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인천 아시안 게임/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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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의 종목 중 야구에 관한 상세 문서.
2. 경기 진행 방식
최초 10개국이 참가하는 것으로 조 편성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지만, 필리핀과 이란이 최종 불참 통보를 하면서 총 8개국이 참가하게 됐다. 이로 인해서 각 조별 4개팀으로 편성되었다.
3. 로스터
3.1. 대한민국 대표팀 로스터
3.2. 대만 대표팀 로스터
주요 선수들의 설명 및 성적을 보려면 이곳을 참조. 다만 이 출처에 있는 엔트리는 장위청이 샤오보팅으로, 쩡런허가 궈쥔린으로 대체되기 전에 작성된 것이다. 대한민국, 일본보다는 대학생 선수가 많다.
3.3. 일본 대표팀 로스터
아시안게임에 사회인야구에서 선수들을 선발하는 일본 대표팀의 특성상 전원 사회인야구 팀선수들로 구성되었다. 굵은 글씨는 프로에 진출한 선수들이다.[4]
사무라이 재팬 홈페이지 참조.
3.4. 중국 대표팀 로스터
4. 경기 결과
5. 기타
준결승 중국전과 결승 대만전에서는 9개 구단 응원단장들이 총출동해 1루 응원단상에서 연합 응원전을 펼쳤다. 단체곡의 경우에는 LG 트윈스의 승리의 노래, 한화 이글스의 캐논 등의 응원가에서 구단명을 대한민국으로 바꿔서 불렀고 선수들의 개인 응원가 역시 구단명이 들어가는 부분을 한국 혹은 대한민국으로 바꿔서 불렀다.[9] 그 외에도 다른 때에는 볼 수 없었던 응원단장들의 단체 질풍가도 응원과 경기장 내의 일부 대만 관중을 제외한 거의 모든 관중들이 일어나 대한민국 구호에 맞춰서 한화 이글스의 육성응원을 하기도 하였다.
다만 결승전인 대만전이나 준결승전에서 초반에 고전한 중국전 빼고 죄다 쉽게 이긴 경기라고 하여 야구사이트에서조차 너무 맥빠졌다는 평도 많았다. 오죽하면 류중일 감독이 인터뷰에서 금메달 따고도 반응이 차분한 종목은 야구 뿐이라고 하소연했을 정도였고 게다가 남자 농구가 아시아 최강급으로 나온 이란을 혈전 끝에 금메달을 받았다든지 남자 축구도 무실점에 28년만에 금메달을 받아서 야구계 금메달이 더 묻힌 점도 있었다. 하여튼 아시안 게임에서는 역대 2번째 남자 구기종목 금메달 트리플 첫 금메달을 야구가 거뒀다. (처음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농구와 배구,야구 남자 금메달 트리플)
6. 아시안 게임 이후
- 잠시 중단됐던 2014 프로야구가 다시 이어졌고, 한국시리즈는 11월 11일이라는 매우 늦은 시기에 끝났다.
- 결승전에서 노아웃 1,3루를 무실점으로 막아내 역전승에 공헌한 안지만은 시즌 후 FA 계약 몸값을 두둑히 받으며 친정팀 삼성에 잔류했다.
- 인천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 주축 선수들로 나온 김광현, 양현종, 강정호는 시즌 후 순서대로 포스팅을 시도하며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모했다. 하지만 김광현은 200만 달러 포스팅 입찰가라는 굴욕적 결과가 나왔고, 그걸 감수하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협상에 들어갔지만 샌디에이고에서 로또 불펜으로만 보는 계약 조건 제시에 틀어져 국내에 잔류했다. 친정팀 SK에서 메이저리그 진출 기자회견이라는 생색내기를 잔뜩 넣었기 때문에 흑역사가 됐다.
- 양현종은 김광현보다 더 굴욕적 결과를 낳았다. 진출 전 국내외로 잔뜩 언플을 받았지만 김광현보다도 적은 연봉인데다 입찰팀도 어디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양현종은 에이전트의 언플까지 더해 협상하러 가게 해달라고 고집을 부리면서 KIA팬들에게 쌓았던 호감 이미지를 완전히 갉아먹다가 입찰을 거부하며 해외진출은 없던 일이 됐다.
- 마지막 주자이자 유일한, 그리고 최초로 타자로 포스팅을 시도한 강정호는 500만 2015 달러라는 아주 대박은 아니지만 아시아 내야수에 대한 메이저리그의 시선과 실패 사례들을 감안해 꽤나 선전한 결과가 나왔다. 문제는 입찰팀이 피츠버그 파이리츠인데 재정이 넉넉한 팀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내야는 이미 갖춰진 상황에서 말 그대로 뜬금입찰이다. 그러다보니 한동안 위장입찰 논란이 있고, 현지 피츠버그 언론도 의외라는 반응이 태반. 물론 피츠버그의 입찰 의도가 어쨌던 피츠버그가 위장입찰을 할 이유는 없다. 외야수도 아닌 내야수, 그것도 아시아 야구 유격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처참한 실패를 겪어와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인데 500만 2015 달러나 써가며 그 신뢰하기 힘든 포지션인 유격수 선수를 다른 팀들이 데려가지 못하게 위장입찰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쨌든 이 논란은 2015년 강정호의 대활약으로 일단락 되었고, 피츠버그 현지에서도 이런 선수를 어떻게 그 가격으로 사왔냐며 놀란 분위기. 자세한건 강정호/2015년 문서에서 확인하자.
- 꽤 세월이 흐른 뒤 일본야구에서 주니치,요코하마와 같은 팀들이 소속 야구단의 로스터를 아낀답시고 1~3년 뒤에 프로구단으로 지명되는 것을 전제로 아마추어 야구팀들에 NPB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을 박아두는 행위가 이 후에 발견되어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육성형 용병을 키운답시고 해외에 자신들의 제대로 된 시설은 투자 하지 않으면서 2군 로스터에 용병들을 채우고 그 만큼 부족해진 토종 선수들 자리를 아마추어 야구단을 통해 보강하겠다는 졸렬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1] 쩡런허(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리그 데이토나 컵스 소속)의 어깨 부상으로 대체투입되었다.[2] 대만 팝콘 리그 소속.[3] 대만 팝콘 리그 소속.[4] 참고로 이들 중 사실상 1,2년 내로 NPB 진입과 소속 팀이 사실상 결정난 선수들도 섞여있기에 사실상 순수 아마추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주로 주니치,요코하마가 이런 가계약을 사용하여 로스터를 아끼는데 이로 인한 야구계의 비판도 어느정도는 존재하는 편이다.[5] 2015년 드래프트 대졸사회인 투수 최대어 중 한 명. 그러나 평균구속이 겨우 140km/h로 느렸기 때문에(최고구속은 146km/h) 느린 구속이라는 약점을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4년만에 방출당했다. 현재는 롯데의 배팅볼 투수.[6] 가타야마 준이치의 부상으로 대체 선발[7] 도요 대학-미키마우스 출신. 여담으로 도하 참사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8] 2006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육성선수로 활동 했다.[9] 예를 들면 박병호의 응원가를 "오오오오~ 홈런! 오오오오 홈런! 대한민국 박병호~ 오오오오오오오오오 대한민국 박병호~" 하는 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