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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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파의 저격수. 토지와 경제 전문가.'''[1] 배우는 전현.[2]
28화에서 처음 등장했다. 개경에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 윤소종을 만나러 왔다가 윤소종에게 우왕 폐위를 위한 여론조성을 사주하는 정도전을 목격하게 된다. 목적을 이루고 돌아가던 정도전의 뒤통수에 대고 관직이나 구걸하는 팔불출인줄 알았더니 역모를 꾀하고 있었냐고 말해 정도전이 새하얗게 질리게 만든다. 그러나 이후 농이 지나쳤다고 사과하고 그냥 들어가 버린 걸 보면 그도 우왕을 좋게 보지 않았던 모양. 고슴도치마냥 날이 서있는 친구와는 달리 유들유들한 인상이다. 하지만 유유상종이라는 말도 있듯이 돌직구 발언을 날려대는 것은 친구와 닮았다.
정도전 갤러리에서는 왠지 조땅콩이라는 별명으로 많이 불린다. 더불어 본 드라마에서 정사에 비해 너프된 모습을 보인다.[3]
29화에서는 윤소종이 다리를 놓아주어 정도전과 정식 대면을 하는데, 이때 조준이 지금까지 벼슬을 버리고 전국을 돌아보며 고려의 토지제도의 현황을 알아보고 다녔다는 사실이 나온다.[4] 정도전은 그에게 계민수전(計民授田)[5] 을 보여주며 조준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지만, 다음날 조준은 정도전을 다시 만나 고려는 귀족의 재력으로 유지되는 나라인데, 계민수전이 이루어지면 그 공백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반론을 하고 정도전에게 속내를 더 밝히길 요구한다.[6] 하지만 갑작스런 창왕의 즉위가 결정났다는 소식으로 인해 둘의 대담은 중단된다. 30화에서 조민수가 이인임을 복귀시키려는 걸 이색도 찬성하자, 조준은 정도전에게 기대했었는데 아쉽게 됐다고 하고는 조민수에게 금을 바치고 대사헌 벼슬을 달라고 한다. 주저하던 조민수는 정도전, 정몽주가 이인임의 복귀를 반대하고 사직한다던 이성계도 돌아오자 조준의 청을 수락하고 반대파의 비리를 캐라고 하는데, 조준은 그러는 척 하면서 실은 조민수의 비리를 도당회의 자리에서 발표하여 정국을 완전히 반전시킨다. 정도전이 품은 뜻이 계민수전을 넘은 역성혁명이라는 걸 알고는 여기에 동참하기로 마음먹고,[7] 정도전이 궁에서 단신으로 이인임 복귀를 반대하며 눈을 돌리는 동안 조준은 관료들의 탄핵권이 있는 대사헌이 되어 반격을 준비하기로 계획한 것. 캐치프라이즈대로 혁명파의 저격수 역할을 제대로 했다.
31화에서 이성계를 처음 만나 '계민수전(計民授田)'과 '계력수전(計力授田)'[8] 이 적힌 두 장의 종이를 보이며, 장군 역시 동북면에 땅을 가진 대지주인데 어느 것을 선택하는 지에 따라 자신의 거취를 결정한다고 말한다.[9] 그러자 이성계가 계민수전 종이를 찢는 걸 보고는 마음을 돌리려다가, 찢어진 종이의 '민'자를 계력수전의 '력'자 위에 올리고 자신이 힘을 가지고 나설테니 백성에게 나눠주는 건 정도전과 조준이 하라는 말에 뜻을 굳히고 역성혁명에 동참한다. 그리고 사전 혁파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려 조정에 파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32화에서 이색과 변안열 등의 반대에 부딫쳐 결국 조준의 개혁안은 이색의 대체책인 일전일주제에 의해 좌초되고, 그 직후 정도전의 명을 받아 반대파의 뒷조사를 시작, 다시 한 번 저격수 일을 하게 되었다. 33화에선 다른 역성 동지들과 함께 창왕의 폐위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창왕을 폐위하고 바로 대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남은, 윤소종과 달리 아직 명분이 부족하다는 논리를 편다.
34화에서는 정도전과 함께 흥국사 회합을 주도하며 창왕이 이성계에게 선위를 하게 하려 했지만 선위만으로는 명나라의 태도를 바꾸기 어려우니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폐가입진을 주장한 정몽주에게 밀려버린다. 이때 별 반응이 없던 정도전과 달리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이성계가 선위를 받는 건 영영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가로젓는 등 반대 의사를 표하는데, 실제 역사상에서 조준이 공양왕의 즉위를 반대했다는 부분을 반영한 생각된다.
