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독교

 



1. 개요
2. 상세
2.2. 기복신앙적 성격
2.3. 신학적 특성
2.3.2. 번영신학
2.3.3. 교파 갈등
4. 기타
5. 대중매체에서의 개독교
6. 관련 문서


1. 개요


犬독교 / 개Dog교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개신교에 대한 혐오 표현 또는 명칭.
기독교 중에서도 개신교, 특히 극단주의적 성향으로 변질된 개신교[1]를 비하하는 멸칭으로, 비하의 뜻을 담은 접두사 '' 가 기독교의 '기' 를 대체해서 "'''개''' 같은 기'''독교'''"의 의미로 부른다. 더 줄여서 개독이라고도 한다. 유사어로 예수쟁이가 있으나, 현재 젊은 층에서는 예수쟁이보다 개독 쪽이 사용 빈도가 높다. 한편 예수쟁이의 경우 나이 든 사람들끼리 얘기할 때 쓰인다. '''간단히 말해 몇몇 개신교 신도가 극단성, 선민의식, 편협함(=자기 중심적 사고), 내로남불에 머물러 있어서 생겨난 단어'''다.


2. 상세



2.1. 예수천국 불신지옥


[image]
개독교+개병대라는 끔찍한 혼종. 사진의 인물은 무려 동시에 3가지 법률을 위반하고 있다. 도로교통법, 총포화약법, 군복 및 군용장구 단속에 관한 법률.
먼저 알아 두어야 할 사실은, '''예수는 단 한 번도 자기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보낸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2][3].
사실 무조건 예수만 따르고 예수를 숭배한답시고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면 '''기독교는 악행을 묵인하는 종교'''가 되는 꼴이며, 결과적으로는 기독교의 근간을 흔들게 된다. 진정하고 참되고 올바른 크리스천이라면 '''예수 얼굴에 먹칠하는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성경에는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 가는 이야기도 있고, 생업을 내던지고 예수를 따라나선 사람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모든 기독교도가 위와 같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같은 성경책을 보고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계명을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받아들이고 항상 바르게 살아감으로써 하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나와 내 주위 사람이 복 받아서 천국 가는 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 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 근본주의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교리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는 성경에서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예수를 따랐다고 자처하는 자들은 천국에 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직접 못박아 이야기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거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고 말할 것이다.

'''마태오의 복음서 7:21~24'''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 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마태오의 복음서 25:37~46'''

기독교도로서 바른 전도방식은 '사랑의 실천과 하늘나라의 실현을 위해 선하게 살아감으로써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행복해지는 방법으로써 종교를 권유하는 것'이다.[4] 그냥 무턱대고 '예수님 믿어야 합니다'라며 교회에 오라고 끈덕지게 권하는 것은 오히려 비 기독교 신자들이 개신교를 기피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5] 일반적인 개신교 교인들은 위와 같은 극성적인 전도 활동에 관하여 의도는 교리적으로 맞는데 전달 방법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남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은 기독교 근본 정신인 사랑에 반하는 폭력적 행위이므로 잘못된 일이다. 예수는 한 뺨을 맞으면 맞은 뺨도 돌려대라고 했고, 속옷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겉옷까지 벗어주라[6]고 말할 정도로 자기 의지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위, 즉 폭력을 경계했다.[7]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는 예수천국은 맞지만 불신지옥이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구원의 확실한 길은 예수를 믿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가르치지만[8], 비신자들의 구원 여부를 함부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구원은 야훼께서 판단하고 주시는 것이지, 인간이 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쪽 종파는 단순히 천국/지옥이 아닌 연옥도 인정하고 있다. 꼭 지옥이 아니라 연옥에서 세월을 보내고 구원받을 수도 있다.[9]
연옥을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 교파라 하더라도, 성공회한국기독교장로회 같이 근본주의를 지양하는 교단들에서는 불신지옥을 말하지 않는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거야 주께서 해주신 약속이니 당연한 것이지만,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구원 여부는 하느님의 전권이므로 인간이 헤아릴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께서 하셨던 말씀과 약속을 믿고 의지하면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을 지 아닐 지에 대해 논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선을 넘은 오지랖이라는 것. 그런 오지랖으로 이웃들에게 누가 되는 것보다, 삶 안에서 주의 정의와 자비를 보여줌으로서 이웃들이 가슴으로 복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오의 복음서 5장 16절'''

