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현대가

 









1. 개요
2. 돌림자
3. 병역
4. 스포츠
5. 현대가간의 관계
6. 가계도
7. 범 현대가 기업 회장단


1. 개요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가족 관계. 혈족은 '''하동 정씨 지예부사공파'''에 속한다.# 언론 등지에서 범현대가, 현대 일가 등으로 불리고 있다. 다른 재벌들처럼 상당히 화려한 혼맥을 가지고 있다.

2. 돌림자


정주영 일가는 '''하동 정씨 지예부사공파'''로#, 현대가의 자녀들, 특히 아들들은 돌림자를 쓴다.
1세대는 "O영(永)"자 돌림을 썼고 2세대는 "몽(夢)O"자 돌림을 썼다. 3세대는 아들은 "O선(宣)"자 돌림을 썼고 딸은 "O이(伊)"자 돌림을 썼다. 4세대는 아들은 "창O"자 돌림, 딸은 "진O"자 돌림을 쓴다.
사실 저 돌림자들이 하동 정씨 지예부사공파 문중에서 정한 항렬자는 아니다. 대부분 재벌들이 자신들의 성씨 일족에서 정한 항렬자를 쓰는 것과 대조적인 부분.[1] 그냥 '범 현대가 일원'만 쓰는 돌림자로 보면 된다.

3. 병역


현대가는 비교적 다른 재벌에 비해서 병역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편이다. 정몽구는 육군 병장 만기제대했고 정몽준, 정기선ROTC 장교 출신이다. 다만, 정몽근과 정의선은 병역 면제자다. 직계 3세대 11명 중 정의선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병역을 마쳤다.
그 외에도 정몽주니어같은 사례를 제외하면 갑질 등의 횡포로 이슈가 되는 일이 거의 없다. 정몽주니어의 경우에도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생각하지 못하고 물의를 일으킬만한 말을 생각없이 한 게 문제였을 뿐이지 그 자체로 갑질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정몽주니어로 유명한 정예선은 물론, 그 아버지만 해도 최소한 학창 시절에는 서민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하니 최소한 교육 과정 자체에서는 재벌이라는 것을 크게 의식시키지 않는 편이다.
이는 현대가가 정치를 계속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씨 가문이 직접 정치인이 될 생각은 없는 반면에 현대가는 정씨 집안은 정치인을 한적도 있고 대권에도 도전한적이 있다. 그러다보니 현대 가(家)는 해외보다는 국내여론을 더 많이 신경을 쓰는 편이다.

4. 스포츠


가문 전체가 스포츠와 매우 깊은 인연을 자랑한다. 창업주 정주영은 1980년대 초 대한체육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1988 서울 올림픽 유치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2]
현대그룹이 계열 분리되기 전에는 삼성과 더불어 굉장히 많은 팀들을 운영했고 당시 운영하던 팀들도 대부분 현재 이어져오고 있어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당시 운영팀 목록은 현대그룹 참고.
KBO 리그, K리그, KBL, V-리그 등 국내 주요 프로스포츠 리그에는 현대 계열 기업의 구단이 하나씩 있고[3] 각 그룹 차원에서 적극적인 투자를 해온 덕분에 구단들의 성적 또한 중상위권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4]
특히 현대가는 유독 축구에 대한 인연이 남다르다. 정몽준은 1993년부터 2009년까지 대한축구협회장을 지냈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는 FIFA 부회장을 지냈다. 특히 라이벌 일본보다 유치 경쟁을 훨씬 늦게 시작했음에도 2002 월드컵을 공동 유치하는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축구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2002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덕분에 단숨에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도 했다.
현재 정몽준울산 현대 대주주이고, 정의선전북 현대 모터스 구단주, 대한축구협회장이자 FIFA 평의회 위원인 정몽규부산 아이파크 구단주다.
아울러 범 현대가 계열 주요 그룹 중 하나인 현대중공업에는 현대스리가라고 불리던 부서별 축구대회가 오랫동안 진행됐는데 현대스리가 문서에도 나와있듯 그냥 평범한 동네 축구나 사내 축구대회 수준이 아니다. 특히 이 대회에는 정주영 당시 회장이 1회 대회 때 직접 선수로 뛰고 선수들과 막걸리를 먹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축구 외에 다른 종목도 남다른 애착을 보이고 있는데 다른 기업이 딱히 관심을 두지 않던 민속 종목 씨름에도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 등을 통해 상당히 오랜 기간 후원을 했다. 이는 생전에 엄청난 씨름 팬이었던 정주영의 영향이 크다.[5]양궁이 대한민국 올림픽의 전통적 효자 종목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현대가의 지원이 있었기에[6] 가능했다.

