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우크라이나 관계
1. 개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와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언어, 문화에서 슬라브족에 속해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
중세 폴란드 왕국은 키예프 공국의 후신 중 하나인 루테니아 왕국과 잦은 전쟁을 벌였으며, 결국 루테니아 왕국 영토 중 볼히니아 지방을 장악하였다. 이후 16세기에는 우크라이나 대부분 지역을 장악했던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루블린 조약을 맺으면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거듭났고, 이 와중에 우크라이나 일대에 리투아니아인 귀족들이 폴란드인으로 대체되면서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게 되었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지배 하에서 우크라이나 지역은 폴란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우크라이나 지주 계층 상당수는 정교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폴란드인 귀족들과 통혼했으며,[1] 폴란드 왕국 시절 초청받은 유대인들이 우크라이나 전역에 정착[2] 하여 마름 및 소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정교회를 믿는 우크라이나인 농노들은 일주일에 7일에서 8일동안 지주 땅을 경작할 의무(오타가 아니다. 지주 땅에서 경적해서 수확한 농산물은 전부 지주 몫이었다. 그러니까 부인이랑 애들이랑 같이 놀지 말고 정교회 갈거면 일요일에 교회도 가지 말고 함께 평생 지대를 납부하라는 강요였다.)를 부과받는 엄청난 착취를 당했다.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다른 서유럽 국가에 비해 취약한 경제 기반 때문에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수탈한 농산물을 수출하고 그 대가로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사치품을 수입하였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아무리 반러, 친서방 감정이 심하더라도 폴란드를 경계하는데 이런 과거사가 있었다.
중동부 유럽 전반적으로 그랬듯이 폴란드인들은 슐라흐타 지주 계층으로서 현지 사회적, 정치적 엘리트로, 정교회권 우크라이나인들은 도시 외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으로서 사회적, 경제적 분화와 이에 따른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는 루블린 조약 이후 27년 후인 1596년에 리비우의 정교회 시민들을 겨냥하여 동방 가톨릭 교회의 일파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으로 개종을 강요했다.[3] 또한, 우크라이나 서부 갈리치아 지역은 당시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일부였기 때문에 폴란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17세기 우크라이나 중부 지역에서 코사크 헤트만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정교회 차별을 이유로 봉기를 일으켰다. 초반에 승승 장구하던 흐멜니츠키는 폴란드 군의 반격으로 밀리자 러시아 제국에 개입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영토를 대거 상실하였으며 드네프르 강을 경계로 동쪽은 러시아, 서쪽은 폴란드 땅으로 정해졌다. 처음 조약과 다르게 키예프는 러시아 제국 차지가 되었다.
훗날 루스 차르국이 세력을 키우면서 표트르 대제의 개혁정치로 러시아는 강대국이 된 반면, 폴란드는 혼란에 빠지면서 18세기말에는 갈리치아를 제외한 우크라이나 대부분의 지역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폴란드는 18세기말에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프로이센의 지배를 받게 되고 탄압을 받게 되었다. 단,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가 된 갈리치아 볼히니아 지역은 폴란드의 옛 영토로 규정되었다.
2.2. 19세기
3차례에 걸친 폴란드 분할 과정 와중에 우크라이나 일대의 폴란드인 지주들은 상당수가 코사크들에게 축출당했다. 러시아 제국 내 다른 지역들 이를테면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지에서 독일인 지주들이 권리와 기득권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오스트리아 영토가 된 갈리치아 로도메리아 왕국에서는 폴란드인 지주들이 권리와 기득권을 유지하였으며 우크라이나인, 루신인 농노들과 많은 갈등을 빚었다.
2.3. 20세기
1918년에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자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이 생겨났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은 소련에 의해 멸망당했다. 그리고 소련-폴란드 전쟁으로 폴란드가 승리하면서 우크라이나 서쪽과 벨라루스 서쪽은 폴란드 땅이 되고, 동쪽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로 소련의 영토가 되었다. 전간기 폴란드 제2공화국에서 우크라이나계는 전체 인구의 16%를 차지하여 폴란드계에 이어 2번째로 높은 인구 비율을 차지했다.
폴란드 내 우크라이나인의 90% 이상이 농촌에 거주했다. 우크라이나계의 대부분은 폴란드 동남부에 거주했으며, 이 지역은 우크라이나계가 제1민족을 차지했지만, 도시는 대부분 폴란드계와 유대계가 숫적 우위를 차지했다. 우크라이나계의 60%는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신자였다. 폴란드 당국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폴란드 동남부 지역을 가리킬 때 '우크라이나'라는 표현을 꺼렸으며, 대신에 역사적 명칭인 '루테니아'라고 부르기를 원했다. 폴란드 정부는 우크라이나계를 상대로 동화 정책을 펼쳤다. 예를 들어 정부 기관에서는 우크라이나어가 퇴출되었으며, 전후에 분배된 우크라이나 지역의 토지를 대부분 폴란드 농민과 퇴역군인들에게 분배했다. 우크라이나계 지하조직들은 이에 반발하여 폴란드 정부 관료와 친폴란드 우크라이나인들을 상대로 테러를 벌였다.
