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지

 




'''한수지의 직책 및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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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718f> '''GS칼텍스 서울 KIXX No.9'''
'''한수지 (Han Soo-Ji)'''
'''출생'''
1989년 2월 1일 (35세)
[image] 전라북도 [image] 전주시
'''국적'''
[image] 대한민국
'''학력'''
전주동초 - 전주근영중 - 전주근영여고
'''가족'''
남편[1]
언니 한은지(1987년생)
여동생 한혜지, 한민지(1997년생), 한주은(1999년생)
'''포지션'''
센터 / 세터
'''신체'''
182cm / 72kg / O형
'''배구 입문'''
초등학교 4학년
'''프로 입단'''
2006-07 V리그 1라운드 1순위 (GS칼텍스)
'''소속 구단'''
인천 GS칼텍스 (2006~2007)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2007~2010)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2] (2010)
대전 KGC인삼공사 (2010~2019)
GS칼텍스 서울 KIXX (2019~)
'''별명'''
배천선생, 수지산성, 한장군, MB(미들 블로커, 민트 보스)
'''응원가'''
이전 : 슈퍼주니어 - Mr. Simple
이전 : 블락비 - Very Good
현재 : Carda - Remedy
'''SNS'''

1. 소개
2. 선수 생활
2.1. GS칼텍스 1기 - 현대건설 시절
2.2. 인삼공사 시절
2.3. GS칼텍스 2기
3. 여담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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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GS칼텍스 서울 KIXX의 센터. 세터, 레프트, 라이트가 가능한 멀티플레이어다.[3]

2. 선수 생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구를 했다. 언니인 한은지[4]를 따라 같은 길을 가면서,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장신 세터로 유명세를 탔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 맞춰 배유나[5]와 함께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

2.1. GS칼텍스 1기 - 현대건설 시절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라운드 1순위로 GS칼텍스에 입단, 2006-07 시즌에 정지윤의 백업으로 활약해 그 시즌 신인왕을 수상했다.
그러나, 2007년 오프 시즌 첫 FA 당시 이숙자정대영을 영입하면서 강민정과 같이 수원 현대건설에 보상 선수로 이적하게 된다.
2007-08 시즌에 현대건설의 유니폼을 입고서 이숙자가 떠난 주전 세터를 맡았지만, 소포모어 징크스와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토스워크를 보여 줌으로 인해, 첫 경기 이후 겪은 11연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최하위로 팀을 추락시켰다. 오죽했으면 연패 기간에 시즌 도중 실업 시절 5연패 당시 현대 주전 세터였던 강혜미를 긴급히 인스트럭터로 초빙할 정도였으니.관련기사
결국 2008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권을 목포여상의 세터 염혜선을 지명하는 원인이 되었고, 이후 2008-09 시즌에는 출전 빈도가 대폭 줄어들게 되었다. 그래도 외국인 선수 활용에서 염혜선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며 2009-10 시즌 황현주 감독의 부임 속에서 당당히 정규리그 우승을 인도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준우승에 그치게 된다. 그리고 이 당시의 모습을 보고는 살짝 아니다 싶어서 결국 2010년 여름 FA당시 현대건설이 공격력 보강을 이유로 흥국생명에서 황연주를 영입했고, 동 시기 인삼공사의 FA였던 김사니가 흥국생명으로 이적하면서 보상 선수로 흥국을 거쳐 인삼공사로 이적하게 된다.
즉, 현건-흥국 간 황연주 ↔ 보상금+선수, 흥국-인삼 간 김사니 ↔ 보상금+선수라 실질은 인삼공사가 보상선수를 현대건설에서 받아간 셈이다.

