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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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줄거리
3. 작품 외적인 내용
4. 패러디
5. 리메이크


1. 소개


연암 박지원의 소설. 조선 후기에 연암 박지원이 당시 조선의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 한문으로 쓴 풍자 소설. 2020년 현재 고등학교,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허생전이 현대 한국어로 번역되어서 수록되어 있다.
원래는 열하일기 안에 있는 《옥갑야화(玉匣夜話)》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박지원과 비장[1]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박지원 자신이 윤영(尹映)에게서 들은 변승업[2]의 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와 허생에 있던 이야기를 펼친 것이, 바로 허생전의 내용이다.

허생전의 후기에 윤영에 대한 자세한 글이 나오는데, 박지원이 스무살에 머문 절에서 만난 노인이 바로 윤영이었으며, 그 곳에서 허생의 이야기를 듣고 전기를 짓겠다 그에게 약속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고, 박지원이 다른 절에서 그 노인을 만났을 때, 노인은 '''자신이 윤영이 아니라, 신색(辛嗇)이라고''' 말했으며, 왜 이름을 바꾸었느냐는 말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오히려 화를 냈다고 기록했다. 박지원이 문을 닫고 나올 때, 노인이 안에서 중얼거리길,

"애처롭게 되었구나. 허생의 아내는 필경 또다시 굶주리게 되었을 터이지."

참고로, 《북학의》를 쓴 박제가가 '''압록강 동쪽에서 손에 꼽을 만한 문자'''라고 칭찬한 바 있다.
또한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의 권력의 법칙에서도 날개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한국어판과 영문판 배치 순서가 다르니 찾아보려고 할 경우에는 주의해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3]

2. 줄거리


주인공인 허생은 가난한 형편에도 10년 글 읽기를 기약하며 매일 글을 읽고 있었는데 7년째 되는 어느 날 아내가 허생에게 내가 당신 다 먹여살리는건 아냐, 선비 질도 장인 일도 장사도 못 하면 차라리 도둑질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 오라고 하소연 한다.

그러자 허생은 아내의 절절한 말에 글 읽기를 멈추고 집 문 밖으로 뛰쳐나가서는 한양의 갑부인 변씨를 찾아가 당당하게 1만 냥[4]

이라는 거금을 빌려 간다. 그리고는 바로 안성시장으로 가서 그 돈으로 과일을 다 싹쓸이해서 10배의 폭리를 취하고 제주도로 가서 말총을 다 싹쓸이해서 망건 값을 10배로 올려 처음 꿨던 돈의 100배로 불린다.[5]

그런데 얼마 뒤, 때마침 변산에서 도적 떼들이 들끓자 그들의 사연을 듣고는 그들을 회유하여 살기 좋다는 무인도[6]로 데려가서 새 삶을 살게 하고 일본[7]의 기근을 도와주면서 은 백만 냥을 벌게 되었다. 그러나 땅이 좁은 것에 한탄하면서 돌아가기로 마음먹으며 섬에 드나드는 배를 모조리 불태우고 바다에 50만 냥을 그냥 버린다. 그리고 섬에 있는 사람 중에 글을 아는 자들을 골라내어서 배에 태워 다시 조선으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허생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나누어주고 10만 냥이 남게 되자 변씨에게 몽땅 다 갚는다.

이에 변씨는 깜짝 놀라며 남은 돈을 다시 돌려주려고 했지만 허생은 거절했고 이를 계기로 허생과 인연을 맺게 된다. 얼마 뒤 변씨가 어영청 대장인 이완 대장에게 허생의 얘기를 하자 이완 대장이 놀라며 허생을 찾아간다. 이완이 허생에게 청나라에 대한 대책을 묻자 세 가지 해결책을 던졌는데 이완이 모두 어렵다는 답만 했다. 그러자 허생이 이완을 꾸짖으면서 로 찌르려고 위협했고 놀란 이완 대장은 뒷문으로 도망갔다. 그 다음 날 이완이 다시 찾아가 봤지만 허생은 사라졌다.