이런 소극적인 복음 전파에 불만인 기독교인들도 있겠지만, 현재 한국에서 복음에 대해서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다시 오신다는 그 복음에 대해서)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현재 우리는 정보의 공해 시대에 살고 있으며, 복음도 그 수많은 정보들 속에 섞여 있다. 그런 복음을 단순히 또 다시 들려주기보다는, '''삶으로 보여주어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이 시대의 복음 전파'''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이, 분명 성경에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지, 하나님만 사랑하라고는 안 했다'''. 맨 위에서 2번째에 언급된 말씀에서처럼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자 이웃[10]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실, 사랑하라고 한 문장을 보면 알겠지만 천국은 예수를 믿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를 사랑해야 들어갈 수 있다.[11]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불신지옥, 즉 지옥에 간다고 하는데 ''''예수를 믿고는 있지만 사랑하고 있지는 않다'와, '예수를 (몰랐다든가 해서) 믿지는 않지만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사랑한다' 중 어느 쪽을 더 기뻐할까'''? 성경 고린도전서에 보면 사랑장이라고 해서 사랑에 관해 설명하는 장이 나오는데,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다고 나와 있다. 사랑 없는 겉치레용 믿음이 정말 진실한 믿음일까?[12]
이건 굉장히 간단한 문제로 만약 내가 야훼인데 나를 숭배하는 건 잘하지만 주변에 민폐를 심각하게 끼치는 자를 천국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여기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표본이 바로 '''차지철'''인데, 차지철은 매우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면서도 인격은 개차반인 것으로 악명높았고, 그래서 부마항쟁이 발생했을 때 박정희에게 폴 포트를 운운하며 다 죽여버리자고 제안하는 바람에 김재규와 말다툼을 벌였다. 만약 내가 야훼인데 이런 인간을 천국에 받아들이면 천국의 물은 반드시 흐려지기 마련이다. 자신한테는 아첨하지만 행실이 불량한 자는 굳이 야훼라서가 아니라 어떤 지도자라 하더라도 기피해야만 하는 대상이다. 실제로도 야훼아담하와에게, '''내가 정한 단 하나의 과일만 안 먹으면 된다'''라고 명했지만 에덴동산 최고의 보이스피싱 명인인 에게 속아서 따먹었고 야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아담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했으며 보이스피싱을 한 죄로 다리를 모조리 없애버렸다. 그런데 야훼에게만 충성을 바치고 행실은 더러운 인간은 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분탕질을 해서 천국의 물을 흐려놓는다. 그걸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답이 너무나 쉽게 보이는 문제이다.

2.2. 기복신앙적 성격


한국의 개신교는 기복신앙적 성질이 매우 강하다. 복음에 대해 제대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가정이 화평해지고 사업이 번창하고 만사가 형통하다고 믿으며 예수 믿기를 주변에 권한다. 이는 개신교 교리를 그들이 처한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미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인데, 사실 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산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당장 예수를 따르던 12사도의 행적과 사망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몇몇 목사들은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병이 낫고 돈 문제가 해결된다고 대놓고 설교하며, 그걸 믿고 따른다. 물론 성경에서 베드로가 물고기 입에서 돈을 찾은 것처럼 실제로 예수를 믿어서 물질의 복이 생긴 경우도 '''간혹''' 있지만 그러한 세상의 복은 전부 영원한 것을 위한 하나님의 수단일 뿐이지 결코 목적이 아니다. 어차피 천국에 들어간 후 그것들은 '''섭종한 게임의 아이템'''처럼 전혀 쓸모없는 것들이 되어버린다.
앞서 서술했듯이, 저런 믿음을 가진다고 복이 오지도 않고, 더 행복해지지도 않는다. 성경을 보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스카리옷 유다를 제외하고도, 예수의 제자들 중에서 현세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간 사람은 없다. 곱게 죽은 사람은 사도 요한 하나밖에 없으며, 나머지는 모두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죽었다.[13] '''특히 베드로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고통을 당하다 죽었다.[14][15] 이는 성경 속 이야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현세에서도 예수를 제대로 믿는다는 것은 온갖 시련과 시험에 부딪히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물질의 복을 바라고 하나님을 믿게 된다면, 그것은 물질의 복을 내려주시는 것에 대한 축복(우상숭배, 물질에 대한 믿음)이 된다. 성공하려면 현실을 직시하고 잘못된 점을 반성하면서 방향을 고쳐나가야 하는데, 일의 성패를 하늘의 뜻이 정한다고 믿어버리게 되면 그만큼 발전의 가능성을 잃게 된다. 또한, 인간의 행복은 주변 사람과의 건강한 관계에서 오는데, 저런 믿음을 주변에 강요하는 사람은 대부분 기피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완전히 파탄난다. 주위에는 같은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만 남게 되는데, 교육 수준이 떨어지거나, 종교 외의 다른 목적(금전적 이득 등)으로 접근하는 사람들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삶의 질이 그만큼 낮아지게 된다.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 눈앞에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하여 지금 당장은 힘들고 괴롭겠지만, 이 시험들은 여러분의 믿음이 얼마나 강하고 순수한지 알아보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순수한 믿음은 금보다도 훨씬 귀합니다. 금은 불에 의해 단련되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닳아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순수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날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6, 7절'''

형제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을 겪을 때 기쁘게 여기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을 통하여 인내심이 성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을 참고 견디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야고보서 1장 2~4절'''

