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미

 



'''한유미의 직책 및 수상'''
[ 펼치기 · 접기 ]

V-리그 챔피언 결정전 우승
'''2012 '''
'''2016 '''



'''클럽'''

[image]
'''한유미'''
( 韓有美 / Han Yoo-Mi )
<colbgcolor=#4a334f> '''생년월일'''
1982년 2월 5일 (42세)
'''국적'''
[image] 대한민국
'''출신지'''
경기도 오산시
'''학력'''
성호초 - 수일여중 - 수원한일전산여고 - 경기대
'''가족 관계'''
부모님, '''여동생 한송이'''
'''포지션'''
레프트
'''신체'''
180cm, 59kg, A형
'''성좌 / 지지'''
물병자리 / 개띠
'''배구 입문'''
초등학교 5학년
'''입단'''
1999년 현대건설 그린폭스
'''소속팀'''
마산-수원 현대건설 그린폭스 (1999~2010, 2011)
대전 KGC인삼공사 (2011~2012)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2014~2017)
GS칼텍스 서울 KIXX (2017)[1]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2017~2018)
'''해설위원'''
KBS / KBS N SPORTS 해설위원 (2018.5~)
'''별명'''
'''윰여신''', 코트위의 여신, , 기린[2], 익스큐스유미
'''링크'''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슈퍼리그 시절
2.2. V-리그 초창기부터 휴식기
2.3. 인삼공사 시절과 1차 은퇴
2.4. 현대건설 2기와 2차 은퇴
2.5. 은퇴
3. 은퇴 이후
3.1. 유튜브 채널
4. 개인 수상
5. 여담
5.1. 배구 선수 자매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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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배구선수로, 현역 시절 포지션은 레프트이다. 현재는 KBS N SPORTS 해설위원과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 여자 배구계를 대표하는 미녀 중 한 명이다. 별명은 배구코트의 패션모델[3], 유미여신 혹은 윰여신,[4] . 실제로도 자주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걸로 유명한데, 드레드락, 탈색, 백발염색 등을 과감히 시도했다.
실업시절부터 현대건설과 함께한 '''원조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V-리그 초창기의 간판스타 중 하나.
2001년 청대 세계선수권에서 득점왕과 MVP를 받으며 화려한 국제무대 데뷔를 하였으나 2003년 국가대표 경기에서 입은 십자인대 부상으로 긴 시간을 재활에 보내게 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5]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만 36세까지 현역으로 뛰며 롱런하였다.

2. 선수 경력



2.1. 슈퍼리그 시절


수원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 출신으로, 1999년 현대건설에 입단한다. 입단 당시 81동기인 정대영과 함께 현대건설은 물론 대한민국 여자배구를 이끌 재목으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이에 증명이라도 하듯 2001년 포르투갈 세계 청소년 배구선수권대회에서 주포로 활약, 한국 청대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본인은 득점상을 수상하였다.
이때의 호성적이 외국 배구 관계자들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는지 당시 NCAA 배구 여자부에 참가하는 미국 몇몇 대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고 한다. 이는 81 동기 중에서도 에이스였던 정대영김사니도 마찬가지. 어느 학교에서는 한유미가 혼자 미국에 오면 힘들테니 친구 몇몇도 같이 오는 조건으로 제의했다고.[6]
슈퍼리그-V투어 시절 팀의 선배인 구민정, 강혜미, 장소연과 함께 현대건설의 5연패(1999-00 시즌~2004 시즌)를 이끌었다. 신인시절 구민정의 그림자에 가려 교체요원으로 출장했지만, 점차 성장하여 팀에서는 없어선 안 될 선수로 성장했다. 이 즈음 한국 여자배구 거포의 계보가 구민정에서 한유미로 넘어갈 것으로 보였는데...
2003년 여름에 열린 월드그랑프리 파이널 라운드 중국전에서 '''왼쪽무릎 인대 파열'''로 1년반 동안 개점휴업했다.[7] 이 부상 이후 제 기량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당시 조별라운드에서 러시아, 중국, 브라질 등을 제치고 조 1위로 통과하였지만 한유미가 부상으로 아웃된 이후 파이널 라운드는 전패하였다.
한유미의 십자인대 부상으로 국가대표팀은 김연경이 등장하여 자리를 잡기까지 약 2~3년의 기간 동안 세대교체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당장 차세대 에이스급 선수가 선수생활을 위협받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데다 바로 직전까지 주전급으로 활약하던 1970년대생 선배들의 선수생활 은퇴가 머지 않았기 때문.[8] 동생 한송이는 갓 성인무대에 올라왔으나 당시 최고참과 막내 사이를 이어줄 중간층은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다.
이 당시 한유미의 부상에 관한 짧은 기억.