3. 작품 외적인 내용


본 작품이 다루는 당시의 사회상은 다음과 같다.
  • 10년 글공부에 매진하려고 했으나 7년 만에 아내의 구박에 집을 나오는 것은, 돈 한 푼 없으면서 무위도식하는 당시 몰락 양반들을 풍자한 것이다[8]. 양반전의 처음 부분과 매우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여기서 허생은 공부를 자아성취로 보는 반면에 아내는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파악하고 있다.
  • 허생이 매점매석으로 시장을 쓸어 버리는 장면은 당시 조선 경제를 쥐락펴락하던 도고[9]의 패러디이다.
  • 도적들과의 만남에서 알 수 있듯 조선 후기 양반들과 새로 부상한 부농들에게 착취당한 힘없는 서민들은 농사를 팽개치고 도적이 되는 경우가 빈번했다.[10]
  • 이완을 베어 버리겠다고 한 것은, 북벌론이 오랑캐에게 당한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과는 달리 당시 서인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았음을 간파한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좀 이상한 지적인 것이 북벌론을 주장한 것은 서인, 남인을 가리지 않은 유림 전반의 바람이었고 오히려 숙종조에 들어서면 서인들과 탁남은 "백성들이 힘든데 북벌은 얼어죽을 북벌!"이라면서 회의적이었고, 윤휴를 비롯한 청남계 인사들만이 강력하게 북벌을 추진했다. 막상 효종조에 가보면 송시열을 비롯한 대신들은 "그냥 수신이나 하라"고 하지 "군사를 길러라, 대포를 만들자" 따위의 구체적인 북벌은 언급하지도 않고 아예 북벌에 대해서 때가 이르다는 식의 지극히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내 일전에 청에서 지내면서 저들의 시스템이 어떤지 다 알고 있으니 잘 하면 이길 수 있다!"라면서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북벌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효종이었고 효종이 죽은 이후 현종이 즉위한 다음에야 송시열, 송준길 등이 "이전에 효종 대왕께서 강병 수십만을 길러 북벌을 정벌하겠다라고 하셨다니까요!"라고 강조하면서 자신들이 북벌을 도운 효종의 충신임을 강조했다. 게다가 이후의 북벌론도 윤휴의 북벌론을 제외하면 자신이 충신이자 유자임을 드러내려는 쇼에 해당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이 부분은 북벌을 하겠답시고 허례허식에 매여 정체된 조선 사회를 비판하는 부분이란 얘기도 있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효종은 조선의 허례허식을 혐오하고 민첩한 행동이 용이한 융복을 숭상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효종 실록에는 효종이 조선의 예복은 소매도 길고 너풀거려 불편하기 짝이 없고 갓은 높은 것이 우스꽝스럽고 문지방에나 부딪힐 복장이라고 까는 한편 청나라의 시스템을 언급하면서 이를 칭찬하는 내용이 많아 사대부들이 오랑캐 문화에 빠졌다고 투덜거리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이하는 길어서 생략
  •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허생이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은, 당대 조선 사회의 모순이 치료될 수 없음을 드러내는 작가의 일갈로 볼 수 있다. 다른 설로는 작가가 당시의 사대부들에게 보복을 피하기 위해서거나 당시 기준으로 보면 파격적인 내용이라서 일부러 자취를 감추었다고 설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후일담에서 이 이야기를 해줬다는 윤영이 이름을 바꾸고 숨어있는 것으로 묘사한 것도 이와 마찬가지. 이를 제외하고도 허생의 이인(異人)다움을 강조하고 독자들에게 여운을 남기는 미완성적인 완결이라고 절대론적 관점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 허생의 한계 역시 허생전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 자신 역시 장사를 했던 주제에 상인을 장사치라고 폄하하면서 자신은 선비라고 주장해 아직 조선 시대의 사농공상이라는 전통적 계급, 신분 사회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 일본나가사키에서 쌀을 팔아 은 백만 냥을 얻는 장면에서, 왜 하필 나가사키인지에 주목하는 경우도 있다. 당시 일본은 나가사키 항구를 통해 중국은 물론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과도 교역을 하면서 문물을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당시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들은 일본이 유럽과 교역하는 상황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중국과 무역을 하고 있다는 상황은 잘 알고 있었으며, 박지원은 1763년에 통신사로 파견되었던 인물들 중 일부와 친분이 있었다. 즉 나가사키라는 곳이 무역이 활발한 항구라는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으며, 쌀과 은을 대규모로 매매하는 것은 사무역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허생의 실제 롤모델은 토정비결을 집필한 이지함이란 설이 있다. 실제로, 이지함은 지역마다 모자란 물건을 서로 교환하면 큰 이문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간파한 인물이었다. 심지어 그의 이런 주장을 자본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롤모델은 박지원 본인이라는 설이 더 많다.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제목의 소설도 있다. 작가는 최시한. 오리지널처럼 당시 사회상을 비꼰 내용이면서도 허생전 자체에 담겨있는 한계 또한 비판하면서 마지막 대목 허생이 떠나는 것에 대해 "그것이 당시 지식인의 한계였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4. 패러디