개신교기복신앙이 결합하여 지금같이 성공적으로 큰 세력을 형성한 것은 전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미국은 2위. 미국의 목사가 한국의 교회 크기를 부러워하고, 신자 다루는 법 공부를 하고 갈 정도이다. 이는 한반도에 유행하던 도교가 서구에서 들어온 개신교를 흡수하여 '한낱 미신'에서 '주류 종교'로 진화했다는 설이 있고, 개신교의 급격한 교세 확장의 발판이 되었던 1907년 평양 대부흥 사건의 주인공인 길선주가 본래는 관우신을 모시던 무당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 믿어도 부끄럽지 않은 것으로 포장되었으나, 실제로 선한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에게 하염없이 복만 빌다가 죽으면 천국 가는 것을 인생 최우선 목표로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었다. 냉정히 말해서 그런 종교가 '나를 믿어라 그럼 복 받는다' 식의 세상 종교들과 다를 것이 뭐겠는가?[16][17]
과거 독재정권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내면적 믿음을 강조하며 주류 개신교 교단은 기복신앙을 강조하였다. 사회적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행동에 나섬으로써 따를 수 있는 불편함과 고통에 대해서는 쉽게 외면하고 그러한 일을 비신앙적인 것으로 간주하지만, 개인의 성공과 명예를 획득하는 일에는 적극 나서며 그러한 것을 곧바로 '하나님의 축복' 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신앙의 세계에서는 고통의 문제 역시 취사선택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성공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축복' 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의 걸림돌만이 '불가피한' 고통일 뿐 사회적 빈곤과 정치적 박해 등은 '피할 수 있는' 고통이 된다. 이러한 내면적 복음화의 신학이 내면의 도덕성을 강조함에도, 현실을 지배하는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무소유의 삶으로 귀착되지 않고, 현세적 성공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삶을 선망하게 되는 것은 개인의 성공을 추구하는 성향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항상 만사 형통한다는 보장 같은 건 없다'''고 못박아놨다. 하나님을 믿으면 만날 고통이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 반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100% 성공하는 삶이라는 말 같은 건 없다는 말이다. 당장 12사도가 어떤 수난을 겪었는지 생각해보자.
오히려 성경에서는 대표적으로 욥기, 바울의 서신서 등등으로 대표되는 '''고난의 시기에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하자'''라는 내용이 핵심 내용이다. 개독교가 지껄이는 것처럼 '''자기 이익이나 챙기라고 말하지 않았다'''. 설사 기복신앙의 논리에 따라 하나님을 잘 믿으면 만사형통한다 해도 '''악행을 저지르고 반성도 안하는 개독교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일 리가 없다. 즉, 이미 자폭을 실컷 한 셈'''이다.
개독교의 행태는 흔히 말하는 샤머니즘에 속하는 무당굿 같은 기복적 민간 신앙 및 복을 바라는 우리나라 사람의 심리가 결합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바르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눈앞의 이익을 좇으면서 살지 않는다. 물론 성경에도 복에 대해서 나와 있지만, 기복신앙에서 생각하는 물질적인 복은 성경에서 말하는 복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복은 모두에게 주어지지도 않는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솔로몬이나 같은 부자들도 있지만, 예레미야엘리야처럼 가난한 사람들도 많았다. 세례 요한메뚜기나 구워 먹는 야인이었고, 심지어 예수는 이스라엘 전국을 떠돌다 제자들 다 흩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2.3. 신학적 특성


한국의 개신교에서 일제시대부터 장로회의 영향은 지대하다. 즉, 예정설, 성서무오설, 직업소명설[18] 등을 믿는다. 문제는 이러한 장로회 신학이 70년대에 들어 급격한 부흥 운동으로 인해 단순화되어 사람들에게 왜곡된 의미로 전달되면서 본질적인 개신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주기도문을 통하여 가르쳤듯이 하늘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것, 이들은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며 사회 개혁을 반대하는 등 극도로 수구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는 해방 후 한국 장로회의 분열과 연관성이 있다. 신사참배에 유일하게 굴복하지 않았던 고려파(현 고신)가 다수파에 밀려 장로교 총회를 나갔고, 그 이후로 총회는 자유주의 신학을 설교하고 가장 먼저 친일에 적극적이라는 이유로 김재준 일파(현 기장)를 축출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분열은 끝이 아니었는데 WCC, 에큐메니컬 문제로 장로회가 합동/통합으로 분열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외국에서 들여온 교단이나 자정적으로 생긴 교단이 한국 개신교의 자정작용에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었는데, 일례로 1950년대 한국 루터교회의 시작도 성서무오설을 받아들이고 자유주의 신학을 배척한 미국 미주리대회(missouri synoud)의 선교였고, 문선명, 김백문같은 이단이 들끓던 시기였다. [19]
앞서 말했듯이 대한민국 개신교에서 장로교의 영향은 지대했기에, 장로교의 특징인 예정설을 제외한다면 침례회든 감리회든 적어도 성서무오설은 가지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심한 경우, 16세기 개신교에서도 무시당하고 있던 성경문자주의까지 주장하는 교회까지 존재한다[20]