5. 현대가간의 관계


왕자의 난으로 유명한 현대가고, 이로인해 현대그룹이 여러 기업들로 분할되었지만, 그럼에도 현대가는 서로간의 유대감이 깊은 편이다. 정주영 창업주의 제사일에는 정주영 회장의 직계 자손뿐 아니라 정주영의 동생들과 조카들도 참석한다. 또한 어느 한 기업이 위기가 왔을때는 범 현대가 기업들이 의기투합해 서로 도움을 주고 받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한라그룹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을때, 범 현대가 기업들이 도와줘서 한라그룹을 재건할수 있었다. 하지만 예외도 있는데 바로 현정은이 경영하는 현대그룹. 여기는 다른 현대가 기업들과 전부 사이가 좋지 않다.
범 현대그룹은 서로간의 거래가 많다.[7] 범 현대그룹 계열사에 입사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현대와 함께 한다는 농담이 나올정도다. 아침에 출근할 때 모는 자가용은 범 현대가 할인을 해주는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제네시스에서 만든 차량일 것이고, 서울에서 근무한다고 통근버스를 탄다면 현대엔지니어링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탈 것이다.[8] 근무하는 책상이나 기타 사무실 가구는 현대리바트 것이고, 구내식당은 현대그린푸드에서 운영하며, 각종 선물은 현대 H&S에서 주문한 물품이 온다. 제조공장이나 건설현장에서 근무한다면 마찬가지로 현대H&S가 납품한 근무복을 입고 안전화를 신을 것이다. 출장을 간다면 업무용 차량은 현대캐피탈에서 렌트한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일 것이고, 보험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현대해상에서 든 보험이다. 종합건강검진은 서울아산병원아산병원에서 많이 한다. 만약 HDC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성공했으면 해외출장도 현대와 함께였을지도 모를일이다..

6. 가계도


  • 정봉식[9] (1884 ~ 1946) / 妻 한성실

6.1. 1남 정주영 (현대그룹)


  • 1남 정주영 (1915 ~ 2001) 현대그룹 창업주, 명예회장 / 妻 변중석 (1921 ~ 2007)[10] /? {{{-2 (1917 ~ ?)[11] / ?[12] / 김경희 (1953 ~ )[13]

6.1.1. 1남 정몽필


  • 1남 정몽필 (1934 ~ 1982) 인천제철 사장[17] / 妻 이양자 (1943 ~ 1990)[18]
    • 1녀 정은희 (1971 ~ ) / 夫 주현 (1967 ~ ) 前 현대IHL 대표[14]
    • 2녀 정유희 (1973 ~ )[15] / [16]
      • 1남 김진석 (2000 ~ )
      • 2남 김진하 (2003 ~ )

