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

 


  • 베트남어: Người Việt Nam, 𠊛越南(베트남 인), Người Việt, 𠊛越(비엣 족), Người Kinh, 𠊛京(킨 족)
  • 영어: Vietnamese people
1. 개요
2. 기원
3. 특징
3.1. 종교
3.2. 언어
3.3. 소수민족
3.4. 해외의 베트남인
3.5. 키
4. 베트남 출신 인물(가나다)
5. 베트남 국적, 출신의 캐릭터
6. 출처


1. 개요


베트남 국적을 가진 사람 또는 베트남에 전통적으로 거주해온 민족을 총칭한다.

2. 기원


베트남인의 대부분은 비엣족(Việt, 越, 월)[1]으로, 그 외에 54개의 소수민족이 있다.
비엣족의 원주지(原住地)는 중국 남부라는 설이 있고, 실제로 광시좡족자치구 일부 지역에도 월족이 거주하고 있다. 월족의 기원은 양쯔강 이남에 살다가 황하 근방에 살던 한족에게 계속 밀리면서[2] 현재의 위치로 이주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는 태국인의 대다수를 이루는 타이족[3]과도 같다.
참고로 베트남인의 유전자 조사에 의하면, 현재 화난 지역인 광동성, 광시좡족자치구,푸젠성, 하이난성 에 사는 중국인과 중국 소수민족인 묘족이 이들과 매우 가깝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한다.

3. 특징


하노이를 포함한 북부의 베트남인들은 외형상 광둥성, 광시좡족자치구, 하이난성 등지의 한족과 비슷한 편이다.[4] 쉽게 말해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인은 모두 다 피부색이 '''어두울 것'''이라는 선입견과 다르게 동북아시아인의 외모를 가진 사람도 상당히 보인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북부에 많고 남부나 중부 베트남인들은 원래 참파의 근거지라 참족과 혼혈되어 피부색도 어두운 편이고 생김새도 좀 다르게 생겼다.
베트남의 주류 민족은 현 중국 남부에서 왔다. 그리고 중국의 지배를 천년동안 받았기 때문에 중국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싱가포르와 더불어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에 들어가는 국가다.
그래서 지리적으로는 동아시아가 아니지만 이런 인종, 역사, 문화적 배경 때문에 일부 분류로는 동아시아권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베트남을 제외한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문화적으로 인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지라 베트남과 이질감이 아주 크다.[5] 그래서 베트남은 크메르족, 참족 등 인접 동남아시아 민족들과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고 역으로 동아시아에 더 강한 동질감을 보였다.
현대 베트남인들 다수는 베트남은 동북아시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주장하는게 마냥 황당무계한 것도 아닌게 지리적인 부분만 빼면, 당장 역사적으로 베트남 정치 체제와 사회를 지배해온 이념과 종교는, 고대에는 힌두교권에 속했다가 상좌부 불교가 지배적으로 자리잡은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나 힌두교에서 이슬람으로 갈아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시종일관 통치 이데올로기로서는 유교, 민간 사회의 대중적인 종교로는 대승 불교가 베트남을 지배했고, 문자도 한자나 한자에 기반한 쯔놈을 사용했으며, 통치 체제나 관료제 또한 중국에서 따온 것이다. 중국과 유구히 대립해왔던 베트남은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자신들의 문명이 주변의 다른 국가보다 뛰어나다는 중화 사상이 기본으로 되어있는 국가라는 게 주위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등 타 인도차이나와 다른 특이점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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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민족의 확장사. 베트남판 남방식민운동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일본 열도 동북부로 뻗어가는 일본의 아이누 정벌과도 비슷하다.[6]
월족은 강대한 중국이 있어 확장이 불가능한 북쪽 대신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점차 남중국해 해안을 따라 참파캄보디아의 영토를 뜯어가며 확장했다. 이들 지역에서도 비엣족이 다수가 되었지만 여러 소수민족이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중남부 베트남인들은 참족이나 크메르 등과 혼혈로 확실히 동북아인과는 좀 이질적으로 다르다.
요약하자면 중세 이후 베트남이란 국가 형성 과정은 '''정치적으로는 중국에서의 철저한 독립을 추구하되, 문화적,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오히려 동아시아 문명의 내재화'''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국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베트남은 한국, 일본보다 더 철저한 중화사상을 내세워 국내용 칭호나 문서에서는 아예 대놓고 베트남 조정을 중국 왕조와 대비되는 '''남조'''라 칭했고, 참파, 크메르 같은 힌두교-불교권에 가까운 인근 나라들을 정벌하며 유교를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 전파를 명분으로 삼았다. 레 왕조 때 지배층이 친명 스탠스로 유교를 받아들였으나 남부 사람들은 오히려 반중 정서를 유지하여 간극이 생겼고, 이후 찐씨의 북부, 응우옌씨의 남부 지배체제가 정착되면서 백성들의 생활패턴에도 영향을 미쳐 북부는 농경사회 속에서 유교적 생활습관을 유지한 반면, 남부 사람들은 영토 확장을 하면서 이기적이고 도전적인 습성을 유지하며 유교에 일절 가치를 두지 않았다. 그래도 민족 동질성만큼은 통일돼 있다.
동아시아의 문화인 과거 제도와 종묘사직에 지내는 제사 또한 일찍부터 수용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정복한 참파나 크메르쪽에 대충 끼워 맞춘 동아시아식 작위를 내리며 외왕내제식 통치를 했다. 베트남은 동아시아 국가들과 같이 자신의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뛰어나다는 사상을 가지고 다른 민족을 몰아내며 남진을 계속 했다.
현대 베트남은 ASEAN 회원국으로 중화질서가 무너진 현대에는 타 인도차이나 국가들과의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도문화권인 타 인도차이나와 구별되는 일종의 아이덴티티가 있다.