2.2. V-리그 초창기부터 휴식기


2004년 V투어를 끝으로 구민정, 강혜미, 장소연이 은퇴하며 본격적으로 팀의 간판이 된다. 하지만 무릎 부상의 여파로 공격 중심의 플레이를 하게 된다. 무리한 플레이를 팀에서나 국가대표에서나 많이 막고 보호했다.
노장 트리오가 은퇴한 뒤 현대건설의 전력은 많이 약화됐다. 센터 정대영이 서브리시브를 받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한유미, 정대영 이 둘이 팀의 간판으로 열심히 헌신한 끝에 2006-07 시즌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하고 도로공사를 플레이오프에서 꺾고 팀을 챔피언결정전까지 이끈다. 그러나 챔피언전에서 흥국생명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2006-07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었는데, 결국 원 소속구단인 현대건설에 당시 최고 금액인 연봉 1억 2천만원을 받고 남게됐다.[9] 반면 팀의 주축이었던 이숙자, 정대영이 FA로 풀려 GS칼텍스로 떠나게 되자 결국 한유미가 거의 혼자서 고군분투를 했다. 2007-08 시즌 현대건설은 꼴찌의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한유미는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아직 한유미는 살아있다.'를 몸소 보여줬다.
한동안 팀이 어려운 가운데 있었으나 팀의 큰언니로 2009-10 시즌 현대건설이 정규리그 1위로 이끌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KT&G에게 밀리며 준우승하게 되지만. 그리고 계약 만료로 오프시즌에 FA 자격을 다시 얻었다. 그런데 우승 과정에서 외국인 선수 케니 모레노, 양효진, 황연주 중심으로 팀을 꾸려가는 과정에서 한유미와 프론트와의 갈등이 발생했고 결국 외국진출을 선언했다.[10] 오프시즌에 몸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탈리아 리그 몇 팀의 트라이아웃에 응했고 다행이도 계약직전까지 갔으나 본인이 받는 연봉의 절반만 제의를 받았기에 국내에 남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현대건설과의 연봉협상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이후 다른 동유럽 리그[11] 팀에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기간 중 입단테스트 오퍼도 왔다고 했지만 결국 어느 팀과도 계약하지 못하고 무적 신분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소속팀이 없는 상황에서 대한배구협회 소속의 선수로 국제대회에 나가기도 했지만, 결국 KOVO 규정상 오프시즌에 연봉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선수는 다음 해에 뛸 수 없는 조항으로 1년을 통째로 쉬게 됐다. 그래도 쉬는 틈틈히 아르바이트도 하고 학교 공부도 충실히 하면서 선수 생활 마무리를 준비하는 듯 했다.

2.3. 인삼공사 시절과 1차 은퇴


2010-11 시즌을 공쳐버리고 2011년 오프시즌에 현대건설과 FA 계약을 맺은 후 사인 앤 트레이드로 대전 KGC인삼공사로 이적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건설 황현주 감독이 흔쾌히 한유미의 진로를 도와줬다고 한다. 몬타뇨 혼자 가빈놀이를 하느라 대각에서 제대로 해줄 선수가 없던 KGC의 고민을 말끔히 해결했고 결국 2011-12 시즌 정규시즌, 챔피언결정전 통합우승[12]에 큰 공을 세웠다. 본인에게는 V-리그 들어와서 첫 우승 경험.
한유미는 V-리그 컵대회를 마감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은퇴 사유로 결혼 때문이라고 얘기했고 실제로도 결혼을 전제로 만났던 사람도 있긴 했지만[13], 그보다는 당시 인삼공사의 갑작스러운 선수단 변화 때문에 심정적인 부담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나무위키 낭독회에서 밝혔다. 당시 인삼공사의 박삼용 감독의 사퇴와 장소연의 방출, 김세영의 출산으로 인한 은퇴와 마델라이네 몬타뇨의 계약만료가 한번에 겹쳐지면서 고작 1년만 뛴 본인이 팀 리더를 맡기에는 너무나 버거워서였다고.
아무튼 2012 런던 올림픽이 한유미의 마지막 경기라 생각하고, 주전이 아닌 동생 한송이가 부진할 때 교체되어 들어가는 조커 역할을 했다. 출전한 경기 중에서는, 터키와의 조별 예선전 때 C속공 등의 빠른 공격으로 그날 지쳐보였던 주전 선수들의 부담을 덜어줬던 경기가 백미. 4세트를 가져오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다만 경기는 2:3으로 져 승점 1점을 얻는데 그치긴 했지만 국가대표팀이 모처럼 8강 토너먼트에 올라가는데 보탬이 되는 활약을 했다.
다만, 배구계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고 잠시간의 미국 유학 후에 2013년에 실업리그 부산시체육회에서 뛰었다. 부산시체육회 소속의 몇몇 선수와 함께 비치발리볼로 전향하여 2013년 해운대에서 열린 FIVB 세계비치발리볼 코리아 투어에 참가했다.