6.1.2. 2남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 2남 정몽구 (1938 ~ )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 妻 이정화 (1939 ~ 2009)[26]
    • 1녀 정성이 (1962 ~ ) 이노션 고문 / 夫 선두훈 (1957 ~ ) 영훈의료재단선병원 이사장
      • 1녀 선아영 (1987 ~ ) / 夫 길성진 (1985 ~ )[19]
      • 1남 선동욱 (1988 ~ ) / 妻 채수연 (1990 ~ )[20]
    • 2녀 정명이 (1964 ~ ) 현대캐피탈·카드·커머셜 브랜드부문장 / 夫 정태영 (1960 ~ ) 현대캐피탈·카드·커머셜 대표이사[21]
      • 1녀 정유미 (1989 ~ )
      • 2녀 정유진 (1991 ~ ) 현대카드 디지털사업실 사원
      • 1남 정석준 (1997 ~ )
    • 3녀 정윤이 (1968 ~ )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 / [22]
      • 1남 신우진 (1993 ~ )
      • 2남 신우택 (1996 ~ )
      • 3남 신우현 (2004 ~ )
    • 1남 정의선 (1970 ~ )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겸 대한양궁협회 회장, KIA 타이거즈 구단주, 전북 현대 모터스 구단주 / 妻 정지선 (1973 ~ )[23][24][25]
      • 1남 2녀
      • 1남 정창철 (1999 ~ )
범 현대가 중 가장 규모가 큰 현대자동차그룹을 맡아서 경영하고 있다. 원래 왕자의 난 이전 정몽구가 현대그룹 회장직에 올랐다가 정몽헌에게 현대그룹의 회장직을 빼앗긴 후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분리해 나왔다. 이후 현대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정몽헌이 자살한 후 정몽헌의 부인 현정은과 그 일파가 현대그룹을 경영하다가 2010년대 해운업 불황으로 그룹이 몰락한 반면, 현대자동차그룹은 2000~2010년대 전화기 호황으로 그룹이 급성장하고 은행관리로 넘어간 현대건설을 인수하여, 현대그룹의 적통을 승계했다고 인정받고 있다. 범 현대그룹의 중심기업이며, 흔히 현대라고 말하면 여기를 말하는거다.

6.1.3.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 3남 정몽근 (1942 ~ )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30] / 妻 우경숙 (1951 ~ )
    • 1남 정지선 (1972 ~ ) 현대백화점그룹 대표이사 회장[27] / 妻 황서림 (1972 ~ )[28]
      • 1남 정창덕 (2004 ~ )
      • 1녀
    • 2남 정교선 (1974 ~ ) 현대백화점그룹 대표이사 부회장 / 妻 허승원 (1975 ~ )[29]
      • 3남
현대백화점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3세에 가장 빠른 2006년에 승계가 이뤄지기도 했다. 정몽근의 당시 나이는 64세로 상당히 이른 편이었다. 당초 큰 아들과 작은 아들에게 각각 유통과 비유통 부문을 나눠 승계한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공동경영하기로 했다고.

6.1.4. 1녀 정경희


  • 1녀 정경희 (1944 ~ ) / 夫 정희영 (1940 ~ ) 선진종합 회장[33][34]
    • 1남 정재윤 (1969 ~ )[31] 선진종합 부회장 / 妻 김지향 (1971 ~ )
    • 1녀 정윤미 (1971 ~ ) / 夫 박승준 (1967 ~ ) 이건창호 사장
    • 2녀 정윤선 (1975 ~ ) / 夫 남석우 (1972 ~ ) 남영비비안 회장[32]

6.1.5. 4남 정몽우


  • 4남 정몽우 (1945 ~ 1990) 현대알루미늄 회장[38] / 妻 이행자 (1945 ~ ) 前 고려산업개발 고문[39]
    • 1남 정일선 (1970 ~ ) 현대BNG스틸 대표이사 사장 / 妻 구은희 (1976 ~ )[35]
      • 1남 정창현 (1998 ~ )
      • 1녀 정진주 (1999 ~ )
      • 2남 정창민 (2001 ~ )
    • 2남 정문선 (1974 ~ ) 현대BNG스틸 부사장 / 妻 김선희 (1974 ~ ) 본태박물관장[36]
      • 1녀 정진원 (2004 ~ )
    • 3남 정대선 (1977 ~ ) HN그룹[37] 사장 / 妻 노현정 (1979 ~ )KBS 아나운서
      • 1남 정창건 (2007 ~ )
      • 2남 정창성 (2009 ~ )
정몽우가 일찍 작고한 이후 그 슬하의 자식들은 큰아버지 정몽구 회장이 후견하여 현대자동차그룹 산하의 현대BNG스틸을 경영하고 있다.

