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캐퍼닉
1. 개요
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 2013년 슈퍼볼을 포함하여 2년 연속으로 NFC 챔피언쉽 게임까지 이끌며 팀의 간판 스타로 떠올랐지만 이후 여러 이유로 팀을 떠나 실질적으로 선수 은퇴 상태에 처한 선수. 다만 후술된 2016년 사건으로 미식축구 선수가 아닌 '''흑인민권운동가'''로 재조명받기 시작한 선수이다.
2. 아마추어 시절
백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캐퍼닉은 고교 시절에 풋볼, 농구, 야구를 병행했는데, 단순히 병행한 정도가 아니라 우리나라 식으로 치면 고등학교 3학년 때 저 세 종목에서 모두 All-State 선수로 선정될 정도로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야구에서는 92마일의 패스트볼을 뿌리는 강속구 투수였으며 ERA 1.27에 13경기에 출장하여 그 중 10번의 완투승을 거둘 정도로 재능을 보였으며 2009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는 43라운드에 시카고 컵스에게 지명을 받기도 했다. 농구에서는 한 경기 34득점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하지만 미식축구를 더 좋아했던 캐퍼닉 선수는 풋볼 선수가 되기 위하여 컵스의 지명을 거부했으며 유일하게 풋볼 장학생을 제안했던 네바다 대학교 진학을 택했다. 2006년에 1년 유급을 하고 2007년부터 본격적인 대학 풋볼을 경험하기 시작한 캐퍼닉은 첫 시즌부터 맹활약하며 WAC 올해의 신입생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쿼터백 레이팅 161.06을 기록했는데[1] 이는 당해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라고 한다. 뱀발로 그해의 캐퍼닉 위에 있는 4명 중에 1명은 '''팀 티보'''다. (...)
이후에도 네바다 대학교의 주전 쿼터백으로 맹활약하며 컨퍼런스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았다. 3년차 시즌인 2008년,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0년에 WAC 올해의 공격수 상을 받은 것이 그 증거. 특히 2010년에는 3022야드 패스, 1206야드 전진을 기록하며 자신의 대학 풋볼 시즌 중 최고의 시즌을 보냈으며 무엇보다 패스 성공률이 전년도인 58.9%에서 64.9%로 껑충 뛰어오른 것이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맹활약에도 약체 컨퍼런스에서 활약한 선수라는 딱지로 드래프트에서는 2라운드에 지명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캐퍼닉이 참가한 2011년 드래프트가 상당히 빡셌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면 당시 1라운드로 지명된 선수 중 무려 15명이 NFL의 올스타인 All-Pro에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 NFL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었을 '''캠 뉴튼, 본 밀러, A.J. 그린, 훌리오 존스, J.J. 왓''' 등 현재 가장 잘 나가는 선수들이 대거 포진해있었던 드래프트가 바로 2011년 드래프트였다. 이런 이유도 있고 듀얼스렛 쿼터백으로서 캐퍼닉의 패싱 능력이 과연 NFL에서도 통할까라는 의문점이 약간 든 것도 있었다. 하지만, 캐퍼닉의 매우 짧은 미식축구 구력을 생각하면 오히려 높은 순위 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쿼터백 출신 짐 하보 당시 나이너스 코치가 캐퍼닉을 찍어서 차세대 쿼터백으로 밀겠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당시 주전 알렉스 스미스의 입지는 매우 좁아졌다.
3. 커리어
상대적으로 대중의 관심이 멀어진 상태에서 시즌을 시작한 캐퍼닉은 오랫동안 팀의 주전이자 2005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였던 알렉스 스미스의 백업 쿼터백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2012시즌 알렉스 스미스가 대삽을 푸면서 당시 헤드코치였던 짐 하버의 조치로 캐퍼닉이 예상보다 빨리 주전으로 올라왔는데 예상보다 너무 잘해준 덕분에 포티나이너스는 11승 1무 4패로 지구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고 그 기세는 NFC 챔피언쉽까지 이어져 슈퍼볼까지 승승장구하며 올라갔다. 이는 팀 역사상 18년 만의 슈퍼볼 진출이어서 팬들 입장에서는 더욱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형제 감독이 나란히 슈퍼볼에서 만난 진기록을 세운 2013년 슈퍼볼에서는 포티나이너스와 볼티모어 레이븐스가 만났는데 엎치락 뒤치락하는 접전이 펼쳐지다가 하필 마지막에 캐퍼닉 본인이 삽을 드는 바람에 결국 34-29로 석패하며 슈퍼볼 준우승에 머물렀다. 안습.
