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센테 델보스케

 


'''비센테 델보스케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스페인'''}}}
{{{-2 45대



'''클럽'''



'''비센테 델보스케의 수상 이력'''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2010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주제 무리뉴
2위
'''비센테 델보스케'''
3위
펩 과르디올라

'''비센테 델보스케의 기타 정보'''


''' 스페인의 축구감독 '''
''' 이름 '''
'''비센테 델보스케''' '''ROMD'''
'''Vicente del Bosque ROMD[1]'''
''' 본명 '''
비센테 델보스케 곤살레스
Vicente del Bosque González[2]
''' 출생 '''
1950년 12월 23일 (73세) /
스페인국 카스티야이레온지방 살라망카주 살라망카시
''' 국적 '''
스페인
''' 신체 '''
184cm
''' 직업 '''
축구선수(수비형 미드필더-수비수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CD 살만티노[3] (1966~1967 / 유스)
R. 마드리드 유스 (1967~1968 / 유스)
플루스 울트라(1967~1968)
'''레알 마드리드 (1968~1984)'''
CD 카스테욘 (1970~1971 / 임대)
코르도바 CF (1971~1972 / 임대)
CD 카스테욘 (1972~1973 / 임대)
''' 감독 '''
R. 마드리드 카스티야 (1987~1990)
레알 마드리드 (1994)
레알 마드리드 (1996)
'''레알 마드리드 (1999~2003)'''
베식타슈 JK (2004~2005)
'''스페인 대표팀 (2008~2016)'''
''' 국가대표 '''
18경기 1골(스페인 / 1975~1980)
<color=#373a3c> ''' FIFA 월드컵 우승 감독 '''
리피(2006)(2010)뢰프(2014)
''' UEFA 유로 우승 감독 '''
아라고네스(2008)(2012)산투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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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드리드스페인소프트 파워(madrid and spain’s soft power)"'''

UEFA에서 축구계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명감독 10인을 꼽으며 남긴 평.

스페인축구선수 출신 감독.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선수 시절 대부분을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다. 재적 중에는 이른바 라 킨타 델 부이트레(독수리 오형제, La Quinta del Buitre) 이전 시대에 해당하며, 수비형 미드필더, 수비수로 뛰면서 팀을 지원하였고, 프리메라 리가 우승 5회, 코파 델 레이 우승 4회를 달성하였다. 스페인 국가대표로 UEFA 유로 1980에 출전했다.
'''감독으로서는 UEFA 챔피언스 리그, FIFA 월드컵, UEFA 유로를 모두 우승한 최초의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현역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을 지도하였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지휘한 4년 동안 라리가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등 명문 레알 마드리드의 역사 중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보여준다. 2008년부터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하여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모국을 처음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또한, 대회 이후에도 계속 대표팀을 지휘하여 유로 2012에서도 모국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유로 2연속 우승을 안겨주었다. 이로 인해 스페인은 유로 2008,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유로 2012의 메이저 대회 3연패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달성하였다. 또한 델보스케 개인도 UEFA 챔피언스 리그, FIFA 월드컵에 이어 UEFA 유로까지 재패하면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유일한 감독이 되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image]
[image]
두번째 줄 맨 왼쪽에는 울리 슈틸리케도 있는데 서로 절친한 사이로 유명하다.
1966년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에 입단하였고, 1968년에 1군으로 콜업되었다. 1969년 플루스 울트라로 승격하여 11경기 5골을 기록하였다. 1970-71 시즌부터 1972-73 시즌까지 CD 카스테욘(2회)과 코르도바 CF에 임대되어 플레이하였다. 1973년 여름에 원소속팀 레알 마드리드로 복귀 할 당시에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회장의 말년[4]이었고, 베르나베우 회장은 마지막으로 팀을 개편하려고 했다. 그 중심에 비센테 델보스케,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산티야나 등의 스페인 선수들과 귄터 네처, 울리 슈틸리케 등의 독일 선수가 있었다. 그렇게 1974-75 시즌과 1975-76 시즌에 리그 2연패, 1977-78 시즌부터 1979-80 시즌까지 리그 3연패를 달성하였고, 코파 델 레이에서 4번의 우승을 이룩하며 70년대 레알 마드리드의 승승장구에 기여했다.
그러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회장의 사망 이후 팀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고, 80년대에는 레알 소시에다드아틀레틱 빌바오 등의 바스크 지방 클럽들이 라리가 판도를 잡기 시작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루이스 데 카를로스 회장의 안일한 운영으로 인해 선수단이 노쇠화한 동시에 수많은 감독이 경질되는 등의 안습한 행보를 보였다. 델보스케는 퀸타 델 부이트레 이전 시대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였고, 노쇠화가 시작되던 1984년 6월에 33살의 나이로 은퇴하였다. 현역 시절에 프리메라 리가에서 통산 441경기에 출전해 30골을 기록하였다.