2.3.1. 근본주의


쉽게 말해 '지금 니들 하는 건 다 잘못되었다, 옛날에 잘 하던 것, 원래 있던 것을 지켜야 한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상이다. 진짜로 옛날에 좋았던 것을 회복하기만 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안 좋은 것도 회복하겠다'''고 난리를 치는 데다가, 기본적으로 깔린 생각부터가 '니들은 틀렸고 우리가 옳다'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보여줘도 도무지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심각한 배타성을 띄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특히 현대에 문제가 되는 것은 이슬람 근본주의와 '개신교 근본주의' 2가지이다.
개신교의 근본주의에서 말하는 '근본'이란 다음 5가지를 말한다.
  1. 성서무오설(성서에는 오류가 없다), 축자영감설(성서를 기록하는 사람에게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영감을 내리신 것이다)
  2.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은 진실임
  3.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심[21]
  4. 예수께서 사망하셨다가 다시 부활하심
  5. 예수께서 인류의 원죄를 대속하여 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
개신교계에 '근본주의'라는 단어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쯤인데, 이들이 지키자고 강조하는 내용들을 가만 살펴보면 예수께서 제1계명으로 강조하신 사랑과 실천[22]에 관련된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구원받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내용 뿐이다. 이것들은 물론 성경에서 언급한 내용들이지만, 한쪽에만 치우쳐진 나머지 다른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그 결과중 한 예를 들자면 '''막무가내식''' 복음 들이밀기다.

2.3.2. 번영신학


예수께서 가르치신대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과 그러한 삶의 방식을 되찾아 본질적인 영혼 구원을 얻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무조건 하나님께 빌어서 그 자비를 얻어 살아있을 때에는 복 받아서 잘 먹고 잘 사는 것과, 죽어서는 천국에 가서 행복을 누리는 것만을 바라는 기복신앙적 사고방식이 팽배하여 그 해악이 매우 컸다. 이 기복신앙은 결국 개신교회간의 빈부격차와 신자 및 비신자의 혐오를 불러일으켜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를 떠나가게 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한국 개신교에 본격적인 물량주의, 기복주의를 가져온 교단은 오순절계통의 '''여의도 순복음교회'''(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이다. 조용기는 기존 오순절교회의 신학을 정립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란 독자적인 신학을 체계화시켜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했으며, 오순절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 개신교의 양적 팽창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소위 '하나님 믿으면 부자 되고 건강해지고 영적으로 평안해진다!'라는 삼박자 구원론은 이 조용기의 신학에 비롯된 것으로, 따지고보면 은총론을 오순절교회식으로 해석한 결과다.[23]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그 나머지가 문제였다. 조용기 목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바로 수정교회의 로버트 슐러(Robert H. Schuller) 목사다.
슐러는 원래 미국 개혁교회 목사이지만, 그의 근본적인 사상은 성경적이지 않았다. 바로 신사고운동(New Thought Movement)이라는 이단적 사상이었다. 신사고운동은 피니어스 P. 큄비(Phineas Parkhurst Quimby)란 최면술사가 제창한 사이비 이론으로, 마음의 치유와 물신적 출세는 긍정적인 사고를 받아들일때만 가능하며, 자신의 현세적 열망을 긍정적 언어로 표현하는 적극적. 긍정적 습관을 숙달하면 무엇이든 소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의 저변에는 카발라, 힌두교, 불교, 고대 신비종교, 기독교 신비주의 등 각종 이단적이고 이교적인 요소들이 가득했다. 문제는 이 이단사상이 '긍정주의'라는 것으로 좋게 축약이 되다 보니 미국 사회와 개신교에 널리 퍼지게 되었으며. 그렇게 변한 미국 개신교를 1960년대 조용기 및 한국 몇몇 유수한 목사들을 통해 직수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신사고운동 신학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긍정적인 사고로 인한 무한한 번영을 누리게 된다는 골자의 '''번영복음'''이다.[24] [25][26]
로버트 슐러, 그리고 조엘 오스틴(Joel Osteen)[27]이 확립한 번영복음은 "진정한 개신교인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성공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목적"이라 설교한다. 뭔가 90년대 운동권의 진보적 사회진출론이 생각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이들은 '''성공 자체가 목적'''이라는 점에서 기독교의 가르침과 안드로메다만큼 거리가 멀다. 즉, 기독교의 은총론을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그 결과 약자에 대한 멸시가 정당화되기 때문에 개신교인의 도덕성 하락에 심각한 기여를 하게 되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변변한 스펙도 없는 12사도는 노력을 하지 않은 잉여들이며, 헬레니즘 철학을 공부하고 로마 시민권까지 가졌지만 유대교인퀴지터에서 반체제 인사가 된 사도 바오로은 이단이자 인생의 패배자가 된다. 아니 당장 그 이전에 '''예수가 직업이나 스펙을 내세웠던가? 예수도 공생애 이전에는 그저 목수였다.'''[28]
취업난이 심각해지고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진 청년들이 비정규직을 전전하게 되면서 이러한 소위 '고지론'은 교회 내의 청년들에게도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2.3.3. 교파 갈등


