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SB
1. 개요
클럽은 1947년 6월 7일, 루마니아 왕실의 몇몇 임원의 주도로 미하일 라스커(Mihail Lascăr, 당시 루마니아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왕립 군 클럽으로 창설되었다. 원래의 클럽 이름은 ASA 부쿠레슈티(Asocia ia Sportiva a Armatei Bucuresti)였다. 또한 축구부를 포함한 7개 부문 스포츠 클럽을 보유한 종합 스포츠 클럽이기도 했다. 이후 쿠데타가 일어나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되며 클럽 이름이 1948년 CSCA(Clubul Sportiva Central al Armateii), 1950년 CCA(Casa Centrala Armetei)로 개칭되었다. 이후 1961년 CSA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Clubul Sportival Armatei Steauai)으로 개칭되었다. 클럽의 새 이름 "스테아우아"의 유래는 루마니아어에서 “별”을 뜻하는 말이며, 붉은 군대의 상징인 붉은 별에서 채용되었다. 1950년대에는 게오르게 포페스쿠, 1960년대에는 슈테판 코바치,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는 임레 제네이와 스테아우아의 104경기 무패를 이끌었던 앙겔 요르더네스쿠까지가 스테아우아의 전성기라고 볼수 있다,
2. 리즈 시절
1986년 5월 7일 세비야의 홈구장인 에스타디오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에서 열린 유러피언 컵(현재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명문 FC 바르셀로나를 승부차기 끝에 2-0[5] 으로 꺾고 동유럽 최초로 유러피언컵을 제패한 클럽이 되었다. 다만, 쿠파 로므니에이 결승에서 영원한 라이벌인 디나모 부쿠레슈티한테 0-1 석패로 우승컵을 내주면서 동유럽 최초의 트레블에 실패한다.[6] 또한 같은 해 UEFA 슈퍼컵에서 디나모 키예프를 게오르게 하지의 골로 1-0으로 꺾고 국제 타이틀 더블을 달성하였다. 다만 도요타 컵(유럽과 남미 클럽 우승팀의 대결)에선 남미 챔피언인 리버 플레이트에게 0-1로 패해 우승에 실패했다. 그 뒤로도 유러피언 컵에서 1987-88 시즌에 4강 진출, 1989년에는 준우승[7] 하면서 국제 경기에서 안정된 전력을 유지하였다.
이 기간동안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유럽대회에서 무려 '''106경기 연속 패배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이는 2019년 기준으로 '''유럽 대회 최장기록'''으로 남아있다.
루마니아 국내에서도 리그 4연속 우승(1985-86, 1986-87, 1987-88, 1988-89)과 4번의 컵대회(1984-85, 1986-87, 1987-88, 1988-89)를 제패하였다. 또한 1986년 6월부터 1989년 9월까지 리그 104경기 무패 신화도 만들어 냈다. 1989년 루마니아 혁명으로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하며 군은 구정권과의 모든 연결을 끊는 것을 결정하였고 1991년 상징을 기존의 '별' 디자인에서 '독수리' 디자인으로 변경하였다. 또한 혁명 이후 운동 선수들의 해외 진출 규제가 폐지되면서[8] 게오르게 하지 같은 유명 선수들은 서유럽의 유명 클럽으로 이적하였다. 이후 유럽 컵대회에서는 고전을 계속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안정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현 구단주 조르제 베칼리는 부동산 재벌이고 정치인이며 스테아우아에 많은 투자를 하는 한편, 수시로 감독을 경질하였다.
1998년 UEFA의 규칙을 준수하기 위해 CSA 스테아우아에서 현재 이름인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Fotbal Club Steaua)로 개칭하였고 A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라는 비영리 단체에 의해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예전의 '별'의 상징도 부활시켰다. 하지만 이 뒤로 유러피언 클럽 대회에서 성적은 그다지 내세울 게 없어졌다.