6.1.6. 5남 정몽헌 (현대그룹)


  • 5남 정몽헌 (1948 ~ 2003) 현대그룹 회장[41] / 妻 현정은 (1955 ~ ) 현대그룹 회장[42]
    • 1녀 정지이 (1977 ~ ) 현대무벡스 전무 / 夫 신두식 (1974 ~ ) 링크자산운용 부사장[40]
      • 1녀 신혜윤 (2013 ~ )
    • 2녀 정영이 (1984 ~ ) / 夫
    • 1남 정영선 (1985 ~ ) 현대투자파트너스 이사 / 妻
현대그룹을 승계받았다. 하지만 현대전자현대건설이 분리되었고 대북 사업을 영위하던 현대아산금강산 관광 등 대북 사업 중단의 여파로 경영이 악화된데다 현대상선도 매각되면서 현대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하는 중견기업으로 규모가 줄어들었다.

6.1.7. 6남 정몽준 (현대중공업그룹)


  • 6남 정몽준 (1951 ~ ) 현대중공업그룹 대주주[44] 겸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 / 妻 김영명 (1956 ~ )[45]
    • 1남 정기선 (1982 ~ ) 현대중공업 부사장 겸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 부사장 / 妻 정현선 (1994 ~ )
    • 1녀 정남이 (1983 ~ )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 / 夫 서승범 (1975 ~ )[43]
    • 2녀 정선이 (1986 ~ ) / 夫 백종현 (1983 ~)
    • 2남 정예선 (1996 ~ )
현대중공업그룹을 물려받았다. 정주영의 정치적 야망을 물려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정몽준은 1988년 정계에 진출하기 전까지 현대중공업 회장을 맡았다가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현재까지 별다른 그룹 내 직함 없이 전문 경영인 체제를 도입해 물러났다. 하지만 최측근을 통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최근에는 장남 정기선이 아버지를 이어 그룹 전체 승계를 위한 전방위적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6.1.8. 7남 정몽윤 (현대해상)


  • 7남 정몽윤 (1955 ~ ) 현대해상 회장 / 妻 김혜영 (1960 ~ )[47]
    • 1녀 정정이 (1984 ~ ) / 夫 김현강 (1979 ~ )[46]
    • 1남 정경선 (1986 ~ ) 루트임팩트 대표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을 물려받았다.

6.1.9. 8남 정몽일


  • 8남 정몽일 (1959 ~ ) 현대엠파트너스 회장 / 妻 권준희 (1962 ~ )[50]
    • 1남 정현선 (1989 ~ ) 현대엠파트너스 상무[48]
    • 1녀 정문이 (1991 ~ )[49]
현대울산종합금융을 물려받았으나, IMF 과정에서 잃었다. 이후 현대중공업그룹 내 금융 계열사를 운영하다가, 조선업 위기로 인해 또 물러났다. 이후, 범 현대가의 지원을 통해 현대미래로를 설립했고, 독립했다.

6.1.10. 2녀 정정인


  • 2녀 정정인 (1979 ~ )[51]

6.1.11. 3녀 정정임


  • 3녀 정정임 (1981 ~ )[52]

6.2. 2남 정인영 (한라그룹)


  • 2남 정인영 (1920 ~ 2006) 한라그룹[54] 명예회장 / 妻 김월계 (1923 ~ 2003)
    • 1녀 정형숙 (1951 ~ 1974)
    • 1남 정몽국 (1953 ~ ) 엠티인더스트리 회장 / 妻 이광희 (1954 ~ ) 前 한라대 총장
      • 1녀 정지혜 (1973 ~ )
      • 1남 정태선 (1976 ~ ) 前KCC 상무이사 / 妻 김성민 (1983 ~ )
      • 2녀 정사라 (1977 ~ )
    • 2남 정몽원 (1955 ~ ) 한라그룹 대표이사 회장 / 妻 홍인화 (1955 ~ )TBC 아나운서
      • 1녀 정지연 (1980 ~ ) 만도 미국주재원 / 夫 이윤행[53]


