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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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흥행
4. 재평가
5. 기타
6. 관련 문서


1. 개요


1980년 개봉한 미국의 영화. 제54회 아카데미 시상식 미술상 후보작.

2. 상세


이탈리아계 감독 마이클 치미노가 야심만만하게 만든 이 서부물은 1892년 와이오밍 주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작은 전쟁이라고는 썼지만 미국에선 아주 대놓고 '존슨 카운티 전쟁'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장난아닌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미국 원주민들을 대거 학살하고 거저 땅을 얻어먹은 거대 농장주들이 뒤늦게 와서 황무지를 개척하는 소규모 농장주들을 강제로 내쫓고 그들이 일한 것을 약탈하던 사건에서 시작되었는데 이에 소규모 농장주들이 총을 들고 맞서자 거대 농장주들이 아예 용병들을 잔뜩 고용하면서 내전 상태까지 벌어졌고 급기야 연방 정부의 미 육군 기병대까지 참전하여 아주 3파전으로 내전을 벌인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거대 농장주들의 추태와 그들이 뿌린 뇌물로 언론은 거대 농장주 편을 들었고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서로 논쟁까지 벌이면서 미국 역사에서 감추고 싶은 추악한 역사로 기억되었기에 그동안 헐리웃 영화들은 거의 건드리지 않았던 이야기였으며 미국 교과서들도 자세히 다루지 않고 덮어버렸을 정도로 추악한 역사였다.
영화는 프론티어 정신에 입각해서 주어진 앞날을 버리고 서부로 온 하버드 졸업생의 방황과 갈등. 그리고 존슨 카운티 전쟁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는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 천국의 문이 개봉되자 미국 내 평은 최악이었다. 심지어 반미 영화라고 감독의 성향을 따져야 한다는 언론들이나 정치권까지 있었으니까. 반대로 소수나마 미국의 감춰진 추악한 역사를 되새기는 용감한 일이라는 평가도 받았고, 해외에서 평은 꽤 좋았다. 프랑스에선 화려한 대박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 선전했으며 프랑스 영화지 카예 뒤 시네마는 그 해 최고 영화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고,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로까지 올렸었다(수상은 구로사와 아키라카게무샤).
출연 배우로는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이자벨 위페르, 크리스토퍼 워컨, 존 허트, 샘 워터스톤, 브래드 듀리프, 조셉 코튼 등이 있고, 단역으로 제프 브리지스, 윌럼 더포, 미키 루크 등이 있다.

3. 흥행


러닝타임 무려 '''219분'''. 이런 심각하게 긴 러닝타임과 엄청난 제작비를 들였으나…. '''망했다.''' 그냥 망한 것도 아니고 '''제대로 망했다.''' 덕분에 유서 깊은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사였던 유나이티드 아티스트가 '''1981년 부도를 맞고 문을 닫은 뒤에 MGM 영화사에게 팔렸다. 순전히 이 영화 한편 때문에.[1]''' 그리고 그 이후로 MGM/UA가 된 것인데, MGM 영화사도 이후로 휘청거리더니만 1989년 결국 부도나 버렸다…가 겨우 이름은 유지중이었지만 2010년에 다시 부도나 버려서 항목을 보면 나오듯이 이름만 남은 상태.
얼마나 엄청난 쪽박이냐면 1980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2011년 현재까지도 할리우드 역사에서 가장 크고 대차게 쫄딱 말아먹은 영화로 기록될 정도.
영어권 영화계에서 Heaven's Gate라고 하면 '제작비 쏟아붓고는 쫄딱 망한 영화'를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자리잡았다(무슨 영화계 내의 은어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익숙할 만한 게임계의 단어라면 단연, 헬게이트. 표면적인 뜻은 반대지만, 어쩐지 의미는 비슷하다. ).
디어 헌터로 아카데미상을 휩쓸고 흥행도 성공하면서 주목을 받던 마이클 치미노 감독이 그 다음 작품으로 야심만만하게 만들면서 시작된다. 처음 제작비가 1100만 달러였는데 감독은 1890년대 많은 것을 완벽하게 재현하고자 해서 제작비가 계속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었다.[2] 급기야 제작자들이 이건 도저히 안되겠다며 감독을 자르려고 했으나 대타로 기획되던 노만 주이슨이나 다른 유명 영화감독들이 모두 치미노의 영화라면서 거절하는 바람에 결국 그대로 치미노가 감독하게 되었다.[3]
개봉년도가 무려 6년이나 지연되면서 제작비는 계속 오르고 올라 4400만 달러로 껑충 올랐고 여기에 여러 비용도 또 추가~[4]. 게다가 치미노 감독의 완벽한 장면에 대한 강박 관념 때문에 한 씬에서 50테이크 이상 찍는 것은 예사였고, 첫 편집본의 길이는 '''500시간'''에 달했다고 하는데 이는 따지자면 21일 밤낮을 쉬지않고 감상해야 하는 분량이다. 한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의 간부였던 사람이 말했다고 전해지는 루머를 따르자면 오리지날 컷 버전에서 나온 마지막 전투씬의 길이는, 일반 영화의 총 러닝타임 하고 같을 지경이라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참고로 오리지날 컷 버전은 러닝타임이 '''5시간 25분'''(=325분)이라고.