3. 현재
구단주가 투자를 많이 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자국 리그 강호로서 남게 되었을 뿐, 선수 층 확보가 어려운 상황(당연히 잘한다면야 다른 상위 리그로 가니까)에서 2010년대 와서도 유러피언 클럽 대회에서 동네북, 승점자판기가 되었다. 챔피언스 리그 32강만 나와도 선전한 셈. 그리고 조 꼴찌는 자주 맡고 있고 잘하면 조 3위로 유로파 리그로 나가는 신세이다. 그나마 2005~06 시즌 UEFA 컵(유로파 리그 옛 이름)에서 4강에 올라간 것이 2000년대 와서 유러피언 클럽 대회 최고 성적이다(4강전에서 대회 준우승한 미들즈브러 FC에게 1승 1패, 원정 다득점으로 밀려 탈락).
그렇긴 해도 그래도 자국 루마니아 리그에선 여전한 강호로 군림 중이다. 리그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준우승도 13번, Cupa României도 최다 우승 기록과 준우승 8번을 차지하고 있다.
3.1. 2013-14 시즌
2013~14 시즌도 리그 1위를 유지하며(2014년 5월, 30라운드까지 21승 8무 1패) 사실상 25번째 리그 우승을 거둘 전망. 2위랑 승점 차가 10점이다. 결국 22승 11무 1패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FA컵인 쿠파 루마니아 결승에도 올라 5월 25일 리그 2위 아스트라 플로이에슈티와 결승전을 치뤄 득점없이 비겼다. 결국 승부차기 끝에 2-4로 패하면서 더블 우승은 실패했다.
라이벌 디나모 부쿠레슈티는 무려 19점이나 승점이 벌어져 4위로 우승은 좌절(루마니아 리그는 34라운드까지 치름)됐다. 더불어 쿠파 루마니아 4강전에서 스테아우아가 디나모를 5-2로 뭉갰다. 하지만 우승 실패로 그 빛이 바랬다.
3.2. 2014-15 시즌
14-15 시즌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PFC 루도고레츠 라즈그라드(불가리아)[9] 와 똑같이 1-0으로 1승 1패를 주고받아 승부차기 끝에 5-6으로 져서 일찌감치 챔피언스 리그에서 탈락하며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얻게 되었다.하지만 2승 1무 3패 조3위로 탈락했다.
14-15 시즌 리그에서는 리그 우승과 같이 쿠파 루마니아 우승도 차지했고 더불어 14-15 리그부터 새롭게 창설된 리그컵인 쿠파 리기도 우승하면서 리그 3개 대회를 싹쓸이하며 모두 우승했다.
3.3. 2015-16 시즌
15-16 시즌 유로파리그 플레이오프에선 노르웨이 로센보르그 BK에게 원정 0-3을 패한 탓에 홈 경기 1-0 승과 상관없이 득실로 밀려 탈락했다.
그리고 15-16 시즌은 전번과 달리 부진을 보였는데 리그도 5위에 그쳤고 컵대회도 4강에서 디나모 부쿠레슈티에게 2무 원정 다득점으로 밀려 탈락하며 무관에 그쳤다. 그나마 리그 챔피언십에서 2위를 기록하며 16-17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냈다.
3.4. 2016-17 시즌
하지만...16-17시즌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은 상대가 맨시티. 아구에로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홈에서 0-5로 참패했다. 맨시티 원정경기에서 6-0으로 이겨야하는 상황이라 챔피언스리그는 일찌감치 탈락한 셈.원정에선 쉬엄쉬엄한 맨시티에게 0-1로 져서 유로파리그 48강전이나 나가게 되었다. 48강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1차전 오스만르스포르 원정은 0-2로 졌다.그 다음, 2차전 비야레알과 홈경긴 1-1로 비겼다. 최종 조예선 성적은 1승 3무 2패로 4위 꼴지. 결국 16-17시즌도 리그 2위를 비롯하여 무관으로 끝났다.
