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파비아누
1. 소개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특유의 간결함과 효율적인 플레이로 둥가 체제하에서 빛을 발했던 스트라이커
브라질 태생의 축구 선수. 주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현재는 브라질 리그의 바스쿠 다 가마에서 활약하고 있다. 세비야 시절 라리가를 시청했던 팬들에겐 카누테와 공격 듀오로 유명했으며, 통산 350골이 넘을 만큼 엄청난 득점 기록을 남겼다.[1]
2. 플레이 스타일
발재간이 나쁜 편은 아니었으나 당대 브라질 공격수 중에선 볼 트래핑과 볼 키핑 능력이 떨어졌으며 다소 기복이 있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한 때 프레드보다 포스트 플레이가 약하다는 평가를 들었을만큼 부진한 시기도 있었으나, 세비야 시절과 둥가 체제 브라질에서 한층 발전된 포스트 플레이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브라질리언답게 동물적인 골 감각과 정확한 마무리를 갖추었고, 수비 사이를 파고들 때의 빠른 스피드를 장점으로 평가받았다. 탁월한 위치 선정과 정확한 타이밍의 헤딩슛, 능숙한 오프사이드 라인 침투와 훌륭한 페널티킥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문전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확실히 살리며, 팀원들과의 연계성을 바탕으로 득점을 만들어내는 마무리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즉, 브라질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전형적인 타겟맨'''으로, 이러한 특성들로 인해 화려함을 추구하는 브라질 축빠들 사이에선 호나우두나 아드리아누에 비해 다소 인기가 없는 축에 속한다. 하지만 화려함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둥가의 스타일에 딱 맞는 선수였으며, 국가대표팀의 주축 스트라이커로 기용되며 특출난 득점력을 자랑하였다.
3. 클럽 경력
1997년 AA 폰치 프레타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으며, 2000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팀 동료인 반데르와 함께 프랑스 리그 앙의 스타드 렌 FC에 입단해 유럽 무대로 진출하였다. 하지만 11경기에 출전해 무득점에 그치는 부진한 활약을 보였고, 결국 2001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상파울루 FC에 임대되었다. 임대 이후에는 33경기에서 9골을 넣으며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스타드 렌 FC로 복귀한 이후에는 주전 자리 확보에 실패해 결국 상파울루 FC로 완전 이적해 브라질 무대에 복귀했다. 이적 이후 2002년 리그에서 23경기에서 19골을 득점해 득점왕에 오르는 등 꾸준히 놀라운 활약을 펼쳤으며, 2004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는 8골로 득점왕을 차지하며 팀이 4강에 오르는 데 크게 공헌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유럽 빅클럽들의 구애대상에 올랐으며, 2004년 1000만 유로의 이적료에 포르투갈 리그의 FC 포르투로 이적해 유럽 무대에 재진출했다. 하지만 22경기에 출전해 단 3골만을 득점하며 상파울루에서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결국 시즌이 끝난 이후 5년 계약에 줄리우 밥티스타의 대체자를 찾던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세비야 FC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2]
세비야 FC에서 프레데릭 카누테와 공격 듀오를 결성하며 몇 년간 라 리가 대표 공격수로써 활약하는데 입단 이후 첫 시즌인 2005/06 시즌에는 미들즈브러와의 UEFA 컵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득점하는 등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2006년 UEFA 슈퍼컵에도 출전해 팀이 FC 바르셀로나를 3: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데 일조했다.
2006/07 시즌에는 26경기에 출전해 10골을 넣으며 지난 시즌보다 나은 활약을 펼쳤으며, 코파 델 레이에서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와의 4강 1차전에서 골을 기록해 팀의 3:0 승리에 일조하며 팀의 우승에 공헌하였다. 그리고 CA 오사수나와의 UEFA 컵 4강 2차전에서 득점에 성공해 팀의 2:0 승리에 기여하였고, 팀은 1, 2차전 합계 2:1로 결승에 진출한 뒤 결승전에서 RCD 에스파뇰을 꺾고 2연패를 달성했다.
