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정파)
1. 개요
1994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존재했던 한국의 학생운동 조직이자 정파. NL과 PD의 대립구도를 넘어서는 학생운동을 추구하였으며 실제로도 중간자적 정파인 제헌의회그룹[1] 에서 파생된 정파이다.
2. 역사
민중당 청년학생위원회에 모였던 진보학생연합(진학련)[2] , 진보정치대학생연합(진대련), 생활진보대중정치대학생연합(생대련. 일명 '생때')[3] 3개 조직이 1993년 통합하여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라는 공개조직을 출범시키면서 등장하였다.
21세기에 참여한 NL 비주류 그룹은 제헌의회그룹(CA)의 후신으로 주체사상을 따르지 않아 '''비주사NL'''로 불리던 계열로, 서울대에선 통칭 '관악자주파'라고 불리는 다수파였다. 특히 1992년 전대협의 마지막 의장이었던 서울대 태재준 총학생회장이 바로 관악자주파였다. [4]
이들은 반미, 남북통일운동에 주력한 NL이나 노동운동에 집중한 PD와는 달리, 이른바 '부문운동'을 강조하며 학생운동조직의 대중성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물론 통일 및 노동운동 역시 병행했지만 다양한 학생자치활동 및 지역연대활동이나 환경운동, 여성주의, 대학개혁, 학내 복지 등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서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노선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지금은 학생회 선거에서 "학내복지" 공약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90년대 초중반만 해도 21세기처럼 "학내복지에 신경쓰겠다"는 공약을 내걸면 기존 운동권들로부터 대학생들의 이기주의니, 대중추수주의니 하는 비판을 받았다.
학생운동 정파 또는 학생정치조직이 아니라 NGO에 가까운 대중운동단체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물론 외부에서 볼 때는 '''다 똑같은 운동권'''이었지만, 21세기 출신이 총학생회장에 당선되면 주류 언론에서도 <온건좌파 학생단체>라는 표현을 썼다.
출범 이후 많은 대학의 학생회를 수권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학생운동세력 내에서 21세기의 입지는 매우 좁아졌다. NL과 PD의 대립 구도를 벗어나고자 했던 태생 때문에 운동권 내부의 시각으로 볼 때 지향이 애매모호했고(굳이 따지자면 온건PD 사민주의적 진보운동 추구), 비폭력 직접행동을 내세우는 실천방식으로 기존 조직들에게 개량주의 또는 조합주의라는 비판을 듣거나 심지어 '비운동권'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실제로 초기에는 21세기가 수권했던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출범식에 이수성 총장이 참석해 축사를 할 정도였다. [5]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의 전성기는 90년대 중-후반으로, 주요 국공립대 및 일부 사립대를 중심으로 30여 개 학교에 조직을 두고 10여 개 학교에서 총학생회장을 배출했다. 특히 서울대에서는 9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1년 걸러 총학생회장을 배출하는 등 21세기 조직의 코어 역할을 했다. 94년부터 2002년까지 약 7년여에 걸쳐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는 21세기와 PD계열 조직인 대장정[6] 이 1년씩 번갈아가며 당선되는 법칙 아닌 법칙이 존재했다. 서울대의 경우 전대협-한총련 전환기의 주류세력, 소위 관악자주가 21세기로 결합했던 관계로 특히 사회대/법대/공대를 중심으로 21세기의 세가 강했다.
1996년 조직사건으로 핵심 멤버들이 구속되는 사건도 겪었다(5명 기소유예, 6명 집행유예).
90년대 말 ~ 2000년대 초 학생운동이 급격히 몰락하면서 학생운동 주요 계파 중 가장 먼저 해소되었다. 학생회 수권 중심의 학생운동을 지양하고,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활동에 집중하자는 것이 당시 해소의 명분이었다.
3. 진보정당 활동
21세기는 노동 현장 진출이나 혁명조직 건설을 목표로하는 다른 PD정파들과는 달리 합법진보정당건설에 집중하였다. 1997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의 국민승리21에 적극 결합하였고, 이후 민주노동당 건설에도 앞장섰다. [7]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진보신당-정의당 등에서 활동을 계속하기도 하고, 민주당에서 당내 소장파로 활동하기도 하며,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운동에 진출하거나, 민주노총 법률원이나 민변계 로펌에서 일하기도 한다.