내용이 짧고 주제와 전개가 굉장히 명료하기 때문에 패러디가 쉬워, 인터넷을 타고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했다. 무언가가 화제가 된다면 거의 한 번씩은 허생전으로 패러디가 된다.
또다른 패러디의 집결점은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 이쪽은 수필이라 허생전에 비해 좀 더 담백한 맛이 난다. 둘 다 '''단어만 바꾸면 훌륭한 패러디가 완성되는 마법의 문장'''들.

5. 리메이크


채만식의 소설. 박지원이 쓴 허생전의 리메이크작으로 1946년작이다.

허생(許生)은 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 집을 나가 변 진사에게 돈 만 냥을 빌려 안정성의 과일을 매점(買占)하여 석 달만에 열 배의 이익을 남긴다. 허생이 쌀을 매점하라는 강 선달의 권유를 물리친 후 도적들이 돈을 훔치러 온다. 허생은 도적들을 굴복시켜 새 달 보름까지 강경(江景) 장터로 모이라 하고 돈을 주어 돌려 보낸다. 허생은 변 진사에게 이만 냥을 갚고, 강경 장터에서 물건을 사들이고, 조직을 갖추어 사천여 명의 사람들을 배에 싣고 강경을 떠난다. 허생은 제주(濟州) 목사의 횡포를 듣고 그를 제주에서 떠나게 하고 삼 년 동안 제주에 낙천지를 이룬 후 제주를 떠난다. 변 진사가 이완(李浣)을 데려 오자, 허생은 이완에게 장기적인 북벌(北伐) 계획을 제시한 후 사라진다.

박지원(朴趾源)의 "허생전"과 이광수(李光洙)의 "허생전", 그리고 설화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참고하여 집필한 소설이다. 사건이나 인물 설정에서 현실성과 구체성을 중시하여 일부 요소가 바뀌어 있다.
  • 박지원의 소설에서는 허생은 혼자 행동하지만, 채만식의 작품에서는 먹쇠를 등장시켜 허생을 지켜보며 도와주도록 했다.
참고로, 어린이 대상 허생전이나 만화 등으로 나온 허생전은 대부분 채만식 본에 가까운데 이유가 이 먹쇠이다. 허생의 생각을 외부로 말할 수 있도록 대신 질문해주는 역할을 이 먹쇠 캐릭터가 담당하기 때문. 원작에서는 이런 보조 캐릭터가 없어서 허생은 혼잣말을 하거나 혹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안성에서 10만 냥을 번 뒤 도적들의 습격을 받는다. 허생은 창고문을 아예 활짝 열어 도적들이 돈을 가져가게 놔둔다. 그런데 돈이 너무 무거워서(...) 20명가량의 도둑들이 두당 50~100냥 정도밖에 짊어지지 못했고. 그 결과 도적들이 가져갈 수 있는 돈은 1000~2000냥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허생은 고작 천 냥을 가져가면서 10만 냥을 내놓으라 했냐고 꾸짖는다. 소바리나 말바리를 준비해 왔다면 만 냥 정도는 가져갈 수 있었다고 말하며 도적들의 그릇 작음을 일깨워 주고, 감화된 도적들은 허생을 따르기로 한다.
  • 제주도로 떠나기 전의 집결지를 강경으로 잡고 도적의 가족들을 조직적으로 집단화한 것도 현실적인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 중반부에서 후반부까지 등장하는 매화라는 여성이 있는데, 주로 먹쇠와 함께 허생 돌봐주는 역할이긴 하지만, 허생이 여자 마음을 모르는 사내라는 걸 드러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누가 봐도 허생을 짝사랑하는 게 티가 나지만 그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이를 눈치채지 못한다.
  • 박지원의 작품에서는 제주도가 경유지에 불과하고 이름 모를 무인도에 이상국(理想國)을 건설하지만, 채만식의 작품에서는 제주도에 이상국을 세운다. 조선 땅이기에 진짜 나라라기보단 일종의 유토피아.
  • 박지원의 원작에서는 이완이 영 못 미더운 인간으로 등장하지만, 채만식 작에서는 허생의 조언을 잘 새겨듣는 믿을 만한 인물로 나온다. 한편 허생의 조언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박지원 판에서는 허생이 명나라의 원수를 갚는다는 문신들의 목적에 긍정적이지만, 채만식 판에서는 오히려 사대주의자들의 멍청한 생각이라고 까댄다.[11] 박지원과 채만식의 시대 차이상 나타나는 차이점.
채만식과 이광수 이외에도 오영진도 박지원의 허생전을 기반으로 하여 리메이크한 희곡을 만들었고, 이외에도 최시한의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이남희의 '허생의 처' 등 허생전은 현대의 문인들이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해 만든 작품들이 제법 많은 편이다.

