 현대건설은 도로공사와 인삼공사에 밀려 3위였다.)가 아니다.''' 이 사례만 제외하면 배구에서 리그 MVP란 1위 팀 최고 수훈선수에게 주는 상으로 보는 게 위장에 편하다. 그나마 이전엔 1위팀에서도 그만큼 실력이 된 선수들이 받았기에 뭐라 토를 달기 어렵지만 13-14 시즌 여자부에서 타어강 너프 속에서 개인기록 2관왕을 한 선수MVP 먹은 세트 3위 선수지보다 득점 적었는데 득표 2위한 선수에게 득표에서 밀리는 만행도 있었다. 그리고 14-15시즌에도 김연경에 이어 이전날 개인 수상이 되던 기록 6가지(서브, 득점, 공성률, 블로킹, 수비, 세트) 중 공성률, 득점, 서브서 1위를 한 폴리나 라히모바가 MVP 수상 후보에서 전~혀 거론 안되는 게 이런 이유.[6] 센터 플레이어는 대개 리베로와 묶여 자주 교체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센터가 후위에서 리시브를 받는 경우는 센터 본인이 서브를 넣으러 나갈 때로 한정되지만, 당시 현대건설은 한유미가 2003년에 당한 무릎인대 파열로 인한 후유증으로 수비를 면제 받은 탓도 있다. 그래서 리시브 참여 횟수는 리베로 다음으로 많았는데 리시브 성공률이 40%를 넘겼다는 것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던 셈.[7] 당시 2점 백어택 제도 도입으로 인해 백어택 부문 수상도 2007-08 시즌까지 따로 집계했다. 수상자는 정대영-레이첼 밴미터(2006-07 시즌, 도로공사)-한송이(2007-08 시즌, 도로공사)[8] 사실 드래프트 제도는 프로화 작업의 일환으로 2000년부터 시행되기는 했다.[9] 강민정은 2014년 현재까지 현대건설에서 계속 뛰고 있지만 원 포인트 블로커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현대건설은 몇 달 뒤 시행된 드래프트에서 양효진을 얻게 된다.[10] 비슷한 맥락으로 당시 무릎부상으로 제몸이 아니었던 황연주 역시 중징계를 당했다.[11] V-리그 전신이었던 슈퍼리그 포함. 참고로 남자부 1위는 데뷔 후부터 21시즌을 뛴 여오현이다.[12] 그러나 배유나는 이 때문에 오히려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됐다는 지적이 많다. 다만 배유나는 프로 진출 이전부터 무릎 부상을 달고 들어온 터라 큰 공격 쪽에서는 아쉬워도 나름 롱런은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