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동부연합
1. 개요
대한민국의 NL계열 운동권 정치집단. 흔히 '''경기동부'''로도 불리며, 해산된 통합진보당과 현재의 진보당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이석기를 비롯한 핵심세력은 지하조직인 민혁당에서 활동하였기에 NL계열 중에서도 강한 친북적 경향을 띠는 편이다.
외형적으로는 1991년에 결성된 진보세력의 전국통합조직이었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약칭 전국연합')의 산하 지역연합인 경기동부연합(성남연합에서 명칭 변경)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내부 핵심 인사들은 북한에게 직접 지령을 받고 움직이다가 해체된 민혁당내 경기남부위원회(위원장 이석기) 출신이다. 이때문에 운동권 인사들은 증언이나 관련 기사를 보면 '경기동부연합은 존재 하지 않는다'던지, '경기동부연합이 아니라 경기남부위원회'라던지 하는 말이 섞여서 나온다. 즉 합법적 조직인 '경기동부연합'이자 불법적 조직인 '경기남부위원회'라는 이중적 신분인 것이다. 이것이 통진당 부정투표 사건이 터진 이후 언론과 대중들이 명칭에 대해 헷갈린 근본적인 원인이다.[1]
그러나 상급 조직이였던 전국연합과 민혁당이 이미 해체 되어 이들 조직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문제인데 일단 언론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명칭이 결국 경기동부연합이다. 이때문에 운동권 핵심원들은 '이른바 경기동부연합'이라고 지칭하며, 경기동부연합 인사들은 그런 조직이 없다고 주장한다.
2. 역사
이들의 유래는 1991년 결성된 진보세력의 전국통합조직이었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약칭 '''전국연합''')[2] 의 지역지부인 성남연합이고, 97년에 경기동부연합으로 변경하였다. [3] 2008년 전국연합이 해산하면서 지부인 경기동부연합 조직도 이때 공식적으로 사라진 것이 맞다. 하지만 조직 공식 해체 이후에도 이들은 진보운동 안팎에서 끈끈한 인적, 사상적 네트워크를 이루어 활동해왔기에 편의상 이들과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그룹들을 경기동부연합이라고 지칭한다. [4]
이들은 민주노동당에 집단 입당하며 세를 불려나가는데, 2008년 전국연합이 해산하고 나서도 강한 조직력을 유지했기에 계속 경기동부로 불리우게 된다. 말장난이지만 경기동부 세력인 정형주, 이정희는 경기동부연합은 실제로는 없는 조직이라며 낄낄 되었고, 이에 김영환(1963), 진중권같이 운동권 핵심부에 접근 해본 사람들이 언론에 기고하기를 경기동부연합의 실체는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라고 하는 것이다.없어진 줄 알았던 민혁당, 민노당 이어 통진당까지 장악.
그러나 핵심세력은 비슷한 시기에 지하조직인 민혁당(중앙위원 김영환)에 집단가입하여 '''경기남부위원회'''(위원장 이석기)에 소속된다.[5]
요약 하자면 외형상 간판인 경기동부연합은 1991~2008년에 해산한 전국연합 산하 조직이며, 그 핵심은 지하조직인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이다. 주요 활동가들은 성남시-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 출신이며, 이들의 확고한 리더는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석기이다.
역사적으로는 광주대단지사건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성남 자체가 광주대단지 조성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다 보니 고향은 대부분 타지이다. 거점학교로는 용인에 있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舊 용인캠퍼스)가 핵심이다. 경기동부연합의 리더격인 이석기의 경우 전라남도 목포 출신의 이주민으로 성남의 성일고등학교와 한국외대 용인캠퍼스를 졸업했다. 특히 성일고의 경우 이석기의 직계후배들로 분류되어 성남내 조직 구성때 주요 포스트를 담당한다.[6]
북한의 지령을 직접 받아 활동했던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에 다른 NL계열들에 비해[7] 주체사상파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8]
반면에 대선후보로까지 나간 통진당의 얼굴마담 이정희의 경우 지하에서 활동하던 이석기와 김재연이 대중성이 없었기 때문에, 대중성을 위해 끌어들인 케이스다.[9] 그 외에 김미희 등 일부 서울대 출신이 경기동부연합의 지도부를 형성한다.