장로회 내에서도 분파 갈등이 커서 서로 이단시하는 경향이 큰데, 교파 갈등도 심하다. 일례로 장로회감리회는 사실 서로 입장에서 '이단' 이라고 보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장로회에서는 감리회의 기반이 되는 알미니안주의를 엄청 비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실에서 장로회와 감리회 두 교단이 사실 이야기하는 틀은 거의 다르지 않은 편이라고 보는 의견이다. 다만 존 웨슬리가 아르미니우스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알미니안 주의자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 왜냐하면 알미니안주의의 신앙개조 중 전적 타락을 비판하는 부분적 타락, 그리고 구원의 상실 가능성처럼 명백한 자력구원론적 발상은 존 웨슬리의 설교에서 모두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 웨슬리는 선행 은총이라는 개념을 통해 세상의 정욕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게 선행되어 주어진 구원의 은혜를 통해 여호와와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극단적인 칼뱅주의와 알미니안주의 간의 이단 논쟁이 장로회와 감리회의 관계에 투영된 오류로밖에 볼 수 없다.
장로회감리회가 서로 입장에서 이단이라고 보는 것은 오류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가 논리적으로 모순에 가깝고 이게 진짜로 모순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결정론vs자유의지라는 주제로 철학계에서도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칼빈 주의와 알미니안 주의는 복음주의에서 모두 인정되는 견해라고 한다. 웨인 그루뎀이 칼빈주의자라서 서술이 공정하지는 않지만 그가 쓴 '조직신학' 의 16장 G.를 참조할 것. 또 장로회와 감리회 두 교단은 많이 다르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칼빈주의자는 칼빈 주의를 채택할 시 얻는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극복하는 논변을 제시하고 알미니안 주의의 경우 반대로 돌아간다고 한다.[29]

3. 역사사례





4. 기타


이 말을 진지하게 쓰기 전에 아래 말부터 한번 생각해보자.

검은 쓰는 사람에 따라 활인검이 될 수도, 살인검이 될 수도 있다.

'''수단이 잘못된 것일까? 사람이 잘못된 것일까?''' 굳이 종교를 수단으로 삼지 않아도 정치, 문화, 음식, 이념, 취미 어떤 것으로든 쓰는 사람에 따라 사람을 망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결국 개독교란 말이 생긴 건 두가지 원인으로 말할 수 있는데 첫번째는 대다수 사람들은 보통 사람이기에(교회 구성원들도) 이기적이고 겉모양에 치중하는 면이 강하다. 두번째는 부정적인 면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심리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은 근본 원인은 보지 못하고 겉(단체)만 보는 사람들의 실수인 것이다. 마치 개신교 그 자체가 악인 것처럼 말이다.
예수를 사상이 아닌 머리로만 믿으며 기복신앙 측면을 강조하고, 누구를 적그리스도로, 무엇을 666으로 단정지으면서 종말론적 예언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면서, 영계에서 천국과 지옥을 봤다는 부류는 '''100% 확실히 이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교리적으로 틀렸다고 선언하는 것 이상으로 '''다른 종교를 탄압하거나 억압, 무시, 모욕하는 행위'''는 이단적인 행동이다. '''헌금이나 돈에 관심이 많거나 돈 내라고 눈치 주는 교회는 인정사정을 막론하고 100% 이단'''이다. 남을 핍박하고 공격하고 상처 입히면서까지 전도하는 것 역시 이단이다. 이것은 성경이 증명하므로 다른 여지가 없다.
개신교는 가톨릭과 달리 개교회주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각 교회마다 설교 내용이 전부 다르고 성경을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도 너무 심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는 여자로 태어났으면 목사님에게 팬티를 보여줘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큰일날 헛소리를 하나님의 명령이랍시고 말할 정도로 부패한 교단마저 보일 지경으로 개신교는 교회 단위로 지나칠 정도로 차이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 당장 여의도순복음교회미자립교회를 비교해봐도 바로 답이 나온다.
재미있는 건 이런 개독교와 소위 사이비 종교의 공통점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 둘 다 예수는 뒷전이다
기독교의 경우, 진짜로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의 말과 행적에 관심을 갖고 예수의 행동을 본받아 살려고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이단들은 교묘하게 예수의 자리에 교주 자신을 치환해 넣는다. 그래서 자신에게 충성하는 자가 구원받고 천국간다고 현혹한다. 그리고 봉사와 헌신이라는 명목으로 성상납을 요구하고, 과도한 헌금을 요구한다. 기성교회에서도 성문제와 돈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 둘 다 기복신앙적 속성이 강하다.
한국은 점(占), 미신이나 샤머니즘 기복신앙 속성이 강하므로 일반적 성도들이 대부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노인~장년층 세대라 웬만해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 게다가 이런 부류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모태신앙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잘못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도 못하고 고대로 맹목적으로 믿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
개독 광신도든 선량한 평신도든 어차피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성경에 적혀있는 개신교에 있어서 부정할 수 없는 '''당연'''한 교리기 때문에 타종교와의 갈등은[30] 지속될 수 밖에 없다.[31] 애초에 타종교와의 진짜 감방갈 수준의 갈등은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지금은 무슨 고대, 중세시대의 신정국가들이 판치면서 허구한날 전쟁이나 해대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 현대에서 종교의 충돌이란 개인이 받아들이는 교리, 혹은 관점의 충돌이지 서로 간 감정적, 물리적 충돌은 명백히 비정상적인 일이다.[32] 그리고 당연히 하면 안되는 행위이기도 하고.