6.3. 3남 정순영


  • 3남 정순영 (1922 ~ 2005) 현대시멘트·성우그룹[65] 명예회장 / 妻 박병임 (1928 ~ 2015)
    • 1녀 정문숙 (1947 ~ ?) 현대시멘트 고문 / 夫 김자응 (1936 ~ 1990)[55]
      • 1남 김태호 (1970 ~ )
    • 1남 정몽선 (1954 ~ ) 前 현대시멘트 회장 / 妻 김미희 (1957 ~ 1993)[58] / 妻 진영심 (1969 ~ )
      • 1녀 정재은 (1980 ~ )
      • 2녀 정지은 (1983 ~ 1993)[56]
      • 1남 정형선 (1986 ~ )
      • 3녀 정예린[57]
    • 2남 정몽석 (1958 ~ ) 현대종합금속 회장 / 妻 안정해 (1961 ~ )
      • 1녀 정정은 (1990 ~ )
      • 2녀 정주은 (1995 ~ )
    • 3남 정몽훈 (1959 ~ ) 성우전자 대표이사 회장 / 妻 박지영 (1961 ~ )
      • 1남 정광선 (1985 ~ ) 성우효광그룹 이사[59]
      • 1녀 정임은 (1986 ~ )
      • 2녀 정유은 (1989 ~ )
      • 2남 정윤선 (1997 ~ )
    • 4남 정몽용 (1961 ~ ) 현대성우홀딩스[61] 회장 [62] / 妻 김수혜 (1963 ~ )[63]
      • 1남 정인선 (1990 ~ )[60]
      • 2남 정호선 (1994 ~ )
    • 2녀 정정숙 (1962 ~ ) / 夫 이주환 (1961 ~ ) 한일현대시멘트[64] 대표이사 사장
      • 1녀 이재인 (1988 ~ )

6.4. 1녀 정희영


  • 1녀 정희영 (1925 ~ 2015) / 夫 김영주 (1920 ~ 2010) 서한그룹 명예회장
    • 1남 김윤수 (1946 ~ ) 서한그룹 회장
      • 1남 김용석 (1972 ~ ) 서한산업 대표
      • 2남 김용범 (1975 ~ )
      • 3남 김용준 (1977 ~ ) 서한ENP 부사장
    • 2남 김근수 (1948 ~ ) 후성그룹 회장 / 妻 허경
      • 1남 김용민 (1976 ~ ) 후성그룹 부회장
      • 1녀 김나연 (1979 ~ ) 후성HDS 전무
      • 2녀 김주연 (1984 ~ )

6.5. 4남 정세영 (HDC그룹)


  • 4남 정세영 (1928 ~ 2005)현대자동차 명예회장,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69]/ 妻 박영자 (1936 ~ )
    • 1녀 정숙영 (1959 ~ ) / 夫 노경수 (1954 ~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66]
      • 1녀 노희진 (1983 ~ )
      • 1남 노인영 (1984 ~ )
    • 1남 정몽규 (1962 ~ ) HDC그룹 회장 겸 대한축구협회 회장 겸 부산 아이파크 구단주 / 妻 줄리앤 김 (1966 ~ ) 호텔HDC 감사[67]
      • 1남 정준선 (1992 ~ )
      • 2남 정원선 (1994 ~ )
      • 3남 정운선 (1998 ~ )
    • 2녀 정유경 (1970 ~ ) / 夫 김종엽 (1969 ~ ) 인트란스해운 대표[68]
      • 1녀 김지수 (2002 ~ )
      • 2녀 김연수 (2004 ~ )

6.6. 5남 정신영


  • 5남 정신영 (1931 ~ 1962) 동아일보 기자[70] / 妻 장정자 (1935 ~ ) 서울현대학원 이사장
    • 1녀 정일경 (1960 ~ ) / 夫 임광수 (1959 ~ )
    • 1남 정몽혁 (1961 ~ ) 현대종합상사 대표이사 회장 / 妻 이문희 현대SNS 대표
      • 1녀 정현이 (1988 ~ )
      • 1남 정두선 (1989 ~ )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 부장
      • 2남 정우선 (1997 ~ )
원래는 현대정유그룹을 정몽혁이 물려받았으나 외환위기 당시 아랍에미리트 IPIC사로부터 5억달러의 대규모 외자유치를 받고 IPIC측에서 경영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고 하여 경영에서 축출되었다. 이후 현대오일뱅크는 현대중공업그룹에서 인수하였다. 정몽혁은 오일뱅크에서 축출된 이후 현대중공업그룹에서 인수한 현대종합상사의 회장직에 있다가 이를 인수하여 독립하였다.

