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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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MADRID CF'''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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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Real Madrid Castilla C.F.'''
'''정식 명칭'''
Real Madrid Castilla Club de Fútbol
'''애칭 '''
La Fábrica(라 파브리카, 공장)
'''창단'''
1930년 12월 16일[1]
'''개편'''
1947년
'''소속 리그'''
세군다 디비시온 B 그룹 1(Segunda División - Group 1)
'''홈구장'''
에스타디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Estadio Alfredo di Stéfano, 6,000명 수용)
'''회장'''
니콜라스 마르틴산스(Nicolas Martín-Sanz)[2]
'''감독'''
라울 곤살레스(Raúl González)
1. 개요
2. 상세
3. 역사
3.1. 아그루파시온 데포르티바 플루스 울트라(Agrupación Deportiva Plus Ultra)
3.2. 카스티야 클루브 데 풋볼(Castilla Club de Fútbol)
3.3.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클루브 데 풋볼(Real Madrid Castilla Club de Fútbol)
4. 우승/준우승 경력
5. 주요 출신 선수
5.1. 은퇴
5.2.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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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알 마드리드 CF의 산하 클럽이자 리저브 클럽으로, 현재 스페인 세군다 디비시온 B에 소속되어 있다.

2. 상세


본래 한 단계 더 아래인 레알 마드리드 CF C도 있었지만, 이쪽은 해단되었기 때문에 현재 카스티야가 레알 마드리드의 유일한 '성인' 리저브 팀이다.[3] FC 바르셀로나 B 등 많은 산하 클럽들과는 구별되게 '카스티야'라는 독특한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같은 사례로 발렌시아 CF 메스타야가 있다.
주로 활동해 온 리그는 세군다 디비시온이다. 2015년 기준으로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33시즌, 세군다 디비시온 B에서 16시즌, 그 아래인 테르세라 디비시온(Tercera División)에서 20시즌 소속되었다.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승격권에 든 적이 많고 우승까지 차지한 적도 있지만, 규정상 마드리드가 소속된 프리메라 디비시온으로 승격될 수는 없었다. 만일 카스티야가 세군다 디비시온에 소속되어 있을 때 마드리드가 강등을 당한다면 카스티야는 순위에 관계없이, 심지어 우승을 했더라도 세군다 디비시온 B로 강등되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하여, '''리저브 클럽으로서 코파 델 레이 준우승과 UEFA 주관 3대 대회 중 하나였던 컵 위너스 컵 진출'''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이는 이후 변경된 규정상 앞으로는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기록이며, 당시 카스티야가 컵 위너스 컵에 출전할 때 레알 마드리드는 유러피언 컵에 출전하여 '''레알 마드리드의 1군과 2군이 모두 유럽 무대에서 뛰고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참고로 코파 델 레이 준우승 당시(1980년) 결승전 상대는 다름 아닌 '''레알 마드리드'''였다. 경기는 레알 마드리드의 6-1 대승으로 마무리.[4]
홈구장은 에스타디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2006년 5월 9일에 건립되었으며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이름을 기리는 의미에서 이름 지어졌다.

3. 역사



3.1. 아그루파시온 데포르티바 플루스 울트라(Agrupación Deportiva Plus Ultra)


카스티야가 처음부터 마드리드의 산하 클럽으로 계획되어 탄생한 클럽은 아니다. 1930년 12월 16일에 창단된 'A.D. 플루스 울트라'라는 마드리드 지역의 아마추어 클럽이 카스티야의 전신으로, 테르세라 디비시온에 주로 참가하다 1947년에 레알 마드리드에 선수를 공급하는 클럽이 되기로 공식 합의했다.[5] 이후 많은 선수와 감독들을 배출하였는데 루이스 아라고네스가 이 팀에서 잠시 선수로서 활약한 바 있고, 라 리가 통산 최다 승과 최다 우승에 빛나는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감독, 미겔 무뇨스가 이 시기에 팀을 지도했다.[6] 이후 1972년에 클럽명을 카스티야 클루브 데 풋볼(Castilla Club de Fútbol)로 변경하게 된다.