35화에서 우현보와 계민수전을 놓고 설전을 벌이게 되는데[10] 정몽주의 중재에도 좀처럼 조정안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정도전에게 현실적인 대안부터 단계적으로 실행할 것을 권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정도전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떠나 부재 중인 상황에서 정몽주는 조준에게 '''본인이 생각하는 현실적인 개혁안'''을 묻고 이에 조준은 과전법을 제시한다. 정몽주가 이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자 조준은 흔들리기 시작하며, 끝내 이성계의 결정으로 과전법이 시행된다.[11] 36회에서 명에 다녀온 정도전에게 한 소리 듣는데 정도전과 조준의 노선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끝내 갈라서게 되는 뒷일에 대한 복선. 38화에서는 귀양간 정도전을 대신해서 남은과 윤소종에게 정몽주를 공격할 것을 지시하지만 한발 늦어서 오히려 잡혀 귀양가게 된다. 40화에서 정몽주가 죽고 난 후 유배에서 풀려나 남은, 윤소종 등과 함께 공양왕을 폐위하고 이성계를 옹립한다. 42화에서 세자 책봉을 두고 정도전과 의견을 달리 하는데, 도당 중신들 중에선 가장 적극적으로 방석의 세자책봉을 반대했다. 주저하는 배극렴을 채근해 이성계를 찾아가 반대 의견을 분명히하고 방석을 인정하라는 이성계의 지시를 끝내 거부한다. 정도전이 의안군의 세자 책봉식을 지시하자 "지금 의안군이라 하셨습니까?"라고 놀라며 당황해한다.[12]
43화에서는 천도 의사를 밝히는 이성계에게 계속해서 반대 의사를 밝힌다. 윤소종의 주도로 신하들이 시위를 벌이게 되었을 때 이지란이 왕의 명을 받아, 시위하는 신하들을 끌어 내려 할 때, 조준이 좌시중인 내가 책임 진다며 신하들을 끌어내는 걸 막는다. 결국 정도전의 난입으로 갈등은 봉합되었다.
44화에서는 윤소종의 상가에서 정도전과 이방원이 재상총재체제 때문에 논쟁을 벌일 때 조준은 둘을 말리려 한다. 정도전이 자리를 먼저 뜨고 남은은 그 뒤를 따르지만, 조준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는다. 더불어 두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이방원과 조준'''만 남았다. 그리고 수도로 지명된 무악을 무학대사와 함께 시찰했다. 무학대사는 괜찮다고 했지만 조준은 여기는 명당이긴 한데 터가 좁아서 못쓰겠다며 반대한다. 이 장면 직후 조준을 가리켜 '''붉은색 관복을 입은 고대생이라 연대생 하륜이 미는 무악 천도에 반대했다'''는(…) 뜬금없는 드립이 흥했다.[13]
45화에서 천도 문제를 마무리지은 정도전에게 자신에게는 아무 언급도 없었던 점을 들면서 실망을 표현한다. 자신을 더 이상 정도전의 당여 취급 하지 말라는 발언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독자노선으로 나갈 길을 비추었다. 46화에서 정도전이 명나라에 가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개혁의 속도를 조절하자는 말이 계속해서 무시당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정도전을 사신으로 보내는 건 반대하지만 이숙번을 국문하는 것도 따르지 않겠다며 자리를 떠나버리며 이숙번과 유생들을 둘러싼 숙위병들도 물러나게 한다. 그리고 민제와 조영무가 찾아와 정도전을 사신으로 보내야 한다고 할때, 조영무가 아무리 당여라도 너무 편들지 말라라고 하자 버럭하여 더 이상 정도전의 당여가 아닌 모습을 분명히 보인다.
용의 눈물에서는 계속되는 정도전의 권력에 자신은 허수아비임을 느끼고 칭병사직(질병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는 것)을 하면서 재야에서 조정의 상황을 관찰하였던 전개와는 다른 전개가 눈에 띈다.
47화에서 이방원은 조준을 회유하기 위하여 그의 집에 가서 하륜을 판삼사사로 임명해 달라고 청탁을 했지만 일단은 거절을 하였다. 하지만 곧 정도전의 귀에 이일이 들어가게 되고 하륜을 탄핵하는 옥사가 일어난다. 이에 조준은 화가 나서 정도전의 집에 찾아가 도당의 수장인 자신에게 아무 말도 없이 옥사를 진행하고 그리고 자신에게까지 사람을 붙였나며 화를 내었다. 이에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붙인거라고 변명하였으며 정도전의 지속되는 독단적인 모습에 민본의 대업은 어디갔냐고 일갈을 하였다.그리고 군자가 먼저 되라고 일갈하였지만 정도전은 군자는 조준의 역할, 즉 자신이 도당의 수장이 아닌 이유가 화합의 아이콘으로 조준을 내세운 것이고 악역은 자신의 역할이라 하였지만 조준은 동의를 못하였는지 자리를 박차고 나갔으며 요동정벌에 관련되어 본격적으로 대립을 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 '군자의 역할'은 정도전이 조선 건국을 준비할 때 정몽주에게 기대했던 것이었다. 결국 정몽주를 대업에 끌어들이는 데 실패하자 정도전은 조준을 정몽주의 대체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정도전 자신이 조준의 화합책에 가장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에''' 애초 정도전과 각별히 긴밀한 관계도 아니고 조정 운영보다는 제도 개편에 더 관심이 큰 조준 입장에서는 더이상 정도전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48화에서는 동북면으로 좌천된 정도전에게 당해 순군부에 투옥되어 있던 하륜을 복귀시키면서 그를 충청도 관찰사로 좌천시키는데, 정도전의 말을 들어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세자에 대한 충심을 버린 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정안군에게 헛바람을 불어넣지 말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작 하륜은 조준이 너무 순둥이라 저러는 거라며 나중에 세파에 시달리고 나면 바뀔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명나라와의 관계가 호전될 때까지 진법훈련을 막아 남은과 대립해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이성계가 줄건 줘가면서 의견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해 어쩔 수 없이 진법훈련을 허가하게 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것은 이성계가 요동정벌에 찬성하고 있다는 은은한 복선이었다.
이후, 이성계가 요동정벌의 뜻을 표하면서 정도전을 다시 불러들이고, 정도전에게 의견을 돌릴 생각이 없다면 용퇴를 해서 안위를 보전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렇게 정도전과는 완전히 갈라지게 된다.
