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에로니무스
1. 개요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는 기독교의 성인이다. 이름의 그리스어 발음을 한글로 옮기면[1] '에우세비오스 히에로뉘모스' 정도가 된다. 고전 라틴어로 읽으면 '에우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 정도가 되지만, 한국 가톨릭교회에서는 대중 라틴어로 읽어서 흔히 '예로니모'라 한다.[2] 영어권에서는 제롬(Jerome)이라고 한다.[3] 축일은 가톨릭, 루터교회, 성공회에서는 9월 30일, 정교회에서는 6월 15일.
2. 생애
347년 판노니아 국경 근처의 달마티아 속주 스트리돈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고 기독교인 부모의 영향으로 세례성사를 받았으나 뒤에 이교를 믿었다. 그러나 큰 병을 앓은 후 회심하여 수도공동체에 입회하였다가 안티오키아에서 온 한 사제의 영향으로 동방[4] 으로 건너간 후 그곳에서 히브리어를 배웠고 또 사제로 서품되었다.
교황 성 다마소 1세의 부름을 받고 그의 비서사제 생활을 하며 성경 번역 겸 해설가 직무를 맡았다. 이때 교황은 그가 당대 최고의 성서학자임을 알고 당시 사용되던 여러 번역본을 토대로 만족할 만한 라틴어역 성서를 출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예로니모는 처음에는 70인역 성서를 번역대본으로 삼아 새로운 라틴어역을 펴냈다. 그러나 70인역 성서와 히브리어 필사본을 검토한 뒤 좀 더 원전에 가까운 문서를 번역대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판단하여 다마소 1세의 선종한 뒤 389년 무렵 베들레헴에 수도원을 세우고, 예수 성탄 성당 지하동굴에서 제자 성녀 바울라와 성녀 에우스토키움 모녀(母女)의 도움으로 히브리어 성서를 토대로 구약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하였다. 이 번역본을 예로니모가 팔레스타인으로 가기 전에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과 합본하여 '불가타(Vulgata) 성서'라는 이름으로 가톨릭교회에서 표준 라틴어 성서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라틴어 성경하면 보통 불가타 성서를 말한다.[5]
그 외 니케아 공의회 때 결정된 니케아 신경의 핵심인 삼위일체론 교리에 관한 연구를 통해 삼위의 각 페르소나(위격)개념 정리를 더 구체적으로 정립했는데, 당시 그 누구 보다 삼위일체에 관한 깊은 고찰과 깨달음으로, 이를 바탕으로 후일 가톨릭 교회를 비롯한 모든 정통 기독교의 핵심인 삼위일체 교리와 부활의 의미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선종 후 그의 작업실이었던 동굴에 매장되었으나 후에 십자군들이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성모설지전 성당)으로 이장하였다. 성인은 유언으로 "나는 영원히 이곳에서 잠들기를 바란다." 하는 말을 하였고 관에 새기기까지 했는데, 십자군 뭥미...
예로니모는 폭넓은 학식, 특히 고전, 성서, 기독교 전승에 대한 이해로 유명하며. 성인이 쓴 성서와 금욕주의·수도원주의·신학에 대해 쓴 수많은 저서들은 중세 초기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예로니모가 마지막 34년 동안 팔레스타인에서 남긴 문학 유산은 당대의 논쟁들, 성서에 대한 열정, 수도원 생활의 산물이다. 서방 가톨릭 교회의 4대 교부(성 암브로시오, 성 아우구스티노, 성 대 그레고리오)이자 교회학자이다.
3. 전설
대개 성화 중에서 삐쩍 마른 노인이 사막 한가운데나 동굴에서 고행하고 있는 그림이면 99% 예로니모를 그린 그림이며 거기에다가 돌을 쥐고 가슴을 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면 100%인데, 사막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가슴을 돌로 쳤다고 전한다. 또한 중세에는 추기경에 준하는 대우를 받아 빨간 추기경 모자를 쓰고 있는 성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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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니모는 사막에서 고행을 하며 신앙을 키웠다고 한다. 그렇게 고행하던 중 갑자기 사자가 나타나 잡아먹힐 각오를 하고있는데, 사자가 가만히 낑낑거리고만 있어 자세히 보니 발에 가시가 박혀있어 뽑아주었더니, 이후 사자가 예로니모를 졸졸 따라다녔다고 한다. 고로 성화 중에서 삐쩍 마른 노인과 그를 애완동물마냥 쫄쫄 따라다니는 사자가 나온다면 예로니모를 그린 게 확실하다고 보면 되며 서재에서 책을 쓰는 그림에도 사자가 따라붙어 있다.
불가타 성경을 쓸 때 불경하게도 자신이 이전에 심취한 그리스 로마 신화나 유명 문학 작품들의 문체를 인용해 썼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천국에서도 그 죄 때문에 미카엘 천사에게 후드려 맞고 있을 거라는 농담이 있다.
특히 본의 아니게 이 사람에게 능욕(...)당한 성인이 한 명 있는데, 그 바닷물 가르는 기적으로 유명한 모세다. 모세의 외양을 묘사한 히브리어 원전에는 "...모세의 머리가 빛으로 둘러싸여..."라고 했는데, 히브리어로 빛과 뿔이 거의 표기가 비슷한 바람에 예로니모가 "...모세의 머리에는 뿔이 나 있어..."라고 오역해버렸다. 게다가 구약성경의 문화에서 뿔은 권위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그 또한 그럴 듯했다. 그 때문에 수백 년 간 예술가들이 모세를 그릴 때마다 뿔을 그렸는데, 머리에 흉악스럽게 뿔이 난 건 악마들뿐이니 작고 귀엽게(?) 묘사했다. 제일 유명한 케이스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모세 성상. 물론 예로니모의 번역을 수정한 '노바 불가타'에서는 이 유명한 오역을 원전에 맞게 수정하였다.[6]
[1] 코이네 기준.[2] 예로니모 본인도 고전 라틴어가 아니라 대중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했으므로, 이는 적절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3] 한국에서는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자들이 보통 이렇게 표기한다. 그들은 불가타 역시 영어식으로 벌게이트라고 표기.[4] 당시의 관점에서는 팔레스타인/아프리카 또는 동유럽 지방.[5] 하지만 당시에는 불가타 성서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었다. 위 각주에 나온 전설을 신봉한 나머지, 개인의 번역이 어떠한 귄위도 없다고 본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이예로니무스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보내어 그의 불가타 번역을 비판했다[6] 출애굽기 34:39 - "... quod cornuta esset facies ..."(불가타), "... quod resplenderet cutis faciei suae ..."(노바 불가타), "... 자기 얼굴의 살결이 빛나게 된 것을 ..."(공동번역). 출애굽기 34:35 - "qui videbant faciem egredientis Mosi esse cornutam ..."(불가타) "Qui videbant cutem faciei Moysi resplendere ..."(노바 불가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쳐다보면 그 얼굴 살결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공동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