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카가메
1. 개요
르완다의 6~8대 대통령이자 독재자. 다만, 자기만 생각하고 국민들은 굶어 죽건 병들어 죽건 나라가 망하건 말건 신경 끄고 사는 아프리카 다른 나라 독재자들과는 달리 능력은 있어서, 국가 발전과 국민 복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게 사실이라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다. 이 때문에 한동안 서방에서는 대한민국의 전 독재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책과 비슷하다 해서 '''아프리카의 박정희'''라는 별명도 붙었던 적이 있었다.
프랑스어 배제 정책을 폈다.
예전에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걸로 알려져 있다. 어렸을적 부모님에 의해 피난길에 올라 우간다에서 성장하였으며 젊은시절에 우간다 저항군에 동참하기도했다. 당시 저항군을 돕던 르완다 망명자들이 르완다 애국전선(RPF) 창설자들이다.
또한 동아프리카 공동체의 의장이고 아프리카 연합의 의장이기도 했다. 2020년 2월부터는 시릴 라마포사가 아프리카 연합의 의장이 되었다.
2. 생애
2.1. 르완다 내전
1957년 르완다 남부 탐브웨(Tambwe)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투치족이었으며, 그가 어렸을 때 투치족 학살이 일어나 1960년 우간다로 피난해 난민촌에서 살았다. 이후 우간다의 독재자 밀턴 오보테 대통령에 반대하는 게릴라 국민저항군에 입대했다. 1986년 국민저항군의 리더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이 집권하였고[4] 카가메는 국민저항군의 장관이자 무세베니의 측근이 되어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당시 르완다는 쥐베날 하뱌리마나 독재정권 하에서 다수의 후투족이 소수의 투치족을 탄압하는 형편이었으며, 이 무렵 카가메는 미국의 레번워스 기지의 미국 육군참모 대학에서 훈련받았고, 르완다 내전에서 투치족들의 르완다 애국전선(RPF)을 이끌게 되었다. 초반에 RPF는 상당한 세를 얻었으나 프랑스와 벨기에 등이 후투족 독재 정권을 지원함으로써 RPF는 점차 밀리게 되었다. 결국 1993년 아루샤 조약으로 휴전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직후 후투족 출신의 르완다와 부룬디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야 말았다.[5]
이에 후투족들의 인테라함웨나 임푸자무감비 등의 단체는 투치족 학살을 시작했다. 약 세 달 동안 최대 100만 명, 르완다 인구의 20%가 학살당했다. 학살당한 인원은 대개 투치족이었으나 일부 온건파 후투족과 피그미족의 일파인 트와족도 학살당했으며, 투치족의 70%, 트와족의 30%가 학살당했다. 이에 RPF는 반격을 개시해 수도 키갈리를 점령했으며, 이어 르완다 전체를 장악했다. 그사이 UNAMIR 소속 평화유지군들은 수백명으로 감축되었고[6] , 프랑스는 UN과는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민간인 보호를 (비공식적으로 - 반쯤은 거의 대놓고 - 후투족을 지원) 명분으로 내세워 투크쿼이 작전을 개시하여 안전지대를 구축하였다. 그러자 후투족은 이 기회를 잡아 자이르, 즉 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으로 피난을 떠났다.
그런데 이 피난민 중에는 수십만 명의 인테라함웨가 섞여 있었다. 이에 카가메는 이들을 진압한답시고 자이르를 침공했고, 침공한 김에 자이르 동부의 로랑 데지레 카빌라가 이끄는 [7] 게릴라와 연합해 1,600km를 진격해 모부투 세세 세코의 자이르 독재정권을 전복하고 카빌라를 대통령으로 하는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를 세운다. 그러나 카빌라가 대통령이 된 이후 카빌라가 르완다와 거리를 두자 다시 콩고민주공화국을 침공했고, 이 내전 동안 540만 명의 콩고인이 사망했다. 당시 내전 기간 동안 르완다군과 동맹군 우간다군은 수많은 콩고인을 학살했으며, 내전이 끝난 후에도 르완다는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의 여러 반군을 지원하며 자원을 챙겨갔다고 한다.