여담으로 48화에서 남은이 정도전 옆에서 조준에 대해 장부나 적고 물자나 출납하면 딱 맞을 인물이라고 깠는데, 조준 역을 맡은 전현이 200년 후의 어떤 역을 맡았는지 생각하면 묘한 대사다. [14]
마지막 화에서 정도전과 당여들을 칠 것이니 도당에서 관련된 일들을 잘 처리해달라는 민씨의 말에 이건 역적이나 다름없다고 분개하지만 결국엔 굴복하고 이방원에게 무릎을 꿇고 협력한다. [15]
묘하게도 삐딱한 자세를 하는 경우가 많다. 꼿꼿한 정도전과는 대조적.
정도전의 말로 드러나듯 조준은 권문세족 출신이며[16] 독학으로 성리학을 익혔는데, 정작 조준은 자긴 엄연한 사대부라며 정체성을 확실히 한다.
위에서도 적었다시피 윤소종과는 매우 절친한 친구 사이로 둘이 붙어다니는 경우가 많고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윤소종이 '''웃어주는''' 몇 안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실제로 윤소종이 먼저 죽음을 맞이하자 누구보다도 슬프게 울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조준이 정도전과 갈라지게 된 이유는 일단 정도전이 실세이긴 하지만 조준이 조정에서 가장 직급이 높았다는 것(좌시중)과, 정도전과 조준은 같은 목적(토지개혁)을 위해 동지가 된 것이지 사고 방식은 꽤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냥 바지사장도 아니고 조준도 한 일이 많은데 정도전이 자신의 의견을 계속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만 밀어 붙이니 조준 입장에선 월권 행위라고 생각될 정도로 자존심 상할 만하다. 더욱이 아예 48화에선 정도전 세력이 조준을 협박하기까지 하는지라 앞으로는 정도전과 완전히 갈라질 수 밖에 없었다. 여담으로 정도전의 조준에 대한 대접이 얼마나 심하냐면 조준이 좌정승인 자신과는 한 마디도 없이 국가 중대사를 논의 안했다고 항의했지만 정도전은 이를 무시하다시피 한다. 근데 조준이 이성계 앞에서 단독으로 요동정벌을 반대하자 정도전은 되려 '''왜 자기와 논의없이 그런 말을 했냐'''는 염치없는 말을 한다. 이게 문제가 조준의 직위인 좌시중은 '''정1품'''이고 당시 정도전의 최고 직위인 판삼사사는 '''종1품'''이다. 같은 재상이어도 조준이 더 높다. 게다가 두 사람은 조선을 엄격한 관료제 사회로 만들었는데 그걸 정도전이 어기고 있다. 조준은 단순한 개인적 감정으로 정도전에게 반발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제도를 자기가 어기는 정도전의 행보를 경계한 것이다. 거기에 대화하는 방식도 분명 조준은 정도전에게 '''존대'''하고, 정도전은 조준에게 '''하대'''한다. 조준이 더 직급이 높은대도 대업동지인 정도전을 존중하면서 발언하지만 정도전은 명백히 자신보다 위인 조준을 자신의 아랫사람 부리듯이 하대하고 있는 것이다.
요동 정벌 반대의 이유도 그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조준은 정도전과 별개로 백성들의 삶을 조사한 바가 있고 정도전에게 동조한 이유도 역성혁명이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란 생각때문이다. 또한 조준은 정도전의 계민수전과 별개로 과전법을 구상해두었을 정도로 독자적인 민본의 이상을 가진 자다. 더불어 과전법은 너무 할정도로 이상주의적인 계민수전보다 더 현실적인 정책이다. 이는 조준의 민본사상이 정도전보다 현실에 더 적용하기 쉽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 조준에게 갑자기 안 긇은 복권이나 다름없는 정도전의 요동정벌은 그의 민본의 입장으로 볼 때 허무맹랑했을 것이다. 정도전의 사상은 그야말로 자신의 이상을 위해 조선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소리니, 조준 입장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을리가 없다. 조준의 말마나 그는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의 미래를 걱정하는 조선의 재상'''이므로. 이런 조준을 사심으로 정도전에 반대하는 자로 모는 것은 무리가 있다.
사실 실제 인물에 비해 극중에서 제일 너프가 심한 인물이다. 조민수에 대한 탄핵이나 여말선초 토지개혁을 비롯한 여러 행정실무들이 정도전이 아닌 조준의 주도 하에 이루어 졌으며, 이러한 공로 덕분에 개국 직후 배극렴이 죽자 조준이 좌시중 직에 오르게 된다. 이후에도 정도전의 '''사찬 법전'''인 조선경국전과 달리, 조선의 '''공식적인 성문 법전'''인 경제육전의 편찬 또한 조준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다. 문제는 드라마 상에서는 주인공인 정도전의 입지를 띄워주기 위해 조민수의 탄핵과정과 토지개혁 과정에는 정도전의 의도하에 이루어 진 것으로 그려졌고,[17] 그외 수많은 개혁상소나 경제육전의 편찬은 아예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이는 조준이라는 캐릭터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일단, 정도전이 비교적 색깔이 뚜렷하고 한 쪽에서 다른 정치인들을 박살내는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이 강하다면 조준은 그에 비하면 색깔이 옅고 비교적 관료[18] 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첫째로, 개혁의 방향부터 정도전보다 신중론적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조준은 비교적 정몽주나 이방원같은 정도전 입장에서는 적대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적대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정치적 중심을 잡아야 하는 관료로서 대화를 하는 편에 속하기도 했다. 특히, 조선 건국 후에 들어서는 보다 관료로서의 입장에 충실해 보이는 경향이 강해졌다. 가령, 정도전 vs 이방원 구도로 정국이 흘러갈 때 정도전의 당여가 되길 거부했지만, 반대로 이방원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등 조준은 그 중간자 역할을 맡았다. 정몽주와 달리 그 정치력은 떨어졌다는 한계가 있지만...[19] 정도전과 이방원의 입장에서 비교적 정치적으로 극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경우, 정치적인 관점에서 누구 편도 들지 않으려는 조준의 행보는 비교적 답답해 보일 수 있다.[20] 거기에 더해, 정도전 드라마의 조선 파트는 고작 10화이기도 했고, 따라서 조선 건국 과정에서의 행정, 경제 따위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주인공인 정도전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었다.