2007/08 시즌에는 30경기에서 24골을 득점해 다니엘 구이사에 이은 리그 득점 2위에 올랐으며,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아스날 FC와의 조별 라운드 경기에서 골을 넣어 팀의 3:1 승리를 견인하는 등 8경기에서 4골을 득점해 팀의 16강을 이끌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프리메라 리가의 양대 산맥인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토트넘 핫스퍼, 이탈리아 세리에 A 의 AS 로마의 관심을 받았으나, 본인은 구단과의 1년 연장 계약에 합의했다.[3]
2008/09 시즌에는 26경기에 출전해 8골을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이어갔으며, 코파 델 레이에서는 7경기에서 7골을 넣어 호르헤 몰리나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이러한 활약으로 인해 프리미어 리그의 첼시 FC와 맨체스터 시티, 세리에 A의 AC 밀란과 인터 밀란, 유벤투스의 영입 제의가 있었으며, 특히 팀의 리빌딩을 진행중인 AC 밀란이 파비아누의 영입에 적극적이었으나 결국 양 구단간의 이적료에서 이견을 보이며 무산되었다.[4][5]
2009/10 시즌에도 22경기에서 15골을 득점해 득점 랭킹 8위에 올랐으며, 코파 델 레이에서도 6경기에서 4골을 기록하며 득점 랭킹 공동 2위에 오르는 등 좋은 활약을 이어가며 유럽 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브라질 선수에게 주어지는 "삼바골드(SambaGold)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은 이전에 영입에 실패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FC, 맨체스터 시티, 토트넘 핫스퍼, AC 밀란과 새로 영입 전쟁에 가세한 바이에른 뮌헨, 뉴캐슬 유나이티드,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등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지만, 본인은 구단과 2013년까지 2년 연장 계약에 합의하며 세비야 FC 잔류를 선언했다.
2010/11 시즌에는 21경기에 출전해 10골을 득점했지만, 팀에 새로 부임한 그레고리오 만사노 감독 체제에서 로테이션 시스템의 도입으로 출전 기회가 줄어든데다 팀 또한 부진한 행보를 보이며 시즌 종료 이후 다른 팀으로 이적할 것임을 밝혔다. 이후 팀은 리그 후반부에 상승세를 이어가며 5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파비아누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결국 시즌이 끝난 이후 SC 인테르나시오날과 SC 코린치안스, 산토스 FC가 물망에 오른 가운데 760만 유로의 이적료에 4년 계약으로 친정팀인 상파울루 FC로의 이적에 합의해 브라질 무대로 돌아왔다.
또한 2015년에 상파울루에서 중국 2부리그 (중국 갑급 리그) 톈진 취안젠으로 이적했다가 29경기에서 23골을 넣고 득점왕과 MVP 석권한 뒤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켰다. 하지만 황사머니를 시전하는 톈진은 파비아누의 나이를 보고 장기적으로 팀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 재계약을 하지 않고, 훨씬 젊은 알레샨드리 파투, 악셀 비첼, 앙토니 모데스테, 권경원을 데려왔고, 파비아누는 브라질로 돌려보넸다.
중국에서 물러난 파비아누는 네네가 있는 브라질 팀인 바스코 다 가마로 복귀 후, 17-18시즌 현재 6경기 5골을 넣으며 득점 1위인 플루미넨세의 엔리케 도라도(7골)에 이어 득점 2위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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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1일에는 이런 골까지 넣었다. 심지어 이 분 나이가 한국 나이로 '''38세다!!!'''
바스코 다 가마와의 계약 종료 이후 현재까지 클럽이 없다.
4. 국가대표 경력
2003년 나이지리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브라질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며, 그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이후 2003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당시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나 출전 기회를 얻지는 못했으며, 2004년 코파 아메리카 당시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어 칠레와의 조별 라운드 첫 경기에서 결승골을 성공시켜 팀의 1:0 승리를 경인하는 등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포르투로 이적한 이후 부진을 거듭해 국가대표팀 자리를 프레드에 빼앗기고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소집되지 못했으며, 자연스럽게 2006년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팀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이후 세비야로 이적해 자신의 기량을 되찾은 뒤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의 수장이 된 둥가에 의해 다시 국가대표팀에 복귀했으며, 2008년 포르투갈과의 친선경기에서 자신의 첫 국가대표팀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다. 2009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도 참가해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두 골을 넣어 팀의 3:2 승리를 이끄는 등 팀의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대회에서 5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올랐다.