5. 대중매체에서의 개독교


  • 개독교와 완전히 일치하는 세력이 나오지는 않으나 극단적인 세력인 만큼 창작물에서 유사한 단체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여신전생 시리즈의 메시아 교단이라든가... 한국 양판소 등지에서 기독교를 모티브로 한 종교단체가 타락하고 부패했다고 나오거나 그들로 인해 중세 암흑기가 왔다는 인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는 하다.
  • tvN에서 방영했던 8부작 드라마 아르곤의 경우 첫 방송에서 주인공이자 작중 HBC 방송국 탐사 프로그램 앵커 겸 팀장인 김백진(김주혁 분)이 대형교회 비리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대국민 사과 멘트에 더해 진행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주중 심야시간대로 옮겨지는데[33] 해당 드라마의 경우 극본 집필에 참여한 작가 3명 중 하나인 주원규는 본인이 개신교 목사다. 개신교계 언론인 노컷뉴스에서 이를 보도했는데 "왜 교회를 나쁜 놈처럼 그려놓았느냐"는 비난보다는 "어쩌다 개신교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느냐"며 자성하는 어조로, "그동안 교회 비리나 목사 성추행 등의 문제는 시사 프로그램에서나 가끔 등장하다가 이렇게 드라마 속의 소재가 될 정도로 일상화되기에 이르렀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해당작의 극본을 맡은 주원규의 코멘트는 "그만큼 사회가 현재 개신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설적 작업에서 저는 그런 비판적 작업을 사실 개진해 왔었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언론, 교회, 종교 이런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다뤄볼만한 주제로 대본작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
  • 뉴스앤조이에서 2000년대(2000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 영화한국 드라마 총 27편에서 등장한 개신교 교회의 모습들을 추려내 분석한 결과, 영화 한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정적으로 묘사되었다. #1 #2 개신교 캐릭터들의 유형을 분류하자면 광신적 행태[34], 위선[35], 권력과 유착[36], 사이코패스[37], 비극 앞에 무기력[38], 성소수자 혐오[39] 등으로 2000년대 이후의 창작물에서 표현된 거의 모든 개신교 목사나 신자의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인 것이 현실이다.[40]

  • 한편 워해머 세계관에 대하여 조금만 아는 사람은 이들의 행태가 카오스 스페이스 마린, 황제교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쌍벽을 이룬다. 특히 워드 베어러, 시스터 오브 배틀. 그런데 워해머40k 세계관은 신이 진짜로 존재하고 믿음으로 물질적인 힘까지 보상받아 행사하는 경우도 있는 세계관이기 때문에 광신할만한 이유라도 있다. 사실 개독들이 쓰는 문장에서 '예수' 라는 단어를 황제카오스 신 이름으로 바꿔보면 어떤 문장이라도 Warhammer 40,000 관련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 재밌는 건 황제 문서에도 알 수 있지만 황제 본인은 이런 종교 활동을 극도로 혐오했다. 즉 철저한 무신론자를 신으로 모시는 격.
  • 귀귀 갤러리에서는 아예 개독교와 불교를 합체한 불독교라는 요상한 종교가 나온다.