즉 성남 출신이거나 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를 나와야 경기동부연합의 핵심으로 편입될 수 있고 그 외 관할지역인 하남시, 경기 광주시, 용인시, 이천시, 여주시, 양평군 출신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용인시에 있는 단국대 출신이 약간 명 있는 정도. 원래 명칭도 "성남"연합이었으나 영역확대(?)에 따라 97년경에 경기동부연합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후 조직 확장을 위해 수원시, 화성시, 오산시, 평택시, 안성시를 관할하는 경기남부연합 및 서울특별시를 관할하는 서울연합와 통합하였지만 기존에도 실질적으로는 경기동부연합과 경기남부연합, 서울연합 사이에는 유의미한 구분이 없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경기남부연합, 서울연합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봐도 된다.
조직원들 양대 공급처는 성남의 지역노조[10] 와 대학교 학생회이다.
엄밀히 말해 경기동부연합은 2008년 전국연합 해산과 함께 해체되었으므로 현재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깃발에 경기동부연합이라고 새겨서 운동을 하는 식으로 자칭하는 조직은 없다는 얘기. 하지만 조직 공식 해체 이후에도 이들은 진보운동 안팎에서 끈끈한 인적, 사상적 네트워크를 이루어 활동해왔기에 편의상 이들은 경기동부연합이라고 지칭한다. 서울연합, 경기남부연합도 따로 존재하지만, 그 둘 사이에는 구분이 없다시피 한 관계로 아예 서울, 경기남부도 경기동부의 일부로 취급한다.
운동권에서도 일반적으로 NL계열은 전국연합 당시의 지역조직을 기준으로 정파분류를 해 오고 있다. 통합진보당 내에서 광주전남연합과 행보를 같이했기에, 광주전남연합을 포함하여 통합진보당 당권파(범경기동부연합)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국연합은 2001년 처음으로 충북의 군자산에 모여서 6.15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집회를 열고, 연방제 통일을 제1과업으로 설정하고 과업달성을 위해 총력투쟁을 전개할 것을 선언하면서, 향후 10년간의 자신들의 목표와 실천방안을 담은 9월테제(일명 군자산의 약속)을 발표한다. 그리고 9월테제에 담긴 대로 NL운동가들은 민주노동당에 대거 입당하기 시작했고, 2004년 전당대회에서 NL계가 당권을 장악한다.[11]
사실 경기동부연합과 울산연합은 군자산의 약속 이전부터 개별적으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해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무래도 군자산의 약속은 당시 NL 최대 계파였던 인천연합의 집단 입당으로 의미가 있다. 초기에 민주노동당에서 용산 지구당 사태를 비롯해서 문제를 많이 일으킨 NL 정파도 인천연합이었다. 경기동부연합은 당시 한총련 혁신파[12] 였던 사람사랑 계열, 반미구국 노학연대선봉대(약칭 '노선대')[13] 등의 조직을 통해 서울, 경기지역 여러곳의 총학생회를 수권하며 학생운동의 주류로 올라선다. 이들은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나 다함께 등 범좌파가 주로 활동하고 있던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를 장악하고, 한총련을 이어 출범한 한대련도 장악하면서 학생운동부터 이어지는 활동가 유입구조를 확보하면서 NL계열의 주도권을 잡았다.[14] 당시 말하던 NL 주류는 인천연합을 지칭했다. 오히려 19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는 경기동부가 인천연합보다 사실상 "세련된" 운동을 주장하고 NL 활동가들의 지지를 이끌어 낸 것. 또한 인천연합계의 분화와 일정 수준의 과거 패권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연성화되면서 경기동부연합이 2000년대 중후반부터 NL 계열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3. 통진당 사건과 실체 폭로
2012년 3월 21일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 측 선거본부에서 3월 17~18일 치뤄진 야권연대 서울 관악구 을 선거구 경선에 부정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이것을 주도한 것이 경기동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실체에 세인들이 주목하게 되었다. 3월 22일에 진중권이 이정희 대표 주변에 계파가 존재한다고 폭로하였고, 이때 작성된 딴지일보 정치부장 물뚝심송이 쓴 우리안의 괴물 - 경기동부는 내용이 어렵긴 하지만 경기동부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글로 상당히 화제가 되었다. 앞서 언급한 진중권의 기사와 함께 이 두 가지 기사는 경기동부연합에 대한 각종 기사에 꼭 인용되는 글로, 경기동부 세력은 이 폭로글을 무마하기 위한 인터뷰를 한다.