2.4. 현대건설 2기와 2차 은퇴


2014년 5월 27일 친정팀인 현대건설로 복귀한다는 사실이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2013-14 시즌 황연주의 커리어 로우와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세번째 공격 옵션의 부재, 그리고 최선참급 선수가 없어서 너무 어린 선수들이 즐비한 현대건설의 상황 때문에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상기됐듯 실업리그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투입이 가능했다는 점은 위안거리. 코보컵에서는 그나마 활약을 했지만, 정규리그에서는 실업리그와 프로리그의 차이가 있어서인지 불안한 공격과 리시브로 그동안 쌓아놓은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김주하, 황연주, 폴리 등의 체력안배를 위해 들어가는 형식의 백업이 되어버렸다. 대신 폐습을 끊은 것이 가장 큰 업적. 이때 한유미가 폐습을 끊은 이유는 자신이 비록 여자배구 쪽에서는 최고참에 속하지만 그것만 믿고 후배에게 막 대했다가는 그 후배가 동생인 한송이에게 그대로 내리갈굼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그랬다고 한다.[14] 어떤 이유에서든 폐습을 끊어낸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2015년 청주 코보컵부터는 플레잉코치로 전환되었다.
2015-16 시즌에 들어서는 장소연처럼 주전 출전을 하지 않는 대신, 주 임무는 팀 상황이 영 좋지 않거나 황연주가 부진할 때[15]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투입되고, 혹은 전위에 있는 로테이션 멤버들이 최악일 때 [16] 정미선을 대신해 들어가 공격력 강화를 목적으로 나온다. 이다영, 김주하와 더불어 현대의 더블스쿼드 운용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플레이오 1~2차전 흥국생명 전에서 자신의 손에서 끝내며 결승 진출을 이끌었으며 그 역할을 너무나 충실하게 해준 덕분에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프로화 이후 현대건설에서의 우승을 이뤘다.
2015-16시즌 후 은퇴를 고려했지만 구단과 코칭스태프의 설득에 1년 더 뛰기로 했다. 그리고 코칭스태프가 한유미를 왜 설득시켰는지 알 만한 장면들이 여러 번 발생하여 강제 전성기를 보내게 되버렸다. 후보선수의 부재, 그리고 팀 전술의 부재로 인해 2016-17시즌에는 고군분투했는데, 최근 7시즌 중 2011-12시즌 다음으로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8년 만에 한 경기에 20점을 넘게 올리는 등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인삼공사의 돌풍 속에 결국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를 막지는 못했다.
V-리그 여자부 2017년 오프시즌 선수 대이동황민경의 보상선수로 GS칼텍스로 팀을 옮겼으나 하루 만에 김유리와 맞트레이드되어 현대건설로 돌아갔다. 보상 선수 지명 우선권이 있던 현대건설이 먼저 염혜선의 보상선수로 김유리를 지명한 다음 GS가 황민경의 보상선수로 한유미를 지명했고 이 둘을 맞트레이드하는 형식이었다. [17] 이로써 동생인 한송이와 2012년 올스타 이후 5년만에 같은 팀이 되었지만[18] 하루 만에 도로 없었던 일이 되었다. 그리고 한송이는 그 직후 대전 KGC인삼공사로 트레이드되었다.
2017-18시즌 들어서는 시즌 초반 허리부상으로 인해 출전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2.5. 은퇴