3.1. 종교


베트남인들은 주로 불교를 많이 믿으며 유교 역시 베트남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장유유서 같은 유교적 전통이 베트남에 많이 남아 있다. 심지어 공산당 정권도 불교와 유교는 대놓고 탄압하지 못했을 정도다. 그리고 중국처럼 도교 역시 베트남인의 일상 생활과 밀접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 외에도 프랑스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가톨릭을 믿는 베트남인들도 많아서 전 인구의 5%가 가톨릭 신도다. 이 정도면 적은 것 같지만 2015년 기준, 한국의 가톨릭 인구가 7.9%인 것을 보면 사회주의 국가치고 많은 편이라 볼 수 있다. 가톨릭 신자는 주로 프랑스의 직접 지배를 받았던 남부 지방에 몰려 있는 경향이 있다.[7]
물론 홍콩이나 마카오와는 달리 기독교가 흥하지는 못한 편이다. 애초 도시 하나만 떼어 영국포르투갈이 지배한 저 둘과 나름 땅덩이가 있는 베트남은 조금 다르다. 한국처럼 전국적으로 기독교 선교가 되었으면 인구 빨로 신자가 많을 수도 있으나 프랑스인들은 베트남을 3분할 통치하여 사이공을 중심으로 한 남부 코친차이나[8]만 직접 통치했으며,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 통킹 및 후에를 중심으로 한 중부 안남은 응우옌 왕조가 통치하는 간접 통치라 불교세가 온전히 살아 있었다.
그 외의 종교로 도교와 불교 교리를 짬뽕시켜서 까오다이교(Cao Dai, 道高台)나 호아하오교(道和好)같은 베트남 특유의 신흥종교 신자들도 있는데 이들 종교들은 남부 메콩 강 델타 지역이 근거지다. 베트남 남부 지역은 베트남 민족사적 관점에서도 프랑스 식민지배 직전 19세기는 되어야 확실하게 참파를 비롯한 토착 세력을 완전히 밀어내고 자국의 경계 내에 온전하게 흡수한 지방이었으며, 중세부터 꾸준히 유교와 대승불교가 확실하게 자리 잡은 북부 홍강 델타와 달리 프랑스의 식민 지배로 인하여 저 두 지배적인 종교적 영향력이 정부 권력의 지원을 받고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못하여 저런 여러 종교의 영향력이 짬뽕된 신흥 혼성 종교 (syncretic religion)가 크게 떠올랐던 지방이다.
한편, 소수민족인 참족이슬람교를 믿는 경우가 많다.
다만 베트남은 공산국가라 그런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로 무종교인으로 간주되며 불교를 진지하게 믿는 이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그냥 한국의 유교사상이나 북유럽의 종교문화하고 비슷하다고 봐도 될듯.