요약하자면, 드라마에서 조준은 정치인이 아니라 행정가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행정이 아니라 정치 드라마였고, 따라서 행정가로서 능력이나 공로는 출중했으나 그 개인의 가치관상 (정치권과는 은근히 거리를 두려는) 관료로서의 포지션에 치중했고 그 성향을 실현할 정치적 역량도 떨어져 보이는 바 이것이 조준 고인화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그 관료로서의 업적도 드라마에서는 정도전에게 비중이 할애되어 상당부분 가려지기도 했으니...
제1차 왕자의 난 전후의 조준에 대한 묘사도 요동 정벌 및 유생 탄압을 제외하면 많이 축소, 삭제되어서 결국 정도전의 사상적 비판자란 입지가 많이 무색해졌다. 그나마 이후의 조준의 행보가 좀만이라도 묘사되었다면 아쉬움이 덜 했을 것이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달라지시겠지요."'''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의 미래를 걱정하는 조선의 재상입니다!"'''
1. 개요
'''혁명파의 저격수. 토지와 경제 전문가.'''[1] 배우는 전현.[2]
28화에서 처음 등장했다. 개경에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 윤소종을 만나러 왔다가 윤소종에게 우왕 폐위를 위한 여론조성을 사주하는 정도전을 목격하게 된다. 목적을 이루고 돌아가던 정도전의 뒤통수에 대고 관직이나 구걸하는 팔불출인줄 알았더니 역모를 꾀하고 있었냐고 말해 정도전이 새하얗게 질리게 만든다. 그러나 이후 농이 지나쳤다고 사과하고 그냥 들어가 버린 걸 보면 그도 우왕을 좋게 보지 않았던 모양. 고슴도치마냥 날이 서있는 친구와는 달리 유들유들한 인상이다. 하지만 유유상종이라는 말도 있듯이 돌직구 발언을 날려대는 것은 친구와 닮았다.
정도전 갤러리에서는 왠지 조땅콩이라는 별명으로 많이 불린다. 더불어 본 드라마에서 정사에 비해 너프된 모습을 보인다.[3]
2. 작중 행적
29화에서는 윤소종이 다리를 놓아주어 정도전과 정식 대면을 하는데, 이때 조준이 지금까지 벼슬을 버리고 전국을 돌아보며 고려의 토지제도의 현황을 알아보고 다녔다는 사실이 나온다.[4] 정도전은 그에게 계민수전(計民授田)[5] 을 보여주며 조준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지만, 다음날 조준은 정도전을 다시 만나 고려는 귀족의 재력으로 유지되는 나라인데, 계민수전이 이루어지면 그 공백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반론을 하고 정도전에게 속내를 더 밝히길 요구한다.[6] 하지만 갑작스런 창왕의 즉위가 결정났다는 소식으로 인해 둘의 대담은 중단된다. 30화에서 조민수가 이인임을 복귀시키려는 걸 이색도 찬성하자, 조준은 정도전에게 기대했었는데 아쉽게 됐다고 하고는 조민수에게 금을 바치고 대사헌 벼슬을 달라고 한다. 주저하던 조민수는 정도전, 정몽주가 이인임의 복귀를 반대하고 사직한다던 이성계도 돌아오자 조준의 청을 수락하고 반대파의 비리를 캐라고 하는데, 조준은 그러는 척 하면서 실은 조민수의 비리를 도당회의 자리에서 발표하여 정국을 완전히 반전시킨다. 정도전이 품은 뜻이 계민수전을 넘은 역성혁명이라는 걸 알고는 여기에 동참하기로 마음먹고,[7] 정도전이 궁에서 단신으로 이인임 복귀를 반대하며 눈을 돌리는 동안 조준은 관료들의 탄핵권이 있는 대사헌이 되어 반격을 준비하기로 계획한 것. 캐치프라이즈대로 혁명파의 저격수 역할을 제대로 했다.
31화에서 이성계를 처음 만나 '계민수전(計民授田)'과 '계력수전(計力授田)'[8] 이 적힌 두 장의 종이를 보이며, 장군 역시 동북면에 땅을 가진 대지주인데 어느 것을 선택하는 지에 따라 자신의 거취를 결정한다고 말한다.[9] 그러자 이성계가 계민수전 종이를 찢는 걸 보고는 마음을 돌리려다가, 찢어진 종이의 '민'자를 계력수전의 '력'자 위에 올리고 자신이 힘을 가지고 나설테니 백성에게 나눠주는 건 정도전과 조준이 하라는 말에 뜻을 굳히고 역성혁명에 동참한다. 그리고 사전 혁파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려 조정에 파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32화에서 이색과 변안열 등의 반대에 부딫쳐 결국 조준의 개혁안은 이색의 대체책인 일전일주제에 의해 좌초되고, 그 직후 정도전의 명을 받아 반대파의 뒷조사를 시작, 다시 한 번 저격수 일을 하게 되었다. 33화에선 다른 역성 동지들과 함께 창왕의 폐위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창왕을 폐위하고 바로 대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남은, 윤소종과 달리 아직 명분이 부족하다는 논리를 편다.