결국 2018년 3월 19일, 한유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올 시즌 후 은퇴를 선언했는데, 당일 현대건설이 IBK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이 예정되어 있었고, 1세트에 고유민이 부진하자 세트 중후반부터 투입되었다. 한유미의 투입으로 1세트 후반 눈에 띄는 반전을 보여준 현대건설은, 자신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리시브와 디그에서도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공격까지 활로를 뚫어내는 데 성공, 경기 끝까지 선발 라인업을 지켰다. 특히 2세트와 3세트 결정적인 장면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10점을 기록하며 스스로 자신의 은퇴 시점을 연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3차전에서는 기업은행의 승리로 챔프전 진출에 실패하였으며, 이 날의 경기가 은퇴 경기로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2018년 3월 28일 구단에서 한유미 선수의 공식 은퇴발표를 하였으며, 11월 2일 현대건설과 KGC인삼공사와의 경기가 끝난 후 은퇴식이 거행되었다.#

3. 은퇴 이후


2018년 네이션스리그 부터 KBS N SPORTS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현대건설 배구단 유소년 배구교실과 OK저축은행 유소년 배구교실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9월부터 네이버 스포츠 라디오 V리그 토크쇼에 이동근 아나운서, 김사니 해설위원과 같이 고정 멤버로 시작하였다. 2020년 2월 네이버 스포츠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전 종목 라디오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공지가 올라왔고, 2020년 4월 10일 끝으로 마지막 방송을 했으며 6월 11일 유튜브로 옮겨서 다시 시작했다. 김사니 해설위원이 IBK 기업은행 코치 합류로 인해 공석이 생겨 새로운 멤버 이숙자 해설위원을 영입하여 같이 진행한다.
지도자를 목표로 하고 있어서 2020년에 교육대학원에 합격해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E채널노는 언니에 3회부터 출연 중이다.[19] 뒤늦게 들어갔지만 허당 캐릭터로 빵빵 터뜨리면서 숨겨진 예능 기질을 선보이고 있다.

3.1. 유튜브 채널


[image]
<colbgcolor=#abc03d> '''한유미의 배구TV'''
'''링크'''

'''컨텐츠'''
스포츠, 스트리밍, 브이로그
'''활동 시작'''
2020년 2월 28일[20]
'''구독자 수'''
'''23,500명'''
(2021년 02월 07일 기준)
'''조회수'''
'''3,291,128회'''
(2021년 02월 07일 기준)
2020년 2월 28일부터 유튜브를 시작했다. 계정은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그냥 무편집본 직캠 몇 개정도만 올라온 정도였는데, 이를 리뉴얼해서 본격적으로 유튜브 활동을 개시했다. 보통 월요일에 영상이 올라온다.
주 컨텐츠는 당연히 배구 관련 컨텐츠. 기본적인 배구룰부터 시작해 관련 용어, 기록 보는 법 등 배구 관련된 것이라면 백과사전처럼 세세하게 알려준다. 선수 출신이다 보니 플레이와 관련하여 일반인들이 쉽게 알지 못하는 부분도 집어주고 판정 기준, 트레이드 등 리그 관련 정보도 줄줄 푼다. 나름 현역 해설위원이라 말재주도 좋은 편.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현역 여자 선수들을 게스트로 부르는 실시간 스트리밍이다. 한송이를 시작으로[21] 지금까지 배유나, 양효진, 박정아, 황민경, 김수지, 김희진, 염혜선, 백목화 등이 출연하였다. 게스트 출연이 확정되면 한유미 본인 계정의 인스타와 유튜브에서 해당 선수에게 하고싶은 질문을 받으니 관심있는 선수가 나온다면 이용해보자.
2020년 7월 14일과 21일, 30일 업로드분에서 나무위키 낭독회를 진행했다. 한유미가 해명한 내용에 대해서는 상기 내용에 반영된 상태.
섭외 대상에 제한을 두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개인방송이다 보니 아무나 모셔오긴 힘들다는 듯. GS칼텍스는 미리 구단의 승낙을 받아야 되고, 흥국생명은 연락을 했는데 아직 답변을 못 받았다고.
황연주의 신혼집 방문 영상이 조회수 40만회를 넘으며 그야말로 대 히트를 쳣다.
2020년 10월 11일 황연주와의 브이로그 이후 시즌 시작과 대학원 공부 및 바쁜 스케줄 때문에 휴식기에 들어갔다.