그들은 위의 기사를 반박하기 위해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조직에 대하여 '실체가 없다, 이미 해산되었다며' 존재를 부인하며 논점을 흐리는데, 경기동부의 지도부 중 하나인 정형주(외대 용인캠퍼스 84학번, 전 민주노동당 경기도지부장)는 한겨레의 경기동부연합의 몸통을 만나다 인터뷰에서 진중권의 주장을 반박하며 경기동부라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통진당 이정희 대표의 경우 그 조직의 실체가 무엇인지 당 대표인 지금도 알지 못한다는 소리까지 하였다. 그러나 단체가 해산되었다고 해서 그 밑에 있던 사람들도 흩어진 것은 아니며, 주요 정당 내에 비공식적으로 계파로 존재하는 친이, 친박, 친노 등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문제는 이들이 한국 진보진영에 참여하여 특히나 한 조직에 침투해서 해당 조직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주도권을 빼앗은 뒤 공개되지 않은 지도부(소위 '비선')를 통해 조종하는 행위, 도장깨기에 능숙하다는 것이다.[15] 노동운동가들의 정당으로 출발한 민주노동당이 종북 논란으로 분당된 것도 이들 때문이다.[16][17] 하지만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건으로 이미지가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극좌 정치단체인 다함께(노동자 연대)에서도 까이고(#) 여타 운동권에서도 신나게 까이는 조직이다.[18] 무엇보다 민주주의나 평등,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문제가 있으면 어떠냐 정권만 교체하면 그만이지라는 태도가 큰 비판을 받을 만한 떡밥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거기에다가 2010년대 경기동부 계열의 학생회가 한대련의 주류계파로 부상하면서 한대련과 학생이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한대련이 2011년 반값등록금을 이슈화하며 호응을 얻었는데도 2012년 한대련이 수권한 학생회 수가 감소한 것도 학내 소통이 잘 안 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에는 각 지역 진보연대, 청년회,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등의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6년에 총선을 앞두고 창당한 민중연합당에 김재연, 김선동 전 의원을 비롯해 일부 경기동부, 광주전남연합 출신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득표율 0.61%로 정의당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는 건 물론 녹색당에조차 뒤지는 것으로 나오며 영향력의 감소를 확인하였다. 경쟁계파인 인천연합과 울산연합과 비교하면 더욱 처참한데 인천연합은 정의당 비례대표에서 당선자를 냈으며, 울산연합은 NL 색채를 완화하고 정의당, 노동당과 연대로 지역구 의원 2명을 배출했는데 비해 경기동부연합은 구미갑 선거구에서 38%의 득표를 확보한 것이 최대 성과[19] 이기 때문이다.
이후 내란음모사건으로 이석기가 구속되면서 개점휴업 상태이다. 이석기는 국회의원이 되는 순간까지 워낙 지하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경기동부연합 조직원이 아니면 주사파조차 그의 이름을 몰랐다. 아무튼 이석기가 구속되고 석방 자체에 가망도 없는 것을 보이면서[20] 점점 조직 자체가 와해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이 경기동부연합이 주체가 된 시위가 있었는데 "이석기를 석방하라"는 소리가 나왔을 때 시위대 쪽에서 '''"개소리 하지마라 주사파 개새끼들아"'''라는 비난이 일자, 한 달도 안 되어서 시위 규모가 축소되는 병크가 터져버려, 재기의 발판도 잃어버리고 만다. 여하튼 관객이 급조용해지자, 뭔가 이상한 걸 깨달으며 급히 다른 구호를 꺼내기도 했을 정도.
4. 현재
울산연합이 창당한 새민중정당과 합당하여 민중당을 창당하였고, 이후 진보당(2020년)으로 바뀌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김미희, 김재연, 홍성규 등이 민중당으로 출마했으나 모두 의미있는 득표를 하지 못한채 낙선하였고, 민중당이 1%대 지지율을 받으면서 비례대표로 출마했던 이상규도 낙선하였다.