34화에서는 정도전과 함께 흥국사 회합을 주도하며 창왕이 이성계에게 선위를 하게 하려 했지만 선위만으로는 명나라의 태도를 바꾸기 어려우니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폐가입진을 주장한 정몽주에게 밀려버린다. 이때 별 반응이 없던 정도전과 달리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이성계가 선위를 받는 건 영영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가로젓는 등 반대 의사를 표하는데, 실제 역사상에서 조준이 공양왕의 즉위를 반대했다는 부분을 반영한 생각된다.
35화에서 우현보와 계민수전을 놓고 설전을 벌이게 되는데[10] 정몽주의 중재에도 좀처럼 조정안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정도전에게 현실적인 대안부터 단계적으로 실행할 것을 권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정도전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떠나 부재 중인 상황에서 정몽주는 조준에게 '''본인이 생각하는 현실적인 개혁안'''을 묻고 이에 조준은 과전법을 제시한다. 정몽주가 이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자 조준은 흔들리기 시작하며, 끝내 이성계의 결정으로 과전법이 시행된다.[11] 36회에서 명에 다녀온 정도전에게 한 소리 듣는데 정도전과 조준의 노선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끝내 갈라서게 되는 뒷일에 대한 복선. 38화에서는 귀양간 정도전을 대신해서 남은과 윤소종에게 정몽주를 공격할 것을 지시하지만 한발 늦어서 오히려 잡혀 귀양가게 된다. 40화에서 정몽주가 죽고 난 후 유배에서 풀려나 남은, 윤소종 등과 함께 공양왕을 폐위하고 이성계를 옹립한다. 42화에서 세자 책봉을 두고 정도전과 의견을 달리 하는데, 도당 중신들 중에선 가장 적극적으로 방석의 세자책봉을 반대했다. 주저하는 배극렴을 채근해 이성계를 찾아가 반대 의견을 분명히하고 방석을 인정하라는 이성계의 지시를 끝내 거부한다. 정도전이 의안군의 세자 책봉식을 지시하자 "지금 의안군이라 하셨습니까?"라고 놀라며 당황해한다.[12]
43화에서는 천도 의사를 밝히는 이성계에게 계속해서 반대 의사를 밝힌다. 윤소종의 주도로 신하들이 시위를 벌이게 되었을 때 이지란이 왕의 명을 받아, 시위하는 신하들을 끌어 내려 할 때, 조준이 좌시중인 내가 책임 진다며 신하들을 끌어내는 걸 막는다. 결국 정도전의 난입으로 갈등은 봉합되었다.
44화에서는 윤소종의 상가에서 정도전과 이방원이 재상총재체제 때문에 논쟁을 벌일 때 조준은 둘을 말리려 한다. 정도전이 자리를 먼저 뜨고 남은은 그 뒤를 따르지만, 조준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는다. 더불어 두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이방원과 조준'''만 남았다. 그리고 수도로 지명된 무악을 무학대사와 함께 시찰했다. 무학대사는 괜찮다고 했지만 조준은 여기는 명당이긴 한데 터가 좁아서 못쓰겠다며 반대한다. 이 장면 직후 조준을 가리켜 '''붉은색 관복을 입은 고대생이라 연대생 하륜이 미는 무악 천도에 반대했다'''는(…) 뜬금없는 드립이 흥했다.[13]
45화에서 천도 문제를 마무리지은 정도전에게 자신에게는 아무 언급도 없었던 점을 들면서 실망을 표현한다. 자신을 더 이상 정도전의 당여 취급 하지 말라는 발언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독자노선으로 나갈 길을 비추었다. 46화에서 정도전이 명나라에 가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개혁의 속도를 조절하자는 말이 계속해서 무시당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정도전을 사신으로 보내는 건 반대하지만 이숙번을 국문하는 것도 따르지 않겠다며 자리를 떠나버리며 이숙번과 유생들을 둘러싼 숙위병들도 물러나게 한다. 그리고 민제와 조영무가 찾아와 정도전을 사신으로 보내야 한다고 할때, 조영무가 아무리 당여라도 너무 편들지 말라라고 하자 버럭하여 더 이상 정도전의 당여가 아닌 모습을 분명히 보인다.
용의 눈물에서는 계속되는 정도전의 권력에 자신은 허수아비임을 느끼고 칭병사직(질병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는 것)을 하면서 재야에서 조정의 상황을 관찰하였던 전개와는 다른 전개가 눈에 띈다.