그리고 2013 시즌에는 포티나이너스가 여전히 우승 후보로 꼽히는 가운데 풀타임 2년차인 캐퍼닉이 여전히 승승장구하며 12승 4패로 선전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특히 개막 첫 경기에서 캐퍼닉은 무려 412야드 패스에 터치다운 3개로 게임을 지배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커리어 하이 기록이며 1경기 400야드 패스는 팀 역사상 약 9년 만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이후에 포티나이너스는 와일드카드전과 디비전 시리즈에서 각각 그린베이 패커스와 캐롤라이나 팬서스를 물리치고 3년 연속 NFC 챔피언쉽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지구 라이벌인 시호크스를 만났으나 전반 내내 완벽히 봉쇄했던 시호크스의 '비스트' 마션 린치가 후반 들어 활약하기 시작하고 2번의 결정적인 오심에 캐퍼닉이 멘탈붕괴를 겪으며 2년 연속 슈퍼볼 진출은 물 건너갔다.
그렇게 실패를 겪었지만 캐퍼닉 선수는 2014년 6월 경에 6년 $126M의 대형 계약을 따내는데 성공하며 쾌재를 불렀다. 비록 54M 짜리 옵션이 붙어있어 이 돈을 다 받는다는 보장은 없긴 해도 그래도 캐퍼닉의 위상이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알 수 있었던 계약임은 확실했다. 그렇게 새 구장과 함께 새 시즌을 맞이한 캐퍼닉이었는데 팀의 공격진은 점점 쇠락해가고 수비진 상황은 더욱 심각해서 주전 선수들이 부상 및 사건/사고로 싸그리 이탈하며 80년대 명가의 부활을 노리던 포티나이너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헤드코치였던 짐 하버와 새 구단주인 제드 요크가 대립하는 상황까지 벌어지는 내홍을 겪었던 것도 한 몫했다. 팀 분위기는 좋게 말하면 어수선한 상태였고 나쁘게 말하면 막장 그 자체였다. 그 상황에서도 캐퍼닉은 3369야드 패스, 639야드 전진으로 활약해줘서 포티나이너스는 8승이나(...) 거둘 수 있었다.
시즌은 끝났지만 구단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들은 극에 달해서 헤드코치인 짐 하버와 오펜스 코디네이터인 그렉 로먼과 디펜스 코디네이터 빅 팬지오는 전부 떠나버렸고 이후에 선임한 HC 짐 톰슐라는 이런 막장 분위기의 팀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인물이 아니었다. 구단주는 돈을 벌어들이려는 궁리만 하고 있으니 이건 뭐... 허구헌 날 까이는 마이애미 말린스의 구단주 제프리 로리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인물이 아니다. (...)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인물이 캐퍼닉이었다. 팀의 구심점이자 스승이었던 짐 하버와 그렉 로먼까지 다 떠나버린데다 캐퍼닉 본인의 플레이 스타일 특성상 기복이 좀 있는 편이기도 했다. 그리고 라커룸 리더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성향의 선수도 아닌데 자신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 오니까 말 그대로 갈팡질팡하고야 말았다. 거기에 결정타로 왼쪽 어깨 수술로 시즌 아웃 확정. 그야말로 최악의 한 해였다.
