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키스탄/역사

 




1. 개요
2. 고대
3. 중세
4. 근세
5. 근현대


1. 개요


타지키스탄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항목으로, 오늘날 타지키스탄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활동했던 왕조가 워낙 많았거니와 타지크인들이 부하라,사마르칸드,발흐 등지에서 활동했던 이유로 우즈베키스탄 및 아프가니스탄 역사와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
이 지역은 실크로드의 실세 소그드인의 고향이기도 하다.

2. 고대


고대부터 파미르 고원 일대에는 청동기 문명이 나타났다. 판자켄트에서 서쪽으로 15km 거리에 위치한 지역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사라즘(Sarazm)이 건설되었다. 이 도시는 기원전 4천년경에서 3천년경 기간 사이에 건설된 도시였다.
기원전 2천년 경 무렵 인도유럽어족 유목민들이 볼가 강 유역과 우크라이나, 캅카스 일대에서 이란을 거쳐 중앙아시아와 인도로 이주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중앙아시아 트란스옥시아나로 이주한 인도유럽어족들은 타지크인들의 직계 기원이 되었다. 파키스탄의 칼라쉬, 아프가니스탄의 누리스탄인, 오늘날 파미르인들 역시 이 인도유럽어족 이주민들의 직계 후손이며 오늘날에도 적발벽안의 특성을 보인다. 인도유럽어족들은 우마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곡식을 재배하기 적당한 땅이 나타나면 파종을 하고 몇 년 동안 농사를 짓다가 지력이 고갈되거나 인구가 늘어나면 다시 부족원 일부가 우마차를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거주 영역을 급속히 넓혀나갔다.
이후 중앙아시아 지역에는 스키타이, 샤카족이라 불리는 기마 유목민들이 나타났다. 청동기 시대에는 말을 직접 타는 방식보다는 마차를 이용하는 방식이 흔했다면 스키타이인들이 타고 다니는 말은 종자가 개량된 이유로 좀 더 크고 튼튼한 편이었다. 기마술을 바탕으로 스키타이 유목민들은 중앙아시아 각지에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서는 이 지역을 소그디아나라고 불렸으며, 그 외에도 박트리아와 마르기아나 등 여러 지역들에 다양한 세력들이 형성되었다. 중앙아시아의 마사게타이족 등은 페르시아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페르시아에 기병 전력을 제공하였으며, 조로아스터교가 번성하고 페르시아화가 되었다. 당시 이 지역의 주민들은 붉은 색 머리에 파란 눈을 지녔다 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페르시아 정복 과정에서 이들의 조상 중 한 갈래로 여겨지는 마사게타이족과 싸웠으며 이후 소그드인 출신 록사나를 왕비로 맞아 결혼한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셀로우코스 장군의 셀레우코스 왕조가 이 지역을 장악했다. 그러나 향수병 때문에 그리스에 돌아가고 싶어한 그리스인과 마케도니아인들은 셀레우코스 왕조에 불만을 품고 종종 폭동을 일으켰으며 이 와중에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이 건국되었다.
그리스 박트리아 왕국이 토하라인의 침입으로 멸망하자 소그드인들은 중앙아시아 각지로 이동하여 오아시스 도시들을 거점으로 국제 무역에 종사하게 된다. 파미르고원 동부는 오늘날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중세 토하리스탄에 해당하고, 파미르 남부는 인도의 쿠샨왕조의 영토로 고대 토하리스탄에 해당한다. 토하라인들이 건국한 쿠샨 왕조의 영향으로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남부와 타지키스탄 일대에는 불교가 전파되었으며 관개시설이 확충되어 농업 생산성이 증대되었다. 이는 인구 증가와 교역량 확충으로 이어졌다.