3.5. 2017-18 시즌
17-18 시즌, 챔피언스 리그 3차 예선에서 빅토리아 플젠을 누르고 플레이오프로 올라갔지만 스포르팅 CP에게 5:1로 대패당하며 유로파리그 조별 예선에 나가게 되었다. 빅토리아 플젠과 또 조 예선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홈에서 3-0 으로 이기며 전번 시즌과 달리 이번 시즌은 초반 3경기를 모두 이기며 1위다..다만 조가 그다지 강호가 없는 행운의 조였던 점이 크다. 스위스 FC 루가노와 체코 빅토리아 플젠과 이스라엘 하포엘 베르셰바 BC가 상대이기 때문. 현재 감독인 니콜라에 디커의 큰 문제점은 유럽대항전 감독 경험이 얼마 없다보니 2차전 대비를 정말 못한다는 점인데 이 문제점이 제대로 발현되어 나머지 3경기에서 1무 2패의 졸전을 펼치며 초반 3경기 승리한걸로 간발 차로 조 2위를 기록하여 겨우 32강에 진출했는데 하필이면 상대가 SS 라치오로 결정됐다.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홈에서 1:0으로 승리하며 이변의 주인공이 되나 싶었는데, 앞서 언급한 디커의 경험 부족이 2차전에 대한 허술한 대비로 이어져 이탈리아 원정에서 임모빌레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는 졸전을 펼치며 1:5로 패배해 32강에서 탈락했다. 리그에서는 CFR 클루지와 엎치락 뒤치락 하며 1위 2위를 넘나들다 결국 승점 1점 차이로 CFR 클루지에 우승을 내줬다. 쿠파 로므니에이에서도 결승까지 간 돌풍의 클럽 FC 헤어만슈타트의 재물이 되며 대패하여 떨어지고 말았다.
3.6. 2018-19 시즌
유로파리그 2차 예선에서 슬로베니아 클럽 루다르 벨레녜를 만나 1, 2차전 모두 승리를 거두고 3차 예선에 진출했다. 3차 예선 상대는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1차전 원정에서 무승부를 거뒀으나 2차전 홈에서 알렘-에디 그노에레의 2골로 승리를 하며 유로파리그 최종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상대는 SK 라피트 빈으로 결정되었다. 라피트 빈을 상대로 원정에서 3:1로 패배하였으나 경기력 자체가 완전 말린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홈에서 2점차 이상 승리로 승부를 뒤집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였다. 홈 경기에서 2골을 먼저 득점하며 이게 현실이 되나 싶었지만 한 골을 실점하며 안타깝게 탈락하고 말았다. 그나마 희망이 있었던 스테아우아가 라피트 빈에 탈락하면서 안타깝게도 유로파리그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리그에서는첫 경기에서 FC 아스트라 주르주에게 패배하고 2라운드에서 디나모 부쿠레슈티를 만나 무승부를 거둔 후에 그 다음부터 승리를 해내고 있다. 핵심 선수인 콘스탄틴 부데스쿠를 중동으로 보냈지만 루마니아의 미래 올림피우 모룻산과 다재다능한 미드필더 카메르 챠카, 스타 라울 루세스쿠를 영입하여 전력을 보강하였다. 리그가 진행되면서 알렉산드루 스탄이나 미하이 로만 같이 필요한 자원들을 영입했는데 그 와중에 선수단이 포화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카메르 챠카를 다시 폴리테흐니카 이아쉬로 돌려보냈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영입해서 이적시장이 끝나기 전에 돌려보내는게 보통은 이해가 안되겠지만 스테아우아니까 가능하다. 현재 클루지가 주춤한 사이 리그 1위를 탈환하여 달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시즌 초이기 때문에 리그가 어떻게 돌아갈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우려했던대로 뜬금패배와 부쿠레슈티 더비에서의 삽질 무승부 등이 겹치며 클루지에게 1위를 내주었다. 꾸역승이라도 하면서 승점 3점을 꾸준히 쌓아가는 클루지와 대조적으로 쓸데없이 날리는 승점들 때문에 이번에도 우승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클루지와의 선두 단두대 매치에서 0:2로 홈에서 완패하며 승점차가 6점으로 벌어졌다. 3위 CS 우니베르시타타 크라이오바와의 승점 차이는 단 2점이다. 이 패배 이후 조르제 베칼리 구단주는 니콜라에 디커 감독을 해임시켰다. 후임으로 데려온 인물은 가즈 메탄 메디아슈의 돌풍을 이끌고 있던 미하이 테자. 이적시장을 앞두고 새 감독과 새롭게 클럽을 개편하려고 계획하였고 첫 번째 타겟은 이전 스테아우아 선수이자 저번 시즌 아스트라 주르주에서 활약을 보여준 플로린 마테이였다. 그 이후 FC 크로토네로부터 아드리안 스토이안, 터키 엘라지스포르에서 요안 호라를 영입하며 보강을 해냈다. 2019년 들어 1승 2무의 성적을 거두며 3위까지 떨어졌다가 CS 우니베르시타타 크라이오바와의 2위/3위 매치에서 총 3명이 퇴장당하는 난타전 끝에(스테아우아는 1명만 퇴장) 승리를 해내어 2위 자리를 다시 사수하였다.