3.2. 언어


베트남어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한다. 말레이시아의 네그리토와 인도 동부 카시족, 캄보디아인도 이 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쓴다. 현대에 들어 소수민족들도 소수어를 버리고 베트남어를 상용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인구증가율이 상당하다. 출산율 감소가 늦게 시작된 관계로 출산율은 현재 1.8명대 정도로 크게 낮지는 않은편이다. 그리고 소수민족의 베트남어의 사용이 늘어나며 사용자수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고로 80~9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어 모어 화자수보다 베트남어 모어 화자가 많아졌다.
베트남인들의 이름은 한자로 되어 있다. 호지명이라던가 진흥도 등 베트남의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베트남어 단어의 60%는 한자에서 비롯된 단어들이다. 그러나 쯔놈을 폐지하고 쯔꾸옥응으를 도입하면서 이걸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베트남 여성은 중간이름에 티(Thị)가 많이 붙는데 한자로 적으면 씨(氏)가 된다. 남성은 빈도수가 좀 덜하지만 응우옌반티에우반 다크홈 같은 경우처럼 중간이름에 반(Van)이 많이 붙는데 한자로는 문(文)이다.

3.3. 소수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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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소수민족 비중 지도. 노란색은 베트남 민족이 20% 미만, 주황색은 20~40%, 분홍색은 40~60%, 붉은색은 60~80%, 짙은 붉은색은 80% 이상인 지역이다.
베트남 역사에서 전통적인 중심지에 가까운 북부[9]보다 참파, 캄보디아의 영토였던 남부가 색이 진한데 베트남의 남진에 따라 베트남인들과 명나라가 멸망한 후 베트남으로 넘어온 명나라 유민들의 집단 이주, 강력한 동화정책으로 소수민족들을 대체해 나갔다.
일례로 사이공은 18세기 이전까지 쁘르이노꼬(ព្រៃនគរ)라 불리던 캄보디아 영토였으며 내륙의 떠이응우옌 (Tây Nguyên, 西原) 지역은 남베트남과 이후 통일 베트남의 베트남인 이주 정책으로 소수민족이 소수가 된 지역이지 20세기 초중반까지는 소수민족이 다수인 지역이었다. 실제 1930년대만 해도 이 지역 인구의 95%는 소수민족이었다. #
참파를 세웠던 참인들이 있고 비엣족과 인종적으로는 같지만 한나라가 베트남을 침공하였을때 중국 문화를 거부하고 고산 지대로 피신하여 자신들만의 생활을 영위한 므엉족, 중국 남부와 베트남 일대에 거주하는 묘족[10], 태족[11] 등이 주요 소수민족이다.
현대에는 베트남에 병합되었지만 천년이 넘도록 중국과 더불어 베트남의 최대 적수였던 참파를 세운 참족들은 베트남인과 인종적으로 다른 말레이-폴리네시아 인종에 속하는 민족이다. 이들은 원래 오늘날 말레이시아 일대에서 거주했다가 2천년 전에 현 베트남 중남부로 이동해 왔으며 한자 문화권이었던 베트남과 달리 힌두교를 받아들인 인도 문화권 민족이었기 때문에 베트남과 참파 사이의 차이가 매우 컸다.
물론 이후에 둘 다 불교를 믿게 되었던 적도 있었지만 베트남은 유교, 대승 불교, 도교, 참파는 힌두교, 이슬람, 상좌부 불교로 결이 달랐다.