3. 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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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드인들은 에프탈 족과 서돌궐 제국 등 여러 유목 민족과 협력하며 고대 말부터 중세 초까지 실크로드 교역의 실세가 되었다. 타지키스탄을 근거지로 한 소그드인들은 동서 무역을 통해 유목 제국 운영에 필요한 세금과 여러 물자를 공급하였으며 도시 운영과 행정을 담당하였다.
사산 왕조아랍 제국들에게 무너진 이후 타지키스탄 일대도 자연스럽게 아랍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아랍에 의해 이슬람으로 개종되었다. 이슬람 이전에 들어왔던 이란계 및 페르시아 문화 등 토착문화와 아랍으로부터 전래된 이슬람이 들어오면서 이곳에는 서북아시아의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또는 이슬람 문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9세기 후반에는 사산 제국의 후손 중 하나였던 사만 가문들에 의해 819년, 사만 왕조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타지크족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소그드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후 페르시아-이슬람 문화에 동화되면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상실했던 것. 다만 이들의 문화는 완전히 사멸되지는 않고 위구르 제국,고창회골을 중심으로 한 위구르족에게 전수되었다. 999년 사만 왕조는 튀르크계 왕조였던 카라한 칸국과의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트란스옥사니아 등은 투르크화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타지크족들의 문화는 중앙아시아와 그 주변에서 번영했으며, 중앙아시아의 여러 왕조들의 문화에 기여를 했었다. 아프가니스탄고르 왕조는 타지크계 왕조였으나 파슈툰족 민족 형성에 크게 기여한 왕조이기도 하다. 사만 왕조와 가즈니 왕조를 거치며 이슬람화된 아프간 산악 민족들이 타지크-순니 이슬람 문화를 바탕으로 고르 왕조를 세우고 확장한 것이다.
이후 고르 왕조, 카라한 칸국 등을 흡수했던 호라즘 제국몽골 제국에게 망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트란스옥시아나킵차크 칸국차가타이 칸국, 티무르 제국 등 몽골계 투르크 부족들의 휘하에 들어갔다. 그 이후 우즈베크족이 티무르 제국을 멸망시키면서 사마르칸트와 부하라 등 트란스옥사니아는 부하라 칸국이 나타났다. 한편 우즈베키스탄 동부와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국경 일대, 페르가나 계곡에는 코칸드 칸국이 세워졌다. 한 편 서부에서는 타지크인들과 우즈베크인들, 투르크멘인들이 있었던 호라즘에 히바 칸국이 건국되었다.

4. 근세


이 와중에 이란에서는 쉬아 12이맘파 중심의 사파비 왕조가 건국되어 이란 내 페르시아인들을 거의 다 쉬아파로 개종시키면서 중앙아시아의 타지크인들과 이란 내 페르시아인들의 종교와 문화는 순니파 대 쉬아파로 분열되었다. 사파비 왕조의 쉬아12이맘파 개종 강요 당시 많은 페르시아계 순니 무슬림들이 오스만 제국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로도 탈주하였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어 세계 무역의 중심이 호라산과 트란스옥시아나에서 대서양과 인도양의 무역으로 이전되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말린 찻잎을 수입하여 재수출하거나 말 수요가 많았던 무굴 제국에 말을 국제 시세보다 더 높은 가격에 수출하면서 18세기까지는 번영이 지속되었다. 우즈벡계 코칸드 칸국은 타지키스탄 고지대 출신 용병들을 이용하여 영토를 넓혀나갔다.
이후 차 수출도 해상 무역에 의해 대체되고 무굴 제국이 몰락하자 당시 타지키스탄을 다스리던 코칸드 칸국은 청나라의 신장 지역에서 납치한 한족들을 데리고 노예 무역을 시도하고, 청나라 조정으로부터 약탈을 중지하는 대가로 보조금을 받아내기 이른다. 그러나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이 중앙아시아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코칸드 칸국을 점령하고 타지키스탄 일대는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 러시아는 영국의 견제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려는 시도는 하지 못했고, 결국 계기로 타지크인들의 주 거주지는 북부의 타지키스탄, 남부의 아프가니스탄 이렇게 두 나라로 분할되었다.

5. 근현대


19세기에는 러시아 제국이 중앙아시아 일대로 남진하면서 타지키스탄 역시 러시아령이 되었으나 타지크 유력자들은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영주나 귀족 대우를 받았다. 러시아 혁명 이후 바스마시 운동으로 러시아로부터 독립하고 소련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나, 소련에게 점령되면서 사회주의 운동과 공산화로 인해 부하라 소비에트 인민공화국이 형성되었다. 이 때는 1920년부터 1924년까지는 우즈베크와 같이 있었지만 그 후 타지크족들이 자치를 선언했고, 따로 독립되어 나중에 1929년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소련 해체 이후 1991년 타지키스탄으로 독립이 되었다. 하지만 1992년 이후 타지키스탄 내전이 나타나서 1997년까지 지속되었다(타지키스탄 내전 참고). 내전이 끝난 이후 중도 세속주의 정권이 집권하여 현재까지 정권을 잡고 있다. 자세한 것은 에모말리 라흐몬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