6.7. 6남 정상영 (KCC그룹)


  • 6남 정상영 (1936 ~ 2021) KCC그룹 명예회장[73] / 妻 조은주 (1936 ~ )[74]
    • 1남 정몽진 (1960 ~ ) KCC그룹 회장 / 妻 홍은진 (1964 ~ )
      • 1녀 정재림 (1990 ~ ) KCC 이사
      • 1남 정명선 (1994 ~ )
    • 2남 정몽익 (1962 ~ ) KCC글라스 회장 / 妻 최은정 (1963 ~ )[72]
      • 1녀 정선우 (1991 ~ )
      • 2녀 정수윤 (1995 ~ )
      • 1남 정제선 (1998 ~ )
      • 2남 정한선 (2007 ~ ) [71]
      • 3남 정연선 (2011 ~ )
    • 3남 정몽열 (1964 ~ ) KCC건설 회장 / 妻 이수잔 (1970 ~ )
      • 1남 정도선 (1995 ~ )
      • 1녀 정다인 (1996 ~ )


7. 범 현대가 기업 회장단









[1] 범 삼성가경주 이씨, 범 LG가능성 구씨, 범 SK가수성 최씨, 범 한화가순천 김씨, 범 두산가밀양 박씨 양산군파, 범 효성가함안 조씨, 범 한진가양주 조씨 문중의 항렬자를 사용한다.[2]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할 때도 정부가 정주영에게 프로야구단 창단을 권유했지만 "서울 올림픽 유치와 개최 준비에 올인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면서 야구단 창단을 고사한 바 있다. 그러나 프로야구가 첫 해부터 흥행 대박을 터뜨리자 야구단 창단에 나서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됐고 결국 1983년 말 프로축구단을 만들고 십수년 뒤인 1996년 프로야구단을 창단하는 것으로 과거의 아쉬움을 털게 된다.[3] 이 중 현대중공업그룹 소유의 울산 현대, HDC그룹 소유의 부산 아이파크, KCC그룹 소유의 전주 KCC 이지스를 빼면 모두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구단이다.[4] 물론 범 현대가의 지원이 끊어지면서 해체된 구단도 있다. 2003년 이후 구단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2007년 시즌 후 해체된 현대 유니콘스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5] 현대그룹 신입사원 연수 때마다 빠지지 않던 체육활동 중 하나가 씨름이었고 정주영 본인이 샅바를 직접 매고 경기에 나설 정도로 씨름 광팬이었다. 특히 1983년에 열린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VIP석에서 다 본 인물 중 한 명이다.[6] 현대그룹 계열분리전부터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았으며 정몽준에 이어 정몽구가 이어받으면서 계열분리 이후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전담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현대제철(남자)과 현대모비스(여자)를 통해 실업 양궁단을 운영하고 있다.[7] 물론 계열 분리는 되었으므로 내부거래는 아니나, 일부에서는 내부거래에 준한 것으로 본다.[8] 추가로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의 경우 본사 사옥이나 제조공장의 자산포괄위탁(경비, 영선 등 각종 자산 관련 제반 관리)는 현대엔지니어링이 관리하고 있으며, 출입게이트를 통과하려면 현대카드에서 만들어 준 M, M2 사원증을 찍고 들어가야 한다.[9] 평범한 농사꾼이었으며 정주영의 할아버지는 서당 훈장이었다.[10] 차남 정몽구, 3남 정몽근, 장녀 정경희, 4남 정몽우, 5남 정몽헌만 낳았다. 장남 정몽필은 변중석이 시집 오기 전에 먼저 태어나 있었다.[11] 정몽필의 생모[12] 변중석 소생이 아닌 다른 아들들의 생모. 아들들의 생모가 모두 다른 인물이라는 얘기가 유력하다. 정체에 대해선 아직도 다양한 설이 많으며, 여러 예술인들이나 일반인들의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13] 차녀와 3녀의 생모. 딸의 미국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생계가 힘들다고.[14] 사내 결혼이었다고 전해진다.[15] 대일외고, 이화여대 수석입학.[16] 초등학교 동창으로, 김석원쌍용그룹 회장 장남. 최근 방송인 김성경과의 열애설이 도는 걸로 보아 이혼 또는 별거로 추정된다.