베트남의 역사는 '''북부에 있던 베트남이 남부의 참파를 밀어붙이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종 참파가 베트남을 관광시키고 수도까지 턴 적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베트남이 참파보다 우위의 힘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참파는 14세기 말부터 서서히 베트남에게 밀리더니 18세기에는 베트남이 참파의 근거지인 현 베트남 남부까지 들어오면서 베트남의 종속국이 되어 버렸다.
참족들은 베트남에게 서서히 밀려 버리자 원래 고향인 말레이시아 일대로 돌아갔으며 일부는 잔류했다. 말레이시아로 간 참족들은 말레이인에 동화되어 이슬람 신자가 되었으며 베트남 잔류 참족들 역시 힌두교를 버리고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베트남에서 얼마 되지 않는 무슬림들은 참족들이 대부분이다.
중국과 인접해 있고 오래전부터 중국과 얽히고 설킨 역사로 인하여 호아족(華族)이라는 중국인 혈통의 중국계 베트남인들도 86만 명 가량 살고 있으며, 베트남화된 한족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역사서에 보인다.
이들은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했을때 베트남으로 들어오거나 베트남 독립 이후 베트남으로 이주해온 한족들의 후손들인데 베트남어로는 시 니엡이라는 이름으로 특히 삼국지 매니아들에게 유명한 사섭이 있다. 사씨 가문은 한나라 때 베트남 북부를 간접지배했던 영주들이었으며 한때 한나라가 중부 베트남에 진출해 현재 다낭에 일남군을 만들기도 했으나 참족들에게 밀려나 버렸다.
그리고 리 왕조(1009년~1225년)를 건국한 이공온(李公蘊), 호 왕조의 창시자 호계리, 막 왕조의 개국자 막등용도 원래 푸젠성, 저장성 등 남방 일대에서 이주해온 중국인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판타인잔도 화교 가문 출신이며 명나라가 망해버리자 명나라 유민들이 대거 베트남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이 유민들은 훗날 베트남이 메콩 강 일대로 진출할때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베트남의 인상이 예전부터 아주 좋지 않았고 베트남 전쟁중월전쟁의 여파로 1978년~1979년 2년 사이에 화교를 포함한 중국인 45만 명이 베트남을 떠났기 때문에 베트남에 소수민족으로 남아있는 한족의 수는 전체 인구 중 1% 수준으로 적은 편이다. 이들 중국계 베트남인 대부분은 홍콩이나 마카오로 갔다. 구룡성채의 경우 1980년대 초반까지 베트남 난민 유입으로 토착 삼합회와 베트남계 삼합회 간 갈등이 극심해지기도 했다가 1986년 홍콩 경찰과 영국 총독부 관리들의 진입 성공으로 평정되었다. 이후 중국에 반환되는 과정에서 결국 철거되어 버렸다.
그래도 잔류한 중국계 호아족의 수는 86만명에 달하고 베트남에서 6번째로 수가 많은 소수민족이다.
어쨌든 덕분인지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서 화교가 경제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드문 국가이다. 중국계 인구가 70%인 싱가포르는 말할 바도 없고 3% 남짓인 필리핀, 인도네시아도 화교가 경제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 따지고 대부분의 킨족들은 원류가 중국 남부 운남성, 광동성 등 남부에서 온 월족의 후손이지만 동화된지 너무 오래되어 중국계 주민이라 하지는 않는다.