결국 포티나이너스는 드래프트를 통해 캐퍼닉을 대체할 쿼터백을 찾고 있었고 그 중에는 팩스턴 린치와 제러드 고프가 있었으나 린치가 부상을 당하며 주가가 폭락하였다. 결국 고프를 잡아야되는데 고프의 주가는 덩달아 올라서 전체 7순위인 포티나이너스가 고프를 잡을 수 있을 지가 의문이었으며 결국 예상대로 전체 1픽인 로스앤젤레스 램스가 고프를 낚아챘다. 결국 블레인 개버트와 주전 경쟁을 해야되는 상황이었는데 새로운 HC 칩 켈리가 듀얼스렛 쿼터백을 좀 더 선호하는 인물이라 캐퍼닉이 다시 주전 자리에 오르지 않을까하는 예상도 많았다. 그러나 결국 개버트에게 밀려 백업으로 확정되었다.
8주차 현재 개버트가 무지막지한 삽을 파는 바람에 캐퍼닉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그러나 시즌 종료 후 옵트아웃을 선언, FA가 되었다. 그리고 하단의 이유로 2020년 현재까지도 팀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4. Taking a Knee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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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시즌 그린베이 패커스와의 시범경기 당시에 경기장에는 여느 때처럼 미국의 국가인 The Star-Spangled Banner가 울려퍼졌다. 모든 사람들이 국가가 울려퍼지자마자 기립했는데 딱 한 명, 캐퍼닉 선수만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경기 후에 당연히 기자들은 왜 이런 행동을 했는 지에 캐퍼닉에게 질문을 했는데 캐퍼닉은 '''"인종차별하는 나라를 위해서 일어나고 싶지 않다."'''라며 폭탄 선언을 한 것이다. 이는 흑백 갈등으로 인해 계속되는 사건, 사고로 얼룩진 미국 사회에 불만을 가진 캐퍼닉의 인터뷰로 이 인터뷰에 미국 전체가 들썩거렸으며 이에 찬반 양론이 거세게 부딪히고 있는 중이다. 이 사건으로 캐퍼닉은 큰 비난을 받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에게 맞는 나라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비난을 했다.
다만 여론은 캐퍼닉 선수를 옹호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캐퍼닉이 갑자기 관심 좀 받자고 이런 행동을 한게 아니라 평소에도 흑인의 권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많이 게재해왔고 Black Lives Matter 운동으로 인해 흑인 인종차별 이슈가 급 부상해 여론의 동조가 늘어 났기 때문이다. 캐퍼닉의 행동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는 저항할 권리를 남다른 방법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라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HC 칩 켈리를 포함하여 포티나이너스 구단에서 직접 캐퍼닉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메이저리거인 애덤 존스 선수 역시 '''"야구는 백인들의 게임이라서 야구선수들이 이러한 흑백 갈등에 대해 덮고자 하는 분위기."'''라는 거센 비판을 가하며 캐퍼닉을 지지하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캐퍼닉을 지지하는 의사를 표명했다. 정확히는 "미국 헌법에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권리가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캐퍼닉은 자신의 권리를 이행한 것."이라며 캐퍼닉의 기립 거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물론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근거로 캐퍼닉을 비판하는 것 역시 개인의 권리이니 이를 어떻게 판단할 지는 독자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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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셀럽들의 캐퍼닉 지지 의사 표명 외에도 미국 내에서 캐퍼닉을 옹호하는 분위기가 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저지 판매 순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캐퍼닉의 저지가 불티나게 팔려서 순식간에 1위를 차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99.99에 팔렸던 캐퍼닉의 저지는 이후에 세일하여 $74.99에 팔리고 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시 원가격인 $99.99로 올렸다. 다만 한 여론 조사에서는 미국인이 싫어하는 NFL 스타 1위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이 사태로 인해 빠와 까가 극명하게 갈리는 선수로 굳어진 듯. 다만 이 여론조사에서도 흑인과 백인층의 의견이 판이하게 갈린다는 점은 참고할 것.#