[17] 1982년 4월 29일, 경북 김천시 아포읍 근처를 지나던 중 경부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향년 48세.[18] 유방암으로 1990년 9월 25일 사망. 향년 47세.[19] 배우 길용우의 아들[20]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손녀, 장영신의 장남인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채형석의 차녀.[21] 종로학원 설립자 정경진의 장남.[22] 평사원 출신으로 신데렐라라고 불렸다. 현대하이스코 사장까지 초고속 승진을 하고, 실적도 좋아서 현대하이스코를 물려주기로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이혼하게 되면서 백지화 되었다. 하이스코 역시 현대제철에 합병되었다. 현재는 부친이 차린 1차 협력사 삼우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23]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장녀. 정의선 부회장의 처제 정지윤은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장남 박성빈과 결혼했다.[24] 정의선의 사촌동생인 현대백화점 정지선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고, 성별도 다르다.[25] 같은 정씨인데다 이름까지 현대백화점 정지선과 같아서 처음에는 집안어른들이 반대했지만 집안 최고어른이자 할아버지인 정주영 회장이 본이 다르기 때문에 괜찮다고 허락했다고 한다.[26] 2009년 10월 5일 미국에서 담낭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70세.[27] 30대 그룹 총수중 최연소였으나 1978년생인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취임으로 밀려났다[28] 법무부장관 황산덕의 손녀.[29] 현대차에 스프링을 개발·공급하는 자동차 부품 전문 기업인 대원강업 허재철 회장의 장녀.[30] 드라마 영웅시대에 유일하게 등장하지 않는 인물.[31] 학생 때 스키 선수를 한 적이 있다.[32] 스타힐리조트 정면 슬로프 중앙에 비비안 광고 간판이 십수 년째 서 있다.[33] 범현대가의 유일한 사위기업이다. 입사동기가 무려 전직 대통령이다.[34] 주 분야는 수상 운송업이며,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스키장 스타힐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다.[35] 구자엽의 딸이자 구본무의 6촌 동생이다. 자세한 내용은 범 LG가 참조.[36] 김영무 김앤장 대표변호사 딸. 시어머니 이행자씨는 설립자겸 고문.[37] 구 현대BS&C[38] 1990년 4월 24일 음독 자살하였다,향년 45세.[39] 숙명여자대학교 메이퀸 출신.[40] 신현우 국제종합기계 대표이사와 신혜경 서강대 교수의 아들.[41] 8월 4일 투신자살, 향년 54세. 사후에는 아내가 회장이 되었다.[42] 현대상선 대표 현영원와 용문학원 이사장 김문희 부부 사이에서 낳은 딸. 김문희가 김무성의 이복누나이니, 김무성의 외조카가 되는 셈이다.[43] 철강업체 유봉 대표이사.[44] 현대중공업 회장직에서 1988년에 물러났고 고문으로 재직했지만 1990년대에 그 마저 물러나서 대주주로서의 자리만 갖는다. 물론, 실제로 현대중공업에 정몽준이 끼치는 영향력은 상당한 수준.[45] 김동조 前 외무부장관 딸.[46] 김인규KBS 사장, 現 경기대 총장의 아들.[47] 부국물산 회장 김진형의 장녀.[48] 2019년 기사 '변종마약 투약' 현대가 3세 체포.."조사받으려고 귀국" 참고.[49] 2012년 기사 대마초 피운 현대가 3세는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 딸? 참고.[50] 현대파이낸스 회장 권영찬 딸.[51] 할리우드에서 그레이스 정이라는 이름으로 단역 배우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52] 당시 정주영의 나이 65세였다. 엘리자베스 정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살며 토요타 미국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53] 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의 아들.[54] 한때는 재계 10위까지 올랐으나 부채비율 1000%의 부실한 재정구조로 인해서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마자 한라건설 하나만 남고 망했다. 