참고로 경기동부연합은 더불어민주당 내 친이재명계가 크게 엮여있는 그룹이다.[21] 그래서 중도보수 성향 일반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안그래도 이들을 기생충, 제5열 취급하면서 굉장히 극혐하는데, 실제로도 더민주내 친이재명계와 같은 경기동부연합 계통인 진보당이 평소에는 그룹 특유의 상징색인 오렌지색을 잘만 쓰다가 이석기 석방 촉구 시위때는 '''일부러 더불어민주당의 색깔로 위장하고 시위를 하는 개념없는 뻔뻔한 짓거리'''를 하는 모습 등이 포착되면서 경기동부연합 패거리는 "역시 경기동부연합 출신 저놈들 특유의 그 더러운 수법은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다" 라는 식의 비아냥으로 더 더욱 가열차게 욕먹고 있다.
5. 경기동부연합이 배후라고 의심되는 사건들
- 민주노동당 시절 북핵 옹호 발언(진보정당들은 원래 기본적으로 반핵입장이다.), 2007 대선에서 본래 심상정과 노회찬이 대선후보로써의 지지율이 높았으나 이 둘이 분열한 틈을 타 권영길 후보를 대선후보를 내세웠고 거기에 선거운동만 잘했어도 상당한 득표율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을 뜬금없이(참고로 권영길 의원도 동의하지 않았다.) "코리아 연방"이라는 주요공약으로 내세워 참패했다던 2006년 지방선거의 10.2%는 물론이고 2002년 대선 때의 3.9%에도 못 미치는 3.0%의 득표율을 얻었다. 이 때문에 심상정 의원이 주도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했으나 비상대책위원회가 일심회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당원을 징계하려 하자 이를 부결시켜 이에 열받은 PD계가 대거 진보신당으로 탈당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는 5년 뒤에 통합진보당-진보정의당의 분당으로 반복되었다.
- 이숙정 전 성남시의원 행패사건 당시 여론의 비난이 엄청나게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징계가 매우 늦어졌던 사례가 있었는데 이때도 이숙정 전 의원의 배후에 경기동부연합이 있어 징계를 추진하려던 당내 여론을 막아주고 있었다.(그 덕분에 민주노동당은 여론으로부터 제대로 어그로를 끄는 바람에 욕만 더 먹었다.)
- 심상정, 노회찬 등이 중심인 PD파 계열이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을 만들게 된 게 이들 경기동부연합의 등쌀에 이겨내지를 못하고 결국 분당 사태로 이뤄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이 창당될 때 진보신당 독자파가 합당을 거부하고 잔류하게 된 이유도 경기동부 때문이다. 정확히는 경기동부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의 패권주의에 대한 문제의식, 자유주의 세력(국민참여당)과의 연립정부 노선에 대한 이견 등으로 인한 것이다.
- 통합진보당에서 서기호 판사를 영입하고 비례대표로 당선권에 두려고 방침을 정하자 이를 좌절시키고 당선권에서 먼 14번에 배치시키고 비례대표 당선권에는 모두 자신들 세력하의 인물들로 채워버렸다. 이 사건은 오히려 이정희 공동대표가 다른 공동대표들과 상의없이 영입했다가 서기호 판사만 새된 경우이다. 서기호 판사를 영입하려고 한 자리는 원래 촛불시위를 이끌던 박원석(전 참여연대 사무처장) 씨가 유력했던 상황이었다.(이건 시민단체 쪽 영입을 맡은 심상정 공동대표가 밀고 있었음) 비례대표 당선권까진 당권파가 차지한 것은 맞는다. 이는 당원들의 직선투표의 결과다. 쪽수가 많으니까... (물론 현장 투표에서...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래도 비례부정선거 문제로 인해 경기동부 측 인사가 제명되면서 서기호 판사가 당선되었으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 유시민 공동대표가 통합초기 당무를 거부하는 사태가 있었는데 이때도 통합경선을 준비하던 시기에 이들이 개입하여 여론조작 및 경선개입을 하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당내경선 룰이 비당권파에 너무 불리하다거나 불공정한 당 선관위 운영 때문이었다. (여론조작과는 다르다.) 결과는 유시민의 판정승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리 달라진 것이 없다는 평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2012년 총선의 비례대표나 지역구 선출 과정을 보면 판정승이라고 보기는 애매하다.