2.2. 인삼공사 시절


[image]
어찌되었든 언니 한은지가 있던 인삼공사로 이적한 후 10-11 시즌에는 김사니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며 딱히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지만, 2011-12시즌 세터 코치였던 이성희의 지도를 통해 외국인 선수 몬타뇨와 현대시절 동료 한유미, 그리고 장소연, 김세영 트윈 센터에 언니와 같이 인삼공사의 첫 통합 우승을 인도한다. 그리고 FA를 신청해 인삼공사와 재계약하였는데...
통합 우승 이후 여름에 언니인 한은지가 결혼을 이유로 은퇴하는 등 주요 선수들이 다 팀을 떠나고, 오프시즌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암이 발견[6]되며 전반기를 접었고관련 기사, 인삼공사는 차희선 하나로 세터진을 버텼다. 이후 원 포인트 블로커로 합류했다가 발목 부상으로 후반기에 제대로 합류했지만, 20연패와 팀 최하위를 막지 못했다. 연패 탈출 후 기사
13-14 시즌에는 주장 완장을 차면서[7] 초반에 차희선과의 트레이드로 왔지만 호흡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던 이재은과 출전을 분담하면서[8] 주전 세터로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센터진이 붕괴되었을 때[9]에는 본인의 하드웨어를 무기로 센터로 출전하면서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14-15시즌부터는 그냥 항암치료 전력으로 받은 동정도 싹 팔아먹는 몰빵 토스로 거하게 욕을 먹고 있다. 시즌 후 국가대표로 차출,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하여 이효희의 백업 세터 역할을 수행했다.[10]
2015 - 2016 시즌도 마찬가지. 팀의 성적이 부진하다 보니 세터 입장에선 확실한 득점원인 용병 헤일리에게로 많은 공을 올리게 되고, 이는 상대팀 입장에서 수비하기 편한 상황을 제공하여 팀이 패배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여기에 부정확한 토스까지 더해져 많은 팬들에게 이성희 감독과 더불어 팀 부진의 원흉이라고 까였다. 오히려 이적 온 김해란의 디그 후 2단 연결 토스가 더 깔끔하다고 비교되는 수모는 덤.
시즌 후 인삼공사에 새로 부임한 서남원 감독이 포지션 파괴를 선언하면서, 비시즌 동안에 센터와 라이트 훈련을 많이 했다고 한다. 2016 청주 코보컵에서는 세터가 아닌 라이트와 센터로 출전하여 포지션 변화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을 보여 주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 팀을 컵 대회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본인은 대회 '''MIP'''를 수상했다. 이에 좋은 반응이 있었는지, 컵 대회를 마치고 센터로 보직 변경했다. 이는 한수지의 커리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GS에 트레이드되었을 때도, 센터로 기용되었기 때문. 이리하여 이다영의 별명 '''세ㄴ터'''를 빼앗았다.
2016-2017 V리그에서도 팀의 주전 센터로 출장하고 있다. 세터일 때부터 좋았던 높이를 이용한 블로킹은 포지션 변경 이후 위력이 더해졌고,[11] 속공에 이동공격까지 완벽히 구사하며 웬만한 센터 이상의 기량으로 지난 시즌과 다른 성적을 기록하며 팀에 기여하고 있다. 팬들 사이에서 왜 진작 센터로 뛰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 섞인 소리가 나올 정도.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토스에 대한 부담감은 줄어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재은이 후위에 있으면 유사시에 전위세터 플레이를 하기도 한다.
2017년 6월 17일에 결혼을 했다. 이 날 결혼식에는 인삼공사 매니저 한동민을 포함하여 박세윤(레프트), 김혜원(세터), 박상미(리베로)가 팀을 이뤄서 축하공연을 해주기도 하였다. 이후 이 팀에는 '윤혜미 밴드'라는 별명이 생겼다. 한수지는 성실함과 착한 성품, 남다른 배려심으로 인삼공사 팬들 사이에서는 1등 신부감으로 꼽히기도 했는데, 프로포즈마저 자신이 하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12]
곧이어 국가대표에도 센터로 뽑혔다. 결혼식과 대표팀 훈련기간이 겹쳤는데, 신혼여행을 다음 해로 미루는 등, 국가대표에 대한 적극성과 진정성을 보여 팬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았다.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고 인삼공사와 재계약에 성공했다. 연봉이 무려 3억인데, 연봉킹 양효진 정도는 되어야 받을 만한 거액을 짠돌이 구단으로 소문난 인삼공사가 안겨줬다는 사실에 많은 팬들이 깜짝 놀랐다. 일명 '한삼억' 사건.[13]
하지만 그 뒤 한수지가 부진에 빠지자 한삼억은 곧바로 까는 소스가 되고 만다.

