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혼혈
1. 개요
한중혼혈이란 한국인과 중국인 또는 대만인의 혼혈을 말하며, 한국인과 한국계 중국인(중국 조선족)이 결혼한 경우는 포함하지 않는다.
실제로 조상 DNA 테스트 시에는 혈통상 반반 한중혼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일반적으로는 단순히 부모 중 한명은 한국인이고 한명은 중국인이라는 정보를 알리기 위해 한중혼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역사적 유례를 따지자면 춘추전국시대와 초한쟁패기 시절에 고조선으로 들어온 중국계 유이민들이 시초라고 할수있겠으며 후기 고조선(위만조선)의 한 구성원이 되기도 한데다가, 이후로도 한사군 시기와 삼국시대에 걸쳐 중국계 이주민이 꾸준히 들어오기도 했고, 고려시대 때도 소수이지만 한족들이 들어오면서 정착하기도 했으며 명나라가 멸망하면서 명나라 유민들이 조선으로 들어오는 일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한민족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귀화 성씨로 그 존재가 남아있다.
화교들이 이주해오면서 한중혼혈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과거 부계주의 국적법에 따라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화교 여성의 자녀는 한국인이 되었고, 화교 남성과 한국인 여성 사이의 자녀는 중국인이 되었다. 중국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혼혈들은 아버지 쪽 국적을 부여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국 국적을 가진 화교 한중혼혈 여성들 가운데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가 많은데 하희라나 주현미 등이 있다.
북한이탈주민 여성 가운데 중국에서 중국인과 결혼으로 태어난 한중혼혈 아이도 있다.[2] 대부분 호구를 등록받지 못하고 무국적으로 살고 있다. 혼혈이어도 일부는 다행히 중국 국적을 가진 아이들도 있다. 한국 정부는 헌법상 이들을 외국인이 아닌 자국민으로 보고 있지만, 중국에 호구를 등록한 순간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중국이 법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태생이고 중국 호구를 정식으로 등록한 아동이라 할지라도 부모 중 한명이 북한이탈주민이라는 것만 확인된다면, 아동이 한국으로 입국한 후 보호자가 원할 경우 아무 문제없이 국적회복제도를 통한 대한민국 국적 부여를 허용하고 있다.
중국이 공산화되면서는 화교와 한국인 간의 한중혼혈, 대만의 중화민국인이나 홍콩인과 한국인 간에 연애결혼이나 중매에 의한 한중혼혈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한중 수교 이후 중국 본토인과 한국인과의 한중혼혈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부모 중 한 명이 중화권 출신인데다가 그 부모의 영향으로 대체적으로 중국에 호의적이다.[3][4]
미국에서는 한국계 미국인이 중국계 미국인이나 대만계 미국인과 결혼하기도 한다.
만주족 등 중화권 국적의 퉁구스계 민족이 한민족과 혼혈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한중혼혈이라고 볼 수 있다. 전근대에는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 여성들이 만주족 남성에게 강간당해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았다.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진 후에는 일부 만주족이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도망치기도 했는데, 이들은 현지의 조선인들에게 엄청난 푸대접을 받은 탓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만주족 공동체를 형성할 여유 자체가 사실상 없다시피 했으며, 그로 인해 조선 현지인(주로 하층민이었을 것으로 추정[5] )과 통혼하여 한민족에 동화되어갔다. 현대의 경우 중국에서는 조선족과 만주족이 결혼하여 2세를 낳기도 하며, 한국 본토인이 중국(한중수교 후)이나 대만(중국 대륙 공산화 후) 국적의 만주족과 국제결혼을 하기도 한다.
2. 국내의 인식
한일혼혈과 마찬가지로, 겉모습으로는 거의 티가 나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외모로 차별당하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중국계 혼혈 혈통이 알려진다고 해도 어차피 수많은 한국의 성씨가 중국계인 관계로[6] '조상 중에 중국인이 있다' 정도는 그리 특별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본인이 한국인으로서의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만 있다면 혼혈인으로 간주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전랑외교로 지칭되는 강압적 외교 정책, 한국 문화 예속화 시도 및 역사왜곡 등 각종 만행과 이러한 일들에 동조하는 국수주의 및 팽창주의 성항 중국인들의 행태 그리고 한국 정부의 친중 외교로 인해 한국 사회 내 반중 및 혐중 정서가 강해지면서 한중혼혈 본인이 한중혼혈임을 밝히면 차별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으며, 만약 한국어가 어눌한 경우에도 차별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3. 국적
과거 한국에서는 부계주의 국적법 때문에 1998년 6월 13일 이전 출생자까지는 아버지가 한국 국적인 경우에만 한국 국적을 받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아버지 쪽이 중국인 이면 자신 스스로 중국인 또는 화교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거의 전부였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 자녀는 오직 아버지 쪽의 대만 국적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외국인으로서 법적인 차별 문제를 겪었기 때문이다.