4400만 달러의 제작비는 지금 물가지수로 치자면 아바타 만들 제작비 저리가라 수준급이라고도 한다. 1982년에 나온 블레이드 러너가 3500만 달러를 들였다는 걸 생각하면 그 제작비가 얼마나 엄청났는지 짐작 할 수 있을 듯.
거기에 무지 무지 긴 시간, 고르지 않은 연기, 촬영당시 흉흉한 소문, 중심이 없는 이야기등 결국 개봉해서 미국에서 벌어들인 흥행수익은 '''350만''' 달러......한마디로 제작비의 10%도 못건졌다! 오늘날로 손실액을 평가하면 약 '''1억 5000만 달러'''가 된다고 한다.박스오피스 모조
오죽하면 시사회때 귀빈들이 모두 나가는 바람에 재편집을 했고 칸 영화제 출품을 위해 재편집을 했다. 그래서 상영회때는 어느판인지 명시할 정도.[5]

4. 재평가


세월이 지나 8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도 재평가되고 있다. 1989년 국내 영화 월간지 로드쇼에서도 저주받은 비운의 걸작으로 재평가한 리뷰를 싣기도 했으며 이 영화는 전형적인 서부극 형태를 따르지 않았던 점이라든지 미국 내의 추악한 역사를 다룬 점, 그냥 선악 구분적인 면모로 싸우는 것이 아닌 점 등등에서 여러가지로 재평가되고 있다...
개봉한지 20년이 지난 요즘에 와선 시대를 잘못 탔다, 감추려던 어두운 역사를 다루다보니 욕을 억울하게 먹었다~ 이런 평가도 많이 받는다. 씨네21에서 이 영화를 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이 영화에 '저주받은 대작'이라는 수식어를 붙였고, 최근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시청 소감들도 이 수식어에 많이 동의하는 경향을 보인다.

5. 기타


1980년대 당시에는 한국에서 극장 개봉하지 않았고[6], 1990년 2월 10일 KBS 1TV 명화극장에서 방영한 바 있다. 칸 영화제판으로 OCN에서 자막판을 방영한 적 있고, 2000년대 이후 서울과 부산에서 1관씩 6회 상영한 바 있다.
워낙에 대차게 말아먹었기에 치미노는 5년동안 영화감독을 맡을 수 없었다. 1985년에서야 용의 해(Year Of The Dragon)감독으로 돌아왔으나 디어 헌터에서 보였던 아시아인에 대한 악의적인 편견이 또 표출된 덕분에 평단에선 그저그런 평가를 받고 묻혔으며, 천국의 문 대참패가 그림자이자 낙인처럼 붙었기에 이후에 영화들 만들기도 어려웠을 듯 싶다. 이후로도 몇 편 더 감독했지만 평가는 그저 그랬고, 1996년작 선체이서를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차기작 소식이 없다가 2016년 7월 2일 향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기사
엄청난 손실때문에 역대 최악의 흥행실패 영화로 꼽힐지도 모르나 의외로 역대 최악의 흥행 영화 10위권중에 5위에 든다고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시대가 지남에 따라 기술, 물가나 제작비용이 오르면서 그렇게 된 것일뿐, 손해 비율로 따지자면 이쪽이 압도적.
이 영화 이후 미국 영화계에는 제작비를 엄청나게 잡아먹고 제작 자체가 지연되는 영화를 천국의 문과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1990년대 중후반에 타이타닉이 제작비를 2억 달러를 넘기고 개봉일도 여름에서 겨울 시즌으로 미뤄져서 천국의 문 취급을 당했으나, 흥행은 정반대로 대성공하여 12년 동안 전 세계 흥행 1위 자리를 지켰다.
2015년 7월 영국BBC 방송국은 미국의 최고의 영화 100선 중에서 이 영화를 98위로 선정했다.
연기파 배우이자 샘 레이미판 스파이더맨의 그린 고블린으로 유명한 윌럼 더포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다만 영화 자체에선 무명 단역으로 나왔다. 이외 당시 주목받던 이자벨 위페르의 헐리우드 데뷔작 (히로인)이었으나... 이 이후로 위페르는 헐리우드 대작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다.
영화사적으로 보면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의 종언으로 불린다. 이후 미국 영화계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나 스타워즈 같은 영화들이 주류로 올라서고 [7], 천국의 문으로 대표되는 70년대 뉴 아메리칸 시네마는 변방으로 밀러나거나 퇴장한다. 할 애슈비, 제리 샤츠버그 같은 감독들 커리어도 하향세를 그린것도 1980년대부터.
2012년 크라이테리온 콜렉션에서 블루레이로 발매했다. 안습한 게 극장판용을 편집할 그 당시, 기본이 되는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을 쓰는 바람에(…) 치미노가 선호한 5시간 25분짜리 버전은 '''남아있지 않았고''', 대신 남아있던 필름을 사용하여 2K로 재편집 후 복원했는데, 이 과정에 치미노 감독 본인이 감수위원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복원판에 대한 평은 좋은 편.

6. 관련 문서


[1] 또 다른 경우로 컷스로트 아일랜드가 있다. 이거 하나로 제작사인 캐롤코 픽처스를 부도냈다. 다만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는 당시 6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메이저급 영화사였기에 부도 당시 20년 남짓된 중소영화사인 캐롤코랑 다르긴 하다. 그런데 이 영화 배급사도 바로 MGM이다![2] 심지어 하버드 졸업식 장면을 촬영한다고 '''하버드의 나무를 뽑아서''' 촬영장으로 공수해왔다.[3] 그 대가로 100% 감독권을 주었다.[4] 무대 세트의 간격이 안 맞아서 다 뜯고 다시 만들었고, 하도 제작자들이 뭐라고 해서 무장경비원 고용해서 촬영장 봉쇄한다던가 등등.[5] 시사회판은 진짜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6] 일부 포털 영화 정보에 1980년 11월 7일 개봉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 때 '천국의 문'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는 원제목이 'In Search Of Historic Jesus'인 기독교 다큐 영화다. 번역 제목 때문에 생긴 혼동이다.[7] 아이러니하게도 루카스와 스필버그 역시 뉴 아메리칸 시네마 붐에 데뷔한 감독으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