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클로스테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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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Clostermann
피에르 클로스테르망
(1921. 2. 28., 브라질 쿠리티바 출생 ~ 2006. 3. 22.)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공군의 전투기 에이스.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비롯해 미국의 실버스타 훈장 및 영국, 벨기에의 훈장을 모두 수여받은 군인. 또한 작가, 엔지니어, 정치가와 낚시꾼(...) 등등 여러가지 방면에서 활동하였다.
국내에는 "위대한 서커스"라는 제목으로 1980년에 자서전이 공군본부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
'''"독일 에이스 파일럿들의 개인 격추기록은 재미있긴 하지만 믿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들의 기록을 곧이 곧대로 믿는 다는건 나치의 선전기관에 의해 편집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영, 미, 독의 유명한 에이스들의 전과보고를 비교해보면 분명히 독일 에이스는 뭔가 수퍼맨처럼 보인다. 단 1회의 전투에서 영국 전투기를 6대나 격추시키거나 하루에 12대 이상을 떨굴 수 있는 인간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런 조종사가 있다면 내가 당장 붙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1. 생애
피에르 클로스테르망은 1921년 2월 28일, 브라질에서 태어났다. 원래 프랑스인이지만 아버지가 브라질 주재 대사관에서 일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브라질로 옮겨온 상태에서 피에르를 보게 된 것이다. 16세 되던 해인 1937년 11월, 피에르는 민간 조종사 면허를 따냈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교육을 받고 있다가, 나중에 미국에서 엔진에 대한 본격적인 배움의 길을 걷기도 했다. 참고로 미국에서 다닌 대학교는 칼텍(!!).
1940년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그는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영국 공군의 전투 비행사로 지원한 클로스떼르망은 1943 년 초가 되어서야, 전투 조종사 자격을 얻게 된다. 그리고 곧 제 341 전투 비행대로 배속받게 되었다.
1943년 8월, 그는 자신의 첫 격추를 달성하는데, 하루만에 2기의 Fw190을 격추해 낸것이다. 얼마후, 다시 602 전투 비행대로 옮겨갔고, 여기서는 스핏파이어 V 전투기를 탑승하게 되었다. 602 비행대는 스스로를 "하늘의 해적 비행단"이라고 불렀는데, 조종사들의 구성도 다양해, 프랑스인, 벨기에인, 스코틀랜드인, 호주인, 캐나다인 등등 거의 모든 유럽 인종이 다 모인 다국적 비행대 혹은 용병 비행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시기에 피에르는 7기의 독일기를 공인 격추했으며, 2기의 비공인 격추도 달성해 낸다.
1944년 6월 초, 역사적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되었고 피에르와 그의 윙맨 렘링거는 나치의 치하에 있던 그들의 조국 프랑스에 상륙한 최초의 프랑스 군인이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가공할 독일의 대공포에 심각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그는 군의관과 상의한 후 진정제를 복용해야 할 지경이었으나, 약효가 있었던지 얼마후 마음의 평정을 다시 찾게 되었고, 단 하루만에 독일 전투기 3기를 격추시키는 전과를 달성해 내기도 했다.
이 일로 그는 영국 공군의 무공 훈장을 수여 받는 영예를 안게 된다. 그러나 얼마후 지속되는 신경쇠약으로 인해, 전투 조종사직을 계속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지휘부는 그를 사무직으로 전출시켜버리고 만다.
1944년 12월, 피에르 클로스테르망은 다시 최일선 전투 비행대로 복귀를 요청했고, 드디어 274 전투 비행대로 옮겨 가면서, 그가 그렇게도 열망하던 전투기에 다시 탑승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274 전투 비행대는 이 당시 템페스트 V 지상 공격 전투기를 주력기로 삼고 있었다.
피에르의 템페스트를 이용한 첫 격추 제물은 독일 전투기 Bf109였고, 이것은 그가 템페스트로 바꿔 탄지 불과 이틀째에 이루어진 격추라 매우 뜻이 있다 하겠다. 1945년 3월 중순, 피에르는 다시 56 전투 비행대의 비행대장으로 승급하게되었고, 여기서 다시 1기의 Bf-109기를 격추해낸다. 이후 4월 8일 다시 제 3 전투 비행대의 A 그룹 지휘관으로 전속되어, 4월 20일에는 2대의 Fw190 D-9 전투기를 격추해냈다.
별명은 연합군의 루델.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전쟁 영웅으로서, 프랑스 정계에도 진출했으며(1946~1969), 소설도 쓰고[1] , 공군에서도 활약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는 프랑스 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 심지어 벨기에의 훈장까지 수여 받은 적이 있다.
1982년의 포클랜드 전쟁 당시, 자신이 1970년대에 아르헨티나 조종사들을 가르친 것 때문에 아르헨티나를 지지한 적이 있고, 그 때문에 영국 언론에게서 '배신자' 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한다. 1991년 걸프 전쟁에 대해서 비판을 했다고 프랑스 언론에게서도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위 내용의 출처는 여기
2. 대전중의 전과
클로스테르망의 최종 통산 기록은 공중에서 총 11기 공인 격추, 2기 비공인 격추, 9기에 손상을 준 것으로, 지상에서 총 6기 파괴, 6기에 손상을 준것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위의 격추 기록은 정확한 것이 아니고 통설에 의하면, 피에르의 최종 격추 기록은 33기 이상일 것이라는 말들이 많다.
불확실한 기록에 따르면, 그가 격추하거나 파괴한 지상 목표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 공중전 전과
메서슈미트 Bf 109 7대
도르니에 Do 24 2대
피젤러 Fi 156 1대
융커스 Ju 252 1대
융커스 Ju 88 1대
융커스 Ju 290 1대
하인켈 He 111 1대
- 항공기 지상파괴
도르니에 Do 18 6대
하인켈 He 177 4대
아라도 Ar 232 3대
포케불프 Fw 190 2대
융커스 Ju 252 1대
블룸 운트 포스 Bv 138 1대
- 대지상군 전과
225대의 트럭 파괴, 이중 30대는 유류 수송 차량
5대의 전차 파괴
2척의 어뢰정 파괴
1척의 유보트 파괴
680000 리터 규모 항공기 연료 저장탱크 파괴
-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25대의 자동차, 72대의 기관차, 전차 5대, 어뢰정 2대".
3. 기타
스트라이크 위치스의 페리느 H. 끌로스떼르망의 모티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