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아저씨 행방불명 사건

 



1. 개요
2. 풍선 아저씨의 일생
3. 타마가와 하천에서의 소동
4. 판타지 호 사건
4.1. 판타지 호에 대한 이야기
5. 여담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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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1월 23일에 '풍선 아저씨(風船おじさん)'란 별명으로 불리는 스즈키 요시카즈(鈴木嘉和)가 자신이 만든 박스에 풍선을 매달고 태평양 횡단을 도전하다 11월 25일행방불명된 사건이다.

2. 풍선 아저씨의 일생


1940년 도쿄도에서 피아노 조율사 일가에서 태어나 쿠니타치 음악 대학 부속 고교를 졸업하고 야마하의 계약 사원으로 코가네이시에서 피아노 조율업을 했다. 1984년 44세의 나이로 음악 교재 판매 회사인 '뮤직 앙상블'을 개업하고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소리를 녹음한 테이프 판매를 개시했다. 이외 여러 음악 사업을 펼쳤으나 잘 되지 않아서 빚에 쫓기던 그는 '''"비닐 풍선 26개를 붙인 곤돌라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곤돌라를 타고 미국에 건너가서 빚을 갚겠다!"'''라는 황당무계한 발상을 하기 시작했다.
스즈키의 판타지 호는 1989년 요코하마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출품에 3,000만엔[1]이 필요했고, 기껏 출품에 성공했는데 회장 내 전시 위치도 영 좋지 않은 데다가 박람회 자체도 흥하지 않자 폭발한 스즈키는 박람회 마스코트인 '부루아쨩(ブルアちゃん) 인형옷을 입고 높이 30미터의 탑에 올라가서 "단체 버스 주차장을 개방해라!"라는 현수막을 걸고 7시간이나 서서 항의를 하다 출동한 경찰에 체포되었다. 경찰서에서 풀려난 후에도 그는 헬륨 풍선의 부력으로 10미터에서 20미터 지상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공중 산책'이라는 곤돌라를 박람회장에 자비로 설치했다. 한편, 뮤직 앙상블은 1990년 5억엔 가량의 채무를 안은 뒤는 최종적으로 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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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아쨩.

3. 타마가와 하천에서의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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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회사가 파산했음에도 그는 본격적으로 모험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풍선 아저씨는 1992년 4월 17일에 경찰들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쿄 오타 구 타마가와 강에서 치바현 쿠쥬쿠리 해안을 향해 의자에 5미터 크기의 풍선과 2.5미터 크기의 풍선을 각각 2개씩 동여매고 오후 12시 45분경 날아올랐다. 이 때 15kg의 모래 주머니 2개가 떨어져나가며 고도가 급상승하는 바람에 예정된 고도 400 m를 넘긴 5,600 m 고도[2]에 도달하자 당황한 풍선 아저씨는 라이터로 5미터 풍선 끈을 지져서 끊어내 겨우 고도를 하강시켰고, 오후 1시 40분, 출발 지점에서 24 km 떨어진 도쿄도 오오타구의 민가 지붕에 불시착했다. 이때 풍선 아저씨 자신은 왼손에 상처만 입은 반면은 민가는 지붕이 무너지고 TV 안테나가 꺾이는 해를 입었음에도 피해 민가에 손해배상은커녕 별다른 사과의 말이나 행동도 없이, 오히려 이 도전이 성공하면 다음엔 하와이를 향하는 모험을 계획할 예정이었다고 인터뷰했다.
'풍선 아저씨'라는 별명은 이 사건을 보도하던 미디어에서 붙인 것으로, 타마가와에서의 실패를 본 많은 미디어들이 거리를 두게 되어서 판타지 호가 출발했을 때 찾아온 언론은 후지 테레비뿐이었다고 했다.

4. 판타지 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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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이 지난 1992년 11월 23일, 스즈키의 전화에 불려나온 도시샤대학 교수 미와 시게오(三輪茂雄)와 학생 7명, 아사히 신문의 통신 국장, 전날부터 밀착 취재해 온 후지 테레비 와이드쇼 '굿모닝! 나이스데이' 취재진, 그리고 스즈키의 지지자들이 비와호 호반에 모인 가운데, 풍선 아저씨는 헬륨 풍선 여러개를 단 '''판타지 호'''의 시험 비행을 시작했다.
원래 이 날의 명목은 단순한 시험 비행이었으며, 판타지 호가 120미터까지 상승하고 난 다음 일단 지상에는 착륙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16시 20분경 스즈키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주위의 제지를 뿌리친 채 습용 로프를 풀고 비와호 호수에서 미국 네바다주 샌드 마운틴을 향해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 건지?"라고 묻는 미와 교수의 말에 그는

'''미국이에요.(アメリカですよ)'''

