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공수특전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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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3공수특전여단'''은 1969년 1월 18일 동해안경비사령부 예하 제1유격여단으로 창설되었으며, 1969년 8월 18일 육군특수전사령부가 창설되면서 특수전사령부 예하로 배속되었고, 1972년 9월 10일 제3공수특전여단으로 개칭되었다.
2. 상세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침투한 무장공비 6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린 부대이기도 하다. 대간첩 작전 도중 은폐해있던 적에게 기습 공격을 받아 한 명이 전사하기도 하였으나 마지막 남은 최후의 공비 2명을 사살하여 49일간의 대간첩 작전을 종결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3. 예하부대
3.1. 여단 직할대
정보통신대
장비정비대
3.2. 제11특전대대
3.3. 제12특전대대
3.4. 제13특전대대
3.5. 제15특전대대
4. 출신인물
4.1. 여단장
4.2. 장교/부사관
4.3. 병
제3공수여단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했다.
5. 기타
5.1. 근무환경
5.2. 부대가
번개같이 날센 기상 비호용사들
하늘과 산과 바다 주름잡는다
검은 베레 우리 앞에 누가 맞서랴
비호가 가는 곳엔 승리뿐이다
굳세게 뭉쳐서 싸워 이기자
무적의 비호부대 특전3여단
두 눈을 번쩍이는 비호용사들
불길같은 기백에 산천도 떤다
험한 준령 가시밭길 헤쳐나가는
승리만을 자랑하는 불굴의 용사
굳세게 뭉쳐서 싸워 이기자
무적의 비호부대 특전3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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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공수특전여단가
5.3. 부대영상
6. 사건사고
6.1. 흑역사
12.12 군사반란 당시 여단장이었던 최세창의 명령으로 예하 15대대장 박종규 중령 주도하에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을 체포했으며[3] , 1980년 5월 20일 당시 제7, 제11공수특전여단과 함께 유혈진압을 저질렀다.
자세한 내용은 육군특수전사령부/흑역사, 5.18 민주화운동/학살 문서 참고.
7. 여담
- 본래 송파구 거여동, 마천동 일대인 남한산성입구쪽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위례신도시 개발에 따라 2016년에 경기도 이천시로 이전했다.[4] 아파트 이름은 비호아파트, 바로 옆은 사자아파트 였다. 단지 자체가 꽤 많이컸었다. 거여동, 거여2동, 마천동의 상권에 큰 영향력이 있었다.
- 알자회의 일원인 성일 소장이 준장시절 여단장으로 있었다.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전인범 중장의 성향과 정반대였음을 생각해보면 12.12사건을 떠올릴만한 소름돋는 배치였다. 물론 그때와는 달리 반란은 없었고, 이후 알자회의 정체가 드러났다.
- 무인도 이야기 3에서 시노하라 타쿠미(신강민)의 소속부대가 이 곳으로 로컬라이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