4. 구단명 변경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는 원래는 루마니아 국방부가 소유하고 있는 스포츠 브랜드인 CSA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의 일원이었다. 이후 1998년에 민간 사업자에게 인수가 되면서 축구단은 독립하게 된다. 이때 이름도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로 변경하게 된다. 2014년부터 CSA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가 '스테아우아'라는 팀명에 대한 명명권을 주장하다. 법정 분쟁이 이어졌고, 2019년에 최종적으로 법원은 CSA의 손을 들게 되면서 FC 스테아우아는 이름에 대한 모든 권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후 2017년에 루마니아 축구 협회는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의 이름을 FCSB로 변경'''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이후 CSA는 CSA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라는 이름으로 2017년에 재창단 하여 루마니아 4부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된다. UEFA 클럽 계수와 같은 것들은 FCSB가 승계하지만,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같은 타이틀은 CSA와 공유하게 되었다.
5. 유니폼
클럽 창설 시에는 루마니아 삼색기를 본뜬 노란색과 빨간색 셔츠에 파란색 팬츠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왕립 군 클럽에서 국군의 클럽으로 전환 할 때 노란색이 제외되며 파란색과 빨간색이 공식 색깔로 남아있다. 현재는 빨간 셔츠에 파란 바지, 빨간 양말의 조합이 기본이지만 다른 패턴도 있다.
6. 라이벌
클럽의 가장 중요한 경기는 FC 디나모 부쿠레슈티(Dinamo București)와의 경기이다. 두 클럽은 루마니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축구 클럽이며, 이 라이벌전은 영원한 더비(루마니아 더비)라고 인기를 얻고 있지만, 서포터 간의 충돌도 종종 일어나곤 한다. 또한 루마니아 군과 내무부의 대리전이기도 하다. 흔히 에테르눌 더비(eternul derby)라 불린다.
7. 주요 선수
과거 루마니아 대표팀에서 활약하며 루마니아의 월드컵 최고 성적 8강 진출에 기여한 게오르게 하지와 미오드라그 벨로데디치 선수가 유명하다. 현 나폴리의 수비수인 블라드 키리케슈, 사우스햄튼의 수비수 플로린 가르도슈가 여기소속이었다. 우디네세의 축구선수인 시릴 테레우도 스테아우아를 거쳐간 바가 있다. 최근에는 RSC 안데를레흐트 소속의 알렉산드루 킵치우, AC 스파르타 프라하의 새로운 10번 니콜라에 스탄치우와 새로운 1번 플로린 닛서, ACF 피오렌티나 소속이었다가 최근에 AC 밀란으로 이적한 치프리안 터터루샤누가 거쳐갔다.
8. 그 외
이 팀의 최전성기를 구가할 당시엔 역대급 선수진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수비진엔 미오드라그 벨로데디치가 버티고 있었고, 스테아우아의 공격은 '''발칸의 마라도나''' 게오르게 하지가 주도하는등 루마니아의 역대급 인재들이 줄줄이 나온 덕분에 유럽의 정상으로 우뚝 설수 있었던것.
게다가 팀내 최다득점자와 최다출전자도 이시기에서 배출된것인데 이중 최다출장자인 투도렐 스토이카는 말년에 잠시 프랑스에서 몸담은것을 제외하곤 인생을 스테아우아에 쏟아부은 스테아우아의 영혼이자 기둥이었다. 그의 활약은 스테아우아가 최강의 자리에 올라갈수 있는 보탬이 되엇다. 허나 그렇게 뛰어난 활약을 했음에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선 웃어본적이 없었다. 1986년에는 스테아우아의 주장으로서 첫 결승전을 뛸 기회가 있었지만 준결승전에서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을 못뛰게 되었고, 3년후에 다시 결승에 올라왔을때 슈토이카는 뛸 기회를 놓치진 않았지만 하필 상대가 스테아우의 세대를 뛰어넘는 괴물들만 모아놓은 무적의 팀이였다. 결국 0-4로 참패하였고 그 경기를 끝으로 슈토이카는 다시는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서 뛰지 못하였다.