- 경기동부의 핵심인 성남시 중원구 전략공천에 성추행 전력이 있는 윤원석 후보(경기동부의 기관지격인 민중의소리 대표. 이석기도 민중의소리 이사 출신이다.)를 후보검증 당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통과시켰으며, 여론의 비난에도 꿈쩍않다가 윤원석을 사퇴시키고 옆 동네인 수정구에서 출마준비 중이던 김미희를 내세웠다. 그리고 김미희가 당선되고 국회의원이 되자 경기동부의 개입을 입증하면서 중원구민들의 분노를 사는 중이다.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부정선거가 있었음을 국민참여당 출신 당원들이 문제제기를 하였다. 비례대표 공천을 위한 경선 중에 온라인 투표 소스코드 유출, 경선투표 참가신청 명부와 경선현장에 비치된 경선투표 참가자 명부가 다른 점에 투표결과조작, 부정선거 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였고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검찰에 수사의뢰도 불사하겠다는 강경대응 방침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이 일의 배후를 '패권파'로 지목하였는데 사실상 '경기동부'를 지목한 것이나 다름없다.진상조사 내용 물론 여기에 더더욱 한심하기그지 없게끔 한 대 맞고 두 대 치는 것도 아니고 당권을 줄 테니 대충 넘어가자라고 뒷거래를 제안함으로써 점점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거기에 중앙위원회 때 폭력사태까지 일으키면서 막장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 2012년 8월 17일 경기동부 소속 백승우(역시 경기동부 소속 김미희 성남시 중원구 국회의원의 남편)가 유시민 前 공동대표를 비판하면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보좌관에게 사오게 하면 됩니까? 이게 노동자, 농민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는 짓입니까?"라면서 통합진보당 아메리카노 커피 사건을 일으켰다.
6. 경기동부연합의 정치 테크닉
경기동부연합은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들의 계파에 속하는 인물들을 마구 끌어다가 당권자나 위원장, 총선 후보로 꾸역꾸역 올리기 시작했다. 물량 공세에 질린 당 중앙위원들은 직장/집 주소로만 지구당을 선택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들었다. 그러나 경기동부연합은 특정 지역에 유령회사를 설립한뒤 자신들의 계파에서 추천한 후보를 밀어주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도봉구에 살면서 중구에서 일하는 민주노동당 당원이 관악구에 유령회사를 설립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도 관악구에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미는 예비후보 밀어도 되지?' 라고 하면서 당당하게 밀기 시작한 것이다.
연속적인 보궐선거로 파악해볼 때 조직에 지령에 따라 총 모을 수 있는 표는 35,000~40,000으로 추정되며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에 따르면 '당장 다음 날 아침에 삭발인원 300명을 모을 수 있다'고 한다. 가장 위엄쩌는 것으로는 '경찰들 무전기 주파수를 알아내서 미리 인원을 투입한다'고.' 김선동 국회의원이 최루탄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가? 하지만 김선동은 경기동부연합이 아닌 광주전남연합이고 최루탄은 운동권 시절 불발된 것을 주운 것이라 한다.
사실 당내 권력을 잡기 위한 정파 간 암투는 있을 수밖에 없고 설령 진보정당이어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룰을 지키지 않는다거나, 쪽수로 밀어붙이는 행태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 사태는 그동안 공공연하게 알려져있는 통합진보당 내의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사실 이들이 쓰는 방법은 역사가 오래된 방법으로 대학교 학생회장 선거에서도 써먹은 방법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체코슬로바키아의 무혈 쿠데타와 같은 동유럽 공산화[22] 나 러시아 혁명 이전과 당시의 볼셰비키[23] 의 행태에서도 비롯된 부분이다.[24] 사실 서구에서는 French Turn이라고 해서, 한자어로는 "가입 전술"#일본어 위키피디아이라고 하여 굉장히 오래된 전술이다.
