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월혼혈
1. 개요
한월혼혈(韓越混血)이란 한국인과 베트남(월남)인의 혼혈을 말한다.
실제로 조상 DNA 테스트 시에는 혈통상 반반 한월혼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일반적으로는 단순히 부모 중 한 명은 한국인이고 다른 한 명은 베트남인이라는 정보를 알리기 위해 한월혼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과거 베트남인이 한국에 온 사례로 고려 시절의 화산 이씨, 정선 이씨 등이 있지만 그들은 한민족에 흡수되었다.
현대에는 처음으로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고 기업들도 사업을 위해 진출하면서 한국인과 베트남인의 혼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남베트남의 패색이 짙어져 한국군이 철수를 하게 되자 박정희 정부는 베트남 혼혈아와 현지처를 한국에 데려오기로 하였지만, 한월혼혈의 다수는 베트남에 남게 되어 라이따이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게 된 한월혼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입국한 한월혼혈 아동도 소수 있었고, 한국인을 따라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베트남 여성과 한국인이 대한민국에서 결혼하여 혼혈 2세를 낳는 경우가 있었다.
이후 오늘날 실질적인 한월혼혈 인구의 대다수는 베트남이 개방에 들어가고 한국과 수교하면서 국제결혼을 통해 들어온 '''베트남 출신 여성'''과 시골 '''한국 남성''' 간의 자녀들이 차지하고 있다.
간혹 주한미군 소속의 베트남계 미국인 남성이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여 자녀를 얻는 경우도 존재한다.
베트남인은 다른 동남아 민족들에 비해서는 중국인과 외모가 유사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남쪽에 살던 베트남 원주민(크메르인 등)이 많이 살해되었으며,[1] 북쪽에 있던 중국인과 중국계 베트남인이 남쪽으로도 이주했기 때문이다.[2] 국내 남성들은 역사적 사실은 잊은 채 한 때 적군이었던 북쪽 지역의 베트남 여성을 동아시아인과 닮았다는 이유로 선호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모르는, 한국에서 자라는 한월혼혈 아동 및 청소년은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정체화하는 비율이 거의 대부분이다.
2. 사람들의 인식
안타깝게도 한월혼혈 아이들은 학교 내외에서 차별의 온상이 되어 사회적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대개 지방 시골 농촌출신들이 많아 서울이나 광역시등 대도시로 주거지를 옮기거나 대도시내 학교를 다닐때 차별과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또한 대도시에서 태어날때부터 살던 소수 한월혼혈 아이들과도 관계가 안좋다.[3] 물론 대도시 서울에 산다고 흙수저(매매혼 포함)가 아니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서울 공화국 자부심이라고 볼 수 있다. 정말 유복한 가정은 베트남 5대 도시에 위치한 아파트/저택에서 거주하는 외할머니/외할아버지를 1년에 2~3번 이상 방문하여 만난다.
일단 피부색 등 외모적으로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지만, 백인계나 흑인계보다는 문화적, 인종적으로 동아시아권에 가깝기 때문에 나중에 어머니가 베트남인이라고 직접 말하지 않는 한 좀 피부색이 진한 사람 정도로 생각할지언정 혼혈인지 알아차리기 힘든 경우도 꽤 많다.
그럼에도 한월혼혈이 차별받는 가장 큰 이유는 외모보단 '''어눌한 한국어 발음'''이다. 베트남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다보니 한국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한국인보다 한국어 습득이 많이 느린 편이라서 차별과 집단따돌림의 희생자가 되곤 한다. 애초에 정상적인 연애를 안 하고 결혼을 한 아버지가 자식교육에 관심이 있을까? 반대로 베트남에서만 생활했는데도 한국인 아버지 덕분에 한국어 발음이 정확한 경우도 있으며, 예시로는 벨라가 있다.
2000년대 들어서 동남아 매매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동남아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 좋지 않은 편이다.[4] 이러한 인식 때문에 한월혼혈들은 자신이 베트남 혼혈이라는 걸 숨기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3. 베트남인과 결혼한 한국인
4. 유명 인물
- 황민우 -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 리틀 싸이로 나와 유명해졌다. 황민우 군의 아버지는 첫 번째 아내와 사별 후 젊은 베트남 여성과 재혼해 황민우 군을 낳았다. 그런데 일부 무개념 네티즌들이 황민우의 어머니가 베트남인인 것으로 악플을 달아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리틀 싸이를 계기로 인기를 얻게 되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고 한다
5. 같이 보기
[1] 베트남 전쟁 전에는 유교를 믿던 북쪽 베트남인이 참피 왕국을 몰락시키는 과정에서 남쪽 베트남인이 사망했다[2] 유사한 사례로 싱가포르가 있다. 말레이시아는 북쪽에서 중국인이 자꾸 내려오자 토지 일부분을 떼어 싱가포르로 독립시켰다. 비유하자면 북베트남은 중국계가 많은 싱가포르, 남베트남은 원주민이 많은 말레이시아인 셈이다.[3] 밑의 각주에서 나왔다 시피 시골은 매매혼으로 태어난 애들이 많기때문에 대도시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란 소수 한월혼혈 아이들은 '''매매혼으로 태어난 더러운 피'''들과 같은 범주에 묶여있는걸 불쾌하게 여긴다.[4] 대중들이 바라보는 동남아 국제결혼은 신랑은 능력 없는 나이 든 노총각, 신부는 경제적인 사정이나 국적 취득 목적으로 결혼한 동남아 여자라는 인식이 만연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