3.4. 해외의 베트남인





베트남어: Người Việt Hải Ngoại (𠊛越海外), Việt Kiều (越僑)
베트남에서 주류를 점하는 비엣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이기도 한데, 중국에서는 이들을 징족(京族: 경족)이라고 부른다. 인구는 약 3만여 명으로, 대부분 광시좡족자치구에 거주하며, 이 중 베트남 국경에 인접한 팡청강(防城港) 시에 거의 40% 가량이 거주하며, 특히 팡청강 시에서도 징족들이 몰려사는 세 섬(巫头 우터우, 万尾 완웨이, 山心 산신 섬)을 경족삼도(京族三岛)라고 한다. 이 징족은 중국에 체류하는 베트남 국적자(약 3만여 명)와는 구분된다. 캄보디아에도 베트남인이 많이 거주하는 편이다.
한편으로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구 식민 종주국 프랑스서구#s-2권에 거주하는 베트남인들이나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사는 베트남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남베트남계로 소위 말하는 보트피플출신이다. 특히 홍콩은 구룡성채에 베트남 국적 화교들이 대거 몰려 들어갔고 다른 곳에서도 베트남 사람들이 난민으로 화교, 비엣족 둘 다 많이 들어갔다. 구룡반도의 카우룬시티 구의 경우 남베트남 난민들의 집단 거주지역이었다.
물론 1990년대 이후로는 통일 베트남에서 온 베트남인들이 많아졌지만 가치관의 차이가 상당한지라 갈등을 빚는 경우도 종종 있고[12], 현 베트남 정부에 대한 반감을 지닌 이들도 많다.
그래서 베트남계 미국인은 미국 내 아시아인 중에선 특이하게 20세기 기준 공화당의 지지율이 높은 편이었다.[13] 그리고 많은 베트남계 미국인들은 중국계 베트남인이다.
물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는지, 베트남 정부가 개방 정책을 펴고 서구권과도 관계 모색에 들어간 이후부턴 악감정을 벗고 베트남에 투자하거나 귀국해서 살고 있는 보트피플의 수도 상당하며, 베트남 부동산 시장의 큰 손 가운데 하나가 이런 보트피플과 그들의 자녀들이다. 사실 베트남이 개혁/개방 정책을 편 시기도 냉전이 끝나기 전인 1985년으로 꽤 빠른 편이긴 했는데, 이는 베트남 전쟁이 종전된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발표된 것으로 이런 것을 근거로 당시 베트남 공산당(베트민, 북베트남)이 벌였던 전쟁의 일차적 목표는 베트남 공산화보다는 국민국가 형성이었다고 보는 역사학자도 상당한 편이다.
반면에 구 동독 지방이나 폴란드불가리아, 체코, 러시아, 우크라이나동유럽이나 구소련에 속한 중앙아시아에서 거주하는 베트남인들은 대개 구 북베트남에서 온 사람들이 주류로, 원래는 노동자로 일하러 들어왔는데 동구권 국가들의 체제 전환 이후에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베트남으로 돌아가기는 뭐해서 그대로 눌러앉은 경우다. 출신 성분이 성분인지라 현 베트남 정부와의 마찰은 별로 없는 편이다.
이외에도 카타르아랍에미리트아라비아 반도 산유국에 해외 노동자 형식으로 나가 있는 베트남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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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활동했던 전 아이돌링!!! 소속의 베트남계 일본인 아이돌 폰치. 아이돌링이 해체한 이후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21세기 들어선 베트남계 이민자가 동북아에도 상당히 늘어나 일본에도 상당히 많아지고 있다. 특히 일본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되면서 비어있는 노동자 비율을 주변국에 의지하고 있다 보니 베트남과 기타 ASEAN 국가 노동자들도 상당한 편이다. 그래서 외국인 통계를 보면 중국, 한국 다음으로 베트남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이들 노동자에 대한 대우가 별로 좋진 않은 모양. 관련한 NHK의 동영상 뉴스.