2.2. 국가대표


1975년에 스페인 국가대표로 데뷔하여 1978년 12월 15일 UEFA 유로 1980 예선 키프로스 전에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1980년 UEFA 유로 1980에 출전했지만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였다. 1980년까지 스페인 대표로 18경기 1골을 기록하였다.

3. 감독 경력


'''"마드리드와 스페인의 소프트 파워"(Madrid and Spain's soft power)'''

UEFA에서 축구계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명감독 10인을 꼽으며 남긴 평


3.1. 레알 마드리드 CF


[image]
'''갈락티코스 1기의 전성기를 상징했던 감독'''

'''217경기 119승 51무 47패 489득점 289실점 승률 54.8%'''

현역 은퇴 이후 레알 마드리드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의 감독을 맡았다. 성적은 42승 31무 41패 승률 36.84%로 그리 좋지 않았지만, 이 시기에 카스티야 감독으로서 이케르 카시야스 등의 유소년 선수들을 발굴하였다.
그러던 1994년 3월 7일에 1군 팀의 베니토 플로로(Benito Floro) 감독이 경질된 후 약 2개월간 임시 감독으로 1군팀을 지휘하였다.[5] 성적은 5승 2무 6패로, 좋지 못했다. 또한, 1996년 아르세니오 이글레시아스(Arsenio Iglesias) 감독이 경질된 후, 임시감독으로 1경기만 지휘하였다.
이후 1999년 11월 17일에 존 토샥 감독이 경질된 후 델 보스케는 공식적으로 1군팀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그가 지휘봉을 잡은 4년간 레알 마드리드는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라 리가 우승 2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인터콘티넨탈컵 1회 등 수많은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지휘한 4시즌 모두 4강 이상 진출시켰다. 또한 델 보스케는 겸손, 근면하고 소박한 성품으로 언론으로부터 평판이 좋았다. 또한 2002년에는 UEFA 올해의 클럽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였다.[6]
때마침 2000년 여름에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이 취임하며 이른바 지단-파본 정책(스타와 칸테라 출신 선수의 융합)을 표방하며 루이스 피구,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같은 슈퍼스타를 감독인 델 보스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영입하였다. 그 중에서도 델 보스케는 갈락티코와 칸테라 출신의 영플레이어와 베테랑 선수 등이 뒤섞인 라커룸을 훌륭하게 정리해 하나의 팀으로 만들며 로스 갈락티코스(Los Galacticos)라고 불리게 되었다.
[image]
2003년 4월 23일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 올드 트래포드에서 레알 마드리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총합 스코어 6:5로 승리하고, 경기고 끝나고 나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위로하는 델 보스케.
2000년대 초반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델 보스케가 이끈 레알 마드리드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자주 만났었다. 그리고 1999-00 시즌과 2002-03 시즌 모두 레알 마드리드는 8강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제치고 4강에 진출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의 델 보스케도 알렉스 퍼거슨과 라이벌 구도를 이룬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2002-03 시즌 종료 후 클럽은 잉글랜드 출신의 슈퍼 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영입에 대비되게, 클로드 마켈렐레, 페르난도 이에로,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등 클럽의 과거 숨은 공로자들을 잇따라 방출하였다. 그리고 감독인 델 보스케도 계약을 갱신하지 않는다고 발표하였다. 대신 그에게 클럽의 기술이사 부임을 요청하였으나 델 보스케는 이를 거부하였다. 페레즈 회장은 델 보스케와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델 보스케는 피로를 보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지만, 그가 미래에 적절한 감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델 보스케의 전술은 전통적인 것이며 우리는 더 전술을 중요시하는 인물을 찾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이후 로스 갈락티코스로 화제를 모은 레알 마드리드는 이후 팀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급속히 몰락하였다. 델 보스케 이후 클럽은 4년 동안 무려 7명의 감독을 맞았지만 2007년에 파비오 카펠로의 팀이 우승 할 때까지 리그 우승에서 멀어졌다. 또한, 1998년부터 2003년까지 6년간 5번 4강 이상(그 중 3회 우승) 진출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남기고 있었던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델 보스케가 떠난 이후 2010-11 시즌 주제 무리뉴의 팀이 올랭피크 리옹을 격파하며 4강에 진출 할 때까지 무려 7년 동안 16강에서 계속 탈락하였다.