그 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도 중용되었으며,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2골을 득점해 팀의 3:1 승리에 공헌하는 등 팀이 1위로 본선에 진출하는 데 일조했다. 이후 본선에서도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해 코트디부아르와의 조별 라운드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팀의 3:1 승리를 견인했는데, 그 중 두 번째 골이 핸드볼 파울 이후 넣은 골이었던지라 경기 이후 이것이 문제가 제기되자 파비아누 본인은 "축구공이 팔에 맞기는 했지만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며, '''엄청나게 신성한 신의 손이었다'''"라고 해명하였다.(...) 이후 칠레와의 16강전에서도 득점에 성공해 팀의 3:0 승리에 일조했으나, 팀은 8강에서 네덜란드에 1:2로 패해 탈락했다.
5. 기타
- 여담으로 악동 이미지가 좀 있는 편이다. 2003년 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는 리버 플레이트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의 목을 팔꿈치로 가격해 기절시켜 3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은 바 있으며, 2007년 1월 7일 레알 사라고사와의 리그 경기에서 카를로스 디오고와 주먹다짐을 벌여 5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6]
- 여타 브라질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2005년 3월 파비아누의 모친이 브라질 캄피나스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당했다가 2달여(62일) 만에 경찰에게 구조되는 일을 겪기도 했으며, 세비야에서 활약하던 2008년 2월에는 파비아누가 팀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사이 집에 무단 침입한 강도들에 의해 가족들이 총으로 위협받기도 했다.
6. 기록
6.1. 득점 기록
그 외 - 지역 리그, 슈퍼컵, 인터콘티넨털 컵
7. 우승 기록
- Torneio Rio-São Paulo : 2001
- 인터콘티넨털컵 : 2004
- UEFA 컵 : 2006, 2007
- UEFA 슈퍼컵 : 2006
- 스페인 코파 델 레이 : 2007, 2010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 2007
- 코파 수다메리카나 : 2012
- 중국 갑급 리그 : 2016
- 코파 아메리카 : 2004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2009
8. 개인 수상
- Bola de Prata : 2002, 2003
- 브라질 세리에 A 득점왕 : 2002
- 브라질 골든부츠 : 2003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 : 2004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올해의 팀 : 2004
- 유럽 스포츠 매거진(ESM) 올해의 팀 : 2007
-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올해의 팀 : 2007-08
- 스페인 코파 델 레이 득점왕 : 2009
- 코파 두 브라질 득점왕 : 2012
- 중국 갑급 리그 MVP : 2016
- 중국 갑급 리그 득점왕 : 2016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골든슈 : 2009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실버볼 : 2009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베스트 11 : 2009
- 삼바도르 브론즈 : 2008
- 삼바도르 골드 : 2009
[1] 현역 브라질 공격수 중 통산 300골이 넘는 선수는 그 외에 프레드가 유일할 정도다. 현재도 통산 득점에서 프레드가 가깝게 뒤쫓는 중이다.[2] 포르투가 파비아누를 영입할 당시 단 25%의 소유권만을 보유했으며, 나머지 75%의 소유권은 파비아누의 에이전트 회사인 "글로벌 사커 인베스트먼트(후에 이름을 리오 풋볼 서비스로 개칭)"이 가졌다. 세비야가 파비아누를 영입할 때 포르투의 지분 25%와 리오 풋볼 서비스의 지분 10%를 합친 35%만의 소유권을 사들여 이적료를 낮출 수 있었다.[3] 당시 '''거상''' 세비야는 적어도 바이아웃 금액인 6000만 유로에 상당하는 4400만 파운드를 제시해야 파비아누를 팔겠다고 선언했으며, 이와는 별개로 파비아누의 소유권 65%를 갖고 있는 리오 풋볼 서비스는 파비아누의 이적을 원했기 때문에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적설이 나돌게 되었다.[4] 당시 밀란은 1400만 유로를 제의했으며, 세비야는 최소 2000만 유로 이상을 요구했다. 참고로 밀란은 파비아누 이외에도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에딘 제코 등을 영입하기 위해 사활을 건 상태였으며, 파비아누를 포함해서 모두 실패한 뒤 영입한 것이 바로 클라스 얀 훈텔라르였다.[5] 맨체스터 시티의 경우에는 AC 말란보다 많은 이적료를 제시했지만 파비아누 본인의 이적 거부로 무산되었다.[6] 사실 말이 주먹다짐이지, 서로 제대로 때리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