4. 주요 인물
-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제20대 국회의원 (서울은평을) -서울대 농경제. 재학시 총학생회장 (1993년 11월 당선).
- 김재왕 공익인권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소속)- 서울대 자연대
- 김태권 만화가- 서울대 미학과
-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제20대 국회의원 (서울은평갑) - 서울대 법대
- 송상교 민변 사무총장. 양승태 대법원장이 만든 블랙리스트 No.3- 서울대 법대
- 신장식 변호사, 정의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 서울대 정치학
- 오태양 미래당 대표. - 서울교대
- 이기중 정의당 관악구의원 - 서울대 서양사학. 2005년 21세기 진보학생연합 마지막 대표.
- 이성권 전 바른미래당 부산시당공동위원장 겸 지역위원장 (부산 부산진을) - 부산대 철학과
- 이완배 민중의 소리 기자 - 서울대 국제경제학
-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 서울대 서양사학
- 정준희 서울대 신문학과, 언론학자.
- 이탄희 서울대 법대 졸업, 전 판사, 21대 국회의원 당선(용인시)
5. 관련 문서
- 제헌의회그룹
- PD(정파)
-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 민중당
- 더불어민주당: 타 진보정파와 달리 21세기는 독자적인 진보정당이 아닌 민주당에서의 진보정치를 구현하려는 구성원이 꽤나 있다. 해당 기사
- 21세기 한국 대학생 연합(한대련): 이름만 유사할 뿐 아무런 인적, 조직적 연관도 없다[8] . 한대련은 NLPDR 중에서도 사실상 경기동부연합의 학생조직의 역할을 하였다.
- 미래당: 현재 21C 계통 정당의 대표주자.
- 청년당(2017년): 다만 이쪽은 경기동부연합과의 연관성이 지적되어 확실하지는 않다. 어차피 지금은 해산되었고...
[1] CA다수파 - NL좌파 - 21C[2] 인민노련-진정추와 연계한 학생그룹[3] NL 주류의 북한 추종 경향에 비판적인 NL 비주류 학생그룹[4] 태재준은 주체사상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장 취임 뒤 맹목적으로 북한을 추종하던 주사파 계열의 전대협 간부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기부에 체포되면서 의장으로서 거의 활동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당시 전대협 간부들이 눈에 가시같던 태재준 의장을 고의적으로 안기부에 넘긴 것이라는 음모론이 있을 지경.[5] 이수성은 서울대 법대 교수 출신으로 학생처장과 총장 시절 학생운동에 상당히 유화적이었다. 특히 1980년 서울역 회군 당시 학생처장으로 어떻게든 학생들의 피해를 줄이고자 신군부와 협상을 진행해서 시위대 전원 무사귀가와 안전보장을 확약받고 학생들을 설득한 사례도 있다. 이후에도 계속 학생편을 들다가 결국 보안사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해서 허리가 안 좋은 사람이다. 정치적으론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지만, 학생운동에는 유화적이었던 인물. 서울대 총장 시절 조교가 바로 조국(인물)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당시 조국은 박노해가 주도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약칭 사노맹)' 조직원이었고, 결국 감옥까지 다녀왔다.[6] 전국학생연대회의를 거쳐 현재 전국학생행진으로 이어지는 계열.[7]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이후 NL 이 장악했다. . 해소 후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활동을 모색했던 멤버들도 NL의 벽을 넘지 못하고... . NL은 민주노동당에 잠입하여 있던 조직을 말아 먹었다. 군자산의 약속을 참조하면 좋다. [8]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의 21C는 NLPDR 중 주체사상에 반대하던 그룹 중 일부가 분리되어 생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NLPDR의 일원이었던 적은 있지만, 한대련의 일원이었던 적은 없다. 21C처럼 주사파의 NL 잠식에 반발하여 독립한 정파로는 제독PD, 뉴라이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