3.4.1. 재한 외국인 규모


한국에서 2번째로 체류자가 많은 외국인이다. 최근에 경제력이 좋아져 한국 유학을 많이 온다. 특히 평택대학교에 꽤 많다는 듯.
한국에서도 알다시피 베트남인 비율은 상당한 편인데, 재한 외국인 수로는 중국[14], 태국인보다 많다.[15] 국내 거주인 수는 2010년대 기준 약 20만명대이다. 재한 베트남인의 유입은 2000년대 이후로 급격하게 증가되는데 이러한 과정에는 국제결혼과 베트남과의 교역증가가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16] 다만 1세대의 경우 아무래도 한국어가 서툴고[17] 여자는 연애결혼이 아닌 사실상 집안을 위해 경제적인 점을 고려하여 결혼을 하는 국제결혼이 많은데다가[18], 남성들도 주로 3D업종의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이들 업계의 임금 인상을 힘들게 한다는 점을 들어[19] 이런 식의 이민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는 편이다.[20] 고로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과 베트남 양국 정부는 재한 베트남인에 대해서 상당히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 내 외국인 노동자 범죄비율에서 살인, 폭력, 강도 비율이 꽤 높다.

3.5. 키


전반적으로 키가 작은 편이다. 2013년 기준 18세 평균신장이 남성 163.7cm, 여성 153cm 밖에 안 된다. 가끔 큰 사람들도 중국계가 많은 편이다. 덕분에 비교적 체격이 큰 한국 남성은 현지 화장실에서 엉거주춤하게 서서 볼일을 봐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물론 이는 인종차도 있긴 하겠지만 과거 다른 지역이 그랬듯 식단에 따른 차이나 성장기 시절 생활습관 등에 따른 차이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장신이 많은 베트남 국가대표 농구팀도 존재하나 다수는 중국계나 혼혈이며, 기량은 전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같은 동남아 지역인 필리핀에도 압살당하는 수준이다. 이들의 작은 키는 베트남전 당시에도 주목되었는지, 당시 연합군 공문에는 북베트남군에 장신이 발견될 경우 높은 확률로 소련이나(황인 민족도 좀 있다) 기타 동북아시아에서 파견된 간부급 병력일테니 반드시 생포하라는 내용이 있기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 베트남 정부에서는 '''2011~2030년 신장, 체력 종합 개선안'''을 내놓았다. 2020년까지 남성 167cm, 여성 156cm, 2030년에 남성 168.5cm, 여성 157.5cm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장기적으로 보면 크긴 하겠지만 단기간에 그정도로 빨리 평균키가 성장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사실 이나마도 70년대에 비하면 많이 커진 편인데, 월남전 당시 베트콩들의 벙커에 미군이나 한국군은 들어가지 못할만큼 벙커가 작았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인접국가인 태국만 해도 고기가 일상 음식일 만큼 육류 섭취량이 많음에도 태국인들의 체격은 작은게 현실인데 베트남은 육류 소비량이 높지 않아서 신장이 커지긴 힘들만도 하다.

4. 베트남 출신 인물(가나다)



5. 베트남 국적, 출신의 캐릭터


※ 해당국 작품 제외

6. 출처


  • 먼나라 이웃나라 시즌2(지역/주제편) 17권: 동남아시아, 천년 문명의 신비에서 21세기 변화와 개혁의 주역으로 -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18. p95~96.