그러나 2016년 대선과 관련, 본인은 투표를 위선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투표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하여 비판받기도 했다. 이건 캐퍼닉 지지자들도 상당수는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인게, 인종차별 관련으로 즉 미국사회가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국 국가 관련 논란을 일으켰다는 사람이 사회를 바꾸고 발전시키는데 기여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그것도 흑인들이 1960년대까지 가지지 못 했었고 긴 투쟁 끝에 얻게 된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비난이 공감을 받고 있는 것. 아마 자신을 비난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선후보가 정식으로 등록되어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와 접전을 벌이고 있어 불쾌했던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투표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저항이라는 공감을 받기도 어렵고 현실적으로 봐도 자신이 반대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 도리어 사태의 악화에 기여하는 행위라 비판을 받았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전 서기장 사후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그와 말콤 엑스가 악수를 하는 티셔츠를 입고 나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미국과 쿠바가 화해 무드에 들어간 상황이긴 했지만, 문젠 해당 경기가 일어난 지역이 '''카스트로에 반대하는 인사들과 카스트로 체제에 억압받은 쿠바인들이 많은 마이애미'''였다는 점. 알다시피 미국 자체가 전반적으론 반미적인 성향이 강한 카스트로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강한 편이지만, 특히 마이애미는 카스트로의 반대자들과 피해자들이 주로 망명해온 지역이라 카스트로의 죽음이 알려지자 쿠바계 미국인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환호를 했을 정도로''' 카스트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2] 카스트로에 대한 긍정/부정적인 의견과 별개로 때와 장소를 고려하면 캐퍼닉이 고의적으로 어그로를 끌었다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는 셈. 당연히 현장에서도 마이애미 팬들의 야유를 받았다. 거기다 카스트로를 독재자라고 비판하는 의견은 특히 미국에서 주를 이루고 있어서 억압적인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이 독재자에게 지지를 표명했다면서 이중적인 위선자라고 더 까였다. 이에 본인은 카스트로의 폭정을 지지하는건 결코 아니며, 카스트로의 무상 교육, 무상 의료 정책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 종식에 개입한 것에 동조한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2017년 3월 초 들어서부터는 더이상 저항운동을 하지 않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두고 그 배경엔 '''NFL 관객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캐퍼닉의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사태가 처음에는 흑인선수들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하여 히스패닉과 백인 선수층에까지 퍼지고 NFL 측에서도 이를 옹호하는 등 나름 여론의 호응을 얻었지만, 뭐든 과유불급이라고 과한 여론의 호응과 상기된 몇몇 사건들로 까들도 많이 늘어나 그들 기준으론 애국심이 없다고 느끼는 캐퍼닉과 NFL을 보이콧하기 시작했기 때문. 결국 시간이 지나 여론의 관심도 식고 money 앞에는 장사 없는지라 캐퍼닉과 그 외 선수들, NFL도 은근슬쩍 태도를 바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여차저차해 캐퍼닉은 옵트아웃 조항을 실행해 FA 시장에 나왔지만, 시장이 열린지 2주가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도 NFL 소속 32개 팀으로부터 아직 러브콜을 받지 못하고 있다. 캐퍼닉의 지지자들은 캐퍼닉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고 흑인 인권 운동을 했기 때문에 전 NFL구단이 보복 차원에서 실력과 상관없이 캐퍼닉을 보이콧하고 있다며 이를 인종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와 시애틀 시호크스의 리처드 셔먼은 실력이 없는 다른 선수들도 무사히 계약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유독 캐퍼닉한테만 이런 것은 NFL이 캐퍼닉에게 보복성 보이콧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으며 이제는 대통령이 된, 한때 캐퍼닉과 설전을 벌인 도널드 트럼프는 이는 자신 때문이라고 말했다. 캐퍼닉을 사인하는 구단은 누구든 자기 트윗을 받을 각오를 해야할 거라고. 반면 다수의 반대자들은 사상 논쟁을 떠나 캐퍼닉의 실력 자체가 이미 하향세를 탄지 오래인 이상 유망주도 아닌 그를 구단들이 원하지 않는게 당연한 거라고 반론 중이다. 정답은 찬반 그 어디 중간쯤에 있을듯.[3]