47화에서 이방원은 조준을 회유하기 위하여 그의 집에 가서 하륜을 판삼사사로 임명해 달라고 청탁을 했지만 일단은 거절을 하였다. 하지만 곧 정도전의 귀에 이일이 들어가게 되고 하륜을 탄핵하는 옥사가 일어난다. 이에 조준은 화가 나서 정도전의 집에 찾아가 도당의 수장인 자신에게 아무 말도 없이 옥사를 진행하고 그리고 자신에게까지 사람을 붙였나며 화를 내었다. 이에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붙인거라고 변명하였으며 정도전의 지속되는 독단적인 모습에 민본의 대업은 어디갔냐고 일갈을 하였다.그리고 군자가 먼저 되라고 일갈하였지만 정도전은 군자는 조준의 역할, 즉 자신이 도당의 수장이 아닌 이유가 화합의 아이콘으로 조준을 내세운 것이고 악역은 자신의 역할이라 하였지만 조준은 동의를 못하였는지 자리를 박차고 나갔으며 요동정벌에 관련되어 본격적으로 대립을 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 '군자의 역할'은 정도전이 조선 건국을 준비할 때 정몽주에게 기대했던 것이었다. 결국 정몽주를 대업에 끌어들이는 데 실패하자 정도전은 조준을 정몽주의 대체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정도전 자신이 조준의 화합책에 가장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에''' 애초 정도전과 각별히 긴밀한 관계도 아니고 조정 운영보다는 제도 개편에 더 관심이 큰 조준 입장에서는 더이상 정도전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48화에서는 동북면으로 좌천된 정도전에게 당해 순군부에 투옥되어 있던 하륜을 복귀시키면서 그를 충청도 관찰사로 좌천시키는데, 정도전의 말을 들어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세자에 대한 충심을 버린 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정안군에게 헛바람을 불어넣지 말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작 하륜은 조준이 너무 순둥이라 저러는 거라며 나중에 세파에 시달리고 나면 바뀔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명나라와의 관계가 호전될 때까지 진법훈련을 막아 남은과 대립해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이성계가 줄건 줘가면서 의견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해 어쩔 수 없이 진법훈련을 허가하게 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것은 이성계가 요동정벌에 찬성하고 있다는 은은한 복선이었다.
이후, 이성계가 요동정벌의 뜻을 표하면서 정도전을 다시 불러들이고, 정도전에게 의견을 돌릴 생각이 없다면 용퇴를 해서 안위를 보전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렇게 정도전과는 완전히 갈라지게 된다.
여담으로 48화에서 남은이 정도전 옆에서 조준에 대해 장부나 적고 물자나 출납하면 딱 맞을 인물이라고 깠는데, 조준 역을 맡은 전현이 200년 후의 어떤 역을 맡았는지 생각하면 묘한 대사다. [14]
마지막 화에서 정도전과 당여들을 칠 것이니 도당에서 관련된 일들을 잘 처리해달라는 민씨의 말에 이건 역적이나 다름없다고 분개하지만 결국엔 굴복하고 이방원에게 무릎을 꿇고 협력한다. [15]
3. 여담
묘하게도 삐딱한 자세를 하는 경우가 많다. 꼿꼿한 정도전과는 대조적.
정도전의 말로 드러나듯 조준은 권문세족 출신이며[16] 독학으로 성리학을 익혔는데, 정작 조준은 자긴 엄연한 사대부라며 정체성을 확실히 한다.
위에서도 적었다시피 윤소종과는 매우 절친한 친구 사이로 둘이 붙어다니는 경우가 많고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윤소종이 '''웃어주는''' 몇 안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실제로 윤소종이 먼저 죽음을 맞이하자 누구보다도 슬프게 울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조준이 정도전과 갈라지게 된 이유는 일단 정도전이 실세이긴 하지만 조준이 조정에서 가장 직급이 높았다는 것(좌시중)과, 정도전과 조준은 같은 목적(토지개혁)을 위해 동지가 된 것이지 사고 방식은 꽤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냥 바지사장도 아니고 조준도 한 일이 많은데 정도전이 자신의 의견을 계속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만 밀어 붙이니 조준 입장에선 월권 행위라고 생각될 정도로 자존심 상할 만하다. 더욱이 아예 48화에선 정도전 세력이 조준을 협박하기까지 하는지라 앞으로는 정도전과 완전히 갈라질 수 밖에 없었다. 여담으로 정도전의 조준에 대한 대접이 얼마나 심하냐면 조준이 좌정승인 자신과는 한 마디도 없이 국가 중대사를 논의 안했다고 항의했지만 정도전은 이를 무시하다시피 한다. 근데 조준이 이성계 앞에서 단독으로 요동정벌을 반대하자 정도전은 되려 '''왜 자기와 논의없이 그런 말을 했냐'''는 염치없는 말을 한다. 이게 문제가 조준의 직위인 좌시중은 '''정1품'''이고 당시 정도전의 최고 직위인 판삼사사는 '''종1품'''이다. 같은 재상이어도 조준이 더 높다. 게다가 두 사람은 조선을 엄격한 관료제 사회로 만들었는데 그걸 정도전이 어기고 있다. 조준은 단순한 개인적 감정으로 정도전에게 반발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제도를 자기가 어기는 정도전의 행보를 경계한 것이다. 거기에 대화하는 방식도 분명 조준은 정도전에게 '''존대'''하고, 정도전은 조준에게 '''하대'''한다. 조준이 더 직급이 높은대도 대업동지인 정도전을 존중하면서 발언하지만 정도전은 명백히 자신보다 위인 조준을 자신의 아랫사람 부리듯이 하대하고 있는 것이다.