[1] 킨족(Kinh, 京, 경)이라고도 부른다.[2] 당나라 때만 해도 이 지방은 밀림에 둘러싸인, 한족 입장에서는 남방 오랑캐남만족들의 영역이었으나, 송나라가 특히 북쪽 유목민족에 밀려 남송으로 남하한 시절부터 이쪽 개발이 본격화된다.[3] 태국인들은 중국 남부 윈난성에 살던 타이족과 크메르계 혈통을 가진 원주민 몬족, 그리고 약간의 말레이 인종들이 혼혈된 사람들이다.[4] 참고로 태국의 타이족과 라오스의 라오족, 미얀마의 버마족 역시 애초에 중국 남부에서 살다가 남하한 집단들이다. 타이족만 해도 태족이라고 중국에 같은 계열 소수민족이 있으며 미얀마의 버마족, 샨족, 카렌족 등은 대놓고 중국티베트어족으로 중국인과 같은 어족이다.[5] 태국은 동아시아 문화가 어느정도 영향이 있다고 하지만 역시나 인도 문화의 영향이 컸다. 물론 불교같은 경우는 (대승불교라 상좌부불교와 차이는 있지만) 동북아시아에도 강하게 뿌리내린 인도 문화긴 하다만. [6] 베트남어로는 이 확장을 남띠엔(Nam tiến, 南進(남진)이라고 한다.[7] 사실 북부 지방의 100만에 달하는 신자들이 월맹의 북베트남 통치가 굳어지자 1954년에 남베트남으로 이주해왔다.[8] 호치민시 주변 지역을 코친차이나라고 하여 프랑스 직할령으로 삼았다.[9] 물론 하노이등 수도와 옛 왕조 시대부터 역사적 중심지였던 곳은 색이 아주 진한걸 볼 수 있다. 소수민족이 많은 곳은 여러 소수민족들이 거주하는 중국 윈난 성과 가까운 북부 고산지역.[10] 중국어로는 먀오족[11] 베트남어로는 따이족[12] 한국은 지리적으로 베트남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한국으로 오는 보트 피플의 수가 많지 않은 데다가 보트 피플들을 구조하고 나서는 한국에 정착시키지 않고(정착한 이들이 없지는 않지만 소수다) 미국이나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제3국으로 내보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정착한 보트 피플 출신 베트남인들이 많지 않아 남베트남계 이주민들과 통일 베트남계 이주민들이 갈등을 빚는 일이 거의 없다.[13] 다만 어느 정도 앙금을 풀고 있는 베트남계도 있는데다가 통일 베트남에서 오고 있는 인원 때문에 색채가 희미해져서 2016년 대선 때는 힐러리 클린턴을 더 많이 지지했다. 물론 공화당 후보가 대놓고 배타주의 냄새를 풍기는 도널드 트럼프였던 것도 한몫했다.(...)[14] 조선족같은 한국계 중국인이 가장 많고, 기타 중국인들도 2위 수준이다.[15] 태국인과는 거의 비슷한 수준. 참고로 그다음은 2018년 기준 아시아계론 우즈벡,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몽골, 대만, 네팔 ... 순이다.[16] 국제 결혼을 하고 5년 정도 지나면 베트남에서 가족을 초청하는데 가족의 비자가 간소화된다는 점을 이용하여 베트남 가족 전체가 이주를 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물론 수입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오는 경우가 다수.[17] 현지인이 하는 동네 베트남 쌀국수 식당같은데 가면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이들의 자녀들이 카운터를 보는 경우도 있다. [18] 때문에 일부 성격 나쁜 남편들의 가정폭력이 문제가 되어 양국 정부의 외교 문제로 비화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언론이 보도할 이유가 잘 없어서 그렇지 알콩달콩 잘 사는 경우도 많다.[19] 본래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한 이유는 특정 산업군의 노동력이 부족한 것을 한시적으로 메꾸기 위해 들여오는 것인데, 일각에선 (베트남인을 포함한) 대량의 외국인 노동자를 무분별하게 들여와 오히려 노동시장에서 한국 노동자와의 임금 경쟁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반대측에선 그래봤자 전체 인구 2%도 안되는 수준으로 지금 정도가 적정선이라고 주장한다.[20] 다만 이런 외국인 노동자들은 실제 한국 국적을 취득하여 눌러사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은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그리워하며 공장, 회사내에 있는 기숙사에서 숙식을 하고 번 돈은 본국 가족들에게 부치는 경우가 많다. 환율 차이로 인해 그렇게 몇년만 일하면 본국에서는 땅이나 농장을 살만한 상당한 거금을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21] 베트남인-러시아인 혼혈.[22] 베트남 출신 화교로 영웅본색 3편을 만들때 자기 고향을 개판 헬게이트 난장판으로 그린 걸 몹시 싫어했다고 한다.[23] 베트남계 일본인이다.[24] 이름 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