3.2. 베식타슈 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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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대표팀이 유로 2004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면서, 새 감독으로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델보스케는 스페인 대표팀 감독 제의를 거절했고, 2004년 6월 8일에 터키 쉬페르 리그베식타슈 JK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별다른 성적을 남기지 못했고, 2005년 1월 27일에 경질되었다. 이 때문에 감독말만 믿고 온 후안프란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3.3.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114경기 87승 10무 17패 254득점 79실점'''

2008년 7월 루이스 아라고네스가 UEFA 유로 2008 우승을 차지한 후 그의 후임으로 7월 15일에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다. 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 유로 우승 팀의 기본 뼈대를 유지하면서, 보얀 크르키치, 안도니 이라올라, 페르난도 요렌테, 디에고 카펠, 세르히오 부스케츠, 헤라르드 피케, 페드로 로드리게스, 페르난도 아모레비에타 등 그동안 대표팀에 소집되지 않았던 젊은선수들을 차례로 발탁하였다. 남아공 월드컵 사전 대회 성격의 200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4강에서 미국에 패했으나 FIFA 월드컵 유럽예선에서 10전 전승의 놀라운 성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였다.

3.3.1.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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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인생의 최정점을 차지하다.'''
월드컵 본선에서 조별 리그 첫 경기인 스위스 전에 0-1로 패하며 위기를 맞았으나 온두라스 전과 칠레 전에서 연승하여 조별 리그를 1위로 통과하였다. 토너먼트에서 포르투갈, 파라과이, 독일을 각각 1-0으로 꺾고 스페인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결승 네덜란드 전에서도 팀은 연장 후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결승골로 1-0로 승리하며 드디어 세계 정상에 올랐다. 월드컵 우승으로 델 보스케는 마르첼로 리피에 이어 FIFA 월드컵UEFA 챔피언스 리그를 모두 감독으로 우승한 사상 2번째 감독이 되었다. 또한 이 성과로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는 그에게 후작 작위를 부여하였고, 그는 델 보스케 후작(Marqués de Del Bosque)이 되었다.

3.3.2. 유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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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보스케의 마지막 리즈 시절'''
유로 2012 본선에서 공수의 핵심인 다비드 비야카를레스 푸욜이 부상으로 결장하며 팀 전력 저하가 우려되는 가운데 첫 경기인 이탈리아 전에서 공격수를 두지 않는 제로톱 전술을 선보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첫 경기인 이탈리아 전은 1-1 무승부로 마쳤지만 그 다음 경기인 아일랜드, 크로아티아에 연승하고 조별 리그를 선두로 통과하였다. 토너먼트에서도 8강에서 프랑스를 2-0으로 격파하고, 4강에서 포르투갈에게 승부차기까지는 접전 끝에 힘겹게 결승에 올라갔지만 결승에서는 이탈리아에게 4-0으로 승리하며 유로 2연패를 달성하였다. 따라서 스페인은 사상 처음으로 UEFA 유로 2008, 2010년 FIFA 월드컵, UEFA 유로 2012에서 우승하며 메이저 대회 3연패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달성하였다. 그리고 델 보스케도 또한 헬무트 쇤(Helmut Schön)에 이어 FIFA 월드컵,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을 모두 우승한 사상 2번째 감독이 되었고, 호세 비야롱아, 리누스 미헬스에 이은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을 모두 우승한 사상 3번째 감독이 되었다. 거기에 UEFA 챔피언스 리그를 더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사상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이러한 성과로 2012년 대표팀 감독으로선 처음으로 FIFA 올해의 감독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이 때가 델 보스케의 거의 마지막 리즈 시절이라고 할 정도로 2년 후에는 급격한 몰락을 맞게 된다.'''[7]

3.3.3.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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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의 서막'''
2013년 전후로 스페인 축구의 주요 전술이었던 티키타카에 축구계가 적응을 하고 대처법이 나오기 시작했었고 201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개최국 브라질에게 0-3으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면서 불안감이 조금씩 몰려왔으나 아무도 본선에서 그렇게 몰락할지는 예상하지 못하였다.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6승 2무 조1위로 본선을 가볍게 통과하였고, 대부분의 축구 전문가들은 스페인이 조별리그를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하지만 첫 경기인 네덜란드 전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내리 다섯골을 먹히며 1-5로 대패하면서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래도 나머지 2경기를 승리하며 조 2위로 진출할 것이라고 봤으나 2번째 경기인 칠레 전에서도 0-2로 패하며 가장 먼저 짐을 싸게 되는 국가로 전락하였다. 특히 칠레는 이전까지 스페인 만나서 단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기에 그 임팩트는 1차전과 맞먹는 정도. 마지막 경기인 호주 전에서 3-0으로 이겼으나 애초에 호주 대표팀의 수준을 고려하면 이 정도 스코어는 아주 당연한 거고, 그저 유종의 미만 거뒀을 뿐이었다. 이러한 졸전으로 브라질 월드컵 후 사임한다는 추측이 있었으나 스페인왕립축구협회는 그동안의 성과를 감안하여 유로 2016까지 스페인을 이끈다고 발표하였다. 유로와 월드컵 우승을 이뤄 낸 공을 감안해서 스페인 국민들도 어느정도 넘어갔다. '''하지만...'''