요동 정벌 반대의 이유도 그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조준은 정도전과 별개로 백성들의 삶을 조사한 바가 있고 정도전에게 동조한 이유도 역성혁명이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란 생각때문이다. 또한 조준은 정도전의 계민수전과 별개로 과전법을 구상해두었을 정도로 독자적인 민본의 이상을 가진 자다. 더불어 과전법은 너무 할정도로 이상주의적인 계민수전보다 더 현실적인 정책이다. 이는 조준의 민본사상이 정도전보다 현실에 더 적용하기 쉽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 조준에게 갑자기 안 긇은 복권이나 다름없는 정도전의 요동정벌은 그의 민본의 입장으로 볼 때 허무맹랑했을 것이다. 정도전의 사상은 그야말로 자신의 이상을 위해 조선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소리니, 조준 입장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을리가 없다. 조준의 말마나 그는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의 미래를 걱정하는 조선의 재상'''이므로. 이런 조준을 사심으로 정도전에 반대하는 자로 모는 것은 무리가 있다.
사실 실제 인물에 비해 극중에서 제일 너프가 심한 인물이다. 조민수에 대한 탄핵이나 여말선초 토지개혁을 비롯한 여러 행정실무들이 정도전이 아닌 조준의 주도 하에 이루어 졌으며, 이러한 공로 덕분에 개국 직후 배극렴이 죽자 조준이 좌시중 직에 오르게 된다. 이후에도 정도전의 '''사찬 법전'''인 조선경국전과 달리, 조선의 '''공식적인 성문 법전'''인 경제육전의 편찬 또한 조준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다. 문제는 드라마 상에서는 주인공인 정도전의 입지를 띄워주기 위해 조민수의 탄핵과정과 토지개혁 과정에는 정도전의 의도하에 이루어 진 것으로 그려졌고,[17] 그외 수많은 개혁상소나 경제육전의 편찬은 아예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이는 조준이라는 캐릭터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일단, 정도전이 비교적 색깔이 뚜렷하고 한 쪽에서 다른 정치인들을 박살내는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이 강하다면 조준은 그에 비하면 색깔이 옅고 비교적 관료[18] 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첫째로, 개혁의 방향부터 정도전보다 신중론적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조준은 비교적 정몽주나 이방원같은 정도전 입장에서는 적대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적대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정치적 중심을 잡아야 하는 관료로서 대화를 하는 편에 속하기도 했다. 특히, 조선 건국 후에 들어서는 보다 관료로서의 입장에 충실해 보이는 경향이 강해졌다. 가령, 정도전 vs 이방원 구도로 정국이 흘러갈 때 정도전의 당여가 되길 거부했지만, 반대로 이방원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등 조준은 그 중간자 역할을 맡았다. 정몽주와 달리 그 정치력은 떨어졌다는 한계가 있지만...[19] 정도전과 이방원의 입장에서 비교적 정치적으로 극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경우, 정치적인 관점에서 누구 편도 들지 않으려는 조준의 행보는 비교적 답답해 보일 수 있다.[20] 거기에 더해, 정도전 드라마의 조선 파트는 고작 10화이기도 했고, 따라서 조선 건국 과정에서의 행정, 경제 따위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주인공인 정도전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었다.
요약하자면, 드라마에서 조준은 정치인이 아니라 행정가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행정이 아니라 정치 드라마였고, 따라서 행정가로서 능력이나 공로는 출중했으나 그 개인의 가치관상 (정치권과는 은근히 거리를 두려는) 관료로서의 포지션에 치중했고 그 성향을 실현할 정치적 역량도 떨어져 보이는 바 이것이 조준 고인화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그 관료로서의 업적도 드라마에서는 정도전에게 비중이 할애되어 상당부분 가려지기도 했으니...
제1차 왕자의 난 전후의 조준에 대한 묘사도 요동 정벌 및 유생 탄압을 제외하면 많이 축소, 삭제되어서 결국 정도전의 사상적 비판자란 입지가 많이 무색해졌다. 그나마 이후의 조준의 행보가 좀만이라도 묘사되었다면 아쉬움이 덜 했을 것이다.