[1] 비장이라고 함은 오늘날의 호위 무사 내지는 수행 비서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애초에 박지원부터가 사신단 총책임자였던 정사 박명원의 수행원격으로 동행했다.[2] 참고로 '''실제 인물'''로 역관이었고 중국을 오가면서 사무역으로 치부를 해 거부가 된 인물이다. 허생전의 거부 변씨의 모델로 작품 안에서는 변씨의 윗대 조상으로 나온다.[3] 처음에 허생이 변씨에게 큰 돈을 빌려내고 주위에서 변씨를 질책하자 변씨가 허생은 꼴이 거지꼴이지만 저렇게 당당한 사람은 뭔가 해낼 만한 사람이라며 돈을 빌려준 이유를 말하는 장면이다.[4] 1냥이 현재의 2만 원에서 3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대충 2억 이상...이라고 하지만. 저 가치는 당시 쌀의 가치를 현재와 동일시 한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당시 조선의 쌀 가치 등을 종합해보면 1냥은 약 100만 원에 해당한다.[5] 이때 떼돈을 벌어 기쁘지 않냐는 시종에 말에 오히려 '1만냥만 가지면 팔도를 뒤흔들수 있으니 심히 한탄스럽도다!' 라면서 원시적이고 전혀 발전하지 못한 조선의 경제체계에 한숨을 내쉬었다.[6] 장기도(나가사키)와 사문 사이라는데 사문은 샤먼 혹은 마카오로 추정된다.[7] 정확히는 지금의 나가사키(장기).[8] 다만 이건 현대적 관점에서 허생을 비판한 부분을 박지원의 것으로 둔갑시킨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이 소설에서 허생은 긍정적 인물이고, 유교적 선비관에 대한 허생의 관점은 대단히 일관적이다. 자신을 장사치로 아느냐고 비판하고, 장유유서를 가르치고, 처사의 삶을 산다. 때문에 허생을 비현실적 유학자로 비판하면, 허생을 통해서 대상을 비판하는 것에 있어서 의미가 약해진다.[9] 거상. 요즘 말로 떼부자, 돈 많은 도매상이라고 보면 된다. 조선이 작은 나라인것도 있으나 당시의 조선은 외부와의 교류를 제한적으로 하는 폐쇄적인 국가인터라, 국제 무역 같은 걸 할 리 없었기에, 이러한 도고들이 횡포를 부리기 일쑤였다.[10] 허생이 매점매석으로 벌어들인 돈을 땅에 풀어놓고 도적들에게 "니들 들고갈 수 있는 힘껏 최대한 많이 들고 가라!"고 말했지만 너무 굶은 나머지 힘이 없는 도적들은 하나같이 몇푼 들고가질 못했으며, 명색이 도적이라는 작자들이 이 정도로 힘이 없다는 것은 이들이 생계형 범죄자라는 증거도 된다.[11] 이완을 비롯한 무신들은 병자호란 패전을 앙갚음하는 것을 목적으로 내세웠는데, 허생은 여기에 '단순히 고구려의 고토를 되찾는 것'이 목적인지 아님 '우리가 업신여겼던 오랑캐들(거란족, 몽골, 만주족)도 한번씩 차지해본 중원을 우리가 가져보는 것'이 목적인지부터 확실히 하라며 이 계획들의 실현에 걸리는 까마득한 시간을 언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