6. 관련 문서



[1] 물론 모든 개신교 성도들이 극단주의를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유의할 것. 극단적 성향을 가지고 돌출행동을 하기 때문에 더욱 부각되어 대중들의 눈에 더욱 띄는 것일 뿐,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들도 분명 많다는 것을 명심하자.[2] 다만 요한의 복음서 14장 6절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라는 구절을 빌미로 극단주의적 기독교인들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근거로 쓰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3] 이 또한 '''나를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 라는 뜻이지, '''절대로 "나를 안 믿으면 반드시 지옥에 간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우리 모두 죄인이고 지옥에 가야할 사람들이지만, 구약에선 제사로, 신약에선 예수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이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근데 일부 극소수의 이단으로 의심받는 개신교(JMS,신천지 등)에서는 신약은 무시하고 구약을 중시하는 데 이것만 가지고 신약으로 해석한다.[4] 예를 들어, 이태석 신부같은 사람은 오지나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 봉사와 선행을 하며 살고 있다. 가톨릭이나 일부 개신교회에서는 이를 은유적인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뿌린다' 고 한다.[5] 국내에서는 그저 기피할 뿐이지만, 해외 선교를 하면 현지 종교를 모욕하다가 폭력 사태를 유발하는 경우도 있고, 심한 경우에는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6] 속옷에 비해 겉옷이 크고 두꺼운 천으로 되어있으므로 훨씬 비싸다. 지금이야 '팬티까지 뜯긴다' 처럼 속옷 = 밑천이라는 인식이 있지만.[7] 이는 예수가 "너희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 "네 형제가 네게 죄 짓거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하고 가르치신 것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다.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 서로 폭력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악한 것, 즉 하늘 나라에서 멀어지는 일이란 얘기다. 그래서 주기도문에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문구가 있다.[8] 이것도 전형적인 가톨릭에 대한 오해로 빚어지는 건데, '가톨릭이 타 종교(의 구원)도 인정한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가톨릭도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확실한 길이라는 교리를 버린 적이 없다'''. 타 종교인과 종교 문제로 싸우지 않고 존중한다는 말이다.[9] 개신교천주교와 달리 연옥을 인정하지 않는다.[10] 여기에서의 이웃은 자기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 즉 가족과 친구와 기타 모든 사람들을 해당하는 것이다.[1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아버지의 뜻(서로 사랑하라)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것이니라.'라고 분명히 나와 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한 번 얻은 구원 용을 써도 지옥에 못 간다고 자랑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신실하게 신앙생활 조금이라도 해 본 위키러들은 알겠지만 바울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니라'고 한 것처럼 오히려 천국에 들어가기가 훨씬 힘들고 고통스럽다.[12]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사람들 눈에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과, 기독교의 신 눈에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고, 그 기준은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기준으로 한다. 이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관한 문제인만큼 타종교인이 보편적인 도덕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13] 특이한 점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할 때, 다른 제자들은 모두 겁을 먹고 도망쳤고, 요한만이 끝까지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점이다. 예수도 죽기 전에,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친어머니처럼 모시라는 부탁을 한다.[14] 물론 쿼바디스에서 나온 것처럼 충분히 도망갈 수 있었음에도 양심에 찔려서나마 기꺼이 다시 돌아와서 순교를 선택한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15] 베드로가 가장 심하게 고통 당하다 죽은 것은 아니다. 베드로 말고도 십자가형으로 죽은 제자가, 필립보, 안드레아, 유다, 바르톨로메오가 있으며, 나머지 제자들도 창에 찔려 죽거나, 돌에 맞아 죽는다. 사형당하는 자체가 편할 수는 없다. 12제자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예수님과 매우 가까이 지냈고,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몸이 찢겨 죽었다고 한다.[16] 인천 주님의교회 김용두 목사가 쓴 '내가 너에게 불세례를 주노라' 책 6권에서 예수님이 목사에게 직접 말씀을 하는데, '한국교회는 내 사랑하는 종들이 내 십자가와 내 피를 전하지 아니하고 삶에 복받아야 된다고 복받는 이야기만 하는데 복만 받으면 뭐하느냐. '''지옥으로 오는데 이 땅에서 복 받으면 뭐 하느냐'''. 내가 그 영혼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얼마나 가슴 아파하는 줄 아느냐.'라고 하셨다. 근데 문제는 일반적인 한국 교계에서 이런 교회를 이단 취급한다는 점이 더 심각한 상황이다.[17] 주님의교회 김용두 목사가 이단으로 파문당한 이유는 그의 신비주의 때문이다. '내가 너에게 불세례를 주노라' 책을 읽어보면, 기독교인은 물론이고 비기독교인도 황당한 내용에 어이없어할 것이다.[18] 직업소명설이란 모든 직업이 신의 거룩한 부름에 의한 거룩한 직업이라는 장 칼뱅의 직업윤리를 말한다. 직업소명설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직업윤리"에 관한 내용이다.[19] 《한권으로 읽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 류대영.311~317p[20]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성경침례교같은 이단이 아니더라도 이런 레벨은 더러 존재한다.[21] 성모 마리아가 남성과의 관계 없이 임신하여 예수께서 출생하였다는 의미[22] 당연히 따라오는 것.[23] 80년대에 장로회에서 이단 지정을 내린적이 있지만, 기복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성령 충만과 방언을 강조하는 오순절교회의 교리 때문이다. ‘방언하지 못하면 구원 받지 못한 것이다.’라는 명대사가 바로 이것. 정작 당시 국내 기독교계에서 순복음교회가 물질적으로 큰 피해를 끼치는건 교인 수평이동으로 장로교도들을 흡수하는 정황이었다. 