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 사건이 밝혀지면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경기동부'의 실세, 이석기가 드러났고 이들의 비민주적인 행태와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용납하지 못하는 옹졸한 태도가 드러나면서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전국운영위원회의에 난입하여 회의진행을 막는 당권파들 (비공개로 전환)
사실 쪽수로만 밀어붙이는 상기의 방식은 적당한 수준에 가까운게 당권장악에 있어서 쪽수로 밀리거나 현 당권세력이 대외적으로 지지도가 굉장히 높아 건드리기가 애매한 경우에 하는 전법이 정말로 악랄하고 비민주적이라 할 수 있다.
당내야당이라는 스탠스를 취한답시고 하면서 당내에서 당지도부가 하는 일에는 무조건 반대를 하고 계파갈등이 심각한것으로 외부에 알리는 것으로 당조직을 와해시키며 현 당지도부가 무능하며 불통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서 내려놓게 만드는 전법 또한 이쪽 계열에서 자주 쓰는 방식이다.
지도부 정책에 무조건 반대만 하면서 당내 계파갈등 프레임으로 몰아가며 당대표가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책임지고 사퇴하라'며 난리를 치는데 이게 일반 지지자들이 보기에는 그냥 허구헌날 내부 싸움만 하는 무능정당으로 이미지가 급추락하고 그렇게 당 지지율이 떨어지면 지도부가 무능해서 그렇다는 프레임으로 또 사퇴프레임을 씌우며 당 지지율을 시궁창으로 만들며 당권을 장악하는 수법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적 이상이나 정치적 영향력은 거의 없는 껍데기만 남게된다. 이런 짓을 하는 이유는 정말 집권을 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고 당권을 장악해서 당비나 소수 비례대표 의석을 자기들끼리 독점해서 먹고살기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후 민주당에 기어들어온 경기동부. 정확히는 친이재명계가 2021년을 전후로 문재인을 아랫사람 제대로 못다루는 사람으로, 이낙연은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다며 공격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이 프레임을 밀기엔 전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민주당 내부에서 반문을 칭하는 것이 정치적 자살임은 알고있어서 대놓고 말하기보단 주변 각료들을 건드리는 상황이고, 후자는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입법을 얼마나 진행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억지 프레임이다. 그래서 이들이 밀고있는 이재명이 대외적으론 대선 지지율 1위를 확보하고 있지만 당 내에서의 입지는 사상누각에 가까운 상황이다.
7. 이정희를 얼굴마담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실 이정희를 경기동부연합의 얼굴마담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적절한게, 이정희는 PD 성향이 강했던 총여학생회를 이끌었으며 최종적으로는 경기동부연합이 아닌 서울연합 출신의 인물이다.
또 관악구 을 여론조사 조작 사건 때 경기동부연합은 이정희의 후보 사퇴를 만류하였으나 사퇴선언 불과 몇 분 전 측근들에게 사퇴결심을 통보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밀고나간 것을 보면 이정희가 무조건 정파에 휩쓸려 다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몇몇 보수언론들은 경기동부연합이 이정희를 대학 1학년 때부터 낙점했고, 남편 심재환 등이 집중적으로 가르쳐 기획했다고 주장하는데, 경기동부연합은 1991년에 결성된 조직이고 이정희는 대학생활을 1987년부터 시작했다.
1991년 결성된 조직이 1987년 입학한 대학 새내기를 낙점했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이다.
