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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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군인 겸 정치인.
2. 생애
정확한 생년월일과 출신지가 밝혀져 있지 않아(함경북도 경성군[1] 추정) 초기 이력은 불분명한데[2] , 통신군관학교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다는 이력으로 미루어볼 때 정보 혹은 통신 병과 출신으로 보인다.
1992년에 총참모부 통신국장에 임명됨과 동시에 소장으로 처음 별을 달았고, 1995년 중장으로 진급했다. 1998년에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정계에도 진출했고, 2003년에는 상장으로 승진해 평안북도와 자강도를 관할하는 8군단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군부의 비대한 몸집 때문에 별이 넘쳐나는 북한에서는 그냥 지나가던 장군 한 사람 정도로 취급되었다. 군단장 직책도 황해남도나 강원도 같은 최전방을 담당하는 '전연군단'이 아닌 후방군단이라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2010년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동시에 김정은, 김경희, 최룡해 등과 함께 대장으로 진급하면서 존재감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사망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조명록[3] 과 2011년 12월 사망한 김정일의 장례식에서는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북한 바깥에서도 김정일 집권 후기에 상당히 빠르게 진급한 군 고위 관계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여담이지만, 김정일 사후 김정은이 집권한 뒤인 2012년 2월에 김정일훈장을 받았고, 같은 해 7월에는 그동안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던 리영호가 실각하면서 해당 직위들을 넘겨받음과 동시에 차수로 승진해 정계와 군부에서 서열이 급상승했다.
이렇게 해서 나름대로 군 경력의 정점에 올랐구나...싶었는데, 조선로동당 창당 기념일인 2012년 10월 10일에 김정은이 측근들과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참배 행사를 가졌을 때 뜬금없이 차수 계급장이 아닌 대장 계급장을 달고 경례하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계급이 강등되었음이 드러났다. 보직도 '''중대장'''으로 변경되었다 (한 달간)북한 언론들이 강등에 대한 어떠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어서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고, 같은 달 2일에 벌어진 인민군 병사의 탈북 사건에 대한 질책성 인사라든가 김정은의 군부 길들이기용 강등이라는 등의 추측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12월에는 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 군에서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최룡해도 마찬가지로 기존의 차수 계급장 대신 대장 계급장을 단 정복 차림으로 김정일 추모 대회에 참석하면서, 이유야 어찌되었든 조선인민군 내에서 차수들의 숫자가 점차 줄어드는 모습이 관측되고 있다. 그런데 최룡해는 2013년 2월에 다시 차수로 복귀했기 때문에 현영철의 재진급 여부에 관심이 모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등 후에도 계속 대장 계급을 달고 총참모장으로 재직했고, 2013년 5월 무렵 아무런 공식 발표 없이 인민무력부장으로 있던 김격식에게 총참모장 직책을 넘겨줬다. 이후 6월에 김정은이 강원도 주둔 5군단의 초소를 현지 지도했을 때 찍힌 사진에 상장 계급을 달고 나와 또 1계급 강등이 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다만 아직 공식 직책은 나오지 않았고, 계급을 보면 5군단장 혹은 5군단 부군단장으로 보직 이동이 되었을 거라고 추측만 나오고 있다.
그런데 2014년 6월 25일 조선중앙방송 보도에서 "인민무력부장인 조선인민군 육군대장 현영철 동지"로 언급되면서 그 사이에 대장 재진급과 함께 인민무력부장 취임이 확인되었다. 김정은, 왜 인민무력부장 자주 바꿀까
2014년 11월 8일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예방했다.
3. 숙청
2015년 5월 13일 불경죄로 '''사형''' 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정원 발표에 따르면 2015년 4월 30일, 장성택처럼 고사기관총으로 총살당했다고 한다.
사형 이유가 걸작인데, 바로 옆에 앉아서 대놓고 졸고 말대꾸를 한 점이 불경죄에 걸렸다고 한다. 김정은이 자는 현영철을 몇 번이나 매섭게 노려봐서 이미 북한 내부에선 현영철이 좋은 말로는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북한 내부의 소문에 따르면 현영철이 김정은 앞에서 자지 않으려고 각성제인 필로폰을 맞았는데 너무 많이 맞는 통에 졸아버려 자기 목숨을 재촉했다고...
허나 좀 졸았다고 사람을 잔인하게 죽였다는 것이 당연히 의심이 들 수밖에 없고, 실제 중국 분석가들은 "현영철은 북·중 국경 부대에서 10년 이상 근무해 중국의 발전을 직접 목격한 인물이므로 중국의 개혁과 세계 정보화 흐름을 소개하다가 김정은 및 군부 강경파와 충돌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장성택 목을 땄을 때처럼 매국행위나 반역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으로 충분한데 굳이 불경죄를 들먹일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처형되었다는 날짜 이후인 5월 12일까지 기록말살형을 당하지 않고 북한 방송 뉴스화면에 등장하는 걸로 보아 이전 현송월 처형설 오보 때처럼 실제 처형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주장도 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서는 "과거에도 숙청 후 기록물에 나온 경우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현영철이 정말 처형됐는지 아닌지는 좀 더 지켜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5월 15일 방송된 북한 뉴스에서는 현영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북한 매체 역시 어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5월 17일 중국 웨이신에 현영철의 처형 장면이라며 동영상과 그 동영상에서 캡처한 사진이 올라왔는데, 잔인한 장면이 여과 없이 나오니 열람 시 주의바람 아카이브 현영철과는 전혀 무관한 IS의 인질 살해 장면인 것으로 밝혀졌다.
5월 26일 KBS 뉴스 보도에서는 북한의 기록말살형은 보통 몇 달 정도가 걸리고 7~8개월 정도 걸린 경우도 있었으며, 오히려 며칠 만에 기록말살형이 완료된 리영호나 장성택의 사례가 이례적으로 보인다고 한다.
6월 5일, 북한 조선중앙TV가 방영한 기록영화(4월 24∼25일 김정은 주재로 열린 북한군 제5차 훈련일꾼대회 부분)에서 현영철이 나오는 영상이 통째로 편집 삭제되었다. 이제 현영철을 역적으로 매도하는 뉴스만 나오면 숙청이 확실해진다.
6월 16일 KBS 뉴스 보도 에서는 북한의 인민무력부장 자리에 현영철의 후임으로 박영식이 임명됐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6월 19일 연합뉴스 보도에서는 매년 6월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북한의 '중앙보고대회'에서 올해는 현영철이 앉던 자리(인민무력부장 자리)에 박영식이 앉은 것으로 보아 박영식이 현영철의 후임으로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된 게 사실상 확실해졌다. 거기에다가 6월 18일 MBN 뉴스 보도를 보면, 북한의 뉴스 보도에서 군 간부를 서열 순으로 호명할 때 서열 2위로써 박영식을 호명해야 할 땐 직책을 생략하고 호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황상으로 보면 총살까진 몰라도 자의든 타의든 정치적 권력을 잃고 일선에서 물러난건 확실해보이지만, 어쨌거나 북한의 뉴스 보도로 현영철의 처형이 공식 발표되지 않는 이상, 단정할 수는 없다.
7월 11일 북한은 박영식을 인민무력부장으로 공식 호명했다. 관련기사
2016년 12월 19일 서울신문 보도에 의하면,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현영철의 처형 이유에 대해 "집에서 이야기를 잘못했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이는 고위층 인사일수록 정권 감시가 심해져 자택 도청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