즉 밥그릇 위험 대문에 장로교가 순복음에게 이단 지정을 내린 것.[24] 그 밖에도 공연같은 볼거리, 편안한 예배, 크고 화려한 교회, 사람을 끄는 다양한 교회, 이런 것도 거의 다 수정교회에서 대한민국 개신교에게 끼친 영향이었다. 이러한 이유가 개발독재시기에 많은 대형 교회들이 무한경쟁을 일삼았고, 교회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강박감을 주어 강압적인 전도, 이웃 교회간의 불필요한 경쟁까지 낳게 되었다. 결국 교회들이 빈부격차에 시달리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25] 《한권으로 읽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 류대영.326p[26] #, #, #, #[27] 현재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부유한 목사로, 레이크우드 교회의 담임목사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저서론 《긍정의 힘》이 있다. 십자가를 봉헌하지 않고, 지옥이나 각종 신학적 변론에 대해서는 회피하는 발언만 하고 PC적인 담론과 번영복음에만 집착해 이단 논란이 끊이질 않는 중이다.[28] 당시 유대교에서는 교육, 특히 초등단계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을 활발하게 하기 위해 학교를 신축하고 교육을 장려했다. 유대교인들 중에서 남자는 12세에 성인식을 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조건 또한 '율법을 읽고 외울 줄 앎'이 포함된다. 예수의 직업은 그의 아버지인 나자렛의 요셉의 직업을 물려받았으며, 단순히 나무만 베는 목수가 아닌 '테크톤' 즉, 집안의 집기류부터 시작해 신축공사까지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29] 미국에서 들어온 신사도 운동을 직수입하는 경우도 있다. 신사도 운동은 사이비성이 짙어 교회 내부적으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데... 이걸 따르는 사람들은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탄이 나에게 시련을 주는구나'라고 생각하지 좀처럼 바뀌려 하지 않는다.[30] 불교그리스도교 신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신이라는 존재를 인간이 결코 초월할 수 없는 유일무이하고 전지전능하며 절대적인 존재이자 섬기고 복종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신들 역시 인간을 포함한 세상 만물들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윤회와 운명에 매여 있는 존재이고 인과윤회라는 전우주적인 법칙 앞에서는 인간도 신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기에 창조주의 전지전능함을 말하는 그리스도교 신학과 충돌할 수 밖에 없다. 유대교이슬람교의 경우는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한 유일신에 대한 인간의 복종을 강조하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와 신학적인 관점은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그리스도교에서 결코 바꿀 수 없는 신앙의 기조로 삼는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이자 완전한 인간이며 주님의 아들로써 인간의 몸을 입어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어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라는 문구에서 '''예수를 완전한 신이자 완전한 인간이고 신의 아들로 보는 것'''은 결코 용납하지 않기에, 서로 충돌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이건 저마다의 논리나 철학이 분명하게 하나씩 버티고 있는지라 무엇이 옳다고 딱 잘라서 어느 한쪽을 편들 수도 없는 문제다.[31] 가톨릭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에 충실한다는 점에서는 개신교와 같은 포지션이지만 그것을 개신교만큼 강경하거나 일상 생활에서 두드러지게 강조하지는 않고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오의 복음서 7장 21절)라는 예수의 발언을 융통성 있게 해석해서 "예수님밖에 구원이 없기는 하지만, 예수님 믿는답시고 뭐든지 다 해도 용서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정도. 이 앞부분이 뭔가 대단한 것마냥 써있지만 결국은 '''강요하지 말라'''로 귀결되는 것으로 조금만 생각해도 아주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고 신교 탄압을 일삼던 가톨릭이 공식적으로 사과도 하고 그런 행위를 이제 안하는지, 어떻게 바꿀 수 있었는지에 관한 답은 간단한 것이다. 합리적인 현대 국가의 법쳬계가 방지하는 것도있겠지만 '''강요를 안한다'''는 것이다.[32] '''당연히 개신교입장에서도 그러는 게 정상'''이다. [33] 비리를 저지른 해당 교회의 담임목사의 친인척이 바로 HBC 사장이었다.[34] 구해줘(OCN)의 백정기 교주, 사이비(애니메이션)구해줘 2성철우 목사와 최경석 장로, 의뢰인(2011년작 한국 영화)의 피해자 어머니.[35]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는 등 신앙생활 자체에는 열심이지만, 중요한 기로에서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나, 종교를 내세워 자신의 죄를 덮으려 하는 경우다. 밀양(영화)의 신애와 살인범, 심장이 뛴다(2011년작 한국 영화)의 연희, 친절한 금자씨의 전도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유정 어머니, 4인용 식탁의 정원 아버지, 도가니(영화)의 성폭력 가해자들, SKY 캐슬의 영재 어머니 명주,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 양부모, 사랑의 불시착의 세준 아내 혜지.[36] 교회가 권력과 유착해 권력을 이용하는 모습이다. 아르곤(tvN)의 방송사 사장, 내 ID는 강남미인!의 도상원 국회의원, 작은 신의 아이들의 천인교회, 블랙머니(영화)의 임승만 장로.[37] 리턴(드라마)김학범 교수, 독전의 브라이언, 1987(영화)(다만 본작에는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쫓기는 사람들을 숨겨 주는 교회의 모습도 제대로 나온다.)의 조 반장, 타인은 지옥이다의 엄복순.[38] 독실한 신자였던 사람들이 마주치는 어려움에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종교의 실상이다. 오로라 공주(한국 영화)의 오 형사, 파괴된 사나이(영화)의 주영수 목사, 그놈 목소리(영화)의 경배, 사바하의 박웅재 목사.[39] 윤희에게의 윤희 가족.[40] 유일하게 개신교를 긍정적인 모습으로 묘사한 작품이 완득이(영화)인데, 완득(유아인 분)의 담임 선생님으로 등장하는 동주(김윤석 분)는 자립이 어려운 이주 노동자를 돕는다. 동주는 자신을 교회 전도사라고 소개하며 동네 교회를 운영한다. 그는 예배당을 이주 노동자를 위한 쉼터로 제공하고, 교회 내 외국인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완득이 어머니(이자스민 분)를 찾아 주기도 한다. ·담배를 금하는 개신교인데도 불구하고 저런 것들을 서슴지 않는 그가 운영하는 교회를 '사이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동주는 "교회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니까 내가 전도사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야말로 참 교육자와 참 목회자의 표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