8. 관련 문서
- NLPDR
- 민주민족혁명당 사건
- 민주노동당
- 통합진보당
-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
-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
- 새민중정당
- 민중연합당
- 민중당(2017년)
- 진보당(2020년)
[1] 과거 버전 문서에는 이석기는 경기동부연합 멤버가 아니라 경기남부연합 출신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양자가 실은 한몸이라는 것을 헷갈린 것이다.[2]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등 14개 단체와 13개 지역연합으로 구성 되었다.[3] 이후 경기남부연합 및 서울연합도 사실상 흡수한다. [4] 일반적으로 NL계열은 전국연합 당시의 지역조직을 기준으로 정파분류를 해 오고 있다. 통합진보당 내에서 광주전남연합과 행보를 같이했기에, 광주전남연합을 포함하여 통합진보당 당권파(범경기동부연합)라고 부르기도 한다.[5] 단 이석기는 민혁당의 전신으로 1980년대 말에 생긴 반제청년동맹(반청)의 준비위원이었다. 즉, 민혁당 창설 전 단계부터 관여한 지도부 일원이었다.[6] 김재연은 외대 출신이긴 하지만 서울캠퍼스 출신으로 노선대 라인을 타고 합류한 케이스.(젊은 활동가들은 노선대-한대련 출신이 많다.)[7] 민혁당 영남위원회의 영향을 받은 울산연합도 만만치 않지만, 울산 노동운동계에서 PD계열과 협력도 자주 하면서 그나마 덜 한 편[8] 개인적으로 하부조직원들은 주체사상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조직운영이 상명하달식으로 이루어지는 데다가 진영논리가 강하게 작용하다보니 조직자체의 정치성향이 주체사상파가 되어버린 것.[9] 통진당. 그 중에서도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과 생사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서울출신에 서울대를 나와 경기동부연합과 학연지연적인 고리가 없으며, 이 때문에 약간 겉도는 모습이 있는데, 이석기가 수장으로 있는 RO 조직에 초대 받지도 못했다.[10] 대형공장이 없는 성남의 특성상 민노총 산하의 산별노조가 없고 지역 노조 중심이다.[11] 군자산의 약속이 2001년 쓰여졌고, 거기서 3년 내에 통일전선조직을 건설하고, 2012년에 공동연립정부 구성을 목표로 한다고 쓰여있다. 하지만 2012년 총선 공천과정에서의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건의 여파로 인해 일이 꼬여버렸다.(...)[12] 믿기진 않겠지만 경기동부는 '''과거 NL 주류의 패권적 행태를 비판'''하며 떠올랐다. 당시엔 한총련의 강경파(전남의 남총련 등)나 범민련을 비롯한 NL의 주류는 현실 문제보다는 반미, 통일 문제에만 집착했는데, 경기동부연합은 광주 대단지 사건 이후 성남지역의 도시빈민운동, 노동운동을 기반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민중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민족해방운동을 주장하였다.[13] 민혁당의 지도를 받았던 애국청년선봉대의 후신. 서울대, 고려대 등이 중심이 되었고 이후 자본주의 연구회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통합진보당 의원을 지낸 김재연이 외대 총학생회장 시절 이 계열을 대표해 한총련 의장에 출마하나 강경파에 밀려 낙선한다.[14] 다른 운동권 정파들은 젊은 활동가가 씨가 마르는데, 여기는 마르지 않는 샘물급이다.[15] NL계열에서도 다른 지역 조직들은 지도부가 당직, 공직 선거에 출마하며 공개적으로 활동했지만, 경기동부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에서야 진짜 지도부인 이석기 가 드러난다.[16] 북한에 민주노동당 당원명부를 넘겨주었다는 일심회에 참가한 조직원 다수가 경기동부연합 소속인 것으로 알려져있다.[17] 하지만 경기동부연합은 민주노동당 창당 때부터 있었던 조직이다.[18] 비판받는 것은 다함께도 비슷하지만, 다함께는 일단 국제공산주의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민족해방 계열인 NL과는 방향성 자체가 다르다.[19] 이것도 일대일구도로 인한 어부지리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20] 석방 카드를 꺼내들었다가는 문재인 정부는 무사하지 못 한다. 전두환의 전례가 있기 때문.[21] 정동영계로 정치활동을 시작했지만 정동영의 대선 참패 이후 사실상 기반이 없던 이재명이었기 때문에, 경기동부 텃밭에서 자립하기 위해선 경기동부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인수위원회나 시내 사업에 경기동부 인원이 자리잡기도 했다#.[22] 물론 이것은 당시 동유럽이 소련의 군사적 점령하에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23] 다수파라는 의미의 볼셰비키라는 말을 쓴 것부터 원래 러시아 사회민주당 내의 소수였던 자파 세력을 다수인양 포장하기 위한 전술이 담겨 있었다.[24] 하지만 꼭 좌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일단 2차대전 전후 미국이 이탈리아 총선에 우파 진영에 자금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개입하기도 했고 뉴라이트 계열에서 대학교 학생회장 선거에 자신들이 교육시킨 인원을 투입하여 그들에게 자금을 대주었다는 의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