[1] KBS 정도전 홈페이지 인물 소개란에서 실제로 적혀있는 캐치프레이즈이다. 하지만, 조선건국 이후 토지 이야기가 줄어들고 조준 자신의 지위가 올라가면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면이 더 강조된다. 그리고 저 혁명파의 '저격수'라는 표현은 이름이 '''조준'''이고 자(字)가 '''명중'''이라는 것을 이용한 이름개그인듯(…). 뭐 조민수를 탄핵해 실각시키긴 했지만...[2] 태조 왕건에서 금강 역을 맡아서 이광기가 맡은 신검에게 살해당했다. 무인시대에서는 이의방의 동생 이린 역을 맡았는데, 이린은 바로 이성계의 직계 조상이다. 실로 배우 개그의 정점(…). 2010년대 드라마팬들에게는 각시탈의 파슬리를 뿌려주시는 호위무사로도 알려져 있다. 또 다른 대표작으로는 불멸의 이순신에서 전라좌수영의 예산타령을 하던 무의공 이순신. 이번에도 국가재정과 직결되는 과전법 개혁의 주역인 조준 역을 맡게 되는 우연이 겹친다. 또 전현은 용의 눈물에도 나왔다. 영흥부사 박만의 부하장수 역할로 단역이었으나 꽤 대사가 있었다.[3] 그러나 조준이 나왔던 다른 사극 드라마에서 받았던 취급(바지사장, 들러리, 아예 나오지 않거나)에 비하면 상당히 나은 편에 속한다.[4] 이는 드라마상의 허구로 실제 역사에선 4년동안 집에서 경서만 읽으며 틀어 박혀 지내다가 위화도 회군을 한 이성계를 만나 그의 당여가 됐다.[5] 토지를 국유화하여 백성들에게 식구 수만큼 나누어주는 것. 실제 정도전이 주장한 토지제도 개혁안이다.[6] 조준의 질문을 잘 생각해보면 역성도 하나의 대답이 된다. 고려가 귀족의 재력으로 움직이는게 문제라면 '''고려가 아니면 될테니까.''' 즉 새로운 나라를 창조하여 그를 기반으로 계민수전을 시행하면 되는 것이다. 30화에서 역성의 뜻을 들은 조준은 별 고민도 없이 정도전을 따르겠다고 하는데, 본인이 고려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점도 있겠지만, 그것이 납득이 가는 대답이었기 때문도 있었을 것이다.[7] 계민수전의 내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당시는 물론 지금기준으로 보더라도 꽤 진보적이고 과격한 개혁안이다. 이걸 해내려면 기존의 기득권은 물론 지배세력마저 교체해 새 왕조를 건립하는 수준에서 토지 재분배를 해야 하는 차원이었다. 조준도 이 점을 꿰뚫고 정도전의 의중을 물은 것이었는데, 역시 정도전이 역성혁명이라고 하자 주저없이 그의 편으로 들어왔다. 이를 보아 조준도 정도전과 같은 역성에 대한 포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8] 힘있는 자가 땅을 차지하는 고려의 현실을 의미한다.[9] 정도전은 조준에게 이성계가 아직 대업에 대해 망설임이 있기에 그에 대해 말은 하지 말라고 했으나, 조준은 그럼에도 자기 할 말은 다 했다. 정도전도 이에 대해 상당히 당황했다. 조준이 정도전의 뜻대로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님을 보여 준 것이며, 이는 훗날 정도전과 남은의 요동 정벌 계획에 반발하여 갈라서는 것의 복선으로도 보인다.[10] 우현보가 조준의 요구를 물리치며 하는 대사가 걸작이다. "사전(私田)은 태조 대왕 이래로 유지돼 온 고려의 숭고한 가치이자 혼(魂)입니다." 마침 우현보 역의 배우 심우창이 노련한 연기력으로 이 대사를 읊으니 시청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은연 중에 사전이 매우 거룩한(...) 제도처럼 들릴 지경.[11] 이성계조차 정몽주가 설득했다.[12] 정도전(드라마)/역사적 사실과의 비교에서 지적했듯이 이 부분은 고증 오류이다. 당시는 태조 즉위 직후라 그의 아들들에게 아직 군호(君號)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였고 방석은 군호를 받지 않고 곧바로 세자가 되었기 때문에 의안군이라고 불린 적이 없다. 방석은 사후에 태종에 의해 복권되면서 소도군(昭悼君) 또는 소도공(昭悼公)이라는 애도의 뜻을 담은 시호가 올려졌고, 이후 숙종 때 들어서야 의안대군의 존호(尊號)를 받았다. 그리고 실제로 태조가 처음 조준에게 세자 책봉 교서를 들이밀면서 직접 쓰라고 요구한 왕자의 이름은 방번이었다. 그랬다가 조준이 이를 거부하고 배극렴, 정도전 등 대신들과 의논하여 방번은 거만하고 경솔하니 그럴 거면 차라리 방석을 세자로 앉히라고 주청을 올려 방석이 세자가 되었다.[13] 배우의 실제 학력을 따지자면 조준 역 전현은 중앙대, 하륜 역 이광기는 명지대 연영과 출신이다.[14] 이 대사는 실록에서도 남은이 실제로 했던 발언이다. 다만 실제로는 조준만 깐 게 아니라 조준과 함께 당시 정승 자리에 있었던 김사형까지 포함해서 했던 말.[15] 여담이지만 당연히 드라마에서 안 나왔지만. 제2차 왕자의 난의 원인중 하나(?)인데. 이방원편을 들었지만. 2차공신인 박포가 1차공신인 조준에게 "난 제대로 일했는데. 조준같은 아무것도 못한 인물이 왜 1차공신이냐고!" 불만을 가지고했다가 이방원이 박포를 귀양으로 보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고.[16] 바로 이 때문에 조민수가 조준에게 덜컥 대사헌 자리를 준 것이다. 조준이 속한 평양 조씨는 친원파 부원배 가문으로 권문세족 중의 권문세족이라 할 만했다. 조민수 입장에서는 그런 성골급 권문세족의 자제인 조준이 급진파의 거두 정도전과 한편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17] 그나마 극중의 토지개혁은 조준이 도맡아했고 과전법은 조준 본인이 직접 만든 것으로 나와 고려시대는 그나마 낫다.[18] 남은이 조준을 서류나 만지작 거리는 위인이라고 까거나, 정도전이 일시 퇴진하면서 관리는 조준에게 맡기라는 식의 발언에서 간간히 나타난다.[19] 사실 이러한 중간자적 역할은 정도전이 조준에게 기대하던 바였다.[20] 과거 이인임에게 호구 잡히기 전 최영이 그러했다. 그리고 그 최영도 결국 이인임에게 한 수 배우고서는 은근슬쩍 도당에 후배 무장들을 끌어넣었다. 반면, 조준은 딱히 대놓고 정도전이나 이방원에게 해코지 당한 게 없어 그런 변화 역시 없었다. 정몽주 역시 화합이라는 이름 하에 위화도 회군 이후 한 때나마 정도전과 이색을 잇는 중간자적 포지션을 취하기도 했으나, 이 때 정몽주가 한 일은 거의 없었고, 결국 정몽주는 각성 이후 그런 중간자적 포지션은 때려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