한편, 일련의 운동으로 콜린 캐퍼닉 선수는 2018년 국제엠네스티의 양심대사상(Ambassador of Conscience Award)을 수상하였다.[4] 살릴 셰티(Salil Shetty)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앰네스티 양심대사상은 콜린 캐퍼닉이 보여준 것과 같은 액티비즘 정신과 뛰어난 용기를 기리는 상이다. 세계적인 풋볼선수인 캐퍼닉은 인종차별을 더 이상 용인하거나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드러냈고, 이제는 그의 활동으로 또 한번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며 “양심대사상의 역대 수상자들과 마찬가지로, 콜린 캐퍼닉은 자신의 선수 생활과 '''신변에 위험이 닥칠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길을 선택했다. 캐퍼닉과 같은 유명인이 인권을 지지하고 나서면, 불의와 맞서 싸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를 통해 용기를 얻는다. 권력자들은 캐퍼닉의 행동에 충격적일 정도로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고, 그렇기에 캐퍼닉이 보여준 헌신은 더욱 대단한 것'''이었다”고 말했다.[5]
2018년 9월, 나이키에서 미국 소비자들을 타겟으로 한 'Dream Crazy' 라는 광고의 모델로 기용되었는데, 이 광고에 기용된 것도 미국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안티들은 나이키 보이콧을 떠들면서, 극단적인 경우 나이키 신발에 불을 태우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해당 광고에 대해 호평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단적으로 광고 이후 온라인 매출이 '''폭증'''한 데다가, 주가는 광고 공개 이후 떨어졌지만 다시 회복하고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오히려 나이키 주식을 살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 광고 영상.
이에 대응하여, 2019 슈퍼볼 하프타임 쇼의 헤드라이너인 마룬 파이브의 공연에 P!nk, 리한나가 게스트 제의를 거절하고, 카디비 또한 거절했다.
5.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듀얼스렛 쿼터백. 고교 시절 투수로서의 잠재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어깨가 강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주력이 상당히 좋아서 (NFL 컴바인 당시 40야드 달리기 기록 4.53초) 소위 '뛰는 쿼터백'을 좋아하는 팬들은 캐퍼닉의 스타일을 상당히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어깨와는 별개로 패싱 능력에 대해 의문점이 따라다니는 쿼터백인데, 이전에 캐퍼닉에게 호되게 당했던 상대팀들이 캐퍼닉에 대한 전술을 제대로 짜고 들고 나오자 캐퍼닉이 되려 당하며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기량 기복도 좀 있는 편이다.
같은 지구 라이벌이자 역시 듀얼스렛 쿼터백인 러셀 윌슨과 비교되는 스타일이기도한데, 윌슨의 경우 패스를 먼저 생각하다가 안될 경우 뛰는 스타일이라면, 캐퍼닉은 일단 발부터 나가는 쿼터백이라는 것이다.
6. 연도별 기록
[1]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쿼터백 레이팅은 최저 0점, 최고 158.3점이지만 이건 NFL 기준이고, NCAA 기준의 쿼터백 레이팅은 최저 -731.6점, 최고 1261.6점(...)으로 상당히 편차가 큰 편이다. 참고로 NCAA 단일 시즌 최고 기록은 2011년 러셀 윌슨의 191.8점이다.[2] 마이애미 말린스의 전 감독이었던 아지 기옌은 카스트로를 존경했다고 발언했다가 감독 직에서 경질되기도 했다.[3] NFL 강팀 주전은 언감생심이고 약팀이 주전 QB를 세우기 전까지 징검다리로 거쳐가는 QB로 영입하거나 백업 QB로 영입하는건 고려할 수 있겠지만 워낙에 이슈의 중심에 있었던 선수라 계약하기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2016년 이후 3시즌이나 통으로 날려먹으면서 실전경험 부족때문에 이제는 백업 QB로서의 실력까지 의심스러운 상황이 되었다.[4] 이 상의 역대 수상자로 넬슨 만델라, 말랄라 유사프자이 등이 있다.[5] 출처 -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