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1. 개요
스페인 국적의 축구 선수 출신 축구 감독.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가봉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레프트백이다.
레알 마드리드 CF 역사상 단 5명뿐인 원클럽맨[3] 으로, '''스페인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감독으로서는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스페인 대표팀 감독이자 중국 대표팀 전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2. 축구 경력
2.1. 선수 경력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는 1974년부터 1989년까지 15년간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현역 생활을 하면서 총 10회 프리메라리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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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도 다들 레전드다. 비센테 델보스케, 가르시아 레몬, 산티야나, 후아니토, 울리 슈틸리케 등....
1975년 2월 5일 스코틀랜드와의 UEFA 유로 1976 예선 경기(스페인은 스코틀랜드와 1-1로 비김)에 처음 출전하면서 스페인 축구 대표팀에 데뷔했다. 13년 동안 스페인 대표팀의 수비 역할을 담당했고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과 UEFA 유로 1984,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UEFA 유로 1988에서 스페인 대표로 출전했다. 1988년 서독과의 경기(이 경기에서 스페인은 서독에 0-2로 패함)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2.2. 지도자 경력
알고 보면 이 인물도 파란만장한 감독 시절을 산 인물이다. 우리에겐 2002 월드컵과 중국 대표팀에서의 대참사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젊은 시절에는 매우 성공적인 지도자였다.
1989년 현역 은퇴 후 레알 마드리드의 코칭스태프직을 수행하다가 1992년 라요 바예카노의 감독직을 맡아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1시즌만에 라요를 프리메라리가로 승격시켰고, 에스파뇰 감독으로 영입되었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에스파뇰의 감독을 역임하며 에스파뇰도 라리가로 승격시켰다.
1998년 유프 하인케스가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에서 사임한 후 6월 17일에 후임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코칭 스태프와의 갈등으로 인해 22일만에(7월 9일) 사퇴했다. 후임으로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가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1998년 7월 15일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 후 1998년 9월부터 2002 한일 월드컵 기간까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UEFA 유로 2000 본선에서는 8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전에서 한국에 승부차기로 패해 탈락했다.[4]
이후 2002년 11월 29일, SL 벤피카의 감독으로 취임하여 2004년까지 맡았으며 2003-04 시즌에 포르투갈판 FA컵이라고 할 수 있는 타사 드 포르투갈 대회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그의 재임 기간에 벤피카 팀의 미클로스 페헤르 선수가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소식을 들은 카마초 감독은 굉장히 슬퍼하였다. 2004년에 레알 마드리드와 2년 계약을 맺고 감독으로 복귀 했지만 4개월만에 사임하는 흑역사를 만들었다.
2011년 중국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최종예선도 진출 못하고 3차예선에서 탈락했다.[5] 2013년 평가전에서 태국 2군에 1:5 참패를 당하면서 1년 계약기간을 남기고 경질되었다. 이 때의 실패는 카마초 감독 본인과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모두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이후 2016년부터 2018년 9월까지 가봉 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다.
3. 커리어
3.1. 대회 기록
- 레알 마드리드 CF(1974-75~1988-89): 19회 우승
- 라리가(9): 1974-75, 1975-76, 1977-78~1979-80, 1985-86~1988-89
- 코파 델 레이(5): 1973-74, 1974-75, 1979-80, 1981-82, 1988-89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2): 1988, 1989
- 코파 데 라 리가: 1985
- UEFA컵(2): 1984-85, 1985-86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1975~1988)
3.2. 개인 수상
- 스페인 1980년대 최고의 선수 2위[6] : 2018
- 레알 마드리드 CF 명예의 전당: 1989
4. 기타
- 놀랍게도 홍명보 감독 사퇴 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차기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었다. ## 하지만 후임 감독으로 선임된 인물은 카마초가 아닌 카마초의 현역 선수시절 팀 동료 중 한 사람이었다.
-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스페인 대표팀은 월드컵 기간 중에 한국 토종개(...)를 길렀다. 시장에서 멍멍탕(...)이 될 운명에 처한 강아지를 보고 가엽게 여긴 스페인 기자가 구해왔다고[7] ... 이 누렁이는 카마초 감독의 이름을 따서 '카마친'이라고 불렸다. 카마친은 스페인 선수들에게 몹시 사랑받았지만, 비행기 검역에 걸려서 선수들이 스페인으로 돌아갈 때 못 데려갔다고 한다[8] .
- 체질 자체가 땀을 많이 흘리는 다한증이 있다. 그래서 항상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다.
- 2021년에 2002년 월드컵 당시 개최국인 대한민국 대표팀이 심판을 매수했었다는 지론을 폈다. 사실 이것은 2002년 당시부터 스페인 사람들이 억하심정으로 말하던 것들 중 하나였는데 2021년에는 감독이 직접 말했고 일본 누리꾼들이 맞장구를 치면서 기사화까지 되었다.
[1] 레프트백[2] 감독으로 정식 부임을 했지만, 22일 만에 사퇴했다.[3] 나머지 네 명은 첸도와 마누엘 산치스, 라몬 그로소,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이다[4] 여기서 대회 최종 순위를 잘 보면 당시 스페인의 대회 순위는 5위. 실질적 4강이나 다름 없다고 할 수 있었고, 나아가 어떻게 보면 이 때 당시가 카마초 감독 시절 최고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카마초 감독 당시 스페인 대표팀의 플레이를 보면(예: 2002년 한일월드컵 8강 한국 대 스페인 전) 티키타카와는 다른 스타일의 플레이를 보였고, 필요하면 롱볼축구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팀이었다.[5] 사실은 한국팀도 최종예선도 못 가고 3차예선에서 탈락할 뻔 했었다.[6] 골닷컴 선정[7] 그냥 시장 아줌마가 키우던 누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8] 하지만 나중에 알려지기로 몇 개월 후에 카마친을 그리워한 선수가 사람을 보내서 통역관이 맡아서 기르고 있던 카마친을 정식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분류
- 1955년 출생
- 스페인의 축구선수
- 스페인의 축구감독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알바세테 발롬피에/은퇴, 이적
- 레알 마드리드 CF/은퇴, 이적
- 스페인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참가 선수
-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참가 선수
-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가봉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라요 바예카노/역대 감독
- RCD 에스파뇰/역대 감독
- 세비야 FC/역대 감독
- SL 벤피카/역대 감독
- 레알 마드리드 CF/역대 감독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감독
- UEFA 유로 2000 참가 감독
- 2017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가봉 참가 감독
- 원클럽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