3.3.4. 유로 2016


[image]
'''스페인 축구의 최고 전성기를 이끈 명장의 씁쓸한 퇴장'''
2014 월드컵에서의 실패 이후에 전술이나 스쿼드 등 변화를 시도했었지만 선수들의 부상도 있고 결과도 썩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그렇게 많은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래도 선수들의 기본 명성이나 실력 덕분에 이번에도 우승후보로 거론됐는데 조편성 결과가 영 까다롭게 나왔다.
2승 1패로 16강에 진출했지만, 조별리그 마지막경기인 크로아티아[8]에게 1:2 역전패를 당하여 조 2위로 진출하는 등, 기대에 못미치는 경기력으로 일관하다 결국 16강전에서도 지난 결승전 상대였던 이탈리아에게 0:2로 완패하여 탈락했다.
결국 대회 전 결과와 상관없이 이 대회를 끝으로 물러나겠다는 말대로 7월 1일 8년간 이어졌던 스페인 국대 감독직을 사임했다.
유로 2012의 우승컵까지만 들고 은퇴했더라면 축구팬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겠지만 괜히 지휘봉을 더 잡았다가 2014 브라질 월드컵때 충격의 조별리그 탈락에 이어 유로 2016에서도 미적지근한 경기력과 애매모호한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기에 결국 명예회복에는 실패한 셈이다.
말로가 좋지 못했지만, 그래도 역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둔 감독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3.4. 이후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이후 여러가지 감독 부임설도 적잖이 돌았고,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직후 한국 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으나[9] 지인들에 따르면 더는 감독직을 수행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나이도 많고 해서 이제 힘든 감독, 코치 일에서 은퇴하고 프로무대를 완전히 떠나 축구전문가로 여생을 보내려는 듯하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1.1. 선수



4.1.2. 감독



4.2. 개인 수상


  • UEFA 올해의 감독: 2002
  • IFFHS 세계 올해의 클럽 감독: 2002
  • IFFHS 세계 올해의 국가대표 감독: 2009, 2010, 2012, 2013
  • 앨프 램지 올해의 유럽 감독: 2002, 2012
  •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 2012
  • FIFA 올해의 감독: 2012
  • ESPN 선정 역대 최고의 감독 11인: 2013
  • 월드 사커 선정 역대 최고의 감독 13위: 2013
  • UEFA 창립 이래 최고 감독 10인 (1954~2016)
  • 프랑스 풋볼 선정 역대 최고의 감독 33위: 2019
  • 살라망카 주 정부: 금메달
  • 살라망카 시의회: 살라망카의 가장 자랑스러운 아들
  • 스페인 정부: 대십자 왕립 체육 훈장
  • 귀족 칭호: 제 1대 델보스케 후작[10]

5. 여담


  • 상당한 노안이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 시절에는 본인보다 10살 많은 알렉스 퍼거슨과 동년배 혹은 더 나이가 많아 보였을 정도.
[1] 2010년 FIFA 웓드컵 수훈, 선수단은 PPA를 수훈 받았고 델보스케는 감독의 공로를 인정받아 한 단계 높은 ROMD를 수훈 / 스페인 레알 오르덴 델 메리토 데포르티보 Real Orden del Mérito Deportivo[2] 영어를 제외한 로망어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3] 현재는 UD 살라망카 B.[4] 나이가 많이 들어 건강이 악화되는 시기였다.[5] 이후 호르헤 발다노가 부임했다.[6] 이후 UEFA 올해의 클럽 최우수 감독상은 05-06 시즌을 끝으로 폐지되었다가 19-20 시즌 다시 부활한다.[7] 대회 우승으로 상쇄되긴 했지만, 사실 이 당시 델보스케는 고집스런 전술과 선수 기용으로 논란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스페인 국대 성향과 맞지 않는 펄스 나인(제로톱) 전술, 코케와 같은 리그에서 맹활약하는 선수는 배제하고 소속팀에서 폼이 크게 떨어진 선수를 오로지 자신의 입맛에 맛다는 이유로 끝까지 기용을 고집하여 축구팬들의 불평이 상당하였다. 사실 후술할 몰락의 조짐이 이때부터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이때 붙여진 멸칭이 델 보수케. 유로 2012 무대를 마지막으로 지휘봉을 놓았더라면 팬들에게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터인데...[8] 다만 이 당시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전성기 시절로 불릴 정도로 매우 강한 팀이었다. 2년 후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무려 준우승을 차지했다.[9] 델보스케 본인과는 별개로 그의 휘하에 있던 수석 코치 토니 그란데를 비롯 코치 사단 대다수가 신태용의 코치진으로 합류해 러시아 월드컵을 지휘했던 바 있었다.[10] 후안 카를로스 1세가 내린 칭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