4. 개인 수상


  • 1999 FIVB U18 세계선수권대회 득점상
  • 2000 슈퍼리그 신인상
  • 2001 FIVB U20 세계선수권대회 득점상[22]
  • HILLSTATE 2006-2007 V-리그 기량발전상
  • 2006 KOVO컵 양산프로배구 MVP
  • 도드람 2017-2018 V-리그 베스트드레서상

5. 여담


  • 남자부의 김상우와 더불어 V-리그 최초의 득점자이다.[23] 참고로 한유미는 1999년에 데뷔했고 김상우는 1995년에 데뷔했다.
  • 동생과는 인상이 정반대다. 한유미의 경우에는 목소리에서도 느껴지듯 털털한 인상이 강한 반면, 동생인 한송이는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차분한 인상이 강하다. 다만, 연봉협상에서는 정 반대인데, 한유미는 외국리그 진출을 추진하면서 갈팡질팡했던 적도 있었지만 한송이는 계약조건이 괜찮다면 시간 끌지는 않는다고 한다.
  • 학창 시절에는 매우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자기 주장을 잘하는 성격으로 바뀌게 됐다고.
  • 동생을 가리키거나 부르는 호칭이 풀네임인 "한송이"다. 한송이가 언니를 부르는 호칭은 "너".
  • 노는 언니 출연분에서는 곽민정과 함께 유독 허당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 도토리묵을 쑤는 장면에서 진한 사투리를 쓰시는 어머니와 통화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전남 무안 출신이라고 밝혔다.

5.1. 배구 선수 자매


동생 한송이와 함께 여자배구에서 자매 선수로 유명했다.[24] 아무래도 자매인 데다 포지션마저 동일해 자주 비교되는데, 한송이는 언니보다 차분한 반면, 한유미는 털털한 스타일이다. 실제로 경기가 안 풀릴 경우 한유미는 신경질을 부리는 데 비해, 한송이는 무한 범실 루프에 빠지게 된다(...)
한유미-한송이의 고등학교 직속후배인 김연경이 가장 부러워하는 선수들이기도 하다. 김연경은 큰언니가 배구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배구선수가 되었는데 정작 큰언니는 배구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정작 한유미 본인이 부러워하는 선수들은 이재영-이다영 쌍둥이인데, 한유미와 한송이는 둘 다 포지션이 레프트이기 때문에 국대에서 어느 한 선수가 부진해서 서로가 교체될 경우 둘 다 서로 서먹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재영과 이다영은 둘 다 포지션이 다르기 때문에(이재영은 레프트, 이다영은 세터) 그럴 걱정이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김연경이 2006년 성인 국가대표에 합류하게 된 이후로는 동생 한송이와 동시에 레프트 주전으로 뛸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다. 오히려 김연경의 대각에 설 윙스파이커 경쟁을 해야만 했던 처지. 위에 언급되었듯이 못하면 서로 교체가 되기 때문이다. 김연경의 데뷔 시절에는 한유미가 당연히 우위에 있었으나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전후로는 한송이가 두 번째 윙스파이커로 정착했다.
2012 런던 올림픽 세계예선전이 끝난 직후 개최된 월드그랑프리에선 김연경이 휴식차 빠지게 되어 동생 한송이와 함께 오랜만에 주전으로 함께 활약했다.