그 외에도 득점수만 놓고 보자면 스테아우아 역대 최고의 선수로 볼 수 있는 앙겔 이오르더네스쿠는 정작 현역내내 명문 클럽 스테아우아에서 뛰면서 이룬 리그우승 횟수는 고작 2회(...)에 불과하다. 그리고 선수생활 말년에 그리스의 중소 클럽으로 이적하고 2년을 뛴후 은퇴를 한 후에는 곧바로 친정팀 스테아우아의 수석코치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절묘하게도 이오르더네스쿠가 현역생활을 마무리한지 2년만에 스테아우아가 처음으로 유로피언 컵 결승까지 올라가게 되었고, 이오르더네스쿠는 현역시절 한번도 못뛰어본 결승전을 은퇴하고 나서야 수석코치였음에도 교체 출전으로 뛰게 되었다. 그리하여 스테아우아는 바르사의 사연뻥 자멸로 빅 이어를 획득하였고, 이오르더네스쿠는 1경기 1빅이어(...)로 시즌을 마쳤다. 결승전 자체도 선발이 아니라 후반전 교체출전이었으니 엄청 운좋게 엄청난 커리어를 가지게 되었다.
특기할만한 사항으로는 루마니아 최고의 클럽답게 전설적인 감독도 2명이나 배출했다. 앞서 언급한 이오르더스네쿠는 선수 시절보다 더 화려한 감독 생활을 하였는데 그게 바로 '''스테아우아의 유럽 최장 무패기록'''을 수립한 것. 이것도 이 양반이 감독시절에 이룬것이다. 운적인 면도 있지만 이오르더네스쿠가 스테아우아의 화려한 커리어를 이뤄낸건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90년대 루마니아 황금기 시절에도 감독을 역임하여 루마니아 역사상 최고의 감독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은 에메리히 예네이라고 스테아우아 전성기의 초석을 쌓은 인물이자 스테아우아에게 빅 이어를 안겨준 감독으로 스테아우아를 성공적으로 이끈것을 인정받아 루마니아 국대 감독에까지 오르게된다. 그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자국 사상 최초로 16강 진출을 이끄는 등 그 역시 대단한 업적을 쌓으면서 스승 예네이와 제자 이오르더스네쿠가 루마니아의 전설적인 감독이 되었다.
9. 선수단
10. 같이보기
[1] 이 구단주의 갖가지 기행은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다(....)[2] 영어로 번역하면 루마니아 컵[3] 영어로 번역하면 리그 컵[4] 영어로 번역하면 루마니아 슈퍼컵[5] 이 승부차기에서 바르셀로나가 삼연뻥에서 진화 된 사연뻥을 시전하였다![6] 비슷하게도 5년후에 유고슬라비아의 츠르베나 즈베즈다도 더블에는 성공했으나 컵 대회 결승전에서 하이두크 스플리트에게 0-1로 패하며 트레블에 실패한바 있다.[7] 우승은 AC 밀란으로 4-0으로 패하였다 [8] 공산당 시절만 해도 만 25세를 넘겨야 해외 진출이 가능했고, 그나마도 연봉의 일부는 국고로 들어갔다.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는 쿠바 운동 선수들을 연상하면 쉬울 것이다.[9] 경기장이 겨우 7천 석도 안 되는 작은 구단이지만 2001년 창단되어 2010년 백만장자 구단주 키릴 도무체프가 팀을 인수한 뒤 강해진 구단이다. 2010/2011 시즌 2부 리그 우승을 통해 승격하자마자 1부 리그를 3연패(2011/2012~2013/2014)했다. 그리고, 2013-14시즌 유로파 리그에서 라치오와 PSV를 이기며 16강까지 오르던 팀이다. 즉 스테아우아가 허접 팀에게 진 건 아니다.