1935년에 폴란드 정부가 우크라이나계 정당과 협력하여 우크라이나계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이 일시적으로 나아졌다. 예를 들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우크라이나인들이 대부분 풀려났고, 우크라이나어 진흥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인들이 원하던 지역 자치와 우크라이나어 대학의 설립, 식민화 시도 중단 등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양자간의 갈등은 1939년 폴란드 침공으로 폴란드 제2공화국이 멸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승전 이후 소련은 갈리치아 지역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서부를 폴란드에서 때어 우크라이나 SSR로 넘겨주었다. 폴란드인들은 2차 대전 와중에 우크라이나인들로부터 학살을 당했으며 종전 이후 배상을 받지 못하고 우크라이나에서 대부분 추방당했다. 2차 대전 와중에 우크라이나계에 의한 폴란드인 학살 때문에 현재도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를 상당히 적대하는 편이다.
2차대전 당시 폴란드 남동부의 볼히니아(Volhynia)와 동부 갈리치아(Galicia) 무려 12만여 명의 폴란드 인들을 대량학살하고 나머지는 내쫓아서 인종청소를 감행한 스테판 반데라(Stefan Bandera)와 휘하 조직 우크라이나 봉기군(Ukrainian Insurgent Army)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조직(Organization of Ukrainian Nationalists)은 우크라이나 일부에서는 조국 독립에 몸바친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물론 폴란드에서는 대량학살자를 찬양한다고 반발한다.
폴란드도 훗날 폴란드 인민 공화국이란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다. 냉전이 끝나면서 폴란드는 공산정권이 붕괴하고, 우크라이나 지역은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국이 되었다. 폴란드는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가장 먼저 인정한 국가 중 하나였으며, 동시에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결정된 두 나라 간의 국경의 불변을 천명하였다.
2.4. 21세기
현재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다. 폴란드는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을 지지하였다. 그리고 두 나라는 반러성향이 있기 때문에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심지어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의 EU가입, 나토가입을 지지하고 있을 정도이다. 유로마이단 사태 때 폴란드는 러시아의 침략을 우려해서 크림 공화국을 러시아가 합병하자 우크라이나 국경지역에 군대를 주둔시킨 적이 있었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합동여단을 창설하였다. 사령부 소재지는 폴란드 동부의 루블린(Lublin).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상호간의 인구 이동이 많았으므로, 상당히 많은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들이 서로의 나라에 가주한다. 양국의 공식통계에서 우크라이나의 폴란드 소수민족 인구는 14만 명(2001년 조사), 폴란드의 우크라이나 소수민족 인구는 5만(2011년 조사)이지만, 혼혈이나 후손, 이주노동자의 숫자까지 합하면, 폴란드에는 우크라이나계 200만 명이, 우크라이나에는 폴란드계 200만 명이 거주한다.
물론 역사적인 앙금도 었어서 거의 러시아 못지 않은 앙숙이다. 우크라이나 우익 세력들은 폴란드에 대해선 반폴란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도 소수의 폴란드인들이 거주하고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고 우크라이나에 동화되었다. 또한, 폴란드내에도 소수의 우크라이나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일부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외에도 폴란드로 이주했지만, 정작 폴란드 내에선 차별받고 있다.[4] 그리고 폴란드하고 리투아니아 관계도 이와 비슷한편이다. 현대에 들어선 러시아 견제를 목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협력을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안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점이다.
3. 관련 문서
- 폴란드/외교
- 우크라이나/외교
-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 폴란드/역사
- 우크라이나/역사
- 폴란드/경제
- 우크라이나/경제
- 폴란드인 / 우크라이나인
- 폴란드어 / 우크라이나어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동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중부유럽 국가
[1]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어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생겼다. 우크라이나어는 러시아어보다 폴란드어와 흡사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2] 이는 유대인에 대한 인도주의적 목적보다는 정교회 신도들이 도시 상공업자로 성장하지 못하게 농노로 묶어두려는 정책의 일환이었다.[3] 물론 이 과정에서 새로 근세 루테니아어 종교 서적들이 번역,출판되면서 폴란드어가 우크라이나어에 영향을 주었다.[4] 폴란드인들이 서방으로 일자리를 찾으러 많이 떠나면서 생긴 빈자리를 우크라이나인들이 채우고 있는데, 서방으로 간 폴란드인의 대부분은 대졸이라서 이 두뇌유출이 폴란드의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반면에 빈자리를 채운 우크라이나인들은 대부분 저임금 육체노동자들인데, 나라가 두 쪽으로 결딴나고 경제가 엉망이 된 이들 입장에서는 폴란드의 최저임금이나 기초생활보장도 감지덕지인 판이라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