6. 관련 문서


[1] 보상선수로 이적했다가 하루만에 김유리와 트레이드로 친정으로 돌아갔다.[2] 노는 언니에서 불리는 별명이다.같이 출연하는 김은혜랑 기린즈로 묶이기도 한다.[3] KBS N 스포츠의 허주 옹이 한유미 데뷔 시절에 붙여준 별명이다.[4] 디시인사이드배구 갤러리가 생긴 이래 제일 먼저 인증했다. 이 덕택으로 배구 갤러리에서는 여신으로 추앙받는다. [5] 청대 시절 보여줬던 파괴력과 2003년 성인 국대 합류 후 한국이 브라질과 러시아를 꺾는 등 이변을 연출했던 것을 미루어 보아, 부상이 아니었다면 2000년대 중후반 김연경과 함께 대한민국의 주전 레프트를 맡을 수도 있었던 선수.[6] 한유미의 유튜브 채널 '나무위키 낭독회 2편'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러나 하지만 한유미-한송이 자매의 집안이 IMF로 인해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힘든 시기를 겪었던지라 한유미는 유학 대신 실업팀에 입단하는 것으로 진로를 결정했다고 한다.[7] 그 전부터 이미 무릎과 허리가 안좋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배구협회의 무리한 차출로 인해서 결국 대회에서 부상을 당하였다. 한유미가 국가대표팀 전력에서 이탈될 때 임유진(당시 도로공사), 이정옥(당시 LG정유) 등의 신인급 선수들을 기용했으나 임유진 역시 무릎인대 파열 부상으로, 이정옥은 포지션상의 문제(윙리베로에 가까운 플레이스타일)로 한유미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던 구민정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돌아오게 된다.[8] 상기했듯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던 구민정이 한유미의 부상으로 피치못하게 국가대표팀에 복귀한데 이어, 최광희 역시 2004 아테네 올림픽을 끝으로 사실상 국가대표팀 은퇴를 고려하고 있었다.[9] 한유미의 유튜브 채널 '나무위키 낭독회 1편'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길, FA 자격을 얻을 당시 외국리그에 진출하고 싶었던 차, 에이전트를 통해 유럽의 모 클럽에서 오퍼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현대건설에서 당시 최고 금액을 제시하며 한국에 남았다고.[10] 위에 언급됐듯, 어릴 때 미국의 대학교로 유학 가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언제는 외국에 나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11] 한유미 기억으로는 아제르바이잔 리그였던 것 같다고.[12] 참고로 인삼공사의 이전 2번의 우승은 통합우승이 아니었다.[13] 그러나 본인 트윗에서 약혼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사실 이미 결혼 날짜를 잡아놨지만 끝내 결혼 실패한 거라고. 이 때문에 다음에는 결혼이 확정나기 전까지는 결혼 날짜도 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14] 다만, 이 즈음 V-리그에서 한유미와 한송이 사이에 현역선수는 남지연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내리갈굼은 불가능했던 것.[15] 2015-16 시즌부터 라이트 연습을 했다고 한다. 오오...[16] 정미선-염혜선-김세영이 다 전위에 있으면 김세영의 헛방과 정미선의 안습한 공격력으로 인해 메인 옵션인 황연주와 에밀리 하통의 공격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성공 확률이 떨어지는 후위공격말고는 답이 없다. 양효진은 후위는 기대 못 하는데다가 그 땐 벤치에 있을 테고...[17] 이는 황연주김연견을 뺏기지 않기 위해 현대건설 측에서 머리를 쓴 것으로 보인다. 보호선수 구성상 둘 중 하나는 풀리기 마련이고 둘 중 하나라도 뺏긴다면 전력상 큰 손실이 있을수 밖에 없으니 지금 당장 GS칼텍스가 급한 센터를 지명한뒤 이를 트레이드 형식으로 GS칼텍스에 보내는 식으로 사전 협상이 끝난듯 하다. 이로써 현대는 황연주, 김연견을 지키는 동시에 한유미의 은퇴도 친정팀에서 할 수 있고 GS칼텍스는 즉전감 센터를 얻어 고생하던 센터문제를 해결했으니 윈윈 트레이드인 것. 그러나 결국 끝끝내 한유미는 동생 한송이와 한 팀에서 뛸 기회를 잃게 된다.[18] 배구 자매들은 대부분 적이 되지만 흥국생명 김수지-김재영이 한팀이었지만 김수지가 기업은행으로 가면서 적이 되었다. 그러나 김재영은 복귀한 시즌이 끝나고 다시 은퇴했으며 이후 2018-19시즌부터 IBK기업은행 통역으로 채용되면서 선수-스태프 사이지만 다시금 한 팀으로 되었다.[19] 1회와 2회에는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출연했지만 둘이 소속팀의 겨울 시즌 준비 훈련에 들어가면서 대신 바뀌었다.[20] 가입일은 2018년 6월 8일.[21] 다만, 한송이는 게스트와의 방송에서 나름 보조진행자로 언니를 많이 도와주고 있다.[22] Women's Junior World Championship 2001 - Best Scorers[23] 김상우는 V리그 창설 이후 세 시즌 만에 강제로 은퇴당했으나 한유미는 한 번 은퇴한 후 다시 현역으로 돌아왔다.[24] 한때 한유미-한송이 사이에 자매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실제로는 자매의 극성팬이 퍼트린 유언 비어로, 실제로는 한유미-한송이 두 자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