3.2. 카스티야 클루브 데 풋볼(Castilla Club de Fútbol)


오늘날 축구 팬들에게 친숙한 '카스티야'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1972년부터이다. 그리고 이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리저브 팀은 핵심 선수가 1군 팀으로 올라갈 때가 많기 때문에 전력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는데, 카스티야는 1978-1979 시즌부터 1989-1990 시즌까지 무려 12시즌 연속으로 세군다 디비시온에 잔류했다. 그 가운데 1983/1984 시즌에는 우승을 차지하였고, 1986-1987 시즌에 3위를 찍는 등 순위도 좋았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1979-1980 시즌 코파 델 레이 준우승으로 UEFA 컵 위너스 컵에 출전하면서 '''리저브 클럽으로서 국제 메이저 대회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7] 비록 1라운드에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에 밀려 탈락했지만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홈 경기에서는 3-1 완승을 거두어 세간을 놀라게 했다. 이후에도 1984년, 1986년, 1988년까지 세 차례나 코파 델 레이 8강에 진출하였다. 이후 규정 변경에 따라 모든 리저브 클럽들은 코파 델 레이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카스티야의 준우승과 UEFA 대회 진출은 앞으로 다시 나올 수 없는 기록이 되었다.
1991년, "리저브 클럽이 독립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라는 스페인 축구 협회의 통보에 따라 클럽의 이름은 레알 마드리드 데포르티바(Real Madrid Deportiva)를 거쳐 레알 마드리드 B(Real Madrid B)로 잠시 바뀌게 된다.
이 시기에 라파엘 베니테스(1993~1995), 비센테 델보스케(1987~1992) 등이 부임해 감독 경력을 쌓았다. 델보스케는 이후 갈락티코스를 지휘하여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견인하게 된다.

3.3.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클루브 데 풋볼(Real Madrid Castilla Club de Fútbol)


이후 2004-05 시즌 세군다 디비시온 승격을 기념하는 한편 이전의 '카스티야'라는 이름을 되찾는 의미에서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로 다시 클럽명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6년에는 6,000석 규모인 에스타디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를 건립하여 전용 구장으로 삼았다. 한동안 세군다 디비시온에 머물러 있었으나 2013-14 시즌에 헤세 로드리게스알바로 모라타가 1군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곧바로 전력이 강등권 수준으로 추락했고, 결국 최종 라운드 결과 13승 10무 19패, 승점 49점으로 20위를 기록하여 세군다 디비시온 B로 강등당했다.
2014-15 시즌과 2015-16 시즌 전반기까지는 지네딘 지단이 팀을 이끌다 1군 팀 감독으로 발탁된 바 있다.[8] 15-16 시즌의 경우 지단의 전술적 발전에 힘입어 2위를 지키고 있었고 감독 교체 이후에도 승격 플레이오프까지 갔지만 UCAM 무르시아에게 합계 3-4로 패하여 세군다 디비시온 승격에는 실패했다. 16-17 시즌에는 전 시즌보다 성적이 많이 떨어지면서 다시 세군다 디비시온 B에 머물렀다. 자체 성적이 떨어지기도 했고, 구티가 이끄는 후베닐 A 팀이 국내 대회 전관왕과 UEFA 유스 리그 4강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낸 탓에 산티아고 솔라리 감독에 대한 의문이 많이 제기되었다. 2017-18, 2018-19 시즌도 세군다 디비시온 B에서 치렀다.
2019-20 시즌에는 구단의 전설적인 선수 출신인 라울 곤살레스가 감독으로 부임했다.

4. 우승/준우승 경력


1983/1984
1990/1991, 2001/2002, 2004/2005, 2011/2012, 2015/16
  • 테르세라 디비시온(Tercera División, 4부 리가)
    • 우승: 6
1948/1949, 1954/1955, 1956/1957, 1963/1964, 1965/1966, 1967/1968
1979/1980

5. 주요 출신 선수



5.1. 은퇴



5.2. 현역


※2020-21 시즌 레알 마드리드 소속 선수(임대 포함)는 굵게 표시함.
[1] '아그루파시온 데포르티바 플루스 울트라(Agrupación Deportiva Plus Ultra)'로 창단.[2] 현 레알 마드리드 이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기업가이다.[3] 후베닐(19세 이하)이 있으므로 유일한 리저브 팀은 아니다.[4] 레알 마드리드의 6득점은 코파 델 레이 결승전 역사상 최다 득점 기록에 해당한다.[5] 그래서 1947년을 카스티야의 공식 창단 연도로 치기도 한다.[6] 미겔 무뇨스는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모두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며, 현재 스페인 1부 리가와 2부 리가에서 각각 최고의 감독을 선정하는 상의 이름이 '트로페오 미겔 무뇨스(Trofeo Miguel Muñoz)'이다.[7] 이는 코파 델 레이 우승팀 레알 마드리드가 라 리가까지 우승해 버렸기 때문인데, 어떤 팀이 리그&컵 더블을 기록했다면 컵 위너스 컵의 자체 규정상 그 팀은 챔피언스 리그에만 출전하고, 컵 준우승팀이 대신 진출권을 얻었다.[8] 상술되어 있듯 비슷한 사례로 라파엘 베니테스와 비센테 델보스케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베니테스가 부진으로 경질되면서 지단이 1군에 부임하게 됐고, 델보스케마저도 능가하는 성적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