2.2. 대통령 당선 후
한편 카가메는 2003년 비로소 치러진 대선에서 '''95%의''' 엄청난 지지율로 당선되어 정식으로 르완다 대통령이 되었다. 새 르완다에선 인종, 종교, 민족에 대한 차별이 금지되었고 여성 의원 할당제가 실시되어 의원의 56%가 여성인 국가가 되었다. 경제사정이 개선되어 8% 정도의 경제성장률이 기록되었고 치안사정도 개선되어 현재 대한민국 외교통상부에서도 주변국을 보통 철수권고국(콩고민주공화국, 부룬디)이나 여행자제국(우간다)으로 지정해 놓았지만 르완다는 콩고민주공화국과 부룬디 국경을 제외하면 여행유의국에서 그치는 수준이다. 또한 세계 최빈국인 르완다임에도 의료보험을 널리 적용시켜 아주 고급의 서비스는 아니어도 르완다에선 위협적인 질병이었던 설사, 폐렴, 말라리아나 영양실조 등에 대해 대비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업적 때문에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그를 "르완다를 지옥에서 건져낸 인물"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8]
그러나 폴 카가메는 독재자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르완다의 언론자유지수는 전세계 179개국 중 '''무려 169위'''를 기록하기도 하였으며 대선 직전 의문의 폭발사고가 일어나거나 정치인에 대한 체포 혹은 실종 등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기사
그리고 2010년에 대선에서는 약 93%의 지지율로 당선되어 7년 임기를 시작했는데, 대선 과정에서 유력 야당 지도자들이 투옥되거나 살해되거나 강압에 의해 재집권에 성공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실제로 콩고민주공화국의 반군을 지원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대선 출마가 좌절된 빅투아르 잉가비르 민주세력연합(UDF) 총재는 "자유 투표가 보장되지 않았다"면서 대선 결과에 반발했다. 또한 르완다에서 스웨덴 망명자들을 감시하다가 외교관이 쫓겨난 사례도 있으며, 무엇보다 폴 카가메는 콩고 내전 당시 이뤄진 여러가지 전범 혐의를 받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폴 카가메가 이끄는 RPF는 르완다의 모든 부를 독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르완다 기업인들이 주축이 돼 지난 2009년 설립한 투자회사 크리스탈 벤처스는 그 자산만 5억 달러(약 5700억원)로 평가되는 우량기업이다. 현재 서류상으로는 카가메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 소유로 돼 있으나 사실상 카가메 대통령 본인이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탈 벤처스는 각종 인프라와 부동산, 모바일 사업 등에까지 손을 뻗고 있다. UN은 콩고민주공화국의 광물 자원을 탈취한 범죄에 카가메 대통령의 회사가 연루돼 있다고 공개한 바 있다.
2.3. 3선 개헌 시도와 3선 달성
2015년 4월부터 부룬디에서 대통령이 3선 도전을 선언한 이후 부룬디에서는 은쿠룬지자에 반대하는 시위가 번져나가자, 은쿠룬지자는 이를 탄압했고, 이에 폴 카가메는 TV에 출연해 "사람들이 매일 살해되고 있다. 시신들이 거리 여기저기에 널부러져 있다", "은쿠룬지자가 살인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다"고 은쿠룬지자를 비판했다.[9]
그러나 앞에서 은쿠룬지자를 비판한 것과는 별개로 본인도 진정한 독재자가 되려는지, 아니면 자기가 물러나면 지금까지 쌓아올린 안정이 물거품이 될 거라는 두려움 때문인지 3선 개헌을 시도하고 있다. 르완다 의회는 폴 카가메 현 대통령의 3선 도전을 가능하게 만드는 헌법 개정안을 2015년 10월 29일 승인했다. 만약 헌법이 개정되면 '''무려 2034년'''까지 대통령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르완다 학살 이후 정권을 잡은 이래 40년 이상 통치할 가능성이 높다. 폴 카가메 측근들은 전체 유권자의 60%가 카가메 정권 연장을 희망하는 청원서에 서명했고 이에 부응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일반 르완다인들 사이에서도 경제성장과 치안 안정을 시킨 것은 사실이므로 르완다 사람들도 폴 카가메는 좋아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된''' 르완다에서 이번 헌법 개정 시도는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의 대통령들처럼 그저 권력에 집착하는 독재자와 똑같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유럽이나 여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도 "카가메는 충분히 르완다를 발전시켰다. 그러니 이제 탄자니아 줄리어스 니에레레[10] 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넬슨 만델라, 나미비아 샘 누조마 전 대통령처럼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서 물러나는 게 좋지 않겠는가"라고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르완다 국민들은 다시 폴 카가메를 대통령 자리에 올려줬다. 무려 98%의 지지율로.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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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 제4차 세계개발원조총회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을 하기도 했다.
키 188cm의 장신이다. 그의 자식들은 2m가 넘는다. 투치족은 북유럽인들과 비교될 정도로 평균 신장이 매우 큰 편이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인터뷰에서 새마을 운동에 대해 극찬을 하기도 했다.
아스날 FC의 팬이라고 한다. 그래서 2018-19시즌에 아스날 유니폼 어깨에 르완다 홍보 글귀를 내고 3년 동안 430억이 넘는 돈을 내며 계약했다.
4. 선거이력
5. 관련 문서
[1] 現 르완다 북부 주 루항고.[2] 자녀들은 대부분 벨기에 출생이고 벨기에에서 교육을 받았다.[3] 자녀가 모두 장신인데 아들들은 모두 2m가 넘고 딸 또한 194cm의 장신이다.[4] 2019년 현재까지 집권 중이다(...). 처음엔 아프리카의 신세대 지도자로 주목받았으나 현실은 '''200만 명'''의 사람들을 강제수용소에 가둔 막장 독재자이며, 인간 말종이다.[5] 프랑스 등의 주장으로 카가메의 소행이란 설이 있어서 프랑스와 르완다 간의 외교 갈등이 벌어졌으나 2012년 프랑스 법원의 재조사에서 아니란 결론이 나왔다.[6] 주력이었던 벨기에군이 총리 부부를 보호하던 벨기에 병사들이 학살된 사건으로 자국 내 여론이 악화되어 철수하게 되자 아예 규모를 줄여버렸다.[7] 카가메의 지원을 받기 전에 카빌라가 이끄는 게릴라는 민간인 납치로 먹고 사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8] 아랫나라이자 냉전 종식 후 르완다와 똑같이 후투족과 투치족 간 부족갈등으로 내전을 겪었던 부룬디가 여전히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9] 은쿠룬지자와 폴 카가메는 한 때 좋은 관계였으나, 2012년부터 사이가 나빠졌다.[10] 이 사람도 1960, 70년대까지 장기 독재를 했지만 결국 1985년에 대통령직에서 사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