1998년 6월 14일 출생자부터는 부모 양계주의 국적법을 적용하여서 아버지가 외국인이고 어머니만 한국인이어도 한국 국적을 부여하도록 개정되었다.[7] 따라서 한국 화교와 한국인이 결혼하고 1998년 6월 14일 이후 출생한 자녀는 모두 중화민국(대만)과 대한민국의 복수국적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2010년 5월부터 선천적인 복수국적자는 남녀 모두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고, 남자는 군복무를 하는 조건 하에 복수국적을 허용하도록 대한민국 국적법이 개정되었다. 대만도 출생 시부터 대만 국적을 가진 자에 한하여 복수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미성년자에게도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출생 이후 한국인 부 또는 모의 호적에 등록된 한중혼혈 아동은 이중국적이 아닌 오직 한국 국적만을 부여받는다.[8]
또한 과거 외국인 부 한국인 모의 자녀는 1978년 6월 14일부터 1998년 6월 13일 사이 출생자에 한하여 2001년 11월 ~ 2004년 12월 31일까지 신고하면 한국 국적을 부여받고 미성년자는 국적선택기한 이전까지 이중국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던 기간이 있었다.
4. 중국인 또는 대만인과 결혼한 한국인
- 강명도 - 20살 연하의 중국인과 결혼했다.
- 김지선 - 전 컬링선수로, 남편도 중국인 컬링선수.
- 김창렬 - 아내가 대만 국적의 화교 3세.
- 최수종 - 아내가 화교 출신 하희라.[9]
- 김태용 - 아내가 배우 탕웨이.[10]
- 유일한 - 아내가 중국계 미국인 소아과 의사 호미리.[11]
- 이휘소
- 채림 - 남편이 중국인 배우 가오쯔치(고재기).
- 추자현 - 남편이 중국인 배우 우효광.
- 함소원 - 중국인 남편 진화는 무려 18살 연하다.
- 김정렬 - 대만인[12] 과 결혼했다.
- 이승현(1984) - 중국인 배우 치웨이(척미)와 결혼했다.
- 이창수 - 탈북민 유도 코치. 과거 북한 유도 국가대표였으며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 대만인 유도 선수와 결혼하여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2017년 TV조선 <모란봉클럽>에 출연.
- 안재형 - 전 국가대표 탁구선수. 중국 탁구 국가대표인 자오즈민과 결혼했다. 자녀인 안병훈은 골프선수이다.
5. 유명 인물
5.1. 한국인
5.2. 중국인
5.3. 대만인
- 여경래 - 아버지는 대만 국적의 재한 화교, 어머니는 한국인이다. 동생 여경옥은 귀화했지만, 여경래 본인은 대만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 필서진 - 아버지는 대만 국적의 재한 화교, 어머니는 한국인이다. 현재 대만에서 활동하는 가수이다.
- 강래연 - 아버지는 대만국적의 재한 화교, 어머니는 한국인이다. 한성화교학교를 졸업했으며 대만 국적이다.
5.4. 제 3국 국적자
- VanossGaming - 한국계 캐나다인과 중국계 캐나다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본인도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캐나다인이다.
6. 같이 보기
[1] 아버지가 중국인(대만국적의 한국화교),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최수종과 결혼하면서 대한민국으로 귀화하였다.[2] 당사자 간의 합의로 이루어진 결혼보다는 납치혼, 매매혼이 압도적으로 많다. 중국의 극단적인 남녀성비 차이와 여성들의 이촌향도 현상 등으로 결혼 상대자를 찾지 못한 중국 시골 지역 노총각들이 탈북한 여성들을 강제로 아내로 삼는 것이다.[3] 일부는 중국과 중국 공산당을 구분하지 못하여, 중국과 중국인을 옹호하다가 중국 공산당까지 함께 은근히 옹호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일부 재일교포들이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로 북한을 옹호하다가 김씨 정권까지 옹호해버리는 문제와 비슷하다.[4] 그런데 이들에게 실례인 것이 이들 중 상당수가 부모 중 중화민국 국적을 보유한 재한화교들이다. 당연히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중국 공산당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5] 신해혁명 이후 조선으로 도망친 만주족은 조선인 주인 밑에서 종살이를 하거나 조선인들이 기피하는 3D업종에 종사하는 등 매우 열악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사실 병자호란 당시 이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만행을 감안하면 업보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지만...[6] 물론 이들 중에는 실제 중국계가 아니라 조선 후기에 명문가 족보를 구입해 위조한 경우도 상당수 있다고 추정되기도 하지만, 수백년이 지난 현대에 이를 검증하기는 어렵다.[7] 과거 한국은 부계주의 국적법을 택하여서 아버지가 한국 국적인 경우에만 한국 국적을 부여했다. 이는 남녀차별이며 UN 국제협약에서 벗어난다는 지적이 계속 있어왔고, 무엇보다 미혼모 밑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아버지의 호적에 등록되지 못하여서 무국적자가 되는 등 사회 문제가 다수 발생하였다. 그래서 1998년 6월 14일 이후 출생부터는 아버지가 외국인이고 어머니만 한국인이거나, 미혼모의 자녀도 한국 국적을 부여하도록 바뀌었다.[8] 그런데도 몰래 불법으로 이중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9] 결혼 당시에는 대만 국적이었으며 이후 한국으로 귀화하였다.[10] 중국 본토 출신이지만 배우 활동을 위해 홍콩 시민권을 취득했다.[11] 남편이 한국으로 건너와 동포를 위한 제약 사업을 할 때 본인은 의사로서 남편의 나라에 인술을 베풀었다. 생전에 부부 사이가 각별해서 유 회장이 유언장에서 장녀 재라에게 엄마를 잘 모셔달라고 당부했을 정도였다. 결혼한 계기부터 시작해서 결혼 생활 중에도 같은 이민자 출신으로서 미국에서 알게 모르게 고생하며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많이 느낀 모양. 다만 호미리는 미국 철도회사 고위 임원의 딸이라 집안 자체는 매우 유복했었다.[12] 재한 화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