2.3. GS칼텍스 2기


2018-19시즌 종료 후 5월 28일에 염혜선이영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어 GS칼텍스 서울 KIXX로 이적하였다. 이로써 12년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비록 보상선수로 입단했지만 지금은 팀 프랜차이즈 스타 대우를 받는 인삼공사의 간판 선수인데 전 시즌에 좀 부진했다고 보내버리니 팬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프런트를 까는 중. 반면 GS 팬들은 잉여자원으로 수준급 센터를 얻어온 것에 환호하고 있다. 이적 후 연봉이 꽤 많이 깎였는데[14], 인삼 시절 한삼억 소리를 들어가며 돈값 못한다는 비난에 대한 부담감이 컸는지 한수지가 많이 양보했는 GS 관계자의 피셜이 있었다.
GS칼텍스가 워낙 평균연령이 어린 팀이라서 오자마자 팀 최고참이 되었다.[15] GS청평에 어마어마한 시설의 클럽하우스를 신축하면서 본인도 바뀐 숙소에 많이 놀랐던 듯. 이렇게 한수지가 합류하면서 GS칼텍스는 신인왕 선수를 다시 3명 보유하게 되었다. (한수지, 이소영, 강소휘)
후달리는 블로킹 높이 탓에 GS의 센터진은 리그 최약체로 평가받았으나 206cm에 달하는 리그 최장신의 러츠, 방탄유리 김유리와 함께 철벽 블로킹 라인을 구축하여 약점을 완전히 메꿨다. 팀이 워낙 센터속공을 안 쓰니 블로킹 원툴이라고 투덜대는 목소리도 있지만 사실 블로킹 하나만으로도 매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빛수지, (한수지 영입은) 신의한수지 등등의 별명이 붙으며 날이 갈수록 팬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2020-21시즌 연봉 협상에서 다시 3억으로 복귀했다. 샐러리캡이 23억으로 상승한 것도 있고 시즌 후 FA이기 때문에 혹시나 이적해도 GS가 보상금을 많이 타먹을 요령.
2라운드 기준 무려 양효진을 제치고(!) 블로킹 기록 1위를 수성하고 있다. 그러다가 3라운드 도로공사전부터 발목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나오지 않다가 결국 4라운드 인삼공사전을 앞두고 발목 수술을 받게 되어 시즌 아웃 판정을 받게 되었다.

3. 여담


  • 전 대통령과 꽤나 닮아서 한명박, 가카 별명이 있다. 덕분에 경기 때 중계라도 달리면 4대강 서브, 4대강 속공, 블로킹은 명박산성 등 관련 드립이 빵빵 터진다. 물론 그 부작용으로 못하면 바로 구속 또는 재수감 시키라고 까인다(...) 본인이 아주 싫어하는 별명이 하나 있다는 언급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의 별명으로는 언니인 한은지에게서 물려받은 한장군, 2016-2017 시즌 포지션 변경 이후 새 포지션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보여주며 놀라운 활약을 펼쳐 불리게 된 배구 천재 등이 있다.
  • 2010년에 한수지가 겪은 연쇄 이적과 비슷한 경우가 이후 프로야구판에서 벌어졌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다음 해에 엇비슷한데 현실이 된 경우[16]5년 후 비슷한데 현실이 되지 않은 경우[17]로 재현되었다.
  • 2017년 드래프트에서 한수지의 11살 어린 막내동생 한주은[18][19]이 KGC인삼공사에 4라운드에 지명이 되며 3자매 드래프트 지명이라는 진기록을 만들어냈다. 이는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의 기록이기도 한데, 이전에 형제, 자매, 남매 2명이 같은 종목이든 다른 종목이든 프로스포츠에서 지명되는 사례는 자주 있었으나 형제, 자매, 남매가 3명인 경우는 이 사례가 최초다. 덤으로 언니 한은지와도 같은 팀에서 뛴 적이 있으니 세 자매가 동시는 아니지만 같은 팀에서 뛰게 되는 최초의 사례를 만들어냈다.
  • 은근히 우승 운이 없다. GS에서 현대건설로 이적한 해에 GS가 우승, 현대건설에서 흥국생명으로 이적한 해에 현대가 우승을 하며 1년 차이로 우승을 2번이나 놓쳤다(...). 그래도 KGC 시절 우승을 해본 적이 있어서 무관은 아니다.