하지만 정인영이 당시 반신불수의 불편한 몸으로도 그룹재건에 나서자 재계의 부도옹(넘어지지 않는 오뚝이와 같은 노인)이라는 별명을 얻은걸로 유명하다. 결국 아들 정몽원이 과거 핵심 계열사이던 만도의 인수에 성공하며 그룹 재건을 이뤘다.[55] 1990년 9월 30일 경기도 광주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향년 54세.[56] 위 각주 참조. 일본으로 건너가 치료를 받다가 1993년 11월 8일 사망.[57] 진영심씨 소생.[58] 1993년 10월 9일 태릉 아이스링크 선수 대기실에서 일어난 불의의 화재 사고로 딸과 함께 중화상을 입고 투병하다가 사망. 사고 당시 김씨는 불과 37세, 정 양은 11살 어린 나이에 불과해 더욱 안타까움을 남긴다.[59] 2013년 기사 현대家 또 대마초, 마약 천국?… 현대 성우효광그룹 장남 구속 참고.[60] 2009년 기사 천방지축 재벌 3세 ‘現代 이미지’ 먹칠...대마초흡입 혐의로 집행유예 선고 참고.[61] 성우오토모티브에서 현대성우홀딩스로 회사명 변경.[62] 2017년 현대시멘트 인수전에 참여하였으나 한일시멘트가 결국 인수하였다 http://m.businesspost.co.kr/BP?command=mobile_view&num=39560#cb 참고.[63] 김성수의 막내 아들인 김상겸 고려대 명예교수의 딸. 김상겸 교수는 고려대 체육위원회 위원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장을 맡았다.[64] 한일시멘트에게 인수된 이후 현대시멘트에서 한일현대시멘트로 사명변경 https://www.mk.co.kr/news/business/view/2018/07/452929/ 참고.[65] 성우그룹은 정순영이 1970년 현대건설 부사장에서 현대시멘트 사장을 맡으면서 출발했다. 1975년에는 현대종합금속을 설립, 1987년에는 자동차 부품업체인 성우오토모티브를 설립, 이어 1990년 성우종합레저산업, 1992년 성우종합건설, 1996년 성우전자를 잇달아 설립했다. 1995년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 200만평 규모의 현대성우리조트를 건설하면서 그룹의 입지를 다졌다.[66] 노신영 前 국무총리의 아들.[67] 김성두 전 대한화재보험 사장의 딸. 미국 국적자로, 한국명은 김나영.[68] 섬유생산업체 전남방직 회장이던 김석성의 아들. 김석성은 김무성의 사촌형으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외당숙이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있어 김종엽은 육촌동생이다.[69] 사실 현대산업개발은 조카인 정몽구가 키운 회사였고, 이 사람이 가진 진짜 회사는 현대자동차였다. 그래서 별명도 '포니 정'이었다. 하지만 장자 역할을 한 정몽구를 챙기고 싶었던, 정주영의 지시로 정몽구와 정세영의 지분을 맞바꿨고, 1999년에 현대산업개발을 받아서 분가하게 된다.[70] 1962년 4월 14일 교통사고로 사망.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가 독일 함부르크 대학교로 유학을 갔고 거기서 교통사고로 인해 발생한 장폐색증으로 사망. 언론인 단체인 '관훈클럽'에서 언론인들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신영연구기금'이라는 기금이 있는데 여기의 '신영'이 바로 정신영 기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당시 정주영 회장이 열흘이나 출근도 못하고 울었다고 한다. 이후 자서전에 "좋아 한다는것도, 기대가 크다는 것도, 자랑스러워한다는 것도, 동생에게 단 한번도 말하고 표현하지 못한게 평생 후회된다"고 했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던 자신과 달리 당시나 지금이나 엘리트로 인식되는 기자가 되었던 그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으니 그럴만도 했다.[71] 이하 내연녀 곽씨 소생, #[72] 별거중으로 추정. #[73] 현대家 2세대의 장자이자 조카인 고 정몽필 전 사장보다 2살 아래이며, 차남인 정몽구 회장과는 불과 2살 차이 밖에 안 난다. 정몽헌 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 조카며느리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인 바 있다.[74]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