라는 대답을 남겼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제트 기류를 타면 40시간 내에 미국에 도착할 거라 생각한다는 말을 했었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풍선 아저씨는 가족들에게 휴대 전화로 "아침 해가 아름다워요"라는 연락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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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 신호 후 발견되었을 때 뉴스 화면.
하지만 그날 자정부터 판타지 호로부터 SOS 신호를 받았고, 해상보안청의 수색기가 출동했다. 판타지 호는 25일 8시 30분의 미야기현 긴카산 동쪽 약 800 m 해상에서 발견되었고, 수색 헬기를 본 스즈키는 헬기를 향해 앉아 있는 자세로 손을 흔들면서 SOS 신호를 중지했다. 당시 판타지 호의 고도는 평균 2,500 m로서 높았을 때는 4,000 m 상공까지 도달했다고 했다. 신호도 중지되어 계속 비행할 의사가 있다고 판단한 데다가 약 3시간 뒤에 판타지 호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자 수색기는 추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위 뉴스 화면에도 있는 순간이 판타지 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순간이 되었다.'''
전문가는 실험 전에 풍선으로 미국에 간다니 말도 안 된다고 이야기했으며, 풍선이 미국까지 갔다는 증거가 없으니 아마 바다에 떨어져 사망했을 것이라 예상했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1994년까지는 호적상에는 살아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일본 민법상 실종 후 7년이 경과하면 자동으로 사망처리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1999~2000년 사이에 사망한 상태다. 알래스카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루머로 밝혀졌다.
만약은 SOS 구조를 받고 아무 문제 없이 돌아왔으면 현재는 81살이다.

4.1. 판타지 호에 대한 이야기


직경 6미터의 비닐 풍선 6개, 직경 3미터의 풍선 20개를 장비했고, 곤돌라의 외형은 약 2미터 가량, 깊이는 약 1미터이며 해상에 착수할 때를 대비해 부력이 높은 전나무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곤돌라의 제작은 전나무 장인에게 의뢰했지만 곤돌라 전문은 아니었고, 비닐 풍선을 제작한 회사에서는 비닐 풍선은 애초에 사람을 태울 수 없고 풍선이 영하 수십도에 달하는 고도에 견딜 만하다는 보증도 없음을 미리 스즈키에게 얘기했다. 스즈키는 풍선 가스가 빠지면 부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비행시 기체의 부력을 안정시키기 위해 추를 준비했지만[3] 부력 부족으로 비와호에서 출발할 때 준비한 200개를 전부 내렸다.
소지품으로 산소 충전기와 마스크, 일주일분 식량, 경위 경도 측정기, 고도계, 속도계, 해난 구조 신호기, 낙하산, 레이터 반사경, 휴대 전화, 지도, 영하 60도 이하의 기온에 견딜 수 있는 방한복, 헬멧과 자외선 차단 선글라스 등이 있었던 걸로 보아 준비는 꽤 철저하게 한 거로 보이지만 무전 면허를 소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전기는 포함되지 않았고 고도계의 사용법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5. 여담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지~' 정도의 유머 취급을 받는 모양이나, 남겨진 가족들, 특히 아내였던 이시즈카 유키코(石塚由紀子)는 그의 회사 공동 경영자로 집이 저당잡혀 있었고 남긴 빚을 필사적으로 갚느라 엄청난 고생을 하고 있었으며(2006년 시점) 빚을 다 갚았는지는 알 수 없으며 2016년 포르투갈인 남성과 재혼한 직후인 2017년 담관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0년에 남편을 회상하면서 '풍선 아저씨의 조율(風船おじさんの調律)'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1995년 락 그룹 LÄ-PPISCH가 앨범 '포르노포르노'에 돈키호테적인 삶을 산 그에게 경의를 담는 내용으로 '풍선 아저씨'라는 곡을 수록했고, 1997년에는 극작가 야마자키 테츠지가 연출한 무대 '풍선 아저씨'가 카니에 케이조(蟹江敬三)[4]의 1인극 형태로 신주쿠 시어터 톱스에서 상연되었다.
2001년 야구 선수 스즈키 이치로가 '국민 영예상'을 거절했을 때 비트 다케시가 '모험가였던 풍선 아저씨에게 국민 영예상을 주는 게 낫겠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2000년대 들어 실제로 수십 개의 풍선을 몸에 매달아 비행하거나 방송에서 실험한 사례(호기심 천국 등)도 있으며 영화 이 비슷한 소재를 써서 화제가 됐던 때라, 만약에 1980~90년대가 아닌 현재였다면 그의 기행이 화제를 불러일으켜서 사업이나 방송 쪽에서 활동하며 빚을 갚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전 1982년에 풍선을 단 의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짓도 벌인 사람도 있었다.
2008년에도 브라질의 한 천주교 신부가 트럭 운전사 전용 공동묘지를 만들기 위해 후원자를 모으려고 풍선을 잔뜩 단 의자를 타고 비행을 시도한 사건이 있었다. 이 신부는 만약을 대비해 정말 철저히 준비하였고, 등산 및 밀림 생존법까지 배웠으나 단 한 가지 GPS 사용법을 숙지하지 않았던 터라 결국 자신의 위치를 알리지 못하고 실종된 뒤 한 시추 플랫폼에서 하반신만 남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5] # 그 뒤 다윈상을 받게 되었는데, 이 사례는 결과야 어쨌든 좋은 일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거고, 애초에 가톨릭 신부라서 후사가 없으므로 다윈상의 수상자격에도 적합하지 않아서 선정 이후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2018년 9월 9일에는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방영되었다.
[1] 2020년 기준으로 3,200만엔에 상당한다.[2] 우리나라의 롯데월드타워의 높이가 554.5 m이다. 롯데월드타워 높이의 10배 이상 올라간 것.[3] 추 안에는 극한에서도 얼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주'''가 들어있었다.[4] 스케반 데카, 아마짱 등의 유명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며 2014년 위암으로 사망.[5] 사망 후 새 같은 야생동물에게 시신이 먹히거나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