4. 관련 문서


[1] 2017년 6월 결혼.[2] 황연주의 보상선수로 이적 후 곧바로 김사니의 보상선수 이적. 그래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뛴 적은 없다.[3] 2017-18 시즌 올스타전에서 리베로 빼고 다함이라는 저지닉네임으로 출전을 했다.[4]대전 KGC인삼공사 라이트[5] 고등학생 시절 배유나는 선배인 김연경을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던 사기 공격수였다. [6] 오죽했으면 복귀 이후 같은 처지였던 최태웅이 물어 볼 정도였다.(자신의 롤 모델이기도 했다. 최태웅도 림프암과 싸우면서 훈련과 경기를 뛰었다.)[7] 사실 부주장이었다. 주장은 임명옥이었는데 리베로라 주장 표식(등번호 밑의 작대기)을 달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어서 작대기는 본인이 달게 됨.[8] 이재은이 리그 전 국가대표 차출로 인해 인삼공사 선수들과 맞출 시간이 없었다.[9] 2013 안산 우리카드배 KOVO컵부터 센터로도 뛰었다. 원체 센터진이 부실했던 인삼공사 입장에서는 높이라도 높이려는 고육책. 이후 13-14시즌에서는 이재은의 선발 출전시 선발 센터로 나오기도 했다.[10] 그 역할을 해야 할 이다영이 허리 부상으로 차출 불가인 상황이었다.[11] 양효진에 이은 리그 2위를 기록하고 있다. 4라운드에 막 접어든 현재 그 수치는 무려 세트당 '''0.89'''. 성공 개수만을 따지면 56개로 53개인 '''양효진에 3개 앞서고 있다.'''[12] 요즘에는 여자들도 프로포즈 많이 한다.[13] 인삼의 통큰 투자와는 별개로 오버페이가 아니냐며 시즌 내내 회자될 정도로 떠들썩했고 한수지를 노렸던 어떤 팀 팬들은 그 인삼에게 졌다며 프런트에 극딜을 퍼부을 만큼 파장이 컸다.[14] 한 기사에 의하면 2억원 선까지 깎였다고 한다.[15] 한수지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90년대 ~ 00년대생이며 거기에 주축 대부분이 95년생 이후 출생 선수들이다. 아기용병이라 불리던 94년생 이소영이 한수지가 입단했을 때 기준으로 셋째일 정도니 말 다했다. 킥스온에어에서는 이를 착안해 '''민트보스'''라고 불린다.[16] 임경완의 보상 픽으로 데려온 이후, 당시 MLB 진출을 타진했다가 돌아온 정대현의 영입으로 인해 원래 소속 팀인 SK 와이번스로 복귀했다. 보상선수로 들어왔어도 해당 선수를 보호선수 명단에서 고려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봉이 롯데 기준으로 잡아놔 많이 받은 게 위안거리?[17] 다만, 이 때 롯데 구단에서 보호선수 명단을 보상선수 공시일 직전에 히어로즈 구단에 넘겼기 때문에 없던 일이 됐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이 선수는 또 다시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넥센 히어로즈로 갈 뻔했다. KBO에서 보호선수 명단을 넘긴 시점에서 롯데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를 보상선수로 지명하라는 유권 해석을 내렸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가 없었어도 간단하게 공시 직전 팀 소속으로 인정되어 보호됐기 때문이다. 4년 전의 반면교사가 약이 된 격. [18] 한수지는 5자매 중에 둘째다. 즉 큰언니가 한은지. 그 밑으로 동생 셋이 모두 배구를 했거나 하고 있다. 그야말로 배구가족.[19] 한 시즌 뛴 후 팀을 나갔으며, 현재 목포과학대에 재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